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봄, 대한민국 증시에 전례 없는 활황이 찾아왔다.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7000선을 돌파하더니 순식간에 8000선 시대가 열렸다. 삼성전자는 26만 원대를 넘어섰고, SK하이닉스는 160만 원의 고지를 밟았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목표주가 50만 원, SK하이닉스 목표주가 300만 원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갔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은 6000조 원을 넘었고, 삼성전자는 아시아 기업 중 두 번째로 시총 1조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그 봄날 카카오톡 단톡방에는 한 마디가 반복해서 떠돌았다. "나만 빼고 다 올랐다." 직장 동료는 어제 산 하이닉스가 오늘 10퍼센트 올랐다며 환하게 웃는다. 지인은 '갓성전자'가 어쩌고 저쩌고 떠든다. 그 사이 나는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며 속이 쓰리다. 이것이 FOMO다. 'Fear of Missing Out', 곧 '나만 기회를 놓쳤다는 공포.'
황소의 등 위에서 이성을 잃다
주식 시장의 활황은 언제나 이성의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군중심리 연구의 선구자 귀스타브 르봉은 19세기 말, 개인이 군중 속에 합류하는 순간 독립적 판단 능력이 현저히 약해지고 집단의 감정에 쉽게 휩쓸린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그의 주저 『군중』에서 르봉은 군중 안의 개인이 오히려 지적·도덕적으로 퇴행할 수 있으며, 비판적 사고 대신 암시와 전염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SNS와 투자 커뮤니티는 르봉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빠르게 군중을 형성한다. 어젯밤 유튜브 영상 한 편, 오늘 아침 커뮤니티 글 하나가 수십만 명의 손가락을 증권 앱으로 향하게 한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이미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더 많이 보여주면서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지금 안 사면 늦는다"는 공포는 피드 위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비교라는 독약
FOMO의 핵심 연료는 비교다. 타인의 수익률이 나의 심리를 허문다. 평소엔 합리적인 사람도 "나만 빼고 다 번다"는 확신에 사로잡히면 판단력을 잃는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손실 회피 편향'과 결합된 현상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잃지 않았음에도 "올랐는데 안 샀으니 손해"라는 상실감, 즉 기회비용의 상실을 실제 손실처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이 비교를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시킨다. 누군가의 수익 인증샷, 누군가의 "오늘도 쐈다" 게시글은 내 판단 기준을 흔든다. 결국 충분한 분석 없이 고점에서 매수하고, 공포에 질려 저점에서 매도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FOMO는 이렇게 나쁜 투자의 인과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가장 늦게 뛰어든 사람이다.
분별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스토아 철학은 이 지점에서 오래된 처방을 제시한다.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그의 『엥케이리디온』에서 삶의 사태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 시장의 방향, 다른 사람의 수익, AI 반도체 수요의 폭발 — 이것은 내 통제 밖에 있다.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판단, 나의 반응, 그리고 나의 원칙뿐이다.
에픽테토스의 이 구분이 2026년 봄의 증시에서 왜 유효한가. 코스피가 8000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 흐름을 미리 예측한 사람은 드물었다. 마찬가지로 언제 꺾일지 예측할 사람도 드물다. 시장은 인간 이성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이성이 통제할 수 없는 집단 감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정신을 잠식당한다면, 그 결과는 불안과 조급함뿐이다.
내 돈인가, 군중의 공포인가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이 있다. "지금 내가 사려는 이유가 나의 분석인가, 아니면 FOMO인가?" 이 질문 하나가 많은 것을 가른다.
활황장은 기회이면서 동시에 함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시대의 핵심 수혜자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이 가격에 반드시 사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종종 다르고, 군중이 열광할 때 그 간격은 더욱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르봉이 군중의 비이성을 경고했고, 에픽테토스가 통제 불가능한 것에 대한 집착을 경계했던 것처럼, 철학이 자본주의에 건네는 메시지는 하나다. 욕망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다. 욕망의 출처를 물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것인가, 군중의 공포가 나에게 이식한 것인가.
남들이 모두 뛰어들 때 잠시 멈추는 것, 그것이 어리석음이 아니라 철학이다.
© 2026 아트앤스터디 + claude.ai, CC BY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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