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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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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잘 몰랐는데 |
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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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 강연 사회보신다고 해서 알게 됐습니다. 책은 좋아하지만 선생님 책은 안 읽어서 그냥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도 지젝 지젝 하길래 사회보신다는 이 샘의 섭을 들어봤는데 꽤 재밌네요.
깨알같은 숨은 뒷얘기들과 작품을 함께 보고 있으니 미술사가 아니라 그냥 잡담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이건 남는 게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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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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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하게 |
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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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직장 생활 하면서 꼬박 꼬박 듣기가 쉽지 않은데 집에 돌아와 티브이 시청하듯 보면 어느 정도 머리에 들어오더라구요.
전 사실 사투리가 조금 거슬리긴 하던데 그래도 재미있긴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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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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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뒷담화 들려주는 이야기 |
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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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선생님 사투리 매력적이죠~ 강의 진짜 재미있어요 기존의 인상파에 대한 강의에 뒷담화가 첨가됐달까? 진짜 이야기 듣는 기분이라 그림도 보면서 하니까 설명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진짜 재밌는데 강의평 제가 처음이네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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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가기 전에 꼭 들으세요 |
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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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 파리 여행 계획이 있어서 오르세 미술관 가기 전에 예습 차원에서 신청했습니다. 사실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택광 교수님이 마치 옆에서 옛날이야기 해주듯이 편안하게 설명해 주셔서 좋았어요. 특히 마네의 올랭피아가 왜 당시 사회에서 비난받았는지, 단순한 누드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매춘이라는 코드로 읽어내는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여행 가서 그림 보면 느낌이 확실히 다를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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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가 구수하시네요 |
박*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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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은 유익한데 교수님 사투리 억양이 처음엔 좀 귀에 안 들어왔어요. 듣다 보니 적응되긴 하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합니다. 그래도 내용은 깊이 있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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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의 찌질한(?) 면모 |
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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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에서 보던 화가들이 아니라, 돈 때문에 힘들고 연애 때문에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드가가 여성혐오자였다거나 모네가 허세 부리던 댄디였다는 뒷담화 같은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네요. 그림만 띄워놓고 지루하게 설명하는 강의가 아니라서 완강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맥주 한잔하면서 가볍게 듣기 딱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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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래요 |
이*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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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것보다는 평이하네요. 책 내용을 그대로 읊는 느낌도 좀 있고. 가볍게 교양 쌓기엔 나쁘지 않지만 전공자나 깊이 있는 분석을 원하면 비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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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시기에 만난 위로 |
정*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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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존감도 바닥치고 우울했는데, 이 강의 8강에서 고흐와 고갱 이야기 듣다가 울컥했습니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을 고집했던 그들의 삶이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인상파 그림들이 단순히 예쁜 풍경화가 아니라, 치열한 삶의 투쟁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위로가 많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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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보트의 재발견 |
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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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하면 모네나 르누아르만 알았지 카유보트라는 화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시선'이라는 강의 주제처럼 사진 같은 구도로 파리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들이 참 매력적이네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에 대한 해석, 만보자(flaneur) 개념 설명해주신 부분이 특히 인상 깊어서 관련 서적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좋은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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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이 좀 아쉬워요 |
윤*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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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은 좋은데 영상이 좀 옛날 거라 그런지 화질이 요즘 유튜브만 못하네요. 칠판 글씨나 자료 화면이 흐릿할 때가 있어서 눈이 좀 아픕니다. 리마스터링이 필요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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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미술의 만남 |
한*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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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그림 설명이 아니라 당시 파리의 정치, 사회, 철학적 배경을 같이 엮어서 설명해 주니 입체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벤야민이나 보들레르 이야기가 나올 땐 좀 어렵긴 했지만, 파리 코뮌과 인상파의 관계를 설명하는 4강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술보다 더 재밌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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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림 얘기는 좀... |
송*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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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에서 일본 우키요에 이야기 나오는데, 인상파가 일본 영향을 받았다는 건 알겠는데 설명이 좀 장황한 느낌? 개인적으로 일본풍 그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그 파트는 좀 지루했어요. 그래도 고흐가 일본 판화 수집광이었다는 건 새로 알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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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산만해요 |
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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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말씀이 너무 이리 튀었다 저리 튀었다 해서 필기하면서 듣기엔 힘듭니다. 체계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강의 스타일 좋아하시면 안 맞을 거예요. 저는 듣다가 중간에 포기할 뻔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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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순삭했습니다 |
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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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볼까 하다가 교양 좀 쌓으려고 결제했는데 1강부터 8강까지 주말에 몰아서 다 봤습니다. 이택광 교수님 입담이 장난 아니시네요. 19세기 파리 뒷골목 산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강의 다 듣고 나니 집에 걸려 있는 모네 포스터가 다르게 보입니다. 다른 강의도 찾아 들어볼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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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을 다시 보게 됨 |
오*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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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잔 그림이 왜 명작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던 사람인데, 7강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모방에서 창조로 넘어가는 그 지점, 현대 추상화의 다리를 놓았다는 설명이 명쾌하네요. 사과 하나 그리는데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미술 보는 눈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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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잘 안 들려요 |
신*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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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륨을 최대로 키워도 교수님 목소리가 좀 웅얼거리는 느낌이라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내용은 참 좋은데 오디오 가독성(?)이 아쉽네요. 자막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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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인상파 점묘 추상 |
최*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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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매끄러운 흐름보다, 조각조각의 편린들을 통해 입체파같은 구성으로 인상파와 프랑스를 그리고있다.
하지만 당시 화가들과 그 세계는 현시대의 가치관으로 해석 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을 좁히려는 경험과 사유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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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뒤 그림 |
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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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좌 들으면서 책장에서 오랜만에 케케묵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보지만 동시에 그림을 그린 작가의 심리와 세계관도 엿보지요. 인상파 화가들의 아방가르드한 인생 얘기는 그야말로 소설로 써도 손색이 없을 것 같고 작가들의 인생이 작품에 어떤 식으로 표출 되었는지를 하나식 짚어가는 과정에서 실소도 폭소도 터졌습니다. 그림 뒤의 또 다른 그림이 궁금한 분이라면 권합니다. 이택광 선생님 신작이 2014년에 나온 게 있어서 주문도 했습니다. 제 신념과 많이 닮은 분... 더더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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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의 시선을 ‘만보자’의 시선이라 부른다. |
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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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시선
정직한 시선이라 하면 어떤 시선을 말하는 걸까? 바로 ‘사진술’의 도입을 말한다. 그리고 이 때에는 주목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주목을 받은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등장한다. 카유보트는 원래 수집가로서 인상파와 인연을 맺었지만 후에는 화가로서 참여하게 된다. 카유보트는 화가다운 화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사진술 특유의 효과를 구현한 비범함이 엿보인 화가임에 틀림없다.
이 그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포착한 느낌을 준다. 요즘으로 치면 동영상을 프린트 스크린 한 느낌을 표현했다. 이는 삶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한편, 실제로 사진을 찍은 듯이 피사체를 그림보다 크게 찍었으며 사진에 미처 나오지 못한 부분이 잘린 것처럼 보인다.
카유보트의 그림에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는데, 이는 경제 상황 속에서 이해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개념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더 힘든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부르주아보다 더 강인한 유전자를 가진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카유보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 계급은 삶에 지쳐있기 보다는 강인하고 역동적인 힘을 보여준다.
카유보트 그림 중의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시선’이다.
이 그림 역시 마치 사진과 같다. 한낮 유럽의 거리를 누군가가 찍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앞에서 걸어가던 이가 뒤돌아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찍은 ‘시선’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자보다 비껴서 앞에 걸어가는 남자는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걸까? 다리 아래의 풍경일까, 아니면 뒤에 오는 부인일까? 그 당시에는 저렇게 여인의 앞에 서서 뒤로 힐끗 거리며 쳐다보는 게 유행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보고 배우는 일은 지루한 공부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와 문화를 슬쩍 엿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남자 발코니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 발코니가 달린, 저만큼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집이라면 분명 부르주아인 누군가의 집임에 틀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카유보트는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보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럼 여기서 발코니를 통해 본다는 의미를 해석해보자. 발코니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준다. 즉, 발코니 안쪽의 내부에는 자신의 욕망을 배치하고, 그 내부에 또 다른 외부를 배치한 셈이다. 그러나, 발코니를 통해 그 외부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자아가 갇혀있다고도 해석을 한다고 한다.
바라보는 그림을 그렸던 카유보트. 우리는 그의 시선을 ‘만보자’의 시선이라 부른다. 세상을 구경거리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시선을 가진 그림들을 왜 과거와는 다르게 보아야 할까?
베르나르는카메라의 자리에 관객을 놓았다. 이 말이 힌트가 되었을까? 우리가 전과는 다르게 그의 그림을 봐야 하는 것, 즉 카유보트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카메라의 위치에 바로 ‘만보자’가 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겠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문화적 혜택을 받던 만보자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느릿느릿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삶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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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새로운 미학과 전통의 파괴 <일본 그림과 인상파> |
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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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학과 전통의 파괴 <일본 그림과 인상파>
유럽의 한복판을 거니는 것 같더니 난데없이 동쪽 나라 일본의 등장이다. 일본 그림과 인상파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사실, 이 관련성이라는 것도 한 측에서는 일본 그림이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정설과 영향을 받은 게 크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 그림이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정설에 따라 살펴보기로 한다.
인상파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인상파는 어쩌면 최초의 ‘화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것들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최초를 걸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유지해나가는 위계를 표현하던 것들도 다 무너져갔다.
관념을 무너뜨린 인상파와 여전히 관념을 거닐 것만 같은 일본 그림. 이제부터 살펴보자.
나는 이 판화를 만화책에서 본 적 있다. 남자 주인공이 이것을 보고 ‘멀리 후지산이 보여서 거친 파도 속에서도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던 대사가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일본 그림을 설명할 때 처음 등장한 것이 이 판화라 반가웠다.
이것은 인상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구도를 지니고 있다. 즉, 원근이 아닌 평면적 방식이다. 우끼요에란, 일본 에도시대(1603~1867) 에 성행했던 풍속화의 한 양식을 일컫는다. 속세(俗世)를 주로 그린 일본식 목판화로 가부키배우의 연기모습과 일반 시민의 일상생활과 풍속, 일본과 중국의 시가(詩歌) 또는 고사(故事)등을 소재로 강렬하고도 선명한 색채들을 즐겨 사용하면서 간단명료한 선조(線條)를 운용하였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판화형식을 취한 점에 특색이 있고, 회화감상의 감동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일어난 새로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끼요에는 인상파에게 무엇이었을까? 색의 배합에 의해 선이 모호해지는 유럽의 유화나 수채화와 달리 선이 뚜렷하게 남는 우끼요에 판화의 화려한 색채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미술계를 흥분케 한다. 그 중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뒤로 후지산과 일본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고흐 또한 물감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는 생전에 무려 470여 점 이상의 우끼요에 판화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 고장의 풍경은 맑은 대기와 선명한 자연의 색채가 태양아래 빛납니다. 물은 에머랄드 색깔로 빛나는데 역시 우끼요에 판화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고흐의 편지 중에서-
http://blog.aladin.co.kr/707402127/4731898
위의 그림은 반 고흐의 그림과 히로시케의 사계절 목판화이다. 고흐가 히로시케의 작품을 모사한 것으로 이로 인해 유명세를 치뤘다고 한다.
고흐 못지 않게 영향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모네였다. 모네는 자신의 집 벽을 일본 판화로 장식하였으며, 만년을 보낸 파리 교외의 집에는 일본풍의 정원을 만들어 수련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모네는 좋아하는 만큼 우끼요에를 깊이 이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작품을 보고 “원근법이 없지만 아름답다. 서구의 전통에 의거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그가 우끼요에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위 작품은 모네의 ‘생 타드레스의 정원’이다. 이 그림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원근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네는 쿠르베의 영향에서 벗어나 뚜렷하게 인상파의 수법에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림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의 농도를 조절해서 그리는 동양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파가 일본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인상파가 오리엔탈리즘, 즉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어쩌면 인상파에게 동양은 서양의 전통을 거부하기 위한 미학의 증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양을 깊이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타자화 시키고 신비화 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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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이야기를 듣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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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저가 없이 평이한 음성으로 웅얼웅얼.... 인상파라는 봉우리를 숲속 구석구석 나무한그루씩 관찰하고 다시 돌아본 강좌였슴다. 두권책과 함께 읽고 듣다 보니 어느새 19세기가 저물고 주관을 담아내려는 고갱의 세계로 건너와있고...고갱을 미술사적으로 다시 생각해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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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새로운 미학과 전통의 파괴 <일본 그림과 인상파> |
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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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학과 전통의 파괴 <일본 그림과 인상파>
유럽의 한복판을 거니는 것 같더니 난데없이 동쪽 나라 일본의 등장이다. 일본 그림과 인상파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사실, 이 관련성이라는 것도 한 측에서는 일본 그림이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정설과 영향을 받은 게 크지 않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 그림이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정설에 따라 살펴보기로 한다.
인상파에 대해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인상파는 어쩌면 최초의 ‘화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것들을 그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최초를 걸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유지해나가는 위계를 표현하던 것들도 다 무너져갔다.
관념을 무너뜨린 인상파와 여전히 관념을 거닐 것만 같은 일본 그림. 이제부터 살펴보자.
나는 이 판화를 만화책에서 본 적 있다. 남자 주인공이 이것을 보고 ‘멀리 후지산이 보여서 거친 파도 속에서도 희망적이다’라고 말했던 대사가 기억난다. 그래서인지 일본 그림을 설명할 때 처음 등장한 것이 이 판화라 반가웠다.
이것은 인상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한 구도를 지니고 있다. 즉, 원근이 아닌 평면적 방식이다. 우끼요에란, 일본 에도시대(1603~1867) 에 성행했던 풍속화의 한 양식을 일컫는다. 속세(俗世)를 주로 그린 일본식 목판화로 가부키배우의 연기모습과 일반 시민의 일상생활과 풍속, 일본과 중국의 시가(詩歌) 또는 고사(故事)등을 소재로 강렬하고도 선명한 색채들을 즐겨 사용하면서 간단명료한 선조(線條)를 운용하였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판화형식을 취한 점에 특색이 있고, 회화감상의 감동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일어난 새로운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끼요에는 인상파에게 무엇이었을까? 색의 배합에 의해 선이 모호해지는 유럽의 유화나 수채화와 달리 선이 뚜렷하게 남는 우끼요에 판화의 화려한 색채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미술계를 흥분케 한다. 그 중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 뒤로 후지산과 일본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고흐 또한 물감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는 생전에 무려 470여 점 이상의 우끼요에 판화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 고장의 풍경은 맑은 대기와 선명한 자연의 색채가 태양아래 빛납니다. 물은 에머랄드 색깔로 빛나는데 역시 우끼요에 판화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고흐의 편지 중에서-
http://blog.aladin.co.kr/707402127/4731898
위의 그림은 반 고흐의 그림과 히로시케의 사계절 목판화이다. 고흐가 히로시케의 작품을 모사한 것으로 이로 인해 유명세를 치뤘다고 한다.
고흐 못지 않게 영향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모네였다. 모네는 자신의 집 벽을 일본 판화로 장식하였으며, 만년을 보낸 파리 교외의 집에는 일본풍의 정원을 만들어 수련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하지만 모네는 좋아하는 만큼 우끼요에를 깊이 이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한 작품을 보고 “원근법이 없지만 아름답다. 서구의 전통에 의거하지 않아도 아름답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그가 우끼요에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위 작품은 모네의 ‘생 타드레스의 정원’이다. 이 그림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원근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네는 쿠르베의 영향에서 벗어나 뚜렷하게 인상파의 수법에 접근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림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의 농도를 조절해서 그리는 동양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파가 일본 그림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인상파가 오리엔탈리즘, 즉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어쩌면 인상파에게 동양은 서양의 전통을 거부하기 위한 미학의 증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양을 깊이 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타자화 시키고 신비화 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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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우리는 그의 시선을 ‘만보자’의 시선이라 부른다. |
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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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시선
정직한 시선이라 하면 어떤 시선을 말하는 걸까? 바로 ‘사진술’의 도입을 말한다. 그리고 이 때에는 주목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주목을 받은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등장한다. 카유보트는 원래 수집가로서 인상파와 인연을 맺었지만 후에는 화가로서 참여하게 된다. 카유보트는 화가다운 화가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정직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사진술 특유의 효과를 구현한 비범함이 엿보인 화가임에 틀림없다.
이 그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포착한 느낌을 준다. 요즘으로 치면 동영상을 프린트 스크린 한 느낌을 표현했다. 이는 삶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한편, 실제로 사진을 찍은 듯이 피사체를 그림보다 크게 찍었으며 사진에 미처 나오지 못한 부분이 잘린 것처럼 보인다.
카유보트의 그림에 노동자 계급이 등장하는데, 이는 경제 상황 속에서 이해 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개념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더 힘든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부르주아보다 더 강인한 유전자를 가진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카유보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 계급은 삶에 지쳐있기 보다는 강인하고 역동적인 힘을 보여준다.
카유보트 그림 중의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시선’이다.
이 그림 역시 마치 사진과 같다. 한낮 유럽의 거리를 누군가가 찍은 듯한 느낌을 준다. 앞에서 걸어가던 이가 뒤돌아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찍은 ‘시선’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자보다 비껴서 앞에 걸어가는 남자는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걸까? 다리 아래의 풍경일까, 아니면 뒤에 오는 부인일까? 그 당시에는 저렇게 여인의 앞에 서서 뒤로 힐끗 거리며 쳐다보는 게 유행이었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보고 배우는 일은 지루한 공부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와 문화를 슬쩍 엿보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남자 발코니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 발코니가 달린, 저만큼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집이라면 분명 부르주아인 누군가의 집임에 틀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카유보트는 실내에서 실외를 바라보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럼 여기서 발코니를 통해 본다는 의미를 해석해보자. 발코니란 무엇일까? 그것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해준다. 즉, 발코니 안쪽의 내부에는 자신의 욕망을 배치하고, 그 내부에 또 다른 외부를 배치한 셈이다. 그러나, 발코니를 통해 그 외부를 바라볼 수는 있지만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그것을 드러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자아가 갇혀있다고도 해석을 한다고 한다.
바라보는 그림을 그렸던 카유보트. 우리는 그의 시선을 ‘만보자’의 시선이라 부른다. 세상을 구경거리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시선을 가진 그림들을 왜 과거와는 다르게 보아야 할까?
베르나르는카메라의 자리에 관객을 놓았다. 이 말이 힌트가 되었을까? 우리가 전과는 다르게 그의 그림을 봐야 하는 것, 즉 카유보트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카메라의 위치에 바로 ‘만보자’가 있다는 말로 대답할 수 있겠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문화적 혜택을 받던 만보자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느릿느릿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삶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던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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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빠져들 수 있는 수업.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 |
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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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근대 그리고 마네
미술관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그림을 보는 건 좋지만 이렇게 수업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내가 강의를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앞섰다. 그.런.데 <인상파 아틀리에, 19세기 파리를 그리다> 강의를 들으면 그런 부담과 걱정은 사라지고 내가 마치 19세기의 어느 아틀리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져 들었던 강의를 소개하겠다.
먼저, 리얼리즘이란 말 그대로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태도이다. 그 전에는 객관적 사물을 구현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겉모습은 완벽한 객관적 사물처럼 보이나 실은 그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신화나 성서를 표현한 그림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리얼리즘은 앞의 사조에 반대하여 일상 속에서 구현되는 것을 그리자고 하는 태도이다. 즉, 리얼리즘과 리얼리즘 이전을 따지자면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느냐, 이념을 넣었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화풍은 처음부터 그것이 정립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비슷한 사고와 방법을 찾으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생기고 시간이 흐르며 정립되는 것이다. 리얼리즘의 경우는 콩트의 실증주의에서 처음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주도적 인물은 쿠르베였다. 낭만주의자였던 쿠르베는 그 당시 시대와 귀족 세력에 반발을 느끼게 되면서 실증주의를 택하였다. 그가 리얼리즘을 선언했다는 한 예로 교회에서 쿠르베에게 천사가 그려진 그림을 의뢰했는데 쿠르베가 “천사를 보여주면 그려주겠다”라고 말한 일화가 있다. 그는 ‘오르낭의 매장(Burial at Ornans)’에서 낭만주의를 종결하고 확실하게 리얼리즘으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그린 이 그림은 실제로 보고 그린 그림으로 사람들이 모두 실물 크기와 같은 등신화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그림에는 쿠르베의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쿠르베에게 할아버지가 저기 있는데 그렇다면 묻은 것은 무엇이냐, 라고 물었더니 쿠르베는 “내가 거기 누어 있다”라고 답했다 했다. 이 대답을 사람들은 낭만주의를 완전히 묻고 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The Artist's Studio)’은 아틀리에를 다룬 작품 중에서 베르메르의 것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이 역시 낭만주의에 대한 비판을 말하고 있다. 먼저 쿠르베를 중심으로 좌우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쿠르베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쿠르베 오른편의 사람들은 동료 화가, 친구, 후원자들이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같이 다양한 계급의 인물군이라 한다. 쿠르베 왼편의 젖을 먹이는 여인이나 창부는 당시 참담했던 사회현실을, 신사는 부르주아 계급을, 농부와 실업자 등은 빈민층을, 개 앞에 팽개쳐진 모자와 기타는 낭만파 예술의 몰락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일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며 작품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오른쪽의 미술 애호가와 후원자들은 쿠르베의 작품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쿠르베는 이 작품에서 빈부 혹은 계급의 차이로 나뉜 인물군의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암담한 사회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오른쪽에 보면 보들레르가 보이는데 .쿠르베는 보들레르의 미학을 실천하려 했다. 그의 미학이란 ‘우리의 일상을 고전으로 만들자’라는 것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도 결국은 그리스와 로마의 일상이 아니더냐는 말로 지금 여기의 것을 고전으로 만들자라는 것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그 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인물인 마네가 등장한다. 인상파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사실 인상파와 별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본인은 별 관련이 없을 것이라 여길지라도 인상파를 이해하는 데 마네는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대법관의 아들로 태어난 마네는 자신의 그림이 살롱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마네의 그림이 유독 혹평을 받았던 두 작품이 있는데 첫 번째가 바로 ‘올랭피아(Olympia)’이다.
이 작품은 근대 회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것은 누드화라서가 아니었다. 누드화라고 하면 항상 신화적인 이야기에 근거를 두고 여신이나 요정을 그려왔다. 현실의 매춘 여성들이 완성된 그림 속에서는 신화나 역사 속 인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이 올랭피아는 기존 누드화의 숭고함은 찾아볼 수 없다. 정면을 바라보며 수줍어하지 않는 눈빛은 곧 자신을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로 살 수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이 그림은 매춘 여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에서 기존의 누드화와는 매우 달랐다. 즉,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표현하는 기법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마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풀밭 위의 점심’이다. 이 그림은 기존에 쿠르베의 느낌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떤 장르도 아닌 혼란을 주는 그림이라 비난을 받았었다.
1863년은 프랑스 미술사에서 3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던 시기다. 첫째, 나폴레옹 3세가 살롱전에 전시된 카바넬의 누드화 ‘비너스의 탄생’을 구입했다. 둘째, 살롱전의 엄격한 심사로 3000점 이상의 그림이 낙선하자 정부 지원으로 ‘낙선전’이 열렸다. 마지막으로 마네가 살롱전에서 낙선한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을 ‘낙선전’에 전시해 관람객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당시 마네의 그림이 비난받았던 이유는 대낮에 보헤미안 복장의 남성들이 나체의 여자들과 야외에서 점심을 먹는 장면이 당시 도덕 기준으로 용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회화 양식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그림은 살롱전을 주관하는 아카데미와 정부의 심사 규정에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자. 먼저 그림 왼쪽 하단의 소풍 바구니를 보면, 살롱전 심사에서 선호도가 가장 낮은 정물(빵, 체리, 무화과)이 그려져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소풍 바구니 옆에 개구리 한 마리가 보인다. 동물 그림은 정물과 마찬가지로 살롱전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 마네 또한 이 규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개구리는 당시 만연했던 매춘을 의미했기 때문에 도덕적 심사 기준을 통과할 수 없는 소재였다. 우회적이긴 하지만 정부의 미술시장 개입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마네의 그림은 더욱 가치가 있다. 또한 이런 연유로 마네가 인상주의시대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보들레르의 영향으로 일상을 고전으로 만들어라, 라는 생각을 가미하여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고전주의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탈리아, 스페인 유학 중 본 작품에 감동을 받고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의 사이가 안 좋은데 스페인 그림을 베꼈다는 비난 역시 받았다. 당시 사람들에게 마네의 그림이란 한 마디로 '의미가 없는 그림'이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마네의 혁신성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스페인 화풍을 도입한 것, 리얼리즘의 재정립, 근대적 예술가의 독창성을 들 수 있겠다.
푹 빠져들 수 있는 수업. 다음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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