가난을 자랑으로 삼은 사람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자랑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다. 벼슬자리를 마다하고 시골에 묻혀 책을 읽었으며, 권력이 부르면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섰다. 조선의 선비들이 그러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을 만큼 비효율적인 삶이다. 그런데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선비'라는 말에는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무게가 남아 있다. 그 무게의 정체가 바로 선비정신이다.
청빈, 가난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택하는 것
선비정신의 첫 번째 기둥은 청빈(淸貧)이다. '맑을 청'에 '가난할 빈'을 붙여 흔히 깨끗한 가난이라 옮기지만, 핵심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재물을 좇지 않기로 스스로 정한 마음, 적게 가지고도 비굴하지 않은 당당함이 청빈이다.
공자가 가장 아꼈던 제자 안회는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잃지 않았다고 전한다. 남들은 그 고생을 견디지 못했지만 안회는 자신의 길을 바꾸지 않았다. 선비가 가난을 택한 까닭도 여기 있다. 가진 것이 적어야 매이는 데가 적고, 매이는 데가 적어야 옳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빈은 궁핍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자유를 얻기 위해 기꺼이 치르는 값이었다. 남보다 더 큰 집, 더 좋은 차를 갖추지 못해 안달하는 오늘의 풍경을 떠올리면, 적게 가지는 일을 자랑으로 삼았던 그 태도는 오히려 낯설고도 신선하다.
강직, 꺾일지언정 휘지 않는 등뼈
두 번째 기둥은 강직(剛直)이다. 청빈이 안으로 향한 절제라면, 강직은 밖을 향한 기개다. 권력 앞에서도 할 말을 하고, 불의를 보면 물러서지 않으며, 목이 베일지언정 뜻을 굽히지 않는 태도다.
맹자는 진정한 대장부의 조건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부귀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 절개를 바꾸지 못하며, 위세와 무력도 그 지조를 꺾지 못하니, 이를 일러 대장부라 한다. - 『맹자』, 맹자
부와 권력, 가난과 위협—사람을 흔드는 이 힘들 가운데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맹자는 대장부라 불렀다. 조선의 선비들이 평생 가슴에 새기고자 했던 이상이 바로 여기 있었다. 단종을 향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다 죽음을 맞은 사육신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되는 것도, 그들이 청빈과 강직을 끝내 목숨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오늘, 선비는 어디에 있는가
선비정신을 옛 선비의 갓과 도포 속에만 가두면 그것은 박제가 되고 만다. 그러나 그 알맹이는 지금도 살아 있다. 회사의 부당한 지시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직원, 조회 수를 위해 사실을 비틀지 않는 기자, 당장 이익이 되지 않아도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이들이 곧 오늘의 선비다.
물론 청빈을 무턱대고 미화할 필요는 없다. 가난 자체가 미덕인 것이 아니라, 돈과 자리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이 미덕이다. 강직 역시 고집이나 독선과는 분명히 다르다. 자기 이익이 아니라 공동의 옳음을 위해 꺾이지 않을 때 비로소 그것은 기개가 된다. 결국 선비정신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단순하다.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 앞에서도 자신을 팔지 않을 수 있느냐다. 갓을 벗은 지 오래인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 물음은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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