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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 |
김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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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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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철학과의 낯설지 않은 만남 |
이*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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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쉽지않고 한번에 다 들었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좋은 컨셉의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강의와 관련된 도서를 살펴보면서 아직도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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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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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영화의 대화속에 발견되는 나의 이야기 |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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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철학은 역시 사람에게서 나오는 사람의 생각이다. 따라서 철학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겠으나 우리의 삶속에서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러한 면에서 철학과 영화의 대화는 우리의 삶에 성큼 다가선다. 정여울 선생님은 전공이 철학이기 이전에 문학이지만 샤르트르처럼 문학으로 철학을 하시는 분 같다. 아트앤스타디의 철학 전공자분들의 철학강의와는 사뭇 다른, 무겁지 없으나 결코 가볍지만도 않은 강의, 때론 문학강좌 같기도 하지만 문학의 살점 안에서 철학의 뼈대가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삶에 어려움을 신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았던 경험처럼 본 강의를 통해 영화와 철학을 통해 우리의 삶에 돌파구를 제시한다.
이미 <씨네필 다이어리> 1,2권으로 출판되어 호평받은바 있는 본 강의의 텍스트는 이 책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들이지만, 말과 글이 다르듯 강의는 책과 또 다른 맛이 있다. 철학자들의 사상을 너머 신화학자 조셉 켐벨의 <신화의 힘>이야기는 철학을 넘어선 신비의 영역까지 넘나드는듯 하다.
우리에게 일어난 삶의 사건들은 해석되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듯이 본 강의는 여러 영화를 철학으로 해석하여 그 의미를 보여주는데 그 지점에서 나의 삶의 해석이 일어나는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정우 선생님의 <영화가 묻고 철학이 답하다>가 짧고 굵은 통찰을 던져준다고 한다면, 정여울 선생님의 강의는 세밀하고 정감있고,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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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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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 |
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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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의 관점을 통해 영화 쇼생크 탈출을 살펴보았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꽤 오래되었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명작은 시네필 다이어리의 저자 강여울 강사를 통해 또 다른 인문학적인 시선을 제공했다.
형벌은 인간을 길들이지 못한다는 니체는 공동의 체험을 강요하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을 길들여온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들의 하향평준화를 이루게만 할뿐인 것이다.
또한 무리지어 다니며 자신들이 표준이라고 외치는 패거리의 행태를 약자의 근성이라고 혐오했다. 강한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 고귀한 부류의 인간은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강의에서는 이런 니체의 사상들을 영화 쇼생크 탈출을 통해 예를 들고 있다. 주인공인 앤디는 무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두번의 종신형에 처해진다. 감옥에서 그는 다른 감옥수들과는 다른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굳이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기꺼이 은둔하기를 선택하며, 무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자의 `홀로있음`을 그들은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몇몇은 그를 거만하다고 따돌리고 몇몇은 그를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여 지옥같은 치욕을 준다. 그의 자리가 아닌것 같은 그안에는 그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인물이다.
이렇듯 강한 자는 자기안에서 자신의 윤리를 창조해낸다. 결코 타인에게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필요가 없는 자. 현재의 불행을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창조적 긴장으로 여기는 자. 자신을 죽이지 못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자.
좀 더 유사하고 좀 더 평범한 인간들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좀 더 선택된 자, 좀 더 예민한 자, 좀 더 희귀한 자, 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은 쉽게 고립되기 쉬우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재난을 당하기도 쉽고 거의 번식하지도 못한다. ㅡ <니체 -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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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철학의 대화 속에서 나의 삶을 해석하다 |
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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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영화의 만남이라는 컨셉 자체가 탁월합니다. 정여울 선생님은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철학의 뼈대를 영화의 살점 안에서 보여줍니다. 특히 영화를 철학으로 해석하여 나의 삶의 해석이 일어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니체의 '초인' 메시지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조셉 캠벨의 '통과의례'를 읽어낼 수 있다니,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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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이덴티티>와 푸코의 '감시와 처벌' |
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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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로 봤던 <본 아이덴티티>를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의 프리즘을 통해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로 보입니다. 주인공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된 '인간 병기'라는 사실이 근대 자본주의 체제 속의 현대인의 자기 감시 시스템과 연결되는 통찰이 무거우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길들여진 인간의 자기 감시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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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강한 자의 홀로 있음'과 <쇼생크 탈출> |
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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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의 관점을 통해 <쇼생크 탈출>을 분석한 것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주인공 앤디가 감옥이라는 폐쇄적 공간 속에서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는 모습에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강한 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는 니체의 사상을 통해, 고립되기 쉬운 '선택된 자'의 자세와 스스로 가치를 결정하는 자의 윤리를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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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조셉 캠벨의 '통과의례', 성장을 위한 시련 |
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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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조셉 캠벨의 신화적 사유로 풀어낸 강의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고독한 시련을 겪고 용감하게 이겨내 타인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과정, 즉 '통과의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우울이 어쩌면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저의 통과의례가 치유되길 빌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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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을 은유로 대면하다 |
장*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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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연결이 탁월했습니다. 천재와 죄수, 은유로서의 질병 등 손택의 비평적 시각을 통해 영화를 깊이 읽어냈습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사진이나 영화로 접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윤리적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듣고 제가 얼마나 많은 영화와 현실의 고통을 무감각하게 소비했는지 반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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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설명이 와닿지 않았고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 |
조*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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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좋아했던 영화들이라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강사분의 설명이 와닿지 않고 식상한 비유들에 지쳤습니다. 게다가 너무 급하게 흑백 또는 선악으로 마무리 짓는 설명들은 혹시 동영상에서 편집된 부분이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의아함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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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
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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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는 좋아했지만 철학에 대해서 괴리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강의와 글을 통해 철학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든 강의가 다 좋았고, 특히 조셉 캠벨과 신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큰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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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은 만남,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이 남다 |
이*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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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쉽지 않은데도 한 번에 다 들었습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컨셉의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강의와 관련된 도서(시네필 다이어리)를 살펴보면서 아직도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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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인해 풍부해진 철학, 철학으로 인해 풍부해진 영화 |
권*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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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사상을 넘어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이야기까지 넘나드는 강의였습니다. 이정우 선생님의 강의가 짧고 굵은 통찰이라면, 정여울 선생님의 강의는 세밀하고 정감 있고,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과 함께 철학적 깊이를 얻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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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게 여겼던 일본 만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네요 |
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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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강의는 참 인상적이었고, 예전에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 여겨졌던 일본 만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네요. 영화를 만들 때 감독님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고민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소통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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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자는 무리지어 다닐 필요가 없다 |
백*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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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사상을 통해 <쇼생크 탈출>을 봤는데, 공동의 체험을 강요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폭력이라는 니체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무리지어 다니는 행태를 약자의 근성이라고 혐오한 니체의 관점을 통해, 저의 홀로 있음을 지켜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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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인연으로 내 삶의 큰 계기가 됨을 감사드립니다 |
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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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강의를 발견하고 표류하던 삶에 자기반성과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중이었습니다.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교수님의 말들이 가슴으로 밀려왔습니다. 결국 그 속에서 미래의 삶, 그 계기를 만났습니다. 무심한 인연으로 내 작은 삶의 큰 계기가 됨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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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의 상실과 현대인의 우울 |
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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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의 과정, 즉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강의를 통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울이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됐던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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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
권*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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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듣기 위해 처음 본 영화도 있고 다시 본 영화도 있습니다. 예술 작품인 영화를 만들 때 감독님들이 의도적으로 딱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만드신 건지는 모르지만, 새삼 느낀 것은 철학자, 작가, 영화감독, 화가 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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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춤추는 별, 시련을 웃으며 맞이하는 초인 |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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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과 니체를 공부하며 '초인은 놀 줄 아는 인간'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괴롭힌 기억에 매달리지 않고, 아무리 힘든 운명이 다시 온다고 해도 운명에의 사랑(Amor Fati)을 가진 자가 바로 초인입니다. 이 강의는 시련을 웃으며 맞이하는 끈질긴 무중력 탐험가가 되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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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참 좋아했던 영화들이어서 기대를 했었는데.. |
조*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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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분의 설명이 와닿지 않더군요.
식상한 비유들에 지치고, 너무 급하게 흑백 또는 선악으로 마무리 짓는 설명들은 혹 동영상에서 편집된 부분이 지나친게 아닐까 하는 의아함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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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들은, 정말 나다운 것인가 |
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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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에 있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선생님이 대본 같은 걸 보면서 하나씩 잔잔하게 읽어주고 설명해주는데 그 내용이 참 마음에 와닿는 게 많습니다.
별 생각없이 본 영화에 의미를 부여한 강의를 듣고 나니 영화를 다시 보면 느낌이 어떨지 바로 실행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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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철학읽기 |
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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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 푸코의 철학은 불편하고 어렵지만 .... 감시와 처벌..... 정여울 선생님의 강의는 상당히 쉽고 재미있네요. 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로 봤던 영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는 고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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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호님:) 아트걸은 정여울 선생님의 시네필다이어리 책을 읽었는데요. 강의만큼 좋아요. 강의를 들으셨으니,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 감사합니다. 아트걸 (1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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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있고 감동적인 강의 |
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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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철학 이론을 영화의 내용과 연결하여 쉽게 설명해 줌으로써 실제 삶 속에서 철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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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
l**efore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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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있는 영화평론들을 보면 자기만의 시각에 특정한 철학자들의 인문학적인 시각을 덧붙여 훨씬 더 설득력있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정여울의 글은 문제의식이 명확하고 문체가 참 좋다. 이 강의에서 제일 좋았던 강의는 조셉 캠벨과 니체의 강의였다. 이름만 들어봤던 조셉 캠벨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그의 기초적인 이론을 아는 한편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아이디어들을 강의를 통해서 거둬들일 수 있었다. 통과의례 - 하나의 개인이 공동체에서 소외되어 혼자가 되는 고독한 시련을 겪고 그것을 용감하게 이겨내고 타인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인간 - 내 안의 신화를 발견하라는 메시지는 단순히 조셉 캠벨의 입문강의로 생각했었던 나에게는 크나큰 수확이었다. 니체는 또 어떤가. 감동적으로 봤던 쇼생크탈출이라는 영화에서 니체가 언급하는 초인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니. 한정된 분량 때문에 철학자들의 이론을 '맛보기' 수준으로 들을 수밖에 없어 아쉬웠지만 영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끝으로 완강한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계속 찾아서 보게 되는데 영화나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더 찾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입문격으로 들어보기에 좋은 강의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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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철학과 영화의 앙상블 |
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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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는 좋아했지만 철학에 대해서 괴리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강의와 글을 통해 철학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모든 강의가 다 좋았고 큰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특히 조셉 캠벨과 신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강의 많이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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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영화보는 마음이 달라졌어요. |
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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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잘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기 위해서 처음 본 영화도 있고 강의를 듣기 위해서 다시 본 영화도 있어요. 예술작품인 영화를 만들때 감독님들이 의도적으로 딱 그렇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만 드신 건지는 모르지만, 새삼 느낀 것은 철학자,작가, 영화감독, 화가 등등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과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요. 본 아이텐터티과 미쉘 푸코 강의는 참 인상적이었고, 예전에 참 유치하기 짝이없다 여겨졌던 일본만화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네요. 좋은 강의 고맙습니다. 정여울 선생님의 다른 강의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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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힘 |
권*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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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없는 삶은 지옥보다 더한 고통이다. " 모든 영화의 단 한 가지 주제는 타인 읽기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생에 대한 따뜻한 배려다. 방황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으니 일단 보다리 꾸려 떠나보자고 하는 영화들을 따라 한 계절을 깡그리 낭비해도 아름답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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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통해 위로 받기 |
박*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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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 잘못이 아닌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굉장히 힘들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방황하면서 많은 책과 공연들을 봤었어요. 저를 가장 위로했던 작품은 생각지도 못했던 연극 오이디푸스였습니다.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은 그 안에서 운명을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을 보면서 삶에서 어떤 부분은 노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좌절과 위안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고전작품들과 신화를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찾아다녔죠. 센과 치히로의 강의를 들으면서 신화 이야기를 들을 때 저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신기했고 이 아픔이 조금 더 치유되길 빌어보았습니다. 좋은 강의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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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분명 치유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이렇게 좋은 경험담을 말씀해주시면 저도 함께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감사합니다. artboy (11.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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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별. 두리반은 그 밤, 이렇게 말했다 |
p**c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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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별. 두리반은 그 밤, 이렇게 말했다.」
홍대의 용산이라 불리는 두리반의 불빛이 여전히 밝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기도 끊긴 채 사계절을 지내왔다. 홍대입구역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바로 옆엔 새로운 지하철 출구까지 생겼다. 하얗게 광을 낸 새 건물 사이로 한편으론 허름한, 한편으론 수상한 칼국수 집이 여전히 손님들을 기다린다.
지난 19일에는 영화 쇼생크 탈출과 니체를 함께 공부했다. 주된 개념으로 초인(Übermensch), 르쎙띠망(Resentment), 운명에 사랑(Amor Fati) 등을 말하며 익숙하지만 언제나 끝을 알 수 없는 니체의 사상과 어색하게 마주앉았다. 타인들의 가치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스스로 가치의 창조자로 성장하는 초인을 배우며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이런 존재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사회라는 것이. 혹은 이 사회 속에서의 ‘오늘날’의 삶‘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일테면 자유라는 것이. 비록 숨겨져 있다하더라도, 당최 어딘가에 있기는 한 것인가. 내가 자유라 명명하는 것들조차 내가 어딘가에서 배운 것 아닐까. 하는 유의.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의 상징으로 우리는 새를 떠올리는 데 과연 이 사고의 순환은 자유로운가. 우리는 왜 모두들 하나의 자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가. 그러니까. 이러한 사고의 연쇄적 발자국에는 어딘지 모르게 길들여진 냄새가 나지 않는가. & 자본주의 사회가 무르익으면 무르익을수록 우리는 더욱더 시선의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정된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점점 더 가혹해지고 그 안에서 우리는 더욱 균일해지고 남과 다른 명품백 만으로 내 삶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시대의 삶은 같은 유니폼을 입기 위해 아주 오래 박음질을 하고 다리미질을 하는 지루한 과정 아닐까.)
영화 속 주인공 앤디는 감옥이라는 형벌의 공간, 폐쇄적 공간 속에서도 자기 자신이 ’죄인이 아님‘을 잊지 않고 그것을 당당하게 믿고 스스로를 지탱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모든 순간이 0(zero)로 머무는 교도소 안에서 도서관을 만들고 오페라를 틀고 자신을 배척한 동료들에게 맥주 한 잔의 여유(밖에서 마신 맥주가 그냥 맥주라면 교도소에서 마신 맥주는 T.O.P야)를 선물한다. 그의 면모는 가능성이 차단된 공간 안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만개시킬 줄 능력에서 발휘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니체가 말한 초인과 닮았다.
[초인은 자신의 삶에 던져진 질문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의 답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내는 존재다. 초인은 가치의 창조자이자 주변의 중력(시선)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 가치를 찾는 가치의 창조자다.]
문득 두리반이 떠올랐다. 두리반이 있는 곳은 2006년 서울시가 지정한 세입자 보호의무가 없는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지구단위계획 구역이다. 특히 이곳은 공영 재개발지역이 아니라 민간사업자가 철거하는 곳이어서 용산참사 이후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의 보호도 받지 못할 처지다. 그 결과 새 건물주는 300만원이라는 돈을 쥐어주며 건물에서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두리반은 주인 부부가 십년 가까이 찜질방 식당 등을 하며 번 돈에 빚을 보태 2005년 시설투자비 1억300만원, 보증금 1300만원으로 마련한 조그만 식당이다. 그런데 작은 방 전세 값도 안 되는 돈을 내밀며 이제는 그만 나가주십사, 하고 있으니 이건 어느 나라 법인가. 설마 세계 속의 디자인 도시 서울?
이에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다. 그 부당함에는 조금의 의심도 자리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두리반이 저항하는 방식이 꽤 특이하다. 하늘지붕 음악회, 칼국수 음악회, 자립음악회를 비롯해 낭독회와 영화 상영회를 한다. 문인들과 뮤지션들이 속속 모여들고 어떤 사람들은 도시락을 싸가서 그곳에 있는 아무나와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 전기도 가스도 끊긴 이 차갑고 어두운 홍대의 섬에 따뜻한 이야기만은 차고 넘치고 일렁인다.
[초인은 놀 줄 아는 인간이다. 나를 괴롭힌 기억에 매달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는가에 매달린다. 아무리 힘든 운명이 다시 된다고 해도 거침없이 삶의 주사위를 다시 던질 수 있는 운명에의 사랑을 가진 자. 내가 놓인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초인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들 두리반의 정령(하하하)들이야말로 마패를 옷 안에 꼭꼭 숨겨놓은 암행어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영화나 드라마 보면 꼭 허름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천하태평 듣보잡이 알고보면 꽤 멋진놈이더라, 하고 나오지 않는가. 찢어진 갓에 땀에 절은 두루마기가 바로 두리반의 낡은 벽이며 펜스일지 모른다. 이몽룡 가슴에 남모를 연정이 있었듯 두리반. 이 우수수한 칼국수 집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믿음과 희망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만의 색깔을 더하여,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가치를(가사를) 만들어 낸다. 헤드뱅잉하고 로큰롤하는 이 뜨거운 사람들이야 말로 개의치 않고 시련을 웃으며 맞이하는 이들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도 "삶이여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며 통크게 웃는 이들 말이다. 소란마저 웃듯이 피어내는 이들은 참 끈질긴 무중력 탐험가들이다. 이들은 우주를 떠돌며 부지런히 팔을 파닥인다. 그러다 문득 빛나는 무엇을 본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독소리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는 너희들을 보지 않는다-그는 별들을, 별들만을 바라본다" -니체 <즐거운 학문>
느끼는 것이지만, 삶의 가치란 언제나 고정되어있다기보다는 물 위에 피어나는 수포처럼 흔들리는 것 같다. 그러니 아마 우리는 두 팔을 파닥거리며 내 삶의 무엇을 찾아 어딘가를 끊임없이 떠돌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아주 편하고 달콤한 행성을 발견해 그 곳에 삶의 쉼표를 찍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그대들은 오래 방황하고 어린 고양이처럼 상처입고 끊임없아 자신에게 되묻다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삶의 궤적에는 라면면발처럼 구불거리는 이유와 꼬리가 뒤따라 다닐 것이다. 다만 내 입 하나만 채우면서 살지 않기를 또 한번 바란다. 두리반의 음악 소리가 계속 이어지듯이, 초인이 날이 새도록 주사위를 던지듯이(새로운 도박인가)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어떤 슬픔에 화답하듯이. 아마 우리는 가야할 곳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고귀한 인간 역시 불행한 사람을 돕는다. 그러나 거의 동정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치는 힘이 낳은 충동에서 돕는다. -니체 <선악의 저편>
1. 참고 : “홍대 두리반 식당에선 무슨 일이” 아시아투데이(2011-01-14) 2. []속 내용은 수업 시간에 언급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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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와 우울 |
박*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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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의 과정,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울이 점점 깊어지는게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의 우울이 어쩌면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도움이 됐던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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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삶의 닻은 과연 정박할 곳은 찾았을까 |
p**c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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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시네필 다이어리] 2강. 영화<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밸
_ 구제역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해 11월에 경북 안동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두 달 남짓 되어간다. 그간 살처분한 돼지만 140만 마리. 이 숫자를 들을 때마다 어쩐지 섬뜩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정도의 속도로, 이 정도의 규모로 구제역이 한반도를 강타한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방역 당국의 망양보뢰(亡羊補牢)식 대책에 조금의 이해심을 발휘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생명불감증을 의심케 하는 안일한 초기대응과 거듭되는 궁여지책에 있어서는 그저 답답함이 앞설 뿐이다. 농민들과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들의 하소연도 끊이지 않는다. 심각한 환청에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한다는 호소도 이어진다. 그럴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살아 있는 가축들을 땅에 파묻는 일을 하는데 ‘그저’ 돼지일 뿐이라고 치부하려 해도 그 마음이 오죽할까. 죽음을 설명할 제대로 된 이유도 찾지 못하고 뜬 눈에 흙을 붓는 마음은 그저 참 ‘속절없다’하는 허망함일 것이다. 임신한 암소가 놀라서 낳은 새끼까지 모두 땅에 묻었다는 한 수의사의 고백을 들으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됐을까. 과연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가혹하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긴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생각한다면 작금의 인간의 동물에 대한 사형선고는 울타리 안에 있는 인간이 울타리 밖의 ‘그것’을 향한 사형선고와 다를 바도 없다. 일테면 서열의 문제와 닮아 있는 것이다.
2인칭 ‘그대’를 보는 자아와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
수업은 통과의례에 초점을 맞춰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대해 접근하였다. 특히 인기 TV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통과의례를 엮어 설명하신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무모한 도전에서 시작된 그들의 ‘도전’이 대중들의 어떤 욕망과 결합되어 인기를 끄는 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는데 시청자로서 상당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조셉 캠벨의 신화 - 내 안의 용을 무찌르고 나다움을, 내 안의 신화를 찾고 다시 사회로 회귀하는 것 - 는 우리 삶에 대해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는 김주원식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였다. 성인의 날이 장미꽃과 키스와 향수를 받는 소비 지향적 문화 행사로 퇴색하진 않았나, 반추하였고 노경태 감독의 “왜 나의 마음은 결집되지 않고 논리적이지 못한가?”라는 질문도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다. 멀미나게 흔들리는 사회라는 (경쟁의) 바다에서 우리들 삶의 닻은 과연 정박할 곳은 찾았을까.
통과의례는 내 안의 닫혀 있던 내면의 자아(치히로)가 힘든 시련을 통해 죽어버리고 또 다른 내가(센) 태어나는데 의미가 있다. 어떤 부족들은 성인이 되는 남자와 여자에게 다소 폭력적으로 보이는(너무 문명인적인 관점인지는 모르지만 어찌됐건 아파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의례를 거치게 하던데 확실히 현대에 들어 우리들에게 그런 것은 없어져 버렸다. 다만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일컬어지는 사춘기 같은 것을 겪으면서 우리는 나름 조금의 성장을 이루어내지만 그 고민의 에너지와 삶과 존재에 대해 던지는 무수한 회의와 동경의 빛들이 바깥으로 발휘되지 못하고 내 안의 소용돌이로만 존재하고 만다는 점에서, 어쩐지 1단계 미션은 통과했는데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직은 키가 작은 슈퍼 마리오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앞부분만 조금 보고 다 보지 못했었는데(이참에 친구에게 DVD를 빌리기로 하였다)전혀 몰랐던 후반부의 이야기는 그저 전해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있었다. 바로 하쿠의 원래 이름을 센이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어릴 적 강에 빠졌던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고 얕은 곳으로 옮겨 살려준 그 강! 그 강이 바로 하쿠였던 것이던 것이다. 극적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인간이 아니라 강이었다는 이 전복 아닌 전복은 역시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은 못말리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이 대인배적 소양과 관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며 박수치게 만들었다. 그 탓에 ‘너는 할지니’라고 말하는 용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안전한 것을 좋아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가 만들어놓은 권력 서열에도 익숙해져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가치를 그저 고민없이 받아들인건 아닌가 되묻게 되었다.
모두(冒頭)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구제역 살처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안일한 휴머니즘과 한통속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물론 농민들의 생존이 걸려있고 그 경제적 논리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테지만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백신 예방 접종을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려 했던 태도나 애초 광우병이나 구제역과 같은 가축 바이러스가 집단 사육. 스툴 사육 방식에 의해 유발 혹은 확산된다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사람”아니라고 이렇게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영웅의 임무가 소명을 ‘발견’하고 그 깨달음을 원래의 세상 속에서 재통합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따른다면 아마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도 기회는 있는 것일테다. 내 안에서 나를 억압하는 용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가장 단단한 나를 찾아 나설 것. 그리고 지금 변화돼야 할 것에 높게 목소리를 높일 것. 우리의 전기는 "아직 첫 페이지도 다 채워지지 않았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 조셉 캠벨 <세계의 영웅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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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철학의 메시지를 읽는다 |
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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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으로 본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로 철학하기 시네 필 다이어리 강의2
예술이나 문화, 그리고 영상에 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나라에 비해 외국의 이야기들이 훨씬 다양하고 흥미진진하고, 보고난 후에도 오랫도록 그 여운이 지속됨을 느낀다. 특히 이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가히 헐리우드의 대가들 조차 팬으로 만들만한 힘이 충분하다.
그렇다면 그 힘들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들의 개인적인 창조성과 위대함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문화적 특성의 산물인가.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그의 가족이 새로운 장소로 가던 중 신들을 모신 돌 사당들을 가슴 깊이 관찰하면서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 조셉 캠벨 <신화의 힘>
그의 강의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며 주인공이 센이라는 다른 자신의 소명을 인정하고 주변의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또 그에게 자신을 올인하고 순간의 위기를 결연한 의지로 헤쳐 나가는.. 일련의 변화과정을 통해 영웅적 신화의 역할을 보여준다. 공동체 사회에서 한 명의 독립된 자율인격체가 되기위한 일종의 정신적인 통과의례의 역할.
그중 제일 인상깊은 대목은 치히로라는 주인공이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정체성을 부여받고 새로운 노동에 투입되는 장면에 대한 코멘트였다. 마라톤 선수의 모습을 보라. 난생처음으로 경주에 참가한 사람과는 달리, 전문적인 마라톤선수는 자신의 외모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러분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경주를 하는 것이다. 이기느냐 또는 지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경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기느냐 또는 순위 안에 드느냐는 그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것이야 말로 구속 없는 참여인것이다. -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
주인공은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놓아야 했는데 바로 치히로 본인의 이름, 그리고 항상 곁에서 지켜주시던 엄마와 아빠였다. 이제 그녀는 치히로가 아니라 센이다. 아니, 자신이 치히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센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화적 통과의례의 첫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사실 현대의 우리들은 우리만의 독특한 신화들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것이 강점기때의 말살정책때문이었든, 근대화과정의 진통때문이었든, 새로운 자유와 경쟁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었든 간에 다른 나라의 그것들에 비해 작품으로 재해석할 컨텐츠가 부족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 줄만한 이야기도 부족하다.
우리들이 흔히 애니미즘이라고 치부하고 미신이라고 치워버리는 옛 민속문화들은 어쩌면 주변의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감사하던 그 시절 사람들의 포용력있는 문화와 생활방식이지 않을까. 몇십년 동안 경쟁에만 초점을 맞추고 돈되는 것만 관심 갖고 살아온 요즘 사람들에게 껍데기의 풍요뿐만 아니라 내면의 풍요로움에도 관심갖게 해주는 값비싼 문화가 아닐까.
영화로 철학하기: 『시네필 다이어리』 영화 속에서 철학의 메시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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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됨을 고민하고 싶다면 |
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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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의 미셸 푸코의 프리즘을 통해 본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통제와 교육의 매커니즘
본 아이덴티티의 첫장면은 바다위에서 정체모를 주인공이 가까스로 구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몰라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어 나가는 주인공은 낯선 세상에서 홀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하나 정체성을 증명해 나가게 된다.
점차 드러나는 그의 정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통제되어진 하나의 인간병기라는 것. 그를 만든 자들의 게임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는 인간인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체제를 사는 요즘의 우리들은. 학교에서는 20년 동안이나(혹은 그이상) 기존 체제에 순응하게 하는 사회화라는 것을 실행하고 군대에서는 개개인의 잠재성과 창의성은 고려항목에 넣지 않은 채 모든이를 평준화하며 감옥과 정신병원이라는 체제를 통해 밖과 안의 구분,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적당히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은근한 위화감을 심어준다.
이런 일련의 교육들로 인해 길들여진 인간의 자기 감시 시스템은 본인들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데이비드 웹은 국가에 충성하는 멋진 임무를 맡기 위해 요원이 되었고, 트레드 스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의 명목으로 제이슨 본을 죽이려 한다. 도대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의 명분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기이한 자기정당화들, 푸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의 습성을 진실의지라고 했다.` -강의 본문중에서-
철저한 자기 반성없이 막무가내식 편가르기와 저급한 이데올로기 논쟁에만 열 올리는 현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떤 신경을 써야 할것인가.
내가 진정한 나됨에 있어서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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