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리뷰> |
산업혁명과 리얼리즘 - 디킨스의 위대한유산 |
한정미 |
|
|
|
우수
|
차분하고 친절한 강의 |
김*우 |
|
|
|
온라인에서 뵙고 좋아서 오프라인으로 다시 한 번 듣습니다. 친절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진행하셔서 듣는 사람도 차분해지는 강의였습니다. 선생님 번역 작품이야 이미 여러 권을 읽었는데, 직접 뵙고 강의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영미문학의 배경과 작가에 대한 정보 습득은 기본이었고 번역에 대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
|
|
|
|
우수
|
미국 역사 공부를 같이한 소설 공부 감사합니다 |
허*미 |
|
|
|
영국 문학은 사회의 정의쪽으로 미국은 개인의 자유쪽으로 문학의 방향이 갈라진다는 강의 잘 들었습니다. 위대한 유산 위대한 게츠비 등 여러 작품 등에서 제대로된 번역서가 중요하다고 지적해 주신 점 그동안 알게 모르게 느꼈던 점입니다. 고맙습니다. |
|
|
|
|
|
|
우수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
조*범 |
|
|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바로 이 시대 고전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해 주는 문구이다. 특히나 고전 소설을 만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두꺼운 페이지 분량에 꽤 많은 등장 인물, 난해한 묘사와 고어체 문장까지. 일단 그 무게감에 압도당해 쉽사리 손을 내밀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허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있는 법.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붙잡고 늘어져서 완독을 해냈을때의 그 성취감이란...
읽던 책을 벽에 집어 던지거나 갈가리 찢어 발기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고 참아내면 어느순간 그 고고한 고전이란 녀석은 내 품으로 파고 들어온다. 실은 고전, 만나고 보면 그거 별거 아닌 책이다. 그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고, 그래서 경쟁력이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베스트셀러일 뿐이다.
고전읽기에 대한 비밀을 하나 누설 하자면, 실은 대부분의 고전이 읽기 힘든 것은 '번역' 이란 놈 때문이다. 수년간 본격적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바로 이 '번역'의 문제였다. 물론, 축약본과 요약본으로 주제와 줄거리만을 달달 암송하게 만드는 이 땅의 교육 시스템과 출판현실이 한몫 하지만 말이다.
그럼, 어떤 책이 잘된 '번역'일까. 직접 읽어 보는 수 밖에 없다. 잘 읽히지 않는다면 분명 번역이 잘 못된 것이다. 내 지적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갑작스런 난독증에 빠져 그런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든 디씨갤의 횽아들에게 여쭤보든 잘 된 번역을 찾는 것이 제 1의 지상과제이다. 당연히 원본에 가장 충실한 '완역본'이 어떤 버전인지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여러 책을 읽다보면 믿음이 가는 출판사의 문학전집이 눈에 들어오고, 특히 완소 번역자들의 이름이 슬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 언어를 직접 습득해서 '원어'로 읽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은 그렇다고 해도 그 수많은 언어를 전부 습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럼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자. 어떤 역자의 번역이 가장 잘 된 책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품을 팔지 않고도 나름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바로, 가장 많이 번역한 역자를 찾아보는 것이다.
'아트앤스터디'라는 온/오프라인 아카데미에서 '디킨스에서 샐린저까지'라는 유혹적인 문구를 걸고 시작한 강좌가 있다. 그곳엔 민음사 영미문학 번역계의 스타 '김욱동'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 위대한 개츠비, 허클베리핀의 모험, 동물농장, 주홍글자, 피츠제랄드단편선, 왕자와거지, 호밀밭의파수꾼, 톰소여의모험, 오만과편견...
그가 번역한 역서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늘 그의 이름이 담긴 번역서의 책을 보면서 꽤나 편안하고 읽기 쉬운 문체에 감탄하곤 했었다. 바로 그가 '현대 영미문학 강의'를 펼치는 것이다.
첫 주의 강연은 <리얼리즘과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이라는 제목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웬, 문예사조?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현대영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문예사조의 사전지식은 필수이다. 또한, 작품을 읽기 전에 혹은 읽고 나서 그 작가의 생애와 작품경향등을 위시한 작가론을 공부하는 것도 폭넓은 이해를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풀어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허나 미시적인 분석보다는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일 것이다.
|
|
|
|
|
|
|
4 |
아트앤스터디 강의 중 제일 재미있어요 |
이*연 |
|
|
|
아트앤스터디에서 들어본 강의 중에 제일 재미있네요, 영미문학을 쉽게 그러나 내실있게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김욱동 선생님의 다른 강의도 듣고 싶어 검색해봤는데 아쉽게 이 강의 하나 뿐이네요. 교수님의 다른 강의도 제작해 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강추하는 강의합니다. |
|
|
|
|
|
|
5 |
영문학자의 직강 |
신*원 |
|
|
|
번역의 대가 김욱동교수님의 강의인데요. 문학을 바탕으로 역사 사회를 파악하는 강의고요. 강의자료가 영어라 영어공부도 되네요. 다만 강의가 정적이라 지루할수도 있어요. 참고하시기를... |
|
|
|
|
|
|
6 |
반 문화와 '호밀밭의 파수꾼' |
허*현 |
|
|
|
오늘은 전설적인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 단 한편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샐린저'와 그의 소설이 그려낸 '반문화'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반문화(Anti-Culture)란 말 그대로 어떤 문화에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모든 세대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이지요. J.M.Inger는 이를 가르켜 '주류 문화에 반대하는 하부문화다.' 라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히피족'이 바로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든 전통적인 가치나 인습을 부정하고 마약, 섹스, 폭력, 선불교등에 탐닉했지요. 특히나 1960년대 중엽에 이는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전역을 거쳐 전 세계로 전파되어서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오고 있습니다. Hipster 라고도 하는데요, 그리니치 빌리지 주위에 이주한 비트족들이 hip,hep 이라는 속어를 사용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흑인 문화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요 '알고 있다' 라는 뜻이라고 하니 일견 인식론적 철학을 담고 있는 듯도 하네요.
유사한 용어로 저항문화(Counter Culture)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이전 세대에 대한 저항을 하는 것이니 반문화 보다는 협의의 반항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문화(Youth Culture)도 있는데요, 이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저항문화'의 하위 개념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반문화, 저항문화, 청년문화의 등장으로 인해 드디어 대중사회 (Mass Society)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산업화, 현대화가 되면서 경제적 풍요로 인해 관료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과 교회, 사회 동질성등 기존의 전통적인사회결속을 약화시킨 결과를 낳게 되었죠. 이렇듯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이른바 '대중사회'라 불리우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대중사회'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미국의 역사를 훓어봐야 할 듯 합니다.
1950년엔 맥카시즘에 의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출스 슐츠의 '피너츠'라는 만화가 출간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지요. NBC 방송국이 개국되어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가 만들어지기도 시작했죠.1951년엔 맥아더 장군이 전역했습니다. 한국전쟁시 중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원자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의 반대로 무산되어 전역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전역에 TV가 방송되기 시작하였고, 시트콤의 원조 'I Love Lucy'가 첫 방을 타기도 했죠. '텔레비전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52년엔 이민법이 통과되었고, 아이젠하워가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1953년엔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1954년엔 맥카시가 정치권력을 잃었고, 브라운 vs 교육위원회 사건으로 들썩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분리교육을 받고 있었고 흑인 아동은 동등하지 않은 교육기회를 가졌죠. 이에 반발한 고소가 대법원까지 올라가 차별금지 헌법이 만들어지게도 되었습니다. 또한 '투나잇 쇼'도 첫 방을 타기 시작했죠. 1955년엔 '맥도널드'가 첫 오픈을 했습니다. 맥도널드화, 코카콜라화 라고 하는 미국의 음식문화가 전 세계를 파고 들게 한 계기가 되었죠.
'로자파크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앨러바마의 흑인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힘이들어 버스 빈자리에 앉았는데 백인이 탔는데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강제로 끌어내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엔 관례적으로 백인이 버스에 타면 흑인들은 자리를 비켜줘여야 했으니까요. 헌데,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디즈니랜드가 개장을 했구요, 'Rock Around The Clock'로 되표되는 '로큰콜 뮤직'의 시대가 개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엔 동서남북을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20년에 걸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엔 투표권의 확대를 담은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하면서 이른바 'Space Race' 우주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우주시대의 선점을 빼앗긴 것에 큰 충격을 받아 과학이나 수학같은 기초과학 교육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해에 세계 최초의 핵 발전소가 만들어 지기도 했구요.
1959년엔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미국의 마지막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1960년엔 이른바 'U-2사건'이 발생했습니다. CIA 스파이 비행기가 정찰 도중 소련 공중에서 피격된 사건입니다. 그린스보로우에서 흑인계 대학생들이 기숙사 식당에서 백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수 있게 해 달라며 연좌데모를 시작되어 인권법에 반영이 되었구요.
1961년엔 케네디가 취임하였고, 월남전이 발발했습니다. 1962년엔 존 글렌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 한반퀴를 돌았구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고조되어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각을 세웠습니다. 1963년엔 그 유명한 마틴 루터킹이 워싱톤으로 행진하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잡지가 출간되어 여성운동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엔 비틀즈가 미국에 공연을 와서 영국대중문화가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를 표어로 걸고 가난퇴치, 인종차별등 사회개혁과 교육, 의료, 도시화, 교통문제 개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또한 흑인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막는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동양인 이민 차별법도 폐지 되었지요. 1965년엔 말콤 X가 암살당했고, 이로 인해 'Watts Riot' LA 폭동이 발생 해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1966년엔 NBC,CBS,ABC가 칼라 TV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67년엔 드디어 저항문화가 등장했고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문화적으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요. 1968년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고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로 최초의 흑인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엔 닐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했고, 우드스탁 페스티발이 베이비 붐 세대에게 크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세미 스트리트'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이 교육방송에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이러한 '반문화'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작가 '샐린저'의 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문학은 유태계 문예부흥(Jewish Renaisance)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노먼베일러와 필립로스, 그리고 샐린저가 대표적이죠.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에 맨하탄에서 유태계로 출생했습니다. 1932년 맥보니 스쿨에 다니며 학교신문에 글을 게재하곤 했는데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결국 1934년 15세에 사관학교식 밀리터리 아카데미로 전학을 갔는데, 이곳이 바로 [호밀밭]에서 콜필드가 다니는 학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6년엔 유태계 학교인 NYU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중퇴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유학을 가서 육류가공 포장업을 배우게 됩니다. 바로 샐린저의 부친이 소시지, 육류 수입상이었는데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죠.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귀국해 콜롬비아 대학교 문창과 사회교육원에서 강좌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STORY'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Whit Burnett이 그를 격려하며 글을 실어주기로 북돋아 주었다고 하네요. 1940년에 'The Young Folks'를 발간하고 1941년엔 'Slight Rebellion Off Medison'을 출간하려 하지만 다 거절당하고 겨우 뉴요커 잡지에서 원고를 받아 주지만 이도 5년 뒤에나 싣게 됩니다.
1942년엔 징집되어 유럽에 배치되 범죄자 신문을 하기도 하고 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와 친교를 맺으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지프차에 타자기를 어디든 싣고 다니며 단편소설을 쓰곤 했다고 합니다. 1944년 이른바 D-Day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엔 '실비아'라는 독일여성과 첫 결혼을 했고, 8개월 뒤 헤어지고 맙니다. 1946년엔 글래스 패밀리를 다룬 첫 작품인 'A Perfect Day for Bananafish'를 여러군데 거절 당한 후 뉴요커에 실었고, 이후로 후속작을 연재하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1949년엔 'Uncle Wiggily in Conneticut'을 발표하고 'My Foolish Heart'라는 영화로 만들어 졌지만 혹평을 받습니다. 1951년에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간하고 하루아침에 대 작가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한편의 작품으로 평생 먹고 산 작가가 여럿 있는데요.[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그렇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 미첼 여사, [폭풍의 언덕]의 브론테가 그러합니다. 샐린저는 이 작품을 출간하고 대중앞에 서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1952년엔 선불교와 힌두교 같은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엔 'Nine Stories'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후 뉴 햄프셔주 코니쉬로 칩거에 들어갑니다. 1955년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는 레드 클리프 대학생이었습니다.그녀에게 Franny Glass 이야기 사본을 결혼선물로 주기도 했지요.
1961년엔 [Franny and Zooey]를 출간하고 1963년엔 [Raise High Roof Bean. Carpenters and Seymour]를 출간하지요. 1965년엔 [Hapworth 16,1924]라는 단편을 발표하고 이후에 절필을 선언합니다. 1867년엔 이혼을 하고 1972년엔 예일대 학생인 조이스 메너드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무려 35살 연하였지요. 1986년엔 한 비평가가 은둔작가 샐린저에 대한 '전기'를 출간하려 하자 소송을 걸어 막았습니다. 1988년엔 40세 연하인 콜린 오닐과 삼혼을 하게 됩니다. 1998년엔 조이스가 샐린저와 나눈 편지를 옥션을 올리고 회고록으로 폭로하는 출간을 합니다. 2000년엔 누이인 마가렛이 어린시절의 산골성장 이야기인 [Dream Catcher]를 출간하는데 샐린저는 이에 또 다시 분노하였다고 합니다. 2009년에 91세의 나이로 샐린저가 사망 하게 됩니다.
그럼, 샐린저의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시 'Coming Through the Rye'에서 가져 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시가 <고향의 하늘>이라는 메이지 창가로 번안되어 유명져서 현재 신호등의 음향 멜로디로 쓰이고 있다고 하고, (스윙걸즈 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신호등에서 나오는 이 음악에 맞춰 재즈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지요^^) 한국에서도 개화기때 <들놀이>라는 노래로 들어와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고 합니다.
Comin Thro' The Rye (Coming Through The Rye)
Robert Burns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어요 Chorus. O Jenny is all wet, poor body, 이런, 제니는 다 젖었군요, 가엾기도하지. Jenny is seldom dry: 그치만 잘 마르질 않네요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제니는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가지요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Coming through the rye, poor body, 가엾어라, 호밀밭을 걸어오네.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오는구나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a body cry? 울고싶나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glen, 계곡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the world know? 사람들이 알까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하는데 Coming through the grain, 밭을 거닐어 오고 있어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줘요 The thing is a body's own. 제니가 원하고 있답니다.
<들놀이>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시내 건너 재를 넘어 들과 산으로 산들산들 가을바람 시원하구나 랄라랄라 씩씩하게 발맞춰 가자
나아가자 동무들아 손목을 잡고 산새 들새 노래하는 들과 산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랄라랄라 우리들도 노래 부르자
홀든이 맨하탄을 걷도 있을때, 어떤 소년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취직도 싫고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애들을 볼보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번뜩 들게 됩니다. 이 작품속엔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여동생 피비, 한때 유망한 작가였다가 헐리우드 대본작가가 된 D.B.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친구 제인, 대기업체 고문변호사인 아버지등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입니다. 헉핀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작품은 고백체 소설 입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허클베리핀의 '톰소여를 읽지 않았다면 나를 모를것이다...'와 닿아 있습니다. 바로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고백하는 1인칭 고백체 소설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언어 스타일은 속어와 비어, 은어로 가득합니다. 1950년대 고등학생들이 사용했을 법한 언어로 가득한 것이지요. 이 작품엔 lousy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라는 어근을 활용한 비어로 '이같이 씨부리는'이라는 뜻이지요.
테마는 미국적 삶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물질주의나 성공신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인 것이지요. 홀든은 친구들의 삶은 내 삶은 아니다 라며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 보다는 나는 내 식으로 살겠다라는 의지로 보여집니다.
가짜와 진짜의 대립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국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은 가짜이고 위선이 판치는 사회이며 우리 모두는 고립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홀든의 아버지는 돈 버는 데 바쁘고, 어머니는 그걸 쓰느라 바쁘고 형은 대본 쓰느라 바쁘게 묘사 됩니다. 가족 사이에서 어떠한 의사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따위는 모두 허위이자 가식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을 불신하고 의사소통이 부재한 이 시대의 소외와 고독을 그리고 있습니다. 홀든은 사람없는 서부의 양지 바른 곳에서 오두막 짓고 벙어리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물질주의 가치관을 혐오해서 반항의 몸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또한 겉모습과 실제의 대립으로 인한 괴리와 갈등, 긴장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개인의 개인적 자유와 사회의 성공신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대표적인 미국 문학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때묻은 구대륙에서 새로운 신대륙을 찾아 건설했기에 사회를 중요시하는 영국과 개인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문학적 유산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너서니얼 호손의 <주홍글자>의 프린이 그러한 엄격함에서 뛰어나오고,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자연으로 들어가고, 소로우의 <윌든>이 오두막을 짓고 살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이 뗏목을 타고 자유를 찾아 흘러가고,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의 상흔을 입고 사회로부터 벗어나듯. 이 작품은 이러한 미국적 문학의 유산의 흐름 속에서 제목 '호밀밭'이 상징하 듯 1950년대 미국의 가치관을 통렬하게 비판한 대표작이라 할수 있습니다. |
|
|
|
|
|
|
7 |
상실의 시대와 '무기여 잘 있거라' |
이*진 |
|
|
|
1차 대전(1914-1918)은 서구인들에게 문명에 대한 회의와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류가 문명화되고 나서 맞닥드린 최초의 전 세계적인 커다란 전쟁이었으니까요. 전쟁의 사상자가 800만, 부상자는 2000만, 실종자는 800만이었으니 가히 엄청난 인류의 손실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유보트가 영국 전함을 공격하면서 미국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그제서야 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선언합니다. 허나 미국인 사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곧바로 휴전이 되었기 때문이죠. 유럽은 패전 후 경제공황과 함께 전체주의 정치가 대두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만, 미국은 오히려 'Roaring Twenties' 번영의 시대가 펼쳐졌죠.
하지만 당시 지성인들은 집단적 신경쇠약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이 당시 전후파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했고, 환멸과 절망 그리고 냉소주의에서 허우적 거렸습니다. 이 시대를 '상실의 시대' 혹은 '길을 잃은 시대' 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관이 상실 되었고, 도덕과 윤리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이른바 전후파 3대 작가.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포크너가 바로 이 '상실의 시대' 작가군에 속한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로 파리로 넘어가 문학수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미국의 여류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게 되죠.
'자동차가 고장나면 정비소에 찾아갔는데 무책임한 기계공은 말하더군요. 모두가 다 길을 잃은 세대라고...' 그녀는 헤밍웨이에게 이렇게 기계공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참전경험을 한 젊은 세대는 다 잃어버린 세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1926)의 에피그라프(소설 첫 부분에 적어놓는 경구)로 바로 이 말을 적어 놓았죠. '당신들은 모두가 잃어버린 세대입니다-거트루드 스타인의 말 중에서' 라고 말입니다. 이 시대에 활동한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엘리어트, 존 파소, 왈도 피어스, 알란 시거, 레마르크같은 작가들을 구별해서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는 1899년에 출생했습니다. 얼마전까진 1898년생으로 알려져 왔지만 군대에 참전하기 위해서 나이를 속여왔던 것으로 밝혀졌죠. 시카고 근처 시골마을 오크파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켄서트 시티 스타' 지 신문기자로 직업을 얻었습니다. 1918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자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죠. 그곳에서 무릎에 직격탄을 맞고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절단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의사소통도 안되는 타지에서 겪은 절망과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1920년 '토론토 스타'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다음해 룸메이트 여동생의 친구인 해들리 리차드슨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셔우드 앤더슨의 충고로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향합니다. 당시엔 달러가 강세인 시절이라 가난한 젊은 작가들이 유럽으로 문학수업을 많이들 떠났습니다. Expatriate Community 라 해서 스스로 미국을 떠나 유럽에 살면서 문학가와 예술가의 수업을 쌓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1922년엔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을 종군기자로 취재하기도 했고, 1923년 '단편 세편과 시 열편'이라는 첫 작품집을 출간합니다. 1925년엔 '우리 시대에' 라는 단편집을 셔우드 앤더슨의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1926년엔 셔우드앤더슨을 풍자한 작품인 '봄의 분류'를 출간하곤 이때 사이가 나빠져 죽을때까지 관계가 회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피츠제럴드의 소개를 받아 찰스 스크리브너스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1927년엔 '여자없는 남자'라는 단편집을 출간하고 결국 해들리와 이혼하곤 폴린 파이퍼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다음해엔 부친이 자살하게 되고 1929년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출간하게 되는데 원고를 분실해서 기억을 살려가며 다시 써내려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932년엔 스페인 투우 경기를 아내 폴린과 구경하며 쓴 '오후의 죽음'이라는 논픽션을 출간 합니다, 이후 '승자에겐 아무것도 주지마라'라는 단편집과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 사냥경험을 실은 '아프리카의 그린힐'이라는 산문을 출간하죠. 1937년 드디어 스페인 내전이 터지고 특파원으로 참전한 그는 '가진자와 갖지 않은자'를 출간하는데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인류의 역사는 유산자와무산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공산당 선언에 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1940년 폴린과도 이혼한 그는 마더 갤혼과 삼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쿠바에 집을 얻어 스페인 내전경험을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출간합니다. 1942년 '전쟁남자'라는 산문을 내고, 1944년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특파원 자격으로 프랑스와 독일에 종군하게 되고 연합군의 파리탈환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듯 전쟁경험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걸 좋아하는 '야성적인 작가'로 유명합니다. 파리에선 또 다른 연인 메리월쉬를 만나게 됩니다. 1945년 자동차 사고 후 입원한 헤밍웨이를 비웃었다는 이유로 부인 갤혼과도 이혼하게 되고 1946년 결국 메리 월쉬와 사혼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1947년엔 파리탈환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브론즈 스타 훈장을 받았고, 1950년엔 '강건너 숲속으로'를 출간한 뒤 비행기 사고로 죽을 뻔 하게 됩니다.
1951년엔 모친이 사망하고 이듬해 드디어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게 됩니다. 53년엔 이 작품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하고, 54년엔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1960년엔 아이다호로 가는데요, 알콜중독과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허나 혈압도 관리 안되고, 간질환이 겹치고 우울증까지 닥친 그는 각종 치료를 받게 되지만 굉장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됩니다. 바로, FBI가 자신을 늘상 미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헌데 쿠바에 거주했던 경력을 비춰보면 실제로 감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환각에 시달리던 그는 1961년 엽총자살로 생을 끝마치고 맙니다. 이후 파리에서의 경험을 담은 논픽션 (해마다 달라지는 휴일이라는 뜻의) 'A Moveable Feast' 유고집을 출간하게 되고, 이후로도 각종 단편집과 전집류가 속속 출간 되었습니다.
헤밍웨이에게 1차 세계대전 참전은 뜻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부상을 빼놓수 없겠죠. 1918년 적십자 부대의 유럽 파견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자원하여 입대합니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파견된 그는 두 달 뒤 박격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에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허나 실제 부상을 입게 되면 그런 환상은 깨어지게 되고 이런 일은 내게도 닥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간이 치료소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후 밀라노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곱 살 연상인 애그니스 쿠로스키라는 간호장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요양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1919년 애그니스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 사랑이었던 그녀의 변심은 헤밍웨이에게 정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왜 헤밍웨이는 네번이나 결혼했을까요? 바로 첫사랑 애그니스의 배반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배반 당할지 모르니,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차버려야 해! 뭐 이런 독한 맘이 그의 가슴 속에 새겨지진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게다가 이 때의 부상경험은 어린 그에게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시간 호수에서 동창과 낚시와 캠핑을 하며 시련을 잊는 치유의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의 단편을 보면 '닉 아담스'라는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데 그는 헤밍웨이 자신이 투영된 반자서전적인 인물입니다. 늘 밤에 전기를 켜 놓고 잠에 들고,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익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20년에 프리랜서 작가가 된 그는 '토론토 스타'지 특파원 생활을 거친 후 셔우드 앤더슨과 해들리 리처드슨을 만나게 되죠. 해들리는 애그니스와 비슷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허나 성숙한 애그니스에 반해 해들리는 유아적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오히려 그것이 결혼생활에 방해가 되었다고도 하지만 결국 둘은 파리로 가서 작가 수업을 쌓게 됩니다.
당시 파리는 달러의 환율이 강세여서 무명작가가 생활하기 좋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원체 파리는 문학과 예술의 지망생들이 모이는 예술의 메카 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운영 하던 살롱에서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스코트 피츠제랄드' 등이 모여 정기적으로 문학과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곳에서 피카소나 미로, 그리스등 입체파 화가들을 만나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들의 문학 작품에는 큐비즘적 요소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실비아 해변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극장에서 우연히 헤밍웨이를 만나 제임스 조이스에게 그를 소개해서 어울려 다녔다고도 합니다.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선배로써 그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고도 하구요.
헤밍웨이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유명하지요. 일명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는 강건하고 간결한 문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을 보면 천사는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산문집을 보며 지내다 맥 라이언에게 음식의 맛을 물어 볼때, '어떤데? 맛이 말이야. 헤밍웨이처럼 설명해줘'라고 대사를 하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만큼 '헤밍웨이 같은'문체는 현대에 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출판되었을때 뉴욕타임즈의 리뷰를 보면 쉽게 알수 있을겁니다.
'이 소설의 질은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할 길이 없다. 살코기만 있는, 딱딱한 근육질의 산문으로 되어 있어 수사적으로 현란한 문체의 영어문장들은 이 걸 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워 할것이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산문은 실내장식이 아니라 건축이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즉 그의 글은 강철과 유리로 그냥 세워놓는 모더니즘 건축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경제성과 효율성의 원리로 말입니다.
1954년 노벨상 위원회는 '서사 예술의 장인, 현대 스타일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공로로' 라며 수상의 변을 발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문체는 빙산과 같은 것이라는 'Iceberg Theory'를 주장했습니다. 작가는 수면 위 1/8 만을 가지고 나머지 물 속에 있는 7/8 까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나머지는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빙산의 움직임이 우아한 것은 1/8만이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 참전시 죽음에 직면해 싸우면서 이러한 문체를 배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를 비롯한 당시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고로 그 이전과는 다른 문체나 작품을 쓰려고 했으니까요. 분명 그의 문체는 19세기의 장황한 만연체의 문장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일찍이 단편소설로 출발한 경력으로 보건데 이것에서 간결한 문장을 배운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하나도 더해도 안되고, 하나도 빼어도 안되고, 낭비가 있어서는 안된다'라며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기자생활을 한 이력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육하원칙에 의해 팩트만 기술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테지요.
이제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지요. 제목에 들어간 arms 라는 단어는 캐서린이 남긴 두 딸을 의미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무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자서전적 작품이기에 이 작품에는 쿠로스키와의 실연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두고 보자며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려 신처럼 받들게 해서 철저하게 캐서린을 굴복시켜 버립니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을 전부 다 예술세계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선 캐서린이 너무 개성이 없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입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배경은 비와 눈이 내리는 이탈리아 전선의 밀라노 병원의 1917년 막바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론 1인칭 시점이지만 가끔 철학적 사색이나 명상을 할 때면 2인칭으로 나레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개츠비'가 1인칭 소설이지만 주인공은 사건에도 개입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선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만 합니다. 화자이면서 주인공이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에서 '비'는 재앙이나 불행을 뜻합니다. 초반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거나 콜레라가 퍼지거나 부상을 입거나 할때 등장하곤 합니다. 허나 후반부의 스위스에서의 '비'는 유쾌한 맛을 내기도 합니다. '안개'는 캐서린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같은 여성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자르려 하니까 못자르게도 하니까 어쩌면 남성적 시선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론 '러브 스토리' 입니다.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결국 둘은 끝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니까 말이죠. 또한, 반전 소설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비인간적 늙은이들과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당하고마는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인식론적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유한한 생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니까 말입니다. '나는 모르고 있던 것을 그는 늘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알았다 할지라도 잃어버리기 일쑤인. 그러나 그당시엔 나는 몰랐다. 나중엔 알게 되었지만.'
캐서린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결정된 운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골반이 작아 분만을 못해 결국엔 제왕절개를 하지만 죽고 마는 것이죠. '생물학적 덫'이라고도 합니다만, 삶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처럼 점차 헨리는 알아가게 됩니다.
캐서린을 사랑하고 떠나보내면서 말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런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원래는 장교 위안소보단 조금 낫기 때문에 그녀를 만난 거였습니다. 허나 시련을 겪고 입원하면서 가까워지게 되며 사랑은 희생이란걸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실존주의'적 이기도 합니다. '실존은 본질은 앞선다'라고도 하지요. 산 다음에서야 인생을 논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헨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하는 무신론자로 등장합니다. 오로지 삶은 현세 밖에 없기에 그 삶을 아주 만끽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영광, 명예,용기,신성함 같은 추상적 단어는 동네 마을 이름이나 길거리 번짓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러브스토리에서 인식론적 철학적 이야기로 점차 옮아가게 하는 겉보기보단 무척이나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빙산 아래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
|
|
|
|
|
|
8 |
그 동안 좋은 강의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김*은 |
|
|
|
3~4월에 걸친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의 영문학 강좌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김욱동 선생님께 그 동안 좋은 강의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바로 J.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입니다. 얼마전에 영화 '파수꾼'을 본터라 이 작품에 대해 강의를 들으니 이제서야 영화에 대한 어떤 생각들이 가지쳐서 뭉게뭉게 떠오르고 그랬습니다. 저는 사실 이 작품을 워낙에 어렸을 적, 그러니깐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 Holden Caulfield와 비슷한 나이쯤 되려나요?ㅎㅎ 그때 읽었던지라 나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작품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고작 불평투성이 십대 소년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홀든이 사실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 등등 말이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샐린저는 뉴욕 맨해튼에서 자란 뉴욝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1960년대 유태인 문학 전성기 Gewish Renaissance의 대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하였는데요, 몇몇 단편들은 그가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 1940년 초에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대에 지원하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 계속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데, 주로 뉴요커 지에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1951년, 첫 장편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점점 은둔적으로 변합니다. 1965년 이후로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1980년 이후로는 인터뷰도 가지지 않았는데요. 이와중에 헤밍웨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게 끊임없이 연애스캔들에 휩싸입니다. 세 번 결혼을 하고 한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학생과 Love affair가 있기도 했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기 작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폭로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의 생을 다룬 전기의 출판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스캔들에 휩싸인 여학생이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과 샐린저의 관계를 마구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딸인 마가렛 Margaret 마저도 샐린저의 딸로 자란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면서 자신의 아빠를 슬쩍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년전인 2009년에 타계했습니다.
샐린저의 작품은 '반문화 Anti-Culture'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반문화는 가장 넓은 개념으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를 일컫습니다. J. M. Inger가 어떤 집단의 문화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크게 대립될 때 이 문화를 일반적인 하위문화와 구분하기 위하여 도입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부분집단을 형성하고 전통적인 기성문화에 도전한 1960년대 미국의 히피 같은 하위문화가 있습니다. 반문화를 때로는 저항문화 Counter Cultrue라고도 하는데, 지배문화에 대립한다는 의미에서는 반문화나 대항문화 어느 것이든 별 차이가 없겠으나, 모든 세대에서의 지배적인 문화에 대해 저항하는 반문화보다는 좁은 개념으로써 바로 이전 세대에 대해 대항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60년대에 미국 ·유럽을 휩쓸었던 청년문화는 기성문화, 즉 이들 지역의 지배문화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지배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새로운 질서에 의한 대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반문화는 미국 대중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0년대 말부터 50, 60년대가 바로 Mass Society라 할 수 있는데요, 경제적 번영과 관료주의로 하여금 전통적인 사회 유대감(결속)이 약화되었던 시점입니다. 현대적인 산업 시대였던 그 시기는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타인에 대한 체면과 허위의식이 강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0-6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건들이 벌어진,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극우적 반공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 McCarthyism이 1950년에 대두됨과 동시에 공중파 NBC 방송이 개국하면서 대중 문화가 부흥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맥도날드 패스트푸드점이 열어 전세계로 확장되었고 첫번째 디즈니랜드가 캘리포니아에 개장했고 록큰롤이 주류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에선 로사 팍스 Rosa Parks 사건으로 인해 흑인 인권 운동의 도화선이 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1957년부터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세계 최초로 발사하면서 미국과 소련과의 우주 전쟁 Space race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59년에는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각각 미국의 49번째, 50번째 주가 되었구요. 1961년에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납니다. 1963년 즈음부터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비극도 벌어졌습니다. 1964년에는 비틀즈가 미국에서 공연을 펼쳤구요, 1966년에는 풀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1969년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 위를 걸었고 청년문화의 대표적인 록 페스티발인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뉴욕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급속도로 사회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여러가진 사회 비판이 생겨났습니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이 1인칭으로 독백하듯 자신의 성장통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읽을 때 청소년의 은어, 속어, 비어 등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해석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온갖 괴상망측한 청소년 인터넷 용어들이 쓰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겠죠?ㅋㅋ
홀든은 어린 나이이지만 아주 냉소적으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즉 물질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는 성공에 대한 과도한 열망, 아메리칸 드림 따위 등등-을 혐오하는 소년이죠. 같은 학교의 친구들도, 자신의 여자친구도, 심지어 자신의 형과 부모까지도 phoniness, 가짜이고 엉터리며 위선자라며 염증을 느낍니다. 홀든을 둘러싼 주변이 모두 허위고 가식이므로,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간의 의미있는 소통은 단절될 수 밖에 없죠. 이러한 상황에서 홀든은 소외와 고립감을 느낍니다. 성공신화를 주입하는 사회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비슷한 형편의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는 일련의 과정에서 홀든은 벗어나려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지키고자 그 아이들이 뛰노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한 개인,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저 자신과 우리 사회를 되돌았습니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끝까지 추구해나갈 열정이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성공'해야만 한다고 세뇌시키는 우리 사회가 슬퍼졌습니다. 회피적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면서 경쟁 구도에서 쳇바퀴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허무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
|
|
|
|
|
|
9 |
반 문화와 '호밀밭의 파수꾼' |
김*민 |
|
|
|
오늘은 전설적인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 단 한편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샐린저'와 그의 소설이 그려낸 '반문화'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반문화(Anti-Culture)란 말 그대로 어떤 문화에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모든 세대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이지요. J.M.Inger는 이를 가르켜 '주류 문화에 반대하는 하부문화다.' 라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히피족'이 바로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든 전통적인 가치나 인습을 부정하고 마약, 섹스, 폭력, 선불교등에 탐닉했지요. 특히나 1960년대 중엽에 이는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전역을 거쳐 전 세계로 전파되어서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오고 있습니다. Hipster 라고도 하는데요, 그리니치 빌리지 주위에 이주한 비트족들이 hip,hep 이라는 속어를 사용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흑인 문화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요 '알고 있다' 라는 뜻이라고 하니 일견 인식론적 철학을 담고 있는 듯도 하네요.
유사한 용어로 저항문화(Counter Culture)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이전 세대에 대한 저항을 하는 것이니 반문화 보다는 협의의 반항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문화(Youth Culture)도 있는데요, 이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저항문화'의 하위 개념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반문화, 저항문화, 청년문화의 등장으로 인해 드디어 대중사회 (Mass Society)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산업화, 현대화가 되면서 경제적 풍요로 인해 관료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과 교회, 사회 동질성등 기존의 전통적인사회결속을 약화시킨 결과를 낳게 되었죠. 이렇듯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이른바 '대중사회'라 불리우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대중사회'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미국의 역사를 훓어봐야 할 듯 합니다.
1950년엔 맥카시즘에 의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출스 슐츠의 '피너츠'라는 만화가 출간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지요. NBC 방송국이 개국되어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가 만들어지기도 시작했죠.1951년엔 맥아더 장군이 전역했습니다. 한국전쟁시 중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원자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의 반대로 무산되어 전역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전역에 TV가 방송되기 시작하였고, 시트콤의 원조 'I Love Lucy'가 첫 방을 타기도 했죠. '텔레비전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52년엔 이민법이 통과되었고, 아이젠하워가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1953년엔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1954년엔 맥카시가 정치권력을 잃었고, 브라운 vs 교육위원회 사건으로 들썩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분리교육을 받고 있었고 흑인 아동은 동등하지 않은 교육기회를 가졌죠. 이에 반발한 고소가 대법원까지 올라가 차별금지 헌법이 만들어지게도 되었습니다. 또한 '투나잇 쇼'도 첫 방을 타기 시작했죠. 1955년엔 '맥도널드'가 첫 오픈을 했습니다. 맥도널드화, 코카콜라화 라고 하는 미국의 음식문화가 전 세계를 파고 들게 한 계기가 되었죠.
'로자파크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앨러바마의 흑인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힘이들어 버스 빈자리에 앉았는데 백인이 탔는데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강제로 끌어내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엔 관례적으로 백인이 버스에 타면 흑인들은 자리를 비켜줘여야 했으니까요. 헌데,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디즈니랜드가 개장을 했구요, 'Rock Around The Clock'로 되표되는 '로큰콜 뮤직'의 시대가 개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엔 동서남북을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20년에 걸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엔 투표권의 확대를 담은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하면서 이른바 'Space Race' 우주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우주시대의 선점을 빼앗긴 것에 큰 충격을 받아 과학이나 수학같은 기초과학 교육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해에 세계 최초의 핵 발전소가 만들어 지기도 했구요.
1959년엔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미국의 마지막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1960년엔 이른바 'U-2사건'이 발생했습니다. CIA 스파이 비행기가 정찰 도중 소련 공중에서 피격된 사건입니다. 그린스보로우에서 흑인계 대학생들이 기숙사 식당에서 백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수 있게 해 달라며 연좌데모를 시작되어 인권법에 반영이 되었구요.
1961년엔 케네디가 취임하였고, 월남전이 발발했습니다. 1962년엔 존 글렌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 한반퀴를 돌았구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고조되어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각을 세웠습니다. 1963년엔 그 유명한 마틴 루터킹이 워싱톤으로 행진하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잡지가 출간되어 여성운동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엔 비틀즈가 미국에 공연을 와서 영국대중문화가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를 표어로 걸고 가난퇴치, 인종차별등 사회개혁과 교육, 의료, 도시화, 교통문제 개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또한 흑인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막는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동양인 이민 차별법도 폐지 되었지요. 1965년엔 말콤 X가 암살당했고, 이로 인해 'Watts Riot' LA 폭동이 발생 해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1966년엔 NBC,CBS,ABC가 칼라 TV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67년엔 드디어 저항문화가 등장했고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문화적으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요. 1968년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고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로 최초의 흑인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엔 닐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했고, 우드스탁 페스티발이 베이비 붐 세대에게 크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세미 스트리트'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이 교육방송에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이러한 '반문화'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작가 '샐린저'의 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문학은 유태계 문예부흥(Jewish Renaisance)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노먼베일러와 필립로스, 그리고 샐린저가 대표적이죠.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에 맨하탄에서 유태계로 출생했습니다. 1932년 맥보니 스쿨에 다니며 학교신문에 글을 게재하곤 했는데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결국 1934년 15세에 사관학교식 밀리터리 아카데미로 전학을 갔는데, 이곳이 바로 [호밀밭]에서 콜필드가 다니는 학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6년엔 유태계 학교인 NYU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중퇴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유학을 가서 육류가공 포장업을 배우게 됩니다. 바로 샐린저의 부친이 소시지, 육류 수입상이었는데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죠.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귀국해 콜롬비아 대학교 문창과 사회교육원에서 강좌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STORY'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Whit Burnett이 그를 격려하며 글을 실어주기로 북돋아 주었다고 하네요. 1940년에 'The Young Folks'를 발간하고 1941년엔 'Slight Rebellion Off Medison'을 출간하려 하지만 다 거절당하고 겨우 뉴요커 잡지에서 원고를 받아 주지만 이도 5년 뒤에나 싣게 됩니다.
1942년엔 징집되어 유럽에 배치되 범죄자 신문을 하기도 하고 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와 친교를 맺으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지프차에 타자기를 어디든 싣고 다니며 단편소설을 쓰곤 했다고 합니다. 1944년 이른바 D-Day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엔 '실비아'라는 독일여성과 첫 결혼을 했고, 8개월 뒤 헤어지고 맙니다. 1946년엔 글래스 패밀리를 다룬 첫 작품인 'A Perfect Day for Bananafish'를 여러군데 거절 당한 후 뉴요커에 실었고, 이후로 후속작을 연재하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1949년엔 'Uncle Wiggily in Conneticut'을 발표하고 'My Foolish Heart'라는 영화로 만들어 졌지만 혹평을 받습니다. 1951년에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간하고 하루아침에 대 작가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한편의 작품으로 평생 먹고 산 작가가 여럿 있는데요.[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그렇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 미첼 여사, [폭풍의 언덕]의 브론테가 그러합니다. 샐린저는 이 작품을 출간하고 대중앞에 서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1952년엔 선불교와 힌두교 같은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엔 'Nine Stories'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후 뉴 햄프셔주 코니쉬로 칩거에 들어갑니다. 1955년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는 레드 클리프 대학생이었습니다.그녀에게 Franny Glass 이야기 사본을 결혼선물로 주기도 했지요.
1961년엔 [Franny and Zooey]를 출간하고 1963년엔 [Raise High Roof Bean. Carpenters and Seymour]를 출간하지요. 1965년엔 [Hapworth 16,1924]라는 단편을 발표하고 이후에 절필을 선언합니다. 1867년엔 이혼을 하고 1972년엔 예일대 학생인 조이스 메너드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무려 35살 연하였지요. 1986년엔 한 비평가가 은둔작가 샐린저에 대한 '전기'를 출간하려 하자 소송을 걸어 막았습니다. 1988년엔 40세 연하인 콜린 오닐과 삼혼을 하게 됩니다. 1998년엔 조이스가 샐린저와 나눈 편지를 옥션을 올리고 회고록으로 폭로하는 출간을 합니다. 2000년엔 누이인 마가렛이 어린시절의 산골성장 이야기인 [Dream Catcher]를 출간하는데 샐린저는 이에 또 다시 분노하였다고 합니다. 2009년에 91세의 나이로 샐린저가 사망 하게 됩니다.
그럼, 샐린저의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시 'Coming Through the Rye'에서 가져 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시가 <고향의 하늘>이라는 메이지 창가로 번안되어 유명져서 현재 신호등의 음향 멜로디로 쓰이고 있다고 하고, (스윙걸즈 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신호등에서 나오는 이 음악에 맞춰 재즈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지요^^) 한국에서도 개화기때 <들놀이>라는 노래로 들어와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고 합니다.
Comin Thro' The Rye (Coming Through The Rye)
Robert Burns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어요 Chorus. O Jenny is all wet, poor body, 이런, 제니는 다 젖었군요, 가엾기도하지. Jenny is seldom dry: 그치만 잘 마르질 않네요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제니는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가지요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Coming through the rye, poor body, 가엾어라, 호밀밭을 걸어오네.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오는구나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a body cry? 울고싶나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glen, 계곡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the world know? 사람들이 알까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하는데 Coming through the grain, 밭을 거닐어 오고 있어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줘요 The thing is a body's own. 제니가 원하고 있답니다.
<들놀이>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시내 건너 재를 넘어 들과 산으로 산들산들 가을바람 시원하구나 랄라랄라 씩씩하게 발맞춰 가자
나아가자 동무들아 손목을 잡고 산새 들새 노래하는 들과 산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랄라랄라 우리들도 노래 부르자
홀든이 맨하탄을 걷도 있을때, 어떤 소년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취직도 싫고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애들을 볼보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번뜩 들게 됩니다. 이 작품속엔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여동생 피비, 한때 유망한 작가였다가 헐리우드 대본작가가 된 D.B.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친구 제인, 대기업체 고문변호사인 아버지등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입니다. 헉핀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작품은 고백체 소설 입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허클베리핀의 '톰소여를 읽지 않았다면 나를 모를것이다...'와 닿아 있습니다. 바로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고백하는 1인칭 고백체 소설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언어 스타일은 속어와 비어, 은어로 가득합니다. 1950년대 고등학생들이 사용했을 법한 언어로 가득한 것이지요. 이 작품엔 lousy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라는 어근을 활용한 비어로 '이같이 씨부리는'이라는 뜻이지요.
테마는 미국적 삶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물질주의나 성공신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인 것이지요. 홀든은 친구들의 삶은 내 삶은 아니다 라며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 보다는 나는 내 식으로 살겠다라는 의지로 보여집니다.
가짜와 진짜의 대립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국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은 가짜이고 위선이 판치는 사회이며 우리 모두는 고립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홀든의 아버지는 돈 버는 데 바쁘고, 어머니는 그걸 쓰느라 바쁘고 형은 대본 쓰느라 바쁘게 묘사 됩니다. 가족 사이에서 어떠한 의사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따위는 모두 허위이자 가식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을 불신하고 의사소통이 부재한 이 시대의 소외와 고독을 그리고 있습니다. 홀든은 사람없는 서부의 양지 바른 곳에서 오두막 짓고 벙어리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물질주의 가치관을 혐오해서 반항의 몸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또한 겉모습과 실제의 대립으로 인한 괴리와 갈등, 긴장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개인의 개인적 자유와 사회의 성공신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대표적인 미국 문학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때묻은 구대륙에서 새로운 신대륙을 찾아 건설했기에 사회를 중요시하는 영국과 개인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문학적 유산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너서니얼 호손의 <주홍글자>의 프린이 그러한 엄격함에서 뛰어나오고,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자연으로 들어가고, 소로우의 <윌든>이 오두막을 짓고 살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이 뗏목을 타고 자유를 찾아 흘러가고,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의 상흔을 입고 사회로부터 벗어나듯. 이 작품은 이러한 미국적 문학의 유산의 흐름 속에서 제목 '호밀밭'이 상징하 듯 1950년대 미국의 가치관을 통렬하게 비판한 대표작이라 할수 있습니다.
|
|
|
|
|
|
|
10 |
상실의 시대와 '무기여 잘 있거라' |
조*희 |
|
|
|
1차 대전(1914-1918)은 서구인들에게 문명에 대한 회의와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류가 문명화되고 나서 맞닥드린 최초의 전 세계적인 커다란 전쟁이었으니까요. 전쟁의 사상자가 800만, 부상자는 2000만, 실종자는 800만이었으니 가히 엄청난 인류의 손실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유보트가 영국 전함을 공격하면서 미국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그제서야 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선언합니다. 허나 미국인 사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곧바로 휴전이 되었기 때문이죠. 유럽은 패전 후 경제공황과 함께 전체주의 정치가 대두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만, 미국은 오히려 'Roaring Twenties' 번영의 시대가 펼쳐졌죠.
하지만 당시 지성인들은 집단적 신경쇠약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이 당시 전후파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했고, 환멸과 절망 그리고 냉소주의에서 허우적 거렸습니다. 이 시대를 '상실의 시대' 혹은 '길을 잃은 시대' 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관이 상실 되었고, 도덕과 윤리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이른바 전후파 3대 작가.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포크너가 바로 이 '상실의 시대' 작가군에 속한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로 파리로 넘어가 문학수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미국의 여류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게 되죠.
'자동차가 고장나면 정비소에 찾아갔는데 무책임한 기계공은 말하더군요. 모두가 다 길을 잃은 세대라고...' 그녀는 헤밍웨이에게 이렇게 기계공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참전경험을 한 젊은 세대는 다 잃어버린 세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1926)의 에피그라프(소설 첫 부분에 적어놓는 경구)로 바로 이 말을 적어 놓았죠. '당신들은 모두가 잃어버린 세대입니다-거트루드 스타인의 말 중에서' 라고 말입니다. 이 시대에 활동한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엘리어트, 존 파소, 왈도 피어스, 알란 시거, 레마르크같은 작가들을 구별해서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는 1899년에 출생했습니다. 얼마전까진 1898년생으로 알려져 왔지만 군대에 참전하기 위해서 나이를 속여왔던 것으로 밝혀졌죠. 시카고 근처 시골마을 오크파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켄서트 시티 스타' 지 신문기자로 직업을 얻었습니다. 1918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자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죠. 그곳에서 무릎에 직격탄을 맞고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절단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의사소통도 안되는 타지에서 겪은 절망과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1920년 '토론토 스타'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다음해 룸메이트 여동생의 친구인 해들리 리차드슨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셔우드 앤더슨의 충고로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향합니다. 당시엔 달러가 강세인 시절이라 가난한 젊은 작가들이 유럽으로 문학수업을 많이들 떠났습니다. Expatriate Community 라 해서 스스로 미국을 떠나 유럽에 살면서 문학가와 예술가의 수업을 쌓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1922년엔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을 종군기자로 취재하기도 했고, 1923년 '단편 세편과 시 열편'이라는 첫 작품집을 출간합니다. 1925년엔 '우리 시대에' 라는 단편집을 셔우드 앤더슨의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1926년엔 셔우드앤더슨을 풍자한 작품인 '봄의 분류'를 출간하곤 이때 사이가 나빠져 죽을때까지 관계가 회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피츠제럴드의 소개를 받아 찰스 스크리브너스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1927년엔 '여자없는 남자'라는 단편집을 출간하고 결국 해들리와 이혼하곤 폴린 파이퍼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다음해엔 부친이 자살하게 되고 1929년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출간하게 되는데 원고를 분실해서 기억을 살려가며 다시 써내려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932년엔 스페인 투우 경기를 아내 폴린과 구경하며 쓴 '오후의 죽음'이라는 논픽션을 출간 합니다, 이후 '승자에겐 아무것도 주지마라'라는 단편집과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 사냥경험을 실은 '아프리카의 그린힐'이라는 산문을 출간하죠. 1937년 드디어 스페인 내전이 터지고 특파원으로 참전한 그는 '가진자와 갖지 않은자'를 출간하는데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인류의 역사는 유산자와무산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공산당 선언에 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1940년 폴린과도 이혼한 그는 마더 갤혼과 삼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쿠바에 집을 얻어 스페인 내전경험을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출간합니다. 1942년 '전쟁남자'라는 산문을 내고, 1944년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특파원 자격으로 프랑스와 독일에 종군하게 되고 연합군의 파리탈환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듯 전쟁경험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걸 좋아하는 '야성적인 작가'로 유명합니다. 파리에선 또 다른 연인 메리월쉬를 만나게 됩니다. 1945년 자동차 사고 후 입원한 헤밍웨이를 비웃었다는 이유로 부인 갤혼과도 이혼하게 되고 1946년 결국 메리 월쉬와 사혼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1947년엔 파리탈환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브론즈 스타 훈장을 받았고, 1950년엔 '강건너 숲속으로'를 출간한 뒤 비행기 사고로 죽을 뻔 하게 됩니다.
1951년엔 모친이 사망하고 이듬해 드디어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게 됩니다. 53년엔 이 작품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하고, 54년엔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1960년엔 아이다호로 가는데요, 알콜중독과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허나 혈압도 관리 안되고, 간질환이 겹치고 우울증까지 닥친 그는 각종 치료를 받게 되지만 굉장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됩니다. 바로, FBI가 자신을 늘상 미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헌데 쿠바에 거주했던 경력을 비춰보면 실제로 감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환각에 시달리던 그는 1961년 엽총자살로 생을 끝마치고 맙니다. 이후 파리에서의 경험을 담은 논픽션 (해마다 달라지는 휴일이라는 뜻의) 'A Moveable Feast' 유고집을 출간하게 되고, 이후로도 각종 단편집과 전집류가 속속 출간 되었습니다.
헤밍웨이에게 1차 세계대전 참전은 뜻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부상을 빼놓수 없겠죠. 1918년 적십자 부대의 유럽 파견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자원하여 입대합니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파견된 그는 두 달 뒤 박격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에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허나 실제 부상을 입게 되면 그런 환상은 깨어지게 되고 이런 일은 내게도 닥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간이 치료소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후 밀라노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곱 살 연상인 애그니스 쿠로스키라는 간호장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요양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1919년 애그니스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 사랑이었던 그녀의 변심은 헤밍웨이에게 정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왜 헤밍웨이는 네번이나 결혼했을까요? 바로 첫사랑 애그니스의 배반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배반 당할지 모르니,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차버려야 해! 뭐 이런 독한 맘이 그의 가슴 속에 새겨지진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게다가 이 때의 부상경험은 어린 그에게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시간 호수에서 동창과 낚시와 캠핑을 하며 시련을 잊는 치유의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의 단편을 보면 '닉 아담스'라는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데 그는 헤밍웨이 자신이 투영된 반자서전적인 인물입니다. 늘 밤에 전기를 켜 놓고 잠에 들고,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익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20년에 프리랜서 작가가 된 그는 '토론토 스타'지 특파원 생활을 거친 후 셔우드 앤더슨과 해들리 리처드슨을 만나게 되죠. 해들리는 애그니스와 비슷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허나 성숙한 애그니스에 반해 해들리는 유아적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오히려 그것이 결혼생활에 방해가 되었다고도 하지만 결국 둘은 파리로 가서 작가 수업을 쌓게 됩니다.
당시 파리는 달러의 환율이 강세여서 무명작가가 생활하기 좋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원체 파리는 문학과 예술의 지망생들이 모이는 예술의 메카 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운영 하던 살롱에서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스코트 피츠제랄드' 등이 모여 정기적으로 문학과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곳에서 피카소나 미로, 그리스등 입체파 화가들을 만나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들의 문학 작품에는 큐비즘적 요소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실비아 해변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극장에서 우연히 헤밍웨이를 만나 제임스 조이스에게 그를 소개해서 어울려 다녔다고도 합니다.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선배로써 그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고도 하구요.
헤밍웨이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유명하지요. 일명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는 강건하고 간결한 문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을 보면 천사는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산문집을 보며 지내다 맥 라이언에게 음식의 맛을 물어 볼때, '어떤데? 맛이 말이야. 헤밍웨이처럼 설명해줘'라고 대사를 하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만큼 '헤밍웨이 같은'문체는 현대에 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출판되었을때 뉴욕타임즈의 리뷰를 보면 쉽게 알수 있을겁니다.
'이 소설의 질은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할 길이 없다. 살코기만 있는, 딱딱한 근육질의 산문으로 되어 있어 수사적으로 현란한 문체의 영어문장들은 이 걸 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워 할것이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산문은 실내장식이 아니라 건축이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즉 그의 글은 강철과 유리로 그냥 세워놓는 모더니즘 건축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경제성과 효율성의 원리로 말입니다.
1954년 노벨상 위원회는 '서사 예술의 장인, 현대 스타일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공로로' 라며 수상의 변을 발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문체는 빙산과 같은 것이라는 'Iceberg Theory'를 주장했습니다. 작가는 수면 위 1/8 만을 가지고 나머지 물 속에 있는 7/8 까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나머지는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빙산의 움직임이 우아한 것은 1/8만이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 참전시 죽음에 직면해 싸우면서 이러한 문체를 배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를 비롯한 당시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고로 그 이전과는 다른 문체나 작품을 쓰려고 했으니까요. 분명 그의 문체는 19세기의 장황한 만연체의 문장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일찍이 단편소설로 출발한 경력으로 보건데 이것에서 간결한 문장을 배운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하나도 더해도 안되고, 하나도 빼어도 안되고, 낭비가 있어서는 안된다'라며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기자생활을 한 이력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육하원칙에 의해 팩트만 기술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테지요.
이제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지요. 제목에 들어간 arms 라는 단어는 캐서린이 남긴 두 딸을 의미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무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자서전적 작품이기에 이 작품에는 쿠로스키와의 실연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두고 보자며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려 신처럼 받들게 해서 철저하게 캐서린을 굴복시켜 버립니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을 전부 다 예술세계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선 캐서린이 너무 개성이 없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입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배경은 비와 눈이 내리는 이탈리아 전선의 밀라노 병원의 1917년 막바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론 1인칭 시점이지만 가끔 철학적 사색이나 명상을 할 때면 2인칭으로 나레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개츠비'가 1인칭 소설이지만 주인공은 사건에도 개입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선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만 합니다. 화자이면서 주인공이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에서 '비'는 재앙이나 불행을 뜻합니다. 초반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거나 콜레라가 퍼지거나 부상을 입거나 할때 등장하곤 합니다. 허나 후반부의 스위스에서의 '비'는 유쾌한 맛을 내기도 합니다. '안개'는 캐서린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같은 여성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자르려 하니까 못자르게도 하니까 어쩌면 남성적 시선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론 '러브 스토리' 입니다.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결국 둘은 끝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니까 말이죠. 또한, 반전 소설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비인간적 늙은이들과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당하고마는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인식론적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유한한 생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니까 말입니다. '나는 모르고 있던 것을 그는 늘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알았다 할지라도 잃어버리기 일쑤인. 그러나 그당시엔 나는 몰랐다. 나중엔 알게 되었지만.'
캐서린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결정된 운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골반이 작아 분만을 못해 결국엔 제왕절개를 하지만 죽고 마는 것이죠. '생물학적 덫'이라고도 합니다만, 삶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처럼 점차 헨리는 알아가게 됩니다.
캐서린을 사랑하고 떠나보내면서 말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런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원래는 장교 위안소보단 조금 낫기 때문에 그녀를 만난 거였습니다. 허나 시련을 겪고 입원하면서 가까워지게 되며 사랑은 희생이란걸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실존주의'적 이기도 합니다. '실존은 본질은 앞선다'라고도 하지요. 산 다음에서야 인생을 논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헨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하는 무신론자로 등장합니다. 오로지 삶은 현세 밖에 없기에 그 삶을 아주 만끽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영광, 명예,용기,신성함 같은 추상적 단어는 동네 마을 이름이나 길거리 번짓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러브스토리에서 인식론적 철학적 이야기로 점차 옮아가게 하는 겉보기보단 무척이나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빙산 아래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
|
|
|
|
|
|
11 |
의 지형도를 읽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로스트 제너레이션 |
이*현 |
|
|
|
김욱동 선생님의 7차 강의는 학교 중간고사 관계로 참여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강해서 리뷰를 올리게되었습니다. 흐. 그 주에 살펴볼 작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의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헤밍웨이 소설이 작품성이 있는건 알겠지만 좀 지루하달까? 그래서 꾸준히 읽지 못했는데요 이번을 계기로 다시한번 헤밍웨이 소설들을 읽어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헤밍웨이가 살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건인 세계 제 1차 대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은 1914년부터 1918까지 4년 남짓하게 일어난 전쟁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대규모 전쟁이기 때문에 서구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죠.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합쳐서 4천만명에 육박할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미국은 이 전쟁에 뒤늦게 참전했습니다. 거의 끝 무렵에 말이죠. 대서양을 두고 있던 거리 덕분에 미국인 희생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고 경제 공황이 몰아닥치고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것과 반대로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집단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상적, 정신적으로도 무너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쟁을 겪은 후, 삶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세태가 나타났습니다. 서구 문명에 대한 환멸과 냉소주의가 유럽 사회를 휩쓸다시피 했죠.
특히 문학과 관련해서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상실을 일컬어 상실의 세대 Lost Generation가 나타났습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방향으로 봐서 ‘길 잃은 세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헤밍웨이입니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에 직접 참전을 했구요, 그래서 직접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작품을 읽다보면 다른 작가들보다 직접적으로 더 피부에 와닿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Lost Generation이라는 말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처음으로 썼습니다. 스타인은 'That is what you are. That's what you all are... All of you young people who served in the war. You are a lost generation.'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수리공부터 문학 작가들까지 모두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고 모두가 ‘상실의 세대’라는 말이죠. 그리고나서 헤밍웨이가 1926년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라는 작품의 제사Epigraph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비로소 이 용어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Lost Generation의 대표작가로 부상하게 되었죠.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이사도 여러 번 다니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긴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생을 살았던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기자로 취업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제도적인 교육보다는 실제적 경험이 작가적 기반이 된거죠.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에 헤밍웨이는 미국의 적십자 부대에 속해 앰뷸런스 병으로 자원을 해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이 되게 됩니다. 하지만 박격포탄을 맞은 헤밍웨이는 심한 부상을 입고 수술을 합니다. 이 때 헤밍웨이가 겪은 공포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때를 겪어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When you go to war as a boy you have a great illusion of immortality. Other people get killed; not you... Then when you are badly wounded the first time you lose that illusion and you know it can happen to you.' 그 후 회복을 하게 된 헤밍웨이는 다시 신문 기자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을 하고나서 파리에 특파원으로 갑니다. 당시 미국의 환율이 강세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생활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이점도 있었죠. 파리에서 여러 유명한 문인들과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그는 작가로서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FBI에 쫓기고 있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긴 헤밍웨이는 결국 엽총으로 자살을 하면서 삶을 마무리 짓습니다.
헤밍웨이는 장편과 단편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입니다. 1953년에 퓰리처 상을 받고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타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필수 독서 목록에 헤밍웨이의 작품이 꼭 올라가게 되기도 하였죠. 사실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 내용만큼 제목도 하나같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멋진 타이틀과 더불어 무겁고 깊은 주제를 문학에서 주로 다루었죠.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를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 전선, 병원이 장소적인 무대가 되고 있고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7년 즈음이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기본적으로 1인칭을 쓰되, 어떤 철학적인 사색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는 You라는 2인칭을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헤밍웨이 자신의 첫사랑과 그 실연에 밑바탕을 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Agnes von Kurowsky라는 여성에게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녀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을 하면서 헤밍웨이를 배신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1929년 발표된 ‘무기여 잘 있거라’의 내용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거죠. 그래서 작품 제목에 Arms는 ‘무기’로 번역되지만 동시에 프레드릭이 사랑하는 연인인 캐서린의 양 팔을 가리키는 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흔히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허구적 세계에서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그려내듯이 헤밍웨이 역시 현실과는 다르게 소설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남자주인공에게 완전히 굴복시킵니다. 남자주인공 앞에 두 무릎을 꿇고 그를 신격화할 정도로 찬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거든요.
여기서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자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탈리아 전선에 의용군으로 종군한 미국인 군의관 프레드릭 헨리Frederic Henry 중위와 영국의 지원간호사 캐서린 버클리Catherine Barkley는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냉혹한 전쟁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는 내용입니다. 부상한 프레드릭 중위는 밀라노에서 캐서린의 간호를 받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캐서린은 임신을 합니다. 부상이 완치되어 전선으로 복귀한 프레드릭 중위는 이탈리아군이 총퇴각할 때 스파이 혐의를 받고 총살 직전 탈주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스위스로 탈출, 산촌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했으나, 봄이 되어 캐서린은 사산하고 심한 출혈로 사망합니다. 혼자 남은 프레드릭은 비를 맞으며 쓸쓸하게 호텔로 돌아갑니다.
번역판이 아닌 영어로 쓰여진 원작을 읽다보면 알 수 있겠지만, 헤밍웨이는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의 문체를 Hard-boiled Style 이라고 하는데 강건하면서 간결하고, 딱딱한 문체를 말하는데요. 어느 작가보다도 딱 ‘아, 이건 헤밍웨이다.’라고 알 수 있는 그만의 문체가 있는거죠. 그래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발표되었을 때 The New York Times에서는 'No amount of analysis can convey the quality of The Sun Also Rises. It is a truly gripping story, told in a lean, hard, athletic narrative prose that puts more literary English to shame' 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심플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 문체. 헤밍웨이가 'Prose is not an interior decoration but an architecture, and Baroque is over.'라고 말한 걸로 봐서도 그의 스타일이 좀 드러나죠?ㅎㅎ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어떻게 이런 문체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Henry Louis Gates 교수는 헤밍웨이가 1차 대전을 경험했던 것이 그 이전의 장황한 만연체의 문체와 다르게 되었던 계기가 아니겠냐고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Carlos Baker 작가는 헤밍웨이가 단편 소설 작가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간결한 문장을 배운 것이 아니겠냐고 짐작합니다. 강의를 하시는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기자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헤밍웨이가 신문 기자를 하면서 글쓰기의 잔뼈가 굵었는데 육하원칙에 따라 분명한 Fact만 쓰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헤밍웨이가 간명하게 글을 쓰게 되지 않았냐고 분석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의 themes은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작가의 반전에 대한 인식이 담긴 소설이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프레드릭이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고통을 받으면서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사랑의 중요성 등을 깨닫는다는 관점에서 인식론적인 소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질보다 선행하는 것이 존재(삶)이다.’ 라는 실존주의적인 면도 보입니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주는 상흔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일까요? '휴전'이라는 상황에 있지만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현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무섭고도 잔인한 전쟁의 상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듭니다.
|
|
|
|
|
|
|
12 |
세계대전과 피츠제럴드 |
최*호 |
|
|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의 선배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합니다. 하루키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할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했던 인물입니다.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 영원히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해 작품을 써야 한다.'라는 작가적 야심을 당차게 드러냈던 F. 스캇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그의 포부처럼 그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는 세대를 아울러 유명 작가들부터 영문학도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혼돈과 낭만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1920년대를 가장 잘 그려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1920년대의 미국은 'Second Flowering'이라고 일컬어지던 시기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참전했지만 어쨋거나 전승국으로 인정받았으며 경제적 피해가 덜했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그야말로 패권을 잡은 국가가 되었죠.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엄청나면서 경제적인 번영을 급작스럽게 이루었던만큼 퇴폐적이고 환락적인 문화가 주를 이뤘던 이 때를 가리켜 'the Age of Intorlerance,' 'the Age of Wonderful Nonsense,', 'the roaring twenties' 등등 많은 별칭이 붙었는데 피츠제럴드 역시 'the Jazz Age'라고 지칭했죠.
혼란스러운 이 시기는 'Red Scares'라고 한마디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쪽으로 가서 이민자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했죠. 한편 Ku Klux Klan (KKK)라는 백인 우월주의 비밀 결사조직 역시 다시 나타났습니다. 남북전쟁 직후 남부에서 생겨났다가 1920년대에 Racism이 강해지면서 다시 나타난거죠. 법적으로 금주법 Prohibition이 나타난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미국과 그 관할에 속하는 모든 영토 내에서 음용할 목적으로 주류를 양조, 판매 또는 운송하거나 미국에서 이를 수입 또는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주법은 사실상 집행이 불가능한 법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법을 비웃듯 집에서 술을 주조하고 오히려 흥청망청 더 마셔제끼는 모습을 볼 수 있죠.
한편, 1920년대 미국은 문화적으로 꽤나 낭만적인 시대였다고 보여집니다. 일명 'Flapper' 스타일의 불리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요. 짧고 물결치는 커트 머리와 몸에 붙는 짧은 스커트, 빨간 립스틱 등 강한 메이크업으로 치장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파티를 열고 사교 댄스를 여는 문화도 이 시기에 성행했던 것입니다. 베이브 루쓰 Babe Ruth 를 비롯한 스포츠 영웅이 급부상하기도 했죠. 문학에서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등 유수한 작가들이 쏟아져나왔고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조지 거쉰 George Gershwin 등 재즈 스타들도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 사에서 첫번째 만화영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제작되었고 천연색 영화도 생산되었습니다. 라디오가 집집마다 놓이기 시작했고 포드 사에서는 조립라인을 통해 T 모델이라는 자동차가 대량생산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패션, 음악, 스포츠, 대중 문화 각각의 분야에서 활짝 꽃피운 황금시기였죠.
'재즈 시대의 왕자'인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 문단의 삼총사'로도 불립니다. 옆에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굉장히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는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그는 여기저기 전전해야했죠. 그의 이런 경험은 작품 속 어떤 돈에 대한 매력이랄까. 이런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이를 보고 어떤 비평가는 '휘황찬란한 진열장 앞에서 침 흘리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영화화되어 알려지기도 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비롯해 단편 소설을 주로 쓴 피츠제럴드의 주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습니다. 당대에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작품 당 2~3만불이라는 높은 원고료를 받았지만 허영심과 낭비벽으로 항상 돈이 부족했죠. 그런 그가 '나는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 말고도 정교하게 고안한 그 무엇을 쓰고 싶다'며 집필한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미국의 사회상을 잘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는 1920년대, New York City의 Long Island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인칭 화자인 닉 Nick Carraway은 개입화자 Involved Narraotr로 사건에 개입하면서 독자에게 제이 개츠비 Jay Gatsby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플롯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닉은 내레이터이자 프로타고니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개츠비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주인공입니다. West Egg 대저택에서 날마자 호화스러운 파티를 여는 제이 개츠비는 데이지 Daisy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데이지는 전통적인 세습 부자였던 톰 Tom Buchanan 과 결혼을 하죠. 가난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던 개츠비는 이후 약국사업으로 지칭되던 밀주 수입 및 판매, 훔친 증권 판매와 석유 사업 등으로 몇년 사이에 엄청난 재산을 쌓게 됩니다. 범법행위였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그야말로 American Dream을 이루었던 거죠.
그렇다면 개츠비는 왜 '위대'할까요? 아마도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모에 작가는 개츠비에게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요. 개츠비는 집념으로 생을 살았습니다.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부를 쌓았고, 데이지의 집에서 눈길을 끄는 초록불빛을 밤마다 장식하면서 화려한 파티를 열었죠. 헤어진 지 오년이나 지났고 이미 유부녀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여자 주변을 부나방처럼 맴도는 개츠비는 애처롭습니다. 그의 최후 역시 비극적이고 어처구니없기까지 하죠.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통해서 오히려 무작정 소비하고 향유하고 어리석은 꿈에 젖는 우리의 삶을 드러내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본주의와 손잡으며 변절해버린 초기 개척자들의 American Dream이 이제 American Nightmare가 된 것은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
|
|
|
|
|
|
13 |
희망하라, 조류를 거스르면서! |
김*빈 |
|
|
|
피츠 제랄드를 알기 위해선 우선 1920년대의 미국을 살펴봐야 할듯 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선 '뉴잉글랜드 르네상스'라 해서 미국문학의 제 1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호손, 멜빌, 포우, 위트먼, 에밀리 디킨슨, 소로우 등이 문학의 꽃을 피웠죠. 20세기 초반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선 미국문학의 '제 2의 전성기'가 펼쳐집니다. 바로 오늘 살펴 볼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 그리고 '포크너'가 활약한 시기이지요.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은 실질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와 같은 앰뷸런스 운전병이나 병원인력만 후방에서 지원하곤 했으니까요. 허나 미국은 어찌되었든 연합군으로 함께 참전했기에 종전 후 승전국이라는 지위를 얻었습니다. 군수산업이 약간 움추러들었긴 했지만 바로 풍요를 개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경제력에 힘입어 문학도 발전하기 시작했지요.
전쟁터였던 유럽은 경제공황에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같은 독재정권이 들어서며 경제적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별 손실이 없었던 미국에겐 경제적 부를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지요.
그럼, 미국의 1920년대에 대해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대는 그 유명한 '재즈시대' 입니다. '무관용의 시대'라 하기도 하고, '넌센스의 시대' 혹은 '번영의 시대'라 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 미국이 현대로 들어선 시기이지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아주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진보적이었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의회와 각을 세웠습니다. 베르세이유 평화조약 인준도 거부당하고, 국제연합 가입도 실패하게 되었죠. 여론이 전후에 고립주의로 급선회 하면서 수입관세를 높여 무역장벽을 쌓았고, 이민금지법을 만드는 등 점차 국수적인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그 후 워렌 G 하딩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자국 국수주의와 패쇄주의 정책을 펴며 자유를 억압했고, 캘빈 쿨리지 또한 관세를 높이며 무역장벽을 더 높이 세웠습니다. 뒤를 이어 허버트 후버 시절엔 산업적으로 융성해 졌고, 드디어 1932년 미국 민주주의의 우상인 루즈벨트가 당선이 되었죠.
사회적으론 당시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감이 의도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반공 이데올로기가 들끓었다는 것이죠. 15만명이나 공산주의자 혹은 반기독교주의자로 몰려 탄압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코와 반제티 케이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보스톤 노동자인 이들은 살인누명을 쓰고 좌익분자로 몰려 의혹이 남겨진채 사형을 당했으나 후에 진범이 밝혀져 미국 재판 역사상 큰 오점으로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Ku Klux Klan 또한 이 당시의 악몽으로 남아있습니다.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백인우월주의의 오명이죠. 남북전쟁 이후 노예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남부에서는 그것을 거부하며 잔인한 일을 일삼는 비밀결사조직이 공공연히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수정헌법 18조에 의한 '금주법'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단체나 여성단체에 주장에 의해 악의 축인 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술의 제조, 운송, 판매는 물론 음주까지 금지되었던 시기였습니다. 허나 오히려 알콜 소비량은 더 증가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덕분에 알카포네와 갱단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수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 금주법 시대의 문화가 아주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요.
문화적으로 당시엔 Flapper(젊은 여성)의 시대였습니다. 미니스커트와 단발머리, 과감한 헤어스타일과 흡연으로 되표되는 이른바 '신여성'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후에 피츠제랄드가 쓴 소설의 제목도 [Flappers and Philosphers]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플래퍼 걸들의 찰스턴 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설적인 야구스타 '베이브 루스'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였구요. 싱클레어 루이스, 윌라 카터, 칼 샌드버그, 윌리엄 포크너, 헤밍웨이, 피츠제랄드 같은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재즈의 시대답게, 듀크 엘링턴, 루이 암스트롱, 플레쳐 핸더슨, 조지 거쉬윈, 콜 포터등이 대중음악계를 주도해 나갔습니다. 무비스타의 시대이기도 했는데, 찰리 채플린과 루돌프 발렌티노부터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와 디즈니 첫 애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이 건축, 헤어, 의상, 가구, 영화, 회화 까지 전 분야에 걸쳐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경제, 기술, 과학에 있어서도 전후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소비문화라는 게 탄생하기 시작했고, 노동자 평균 하루 일당이 5달러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발명품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모델T'를 대량생산하면서 이른바 '포디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때가 바로 이 시절입니다.
1927년까지 1500만대를 판매하였다고 하니 과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디즘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뜻하는데, 최근엔 포스트-포디즘이라고 하여 다품종 소량생산, 고급화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라디오가 미국 안방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갔고,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최초로 단독횡단하기도 했고, 깡통식품과 가사용품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주식 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는 점입니다. Bull Market 이라 하는데, 108프로의 평균 수익을 내었다고 하니 과히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허나 실은 이것은 1929년 검은 화요일 '대폭락'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사회문제가 급증했고, 결국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 들어서면서 Red Decade 즉 사회주의 사상이 떠오르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러한 격동의 1920년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작가 '피츠제랄드'의 연대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896년 미네소타 세인트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가구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며 자라났죠. 그래서 어릴적부터 유독 '돈'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았다고 합니다. 배를 움켜쥐고 대도시의 화려한 진열장 속 음식을 바라보는 격이었죠. 카톨릭 학교를 나와서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만, 문학청년입네 하면서 진탕 술마시며 놀기만 했습니다.
그 후 자원입대하여 장교훈련을 받던 중 운명적인 여인 '젤다'를 만나게 됩니다. 젤다는 당시 판사의 딸에다가 명문가의 자녀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다 이내 둘은 1920년 첫소설 [낙원의 이쪽]의 출간과 함께 결혼에 골인합니다.
연달아 첫번째 단편 모음집인 [말괄량이 아가씨와 철학자들]이 호평을 받고, 두번째 소설 [저주받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출간하게 됩니다. 곧 [재즈 시대 이야기들]이 호평을 받기 시작하고 [개츠비]의 배경의 모델이 된 롱 아일랜드 그레이트 넥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곳에서 [개츠비]를 구상하다가 1924년 드디어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게 됩니다.
그는 이 시기에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파리에서 만나 '찰스 스크리브너'라는 출판사를 소개시켜줘 출판을 도와주게도 됩니다. 이후에 [모든 슬픈 젊은이들]을 출간하고 1927년 헐리우드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이주하게 됩니다. 그 당시 피츠제랄드를 비롯한 재능있는 소설가들이 돈을 위해 헐리우드로 갔다가 안타깝게 재능을 낭비한 경우가 많은데요, 포크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 젤다가 파리에서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고, 이어 [밤은 부드러워]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어 [기상 나팔소리]를 출간하고 다시 헐리우드로 들어가 셰일러 그레이엄이라는 칼럼니스트와 사귀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1940년 헐리우드의 아파트에서 젊은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1941년 윌슨 편집장이 [마지막 거물]이라는 유고집을 출간하게 되고, 1948년 아내 젤더가 화재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럼 이번엔, 피츠제랄드의 문학적 유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는 몰락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물질적 파산은 곧 정신적 파산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돈'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 것이고 이것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삼총사 중의 한명입니다.
특히 단편소설들을 많이 출간했는데, [Saturday Evening Post]라는 독자가 많은 대중적 주간잡지에 연재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풍속화가 Norman Rockwell과 콤비가 되어 표지를 담당하고, 피츠제랄드는 단편소설을 엮어 내곤 했습니다.
헌데 이 당시 편당 원고료가 당시 시세로 2만-3만 달라였다고 하니 과히 엄청난 몸값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에너지를 쏟아 써낸 작품은 10여편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Pop-boilers 돈을 위해 마구 써내려간 작품들이었습니다. 허나 지금의 그를 최고의 작가로 칭송하는 걸 보면 역시 작가는 좋은 작품만으로 평가 받는듯 합니다. 절대 나쁜 작품으로 평가받거나, 평균을 내서 평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작가의 세계이니까요.
헌데 이렇게 막대한 수입을 벌었던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헐리우드에 갔던 것은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으로 심한 낭비벽이 있어서였습니다. 부인과 함께 유럽을 돌아다니며 파티며 대저택과 고급차 구입에 흥청망청 써 댔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작가적 야심이 무척이나 커다랗기도 했습니다.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 영원히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해 작품을 써야한다'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대학의 필독서에 꼽히면서 영문학의 필수코스가 되어버렸으니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고나 할까요.
이제 [위대한 개츠비]의 창작과 출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922-24년 동안 그레이트넥에서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미네소타주 출신으로서 자신이 가난하게 자란 경험과 부인 젤다와의 결혼경험도 함께 엮여 들어갔지요. 파리에서 주로 쓰다가 1925년 드디어 출간하게 됩니다.
'나는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 말고도 정교하게 고안한 그 무엇을 쓰고 싶다' '마침내 참으로 내 작품이라고 할 그 무엇을 썼다'
그는 편집자 Maxwell Perkins에게 집필 당시와 탈고 후 보낸 편지에서 위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이 작품엔 1920년대가 고스란히 녹아나 있습니다. '191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시스터 캐리]를 읽고, 193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분노의 포도]를 읽어라. 헌데 192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 라고들 합니다.
대공황 직전까지 금주법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 시대상은 도덕적으로는 해이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번창했던 시기였습니다. 제목인 [The Great Gatsby]에서도 알수 있듯 이 작품의 개츠비가 진실로 위대한 것인지, 아이러닉한 표현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있겠지요.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왔지만 최근엔 그냥 [그레이트 개츠비]라고 제목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위대한' 이라는 번역이 아무래도 걸렸던 탓이겠죠. 터키에서는 [스플랜디드] 라고 하기도 하고, 한때는 [화려한] 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자주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스테디셀러가 되는데 한몫하기도 했지요.'개츠비'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수 없다는 주인공의 설레발에 너도나도 궁금해서 사보기 시작했다고도 하네요. 실제로 하루키는 부인과 까페를 하면서 문학수업을 하면서 최초로 텍스트를 삼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번역해서 출간하기도 했는데요, 일본에서는 꽤 많이 팔린 번역서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과연 개츠비는 위대할까요? 그는 실정법을 어기면서 조폭과 손잡아 막대한 돈을 번 범법자일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경멸스럽지만 예민하기도 하고 꿈과 이상이 있어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어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이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입니다. 롱아일랜드의 이스트 에그/웨스트 에그라는 문학적 가상공간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실제 롱 아일랜드 지도를 보면 달걀 모양의 작은 지역이 있는데요, 이 곳을 개츠비의 공간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웨스트 에그는 그가 살았던 그레이트 넥 즉 신흥부자들의 공간이고, 이스트 에그는 세습부자들이 있는 타락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물은 우선 1인칭 화자이면서 사건에 개입도 하는 닉이 있고, 개츠비와 톰, 데이지, 조던 베이커와 마이어 울프쉼등이 등장합니다. 닉은 involved narrator 즉 개입화자 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본인이 주인공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 작품은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차 있습니다. 녹색의 묘사는 희망과 꿈을 상징하고, 노란색의 묘사는 개츠비의 넥타이처럼 돈의 색이라 할 수 있죠. 쓰레기 하치장은 잿빛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죽음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것입니다. 초기 필그림들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보스톤에 도착해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꿈꾼것은 언덕위에 도시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예루살렘, 즉 종교적인 자유가 있는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자유가 있는 정신적 이상향이 원래 그 건국이념이었습니다.
허나 미국은 점차 황금을 꿈꾸게 됩니다. 원래부터 청교도주의자들은 한손엔 성경책을 또 한손엔 황금을 들고 있었다고들 합니다. 애초에 물질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교리중에 가난한 이에겐 절대로 적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빈자는 저주이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논리를 차곡차곡 펼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이러한 청교도 정신안에 내포되어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싹이 자란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은 현재에 와선 아메리칸 나이트 메어가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개츠비의 꿈은 순수했지만, 과정은 옳지 않았습니다. 조폭과 연결되어 채권을 불법 수령하고 금주시대에 술을 팔면서 마구잡이로 부를 축적했으니까요. 허나 그의 목적은 집짓도 돈 벌어 헤어졌던 첫사랑 데이지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점차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을 그려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가 [블루, 레드 앤 화이트]이기도 했는데요, 미국의 성조기 색깔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미국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이 작품은 또한 동부와 서부의 갈등을 그려내고도 있습니다. '서부인들은 패할수 밖에 없어. 영악한 동부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이라 자조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닉은 동부에 와서 증권과 채권을 배우며 부를 축적하다가 결국엔 다시 서부로 돌아오게 됩니다. 동부가 쾌락이 넘치는 유럽적 가치관적 세계라면, 서부는 청교도 정신이 남아있는 성실한 신대륙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꿈과 환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츠비는 꿈을 잃지 않습니다. 남의 아내가 되어 아이까지 가진 데이지를 되찾다는 것은 잃어버린 청춘, 젊음, 사랑을 되찾는 것이니까요.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을 보면 커츠대령이 죽고 말로가 커츠의 애인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커츠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환상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삭막하고 살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콘라드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피츠제럴드도 이 작품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 역사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텍스트 이기도 합니다. 인종이나 계급, 성차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품속에 있는 그러한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 신 역사주의인데요. 인종을 보면, 닉은 밥 먹으면서 책 한권 읽지 않던 탐이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백인종이 조심하지 않으면 침몰할 거야' 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타도해야 해요'라고 한마디 거들기도 합니다. 백인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계급을 보면, 탐은 유산자이고 무산자들을 무척이나 탄압하곤 하지요. 성차를 보면, 데이지는 그냥 탐의 악세사리로 등장합니다. 그저 같이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닉은 이것에 화가 납니다. 나같은면 뛰쳐나올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이러한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그러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관해 몇가지 의견을 말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유명 소설가에 의해 이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는데요, 작가적 감수성으로 유려하게 풀어 낸것은 좋으나 몇가지 우려할 만한 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퍼블릭 도메인이 되어 국내에만 25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만 번역이 아닌 번안 수준인것이 태반이라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작품의 묘미를 알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피츠제랄드 하면 '재즈시대 작가' 라며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이 작품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동명의 영화로도 무척이나 유명한 작품이죠. 얼마전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그의 단편 중 한편이 영화화되어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개츠비의 인기는 레고, 만화, pc 게임으로까지 만들어질 만큼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물랑루즈' 의 감독인 바즈 루어만이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을 캐스팅 하여 3D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강도하의 웹둔 '위대한 캐츠비'로 이 작품은 다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재미난 사실은 사석에서 강도하 작가에게 이 소설의 어떤 면을 참고 했냐고 묻자, 제목을 정하던 중 머리를 감고 나서 왁스를 바르려고 보니 '갸스비' 라는 이름이 발음도 좋고 입에 달라 붙어서, 이 왁스의 이름과 비슷한 소설의 제목이 생각나서 '위대한 캐츠비'로 지었다는 답변을 듣고 뒤로 넘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전설은 참 묘하게 이렇게 재생산되기도 합니다.
유명했던 피츠제랄드와 그의 아내 젤다의 연애에 관한 소설도 한편 따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젤다가 피츠제랄드가 죽은 후에 그와의 연애담을 회상하는 소설이라는데, 젤다에 촛점을 맞춘점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 복판에서 생을 살아갔고, 실제로 작가로서의 부와 명성으로 그 성공을 한몸에 받았던 그는 신경쇠약에 걸린 부인을 홀로 두고, 헐리우드에서 더욱 부를 쌓기 위해 재능을 낭비하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쳤습니다. 부의 한복판에 섰다가 다시 스러져 간 개츠비의 인물들처럼 그의 삶 또한 아스라이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세계대전 후의 경제적 풍요가 곧 바로 경제 대공황을 맞게 한 것처럼, 성공은 언제나 실패를 전제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화려한, 혹은 위대한 어쩌면 그레이트한 삶 또한 그렇게 사라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잠시나마 그 찰라의 풍요를 맛보았으니 개츠비와 피츠제랄드의 삶은 위대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이 화려한 재즈시대를 그려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엔딩은 금주법 시대에 갱스터로서 엄청난 부를 맛보고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연인까지 빼앗고 정치인의 권력까지 얻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늙은이가 뒤늦게 찾아온 친구의 순수함을 간직한 모습에 자신의 온 삶이 무너져 내려 쓰레기 수거차에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아마도 개츠비의 삶도, 피츠제럴드의 삶도, 아니 그 당시 경제적 부로 인해 현재 전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인들의 삶도, 순수했던 그 한 순간을 잊고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깨닫는 순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오직 인생의 목적이 부자되는 것에만 올인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에 무릎꿇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소소하지만 작은 희망에 만족해 하며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들의 선택일 것입니다.
개츠비의 마지막 문단을 곱씹어 보며 말을 맺습니다. 희망하라, 조류를 거스르면서! '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
|
|
|
|
|
|
14 |
제게도 '짐' 같은 방랑의 동반자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 |
|
|
|
다시 한번,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철학에서 리얼리즘은 유명론(nominalism)과 반대되는 용어입니다. 유명론이란 선,악,정의 같은 추상적 개념은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죠. 이와는 반대로 리얼리즘은 이러한 추상적 개념은 실제 시공간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은 중산층의 일상적인 경험을 사소설 형식으로 사실적,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부르주아 리얼리즘'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비판적 리얼리즘' 그리고 문학을 국유화 하여 공산당의 노선에 따라 창작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있습니다.
그럼, 이중에서도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유럽에선 이미 리얼리즘은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 한껏 개화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남복전쟁(1861)직후 에서야 꽃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은 '차 한잔의 비극'이라는 윌리엄 딘 하월즈의 표현처럼 가정에서의 결혼, 부부,가족갈등을 담은 '가정적 사실주의'와 헨리 제임스를 중심으로 하는 작중 인물의 심리에 촛점을 두어 심리적 갈등이나 뉘앙스를 담아낸 '심리적 사실주의. 그리고 마크 트웨인으로 대표되는 특정지역이나 배경에 촛점을 맞춰 그 지역의 삶을 생생히 담아내는 '지역적 사실주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마크 트웨인의 연대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935년 미주리주 플로리다 마을에서 7남매중 6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 입니다. 후에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으로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수로 안내인이었던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증기선이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선 대략 2피트 정도 깊이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깊이를 재어 봐라' 라는 수로 안내인의 용어가 'Mark Two!' 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트웨인은 필명을 지을때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크 투->마크 트웨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그닥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소년시절 미시피피 강변에서 살면서 이런 저런 사건을 체험하며 자랐던 트웨인은 4세대 부친을 여의고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만 겨우 수료하고 정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작가수업을 쌓아 갔습니다. 13세부터 이미 인쇄소 활자공으로 먹고 살기 위한 생활전선에 나아간 그는 시골 신문사에 근무하며 간간히 글을 발표하곤 했습니다. 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쇄공 일을 하면서 틈틈히 독서와 창작에 매진하게 됩니다. 당시 미시시피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증기선에서 형이 폭발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그는 수로 안내인 자격증을 따게 됩니다. 허나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더이상 증기선이 다니지 않자 그만두고 신문기자로 전업하게 되죠.
1865년에 [뜀뛰기 개구리]라는 단편을 발표하며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하와이인 '샌드위치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취재를 하기도 하고, 뉴욕에서 잠깐 체포되어 감옥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단편 단행본이 인기를 끌자 지방 신문사의 후원으로 지중해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도 하죠. 이때의 경험을 기록한 '해외 여행기'를 출간 하고, 아내 '올리비아'와 결혼을 하고 수잔과 클레어 두 딸을 얻습니다.
드디어 1876년에 [톰소여의 모험]을 출간하고 자매편인 [허클베리핀]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1881년에 [왕자와 거지]를 출간하고, 미시피피강을 따라 증기선을 타고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경험이 [미시피피강의 생활]이라는 논픽션으로 출간되게 됩니다. 드디어 1883년 7년간의 산고 끝에 [허클베리 핀]을 탈고 하고 1884년 영국에서, 1885년 미국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1988년엔 예일대에서 명예석사 학위를 받고 1894년엔 [톰소여 어브로드]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1896년엔 간디와 만나기도 했으며 [존 오브 아크]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이듬해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도 만남을 갖게 됩니다. 예일에서 다시 문학박사 확위를 받고는 부총장으로 근무하기도 합니다. 1902년 고향 한니발을 방문해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1909년 트웨인은 재미있는 말을 건넵니다. '핼리혜성이 미국에 나타났을때(1835년) 나는 태어났다. 아마도 내년 쯤이면 그 혜성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아마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1910년 트웨인은 정말 사망하고야 말았고, 이틀후에 혜성이 예언처럼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참 멋진 전설을 남기고 떠난 셈입니다.
그는 평생동안 30여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대표작 [허클베리 핀]은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역사를 시작한, 아니 미국 문학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럼, 트웨인의 문학적 전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는 제도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명문 보든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너서니얼 호손과는 달리 그는 오직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자랐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한 살아있는 공부를 통해 그는 작품속에서 거침없이 삶의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헤밍웨이도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포크너 역시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당대 최고의 작가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저널리즘'으로 삶의 투쟁 한 가운데 늘 있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며 전국각지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트웨인의 리얼리즘은 '미국적 리얼리즘'과 '지역적 리얼리즘'의 결합된 형태입니다. 고향에 뿌리를 박고 흙냄새 맡아가며 구체적인 경험을 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관념적이고 공간을 오갔던 헨리제임스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원래 수로 안내인이나 목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허나 작가로 멋진 삶을 살아냈습니다. '나는 큰 야심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수로 안내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느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성공했고, 다른 한가지는 실패했다. 다른 한가지에서 실패한 이유는 그 직업에 필요한 도구, 즉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째 소명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문학에 뜻을 두었다. 격이 낮기는 했지만 해학 문학에 소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도 자랑할 게 못 되는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가장 큰 장기였다.'
당시엔 대중문학이라며 격이 낮다며 그닥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세계인이 읽는 대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작가로서의 삶은 그야말로 '위대한 소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략 두가지 경향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미시시피 3부작'이라 불리는 [톰소여의 모험]와 [허클베리 핀] 그리고 [미시시피 강변의 생활]과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소설들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왕자와 거지][이상한 손님][잔다르크] 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휘트먼과 트웨인을 읽어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특히 그는 '미국의 세익스피어' 혹은 '미국문단의 링컨'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적 이상을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자연존중, 물질문명의 배척, 사회풍자, 뛰어난 유머감각이 작품 전반에 흘러나옵니다. 허나 그의 이러한 '낙관주의'는 후반기에 '염세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정불행과 딸의 투병과 죽음 그리고 사업실패와 파산같은 개인적 배경과 함께 미국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목격한 사회적 이유까지 합쳐져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작품에서 보면 삶에 대한 아주 진겁고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염세'로 시작해 '낙관'으로 전향한 헤밍웨이의 행보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트웨인에게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대중성'에 있습니다. '내 작품은 물과 같다. 위대한 천재들의 작품은 와인이라 할수 있다. 다행히도 모든 사람들은 물을 마신다.' 교육을 받은 식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고급문학을 추구했던 '헨리 제임스'와는 전혀 반대라 할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 이라는 소설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극찬을 마지 않았고, 포크너 또한 '트웨인이야 말로 나의 문학적 아버지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출간 당시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쓰레기'라 불리며 공공 도서관에선 금서로 올렸고, 학교에선 교과과정에서 못 읽게 했을 정도 였습니다. [허클]에는 본 받을 게 전혀 없다며 물건을 훔치고, 학교도 안가고, 거짓말을 밥먹듯 하며, 욕이 난무하고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 논란의 핵심은 'Nigger'라는 단어에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이 단어는 무려 300여차례나 등장을 합니다. 흑인을 비하하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욕설에 가까운 말이 난무하기에 이 작품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디언'이라는 단어도 등장하는데, 원주민을 지칭하는 이 단어도 직접적으로 사용하기엔 위험한 단어였습니다. 콜롬버스는 인도에 가려다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죽을 때까지도 이들이 인도사람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들은 원래 몽고족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대이주를 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게 된것입니다. 몽고반점도 있고, 맷돌을 사용한다거나, 어린애를 업고 다니고, 항아리를 머리에 지고 다니는 등 전형적인 몽고족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장르적으로 '피카레스크 소설'에 속합니다. 스페인어로 '피카로'라는 '악한'이 등장하는 일명 '악한 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주인공 '핀'은 모친이 사망하고, 부친도 주정뱅이라 더글라스 아줌마에게 양자로 키워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피카레스크 소설' 답게 방랑과 여행의 모티프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성배나 아버지를 찾아 헤메이는 '추구의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장소설'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핀'은 온갖 경험을 겪으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을 얻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유산'에서 '핍'이 도로를 타고 여행한다면, '핀'은 강변을 흘러 방랑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셋팅은 시간적으로는 '출간되기 40-50년전 이야기다'라는 서두에 따르면 1835년-1945년 즈음으로 추정됩니다. 공간은 미국의 미주리주 세인스피퍼스버그 남부 아칸소주라 설정했습니다. 세인스피터스버그는 하디의 캐스터 브릿지처럼 지도에 없는 가공의 공간인데 러시아의 쌍페쩨르부르크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작품은 '여행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여행은 심리적 여정의 메타포 이기도 합니다. 계속 노예제도가 있는 남부로 흘러 내려갑니다. '짐'은 주인이 팔려하기에 '육체적 자유'를 추구하고 있고, '핀'은 부친의 학대와 문명으로부터의 도피를 하므로 '형이상학적 자유'를 추구 하고 있습니다. 옷도 입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는 이런 모든 제도적 삶이 거추장 스러웠던 것입니다.
이 작품은 '사해 동포주의' 혹은 '인류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짐'과 '핀'은 친구의 우정을 나누면서 유사부자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원래 핀은 흑인은 인간이 아니고 그저 소유물일뿐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짐과 함께 여행하며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백인들의 신화일 뿐이구나, 흑인도 슬픔을 느끼는 인간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 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합니다. 남자 둘이 웃통 벗고 뗏목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라 섹슈얼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이 작품은 흑인과 백인이 모두 평등한 사람이라는 미국적 민주주의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그리기도 하는데, 강변의 마을이 칼뱅주의나 빅토리아 시대의 낡은 도덕률, 미시시피 강변의 폭력과 악, 흑인 노예제도가 문명이라면, 강가 그 자체는 자유와 안정, 행복, 평화, 휴식, 조화가 있는 소로우의 윌든 같은 자연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위선적 도덕과 타고난 양심을 그려내고도 있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위선적 노예제도에 맞서 '핀'은 '아, 좋아. 지옥에 가겠어' 라며 아줌마에게 짐을 데려가라는 편지를 찢어 버리게 됩니다. 청교도 사회에서 이러한 아이의 깨달음은 위험한 것이어서 아마도 금서의 목록에 올리게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문학이 개인이 굴복하고 사회가 승리하는 이야기라면, 미국문학은 개인이 갈등하다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회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호손의 헤스터 프린이나 트웨인의 핀, 헤밍웨이와 샐린저의 주인공들이 그러합니다. 종교적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찾아 온 곳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주의'적 작품이라 훼손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최근까지도 'Nigger'라는 단어를 전부 삭제하고 'Slave'로 바꾸어 새로이 작품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핀이 남쪽에 도착했을때 증기선이 사고났다고 했을때, '누구 다친사람없냐?'며 질문을 받았을때 '없어요. 검둥이 하나 밖에요' 라는 핀의 대답이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기에 다친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허나 '헉 핀은 인종차별주의자인가?'라는 최근의 논문에서 이것에 반박하는 구체적인 논거가 흥미롭게 제시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가 배경인 작품인데 누구나 사용하던 'Nigger'라는 단어가 문제시 될 것이 없다는 것과 오히려 남부의 흑인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헤밍웨이가 했던 말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수 있습니다.
'내 생각 중 하나는, 스킨 색이 어떻던지 간에 이 세상에서 인간의 마음이란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대게 검고 갈색인 피부는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백인은 극히 드물다' '이 세상엔 웃기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 중 최고는 백인들이 다른 야만인들보다 덜 야만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트웨인은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삶을 몸으로 살아내다가, 자신의 어린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감동할수 있는 '대중적'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출간해서 부를 쌓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예술가로 대접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짐'과 같은 유년시절 친구와 자신의 분신 '핀'같은 낮은 곳에 있는 못 배우고, 못 먹는 민중들을 위해 자신을 한껏 낮추고 그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 내려 갔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유와 평화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펜을 들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세계로 점점 탐욕스러워지는 미국의 초창기의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추락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자신의 딸들에게 좀 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한 모험 성장담을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만약 트웨인이 지금의 전 지구적 국제 깡패가 되어있는 미국의 현실을 목도했다면 어떠한 소설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가 노년기에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지며 종교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에서 유추해본다면 어쩌면 '핀'과 '짐'이 이슬람과 동남아를 순례하며 유랑하는 이야기를 쓰진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보면 주인공이 바로 이 작품 '허클베리 핀'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즐기던 두 연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명성에 걸맞게 유수의 영화와 드라마, 애니로 제작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만들어질 것입니다.
미국의 트웨인 박물관에 가면 트웨인이 사용하던 타자기와 담뱃대, 핸드 프린팅, 그리고 육필원고가 남아 있습니다. 타자기와 담배, 그리고 종이와 펜. 이것이 얼마나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것인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제게도 '짐' 같은 방랑의 동반자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책을 함께 읽어가는 여러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뗏목은 바로 트웨인과 같은 작가들의 책일 것입니다...
|
|
|
|
|
|
|
15 |
비가 그치면 집 앞 우이천이라도 따라 걸어야겠어요 |
고*화 |
|
|
|
사물을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온 'res(=thing)' 리얼리즘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문예사조입니다. 예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포스팅에서 유럽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말했었다면, 오늘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과 함께 말씀해주셨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을 기준으로 그 이후에 리얼리즘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리얼리즘을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먼저 가정적 사실주의Domestic Realism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 즉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등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 작품들이 속합니다. 두 번째로 심리적 사실주의Psychological realism는 작중인물들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지리적 배경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지역적 사실주의Regional realism에 속합니다. 마크 트웨인 지역적 사실주의의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시시피 강변에 위치한 미주리 주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미시시피 강에서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을 하던 마크 트웨인은 월트 휘트먼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이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힙니다. 저는 8월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굉장히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다녔는데, 마크 트웨인의 “The coldest winter I ever saw was the summer I spent in San Francisco”라는 말에 엄청나게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보다도 더 강렬했던 기억이죠. ㅋㅋ
트웨인은 제도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독학했던 사람입니다. 설명하고 교훈을 주려기보다는 거침없이 삶의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진솔한 감동을 줍니다. 또한 트웨인은 여러 신문에서 특파원 등 저널리스트로 일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다른 이들을 접하고 경험하고 체험했던 트웨인은 그렇기 때문에 삶을 구체적으로 더 드러내는 작품을 쓸 수 있었죠.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큰 야심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수로 안내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성공했고, 다른 한 가지는 실패했다. 다른 한 가지에서 실패한 이유는 그 직업에 필요한 도구, 즉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째 소명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문학에 뜻을 두었다. 격이 낮기는 했지만 해학 문학에 소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도 자랑할 게 되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가장 큰 장기였다.”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트웨인은 작가로서의 소명감을 가졌습니다. 트웨인은 유머 Humour가 담긴 해학 문학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은 어렵지 않고 대중적입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을 ‘물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물을 마십니다. 즉 그는 뛰어난 문학적 감식력이 뛰어난 몇몇 지식인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 보다는 글을 읽을 줄만 알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일반 독자까지 아울러 쉽지만 깊은 작품을 쓴 거죠. 트웨인은 30권이 넘는 많은 작품을 썼는데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그가 쓴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유명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과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이 끝나는 시점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시작하거든요. 이 두 소설과 더불어 미시시피 강의 생활 Life on the Mississippi을 'Mississippi Trilogy'라고 하며 트웨인의 작품 중에 가장 알려진 세 가지 작품으로 꼽힙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Picaresque Novel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성장 소설이랄까? 악한(여기서 악하다는 의미는 ‘나쁘다’라기 보다는 고아, 불행한 사람 등을 일컫습니다) 주인공이 삶의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소설이죠. 예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도 여기에 속했죠?ㅎㅎ 이러한 유의 소설에서는 특히 ‘여행’의 모티프를 삼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미시시피 강에서의 모험을 통해 헉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강을 따라 한 삶의 유형에서 다른 삶의 유형으로 가는 정신적인 여행인거죠. 예를 들면 짐Jim이 노예제로부터의, 신체적 자유를 향한 여행이라면 주인공 헉 Huck Finn의 경우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문명사회의 제도적인 것으로부터의 벗어나고픈 정신적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면, 더글러스라는 미망인에게 의탁하여 살고 있는 헉은 숨 막힐 것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과 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도망쳐 나와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내려갑니다. 두 사람은 때때로 육지에 올라가서 본 젊은이들의 비련의 이야기, 불량배들의 싸움, 악당들의 사기 등에서 헉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톰 소여의 큰어머니에게 팔려간 짐을 헉이 톰의 도움으로 구출하는 데서 끝납니다.
이 소설의 theme는 다양합니다. 인류애,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 위적인 도덕과 타고난 양심, 인간의 잔인성이 담긴 문명과 대조되는 자연 등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에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평단으로부터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으며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헉은 매번 거짓말하고 도둑질을 일삼는 아이거든요. 그리고 'nigger'라는 흑인을 비하하는 욕이 이 작품에서는 300번 이상 나옵니다. 따라서 헉, 나아가 작가인 트웨인까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게 됩니다. Native American 들이 'Indian'이라고 노골적이고 부적절하게 나오기도 하죠.
그러나 이 소설 자체는 남북 전쟁 후인 1885년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사실 작품은 출판되기 30년 전쯤인 1850년대가 시간적 배경입니다. 즉 남북 전쟁 전입니다. Peter Salwen이라는 학자가 쓴 “Is Huck Finn Racist?'라는 논문에서는 그 당시,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 남부에서 오히려 n-word를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쓰면 오히려 이상한 소설이 된다는 거죠. 소설에서 문제가 되는 장면으로 배 사고가 난 후 Aunt Sally가 'Good gracious! anybody hurt?'라는 질문에 헉이 'No'm. Killed a nigger.'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친사람이 있냐는 말에 아무도 없고 그냥 흑인 한명이 죽었다는 이 말은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다분히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Salwen은 트웨인이 인종차별주의자라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부의 흑인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트웨인의 말을 인용합니다. 트웨인은
'One of my theories is that the hearts of men are about alike, all over the world, whatever their skin-complexions may be.'
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차별적 시각으로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흑인들을 잔인하게 차별했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읽는게 저는 더 옳다고 생각해요.
헉은 다른 사람의 '소유'인 노예 짐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자신에게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이라고 말하며 소유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찢어버립니다. 위선적이고 학습적인 도덕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양심에 솔직히 따르고 있는 헉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평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지옥을 가겠다고 말하는 어린 소년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에 대해 나는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방황하는 길 위에서 제 자신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비가 그치면 집 앞 우이천이라도 따라 걸어야겠어요. |
|
|
|
|
|
|
16 |
낭만적 개인주의와 너새니얼 호손 |
손*경 |
|
|
|
삼월의 마지막 주 아트앤 스터디 김욱동 선생님의 영문학 강좌는 미국 소설로 넘어와서 낭만적 개인주의로 시작하셨습니다. 낭만주의 Romanticism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전성기를 맞이한 문학적, 예술적 지적 운동입니다. 대부분의 문예 사조들이 바로 그 전의 사조에 반발해 태동되었듯이 낭만주의도 산업혁명에 대한 반작용과 이성 중심의 고전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에서는 계몽, 과학적 이성 보다는 인간의 직관과 강한 감성을 중요시하게 여겨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을 빌어보자면 로고스 Logos-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행위가 따라야 할 준칙, 이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理性)을 뜻한다-보다는 파토스 Pathos-철학상의 용어로 정념(情念) ·충동 ·정열 등으로 번역되며 로고스와 상대되는 말이다-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다들 아시다시피 민중 혁명입니다. 전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하여 일어선 혁명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죠.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문학에서도 민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또한 합리성에서 탈피하고자 하였고 목가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낭만주의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어떤 규정되고, 강제되는 사회 규범에 따르기 보다는 개인의 상상력에 맡기는 자유분방함을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는 'Romanticism is precisely situated neither in choice of subject nor exact truth, but in the way of feeling'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만큼 당연히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문화적인 지체 현상이 있었습니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했다면 세계의 흐름에 기민하게 동참할 수 있었겠지만 배타고 한달이상을 오고갔던 유럽과 미대륙의 거리상의 차이만큼 낭만주의 역시 뒤늦게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땅은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 New England를 건설한 곳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미국의 낭만주의는 유럽과는 조금 다르게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하나의 독특한 형태로 발현되었죠. 정치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미국적인 것, 미국만의 것을 확립해나가던 시기였던만큼 낭만주의는 미국 문학사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보스톤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을 위주로 문학의 황금기를 이루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낭만주의 시기는 New England Renaissance 혹은 American Renaissance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의 낭만적 개인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인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너새니얼, 너대니얼 등으로도 읽힙니다)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엄격한 17세기의 청교도를 선조로 모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볼 때 청교도, 청교도적인 전통, 마녀 재판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문학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세일럼 세관에서의 근무 시절도 그의 문학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습니다. 호손은 초현실적인 장면도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등 낭만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썼습니다. 제가 예전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영 굿맨 브라운 Young Goodman Brown' 이라는 작품에서 세일럼 마을에서 벗어난 숲에서 마을 사람들이 악마 의식을 하는 등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던 게 문득 기억이 나더군요. 아무튼 호손은 작가가 되겠다는 소명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서 '남의 죄를 가지고 먹고 사는 목사, 남의 질병을 가지고 먹고 사는 의사, 남의 시비거리를 가지고 먹고사는 법관이 되는 건 싫습니다. 그런 제가 작가 말고 어떤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때까지 작가로서 인정받지도 돈을 많이 벌 수도 없었죠. 사명감을 갖고 심층적이고 진지한, 수준 높은 글을 썼으나 대중적으로 평단에서도 인기가 없었던 불운한 작가였습니다. 당시 인기있었던 문학은 여성 작가 위주의 통속 소설이었습니다. 이에 호손은 격분했죠. 하지만 현재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호손과 그의 작품입니다. 현재 신정아씨의 자서전이 화제가 되고 많이 팔리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법도 합니다. 호손은 1850년, 그의 대표작인 '주홍 글자 The Scarlet Letter'를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주홍 글씨'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주홍 글자'가 더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 17세기의 청교도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그린 이 작품은 청교도의 엄격함을 교묘하게 묘사하고 죄인의 심리 추구, 긴밀한 세부구성, 정교한 상징주의로 말미암아 19세기의 대표적 미국소설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독특하게 서사의 한 중간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헤스터가 이미 간음을 저질렀고 그 죄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판사들은 그녀에게 간음한 남성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끝까지 답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음한 여인을 뜻하는 A(adulteress) 라는 낙인을 찍인 채, 사람들의 앞에서 치욕을 당합니다. 김욱동 선생님에 따르면 호손이 헤스터의 간통과정을 묘사하지 않고 그 결말부터 쓰기 시작한 것은 그는 '죄 sin'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는 과정보다는 죄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전통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는 죽음으로써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는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죽음을 낳는다'라고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호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죄라고 보았습니다. '주홍 글자'의 헤스터는 자신이 한 행위를 결코 죄악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지요. 헤스터는 죄의 표식인 A를 오히려 크고 화려하게 수놓음으로써 자신에게 당당해집니다. 그리고 호손은 사람들 앞에서 그 커다란 A자를 가슴팍에 달고 아기를 들고 있는 헤스터의 모습을 굴욕적이기보다는 아기 예수를 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같이 그림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작품 속에서 구현해냅니다. 호손은 이렇게 미국정신의 원류로 간주된 청교도주의가 실상은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한 이데올로기임을 드러냄으로써 이념의 맹목적 추수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헤스터가 죄의 표식인 ‘A’자를 가슴에 달고 청교도 사회가 요구하는 참회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벌에 승복하지 않고서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듯이 말이지요. 그렇게 헤스터의 A는 점차 마을사람들에게 Angel, Able의 A로 인식되어 갑니다. '주홍 글자'는 저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살아 있는 고전으로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읽혀온 것은 미국적 이념과 그것에 입각한 바람직한 삶의 길을 탐구한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이면서 동시에 근대사회의 보편적 관심사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삶의 진실과 인식, 여성의 정체성과 권익 문제 등을 깊이 성찰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
|
|
|
|
|
17 |
'Everything is ideological' |
양*욱 |
|
|
|
'Everything is ideological'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까? 스탕달이 'Politics in a literary work is a pistol shot in the middle of a concert'이라고 말한 아포리즘은 문학 작품은 정치적인 의도를 배제해야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는다. 하지만 스탕달은 이 문구 뒤에 'a rather coarse matter, but, on the otehr hand, something which one ignores at one's peril'라는 대목을 덧붙였다. 즉 문학에서 정치성은 결코 무시할 수 만은 없다는 불가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아트앤 스터디 영문학 강좌는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로 조지 오웰도 그의 작품 동물 농장을 살펴보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역시 'Why i write' (1946)에서 어떠한 책도 정치적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는 우선 글을 쓰는 목적(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순전히 이기주의적인 목적에 의해서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다거나, 죽은 뒤 이름을 남기고 싶다거나 등등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글을 쓰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심미적 열정을 위해서이다. 외적/내적 세계의 아룸다움 혹은 자신이 느낀 고귀한 경험 등을 놓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역사적 충동에 의해서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거짓을 가려 호대에 올바르게 남기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 마지막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이다. 세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고 싶은 정치적인 열망에 의해서 글을 쓰게 된다. 특히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로 마지막 정치적인 목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민주 사회주의를 옹호하며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오웰은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에서 언어 자체와 정치성을 연결한다. 그는 영어가 갈수록 타락해간다고 보았고 그 이유는 다름아닌 정치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와 언어가 밀접하게 연관지으면서 언어의 순화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도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라틴어원에서 비롯된 단어 보다는 순수 영어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로 치면 한자어에 기원을 둔 단어가 아닌 순우리말을 주로 사용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정치적 성향은 '동물 농장 Animal Farm' (1945)에서 극대화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정치성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는 정치와 예술을 창조적으로 접목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allegory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어린 아이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고 억압받는 계층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서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오웰이 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되는 스페인 내란에 사병으로 참전해서 소비에트 정부의 실사을 깨닫게 되면서이다. 오웰이 '동물 농장'을 집필하던 시점인 1943년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나치를 소련의 the Red Army가 후퇴시킴으로써 스탈린의 소련은 미국과 영국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와 함께 소련의 잔혹한 정치 체계, 군사력, 불순분자에 대한 강력한 숙청이 소련 체제의 강력한 장점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 지식인들의 친소련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오웰은 ‘스탈린주의도 전체주의라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흐름과는 다르게 크게는 전체주의와 소비에트 신화를 공격하고 작게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풍자했던 오웰의 '동물 농장'을 출판해준다는 출판사는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1945년,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던 달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동물 농장'은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정치색이 담긴 작품이라고 읽어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면, 러시아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모순이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던 1917년 2월에 혁명이 발생되어(2월 혁명) 기존의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하였으며, 그 해 10월에는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이 발발하여 레닌을 지도자로 한 볼셰비키(구 소련의 공산당)가 집권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동물농장의 핵심캐릭터인 나폴레옹이 상징하는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로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10월혁명 전까지 스탈린은 정계에서 주목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으나 1918년 이후 민중감독관에 임명됨과 동시에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군사지휘권을 받았으며, 1920년엔 소련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다. 1924년에 이르러 이미 거의 모든 내부 정치 조직체는 스탈린의 지배권 하에 들어갔고, 1920년대 말에, 국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면 ,
존스씨 인간들 동물들 메이저영감 프레드릭 필킹턴 돼지들 나폴레옹 스노우볼 복서 클로버 몰리 벤저민 뮤리얼 닭들 아홉 마리 개 양들 오리들 들쥐들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자본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칼 맑스/블라디미르 레닌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프랭클린 D.루즈벨트 볼셰비키 이오시프 스탈린 레프 트로츠키 프롤레타리아트 (민중 계급) 중산층 러시아 백군/쁘띠부르지아지 소련에 살고 있는 유태인/조지 오웰 인텔리겐치아 (지식인층) 부농 계층 (클라크) 비밀경찰 (NKVD)/내무인민위원부 우둔한 민중 선전대 소련 북부의 원주민들
이뿐만 아니라, 배경과 사건들까지 모두 당시의 정치적인 사건들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문학과 정치가 만나는 경계에서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에 담긴 동물 군상에 대한 비유는 인간들에게 긴장과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텍스트에서 계속 조금씩 변형되다 결국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라는 돼지들의 명제는 결국 '모든 권력은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거시적인 명제를 상기시켜주며, 복서의 성실하고도 고된 삶은 어쩌면 복서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이 작품 이후 유명작가가 된 오웰은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여 살다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 나치에 유화적인 보수적 자본주의 세력과 친소련적 진보 지식인 모두를 공격하는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의 작품은 당시에 공격받았을지 몰라도 하나의 고전 Canon으로 자리잡아 현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 '동물 농장'은 정치적 맥락에서 쓰인 소설이므로, 소설과 시대적 상황과의 관련성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미 그 시대를 벗어난 지금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왜 현대에서도 '동물 농장'이 고전으로 읽히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계속되면서 이 작품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
|
|
|
|
|
|
18 |
호손의 주홍글자를 낭만적으로 읽기엔 이 시대가 너무 벅차다 |
박*정 |
|
|
|
낭만주의란 무엇일까요?
낭만주의는 문학적, 예술적, 지적 운동으로,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전성기를 이루고, 19세기 중엽 리얼리즘이 태동하기 전까지 주류를 이뤘던 문예사조 입니다. 이는 '산업혁명'(도시 인구 급증, 공장, 자연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으며, 농경사회, 자연 등 이전의 세계를 그리워 하게 되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낭만주의 이전엔 '고전주의'(계몽, 이성의 시대)가 18세기 전반부까지 대세를 이끌었으나 너무 이성에만 무게를 두어, 감성이나 상상력, 직관 같은 감수성에 대한 향수가 터져나왔고 함께 귀족, 사회, 정치적 규범에 대한 거부가 맞물려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을 너무 과학적으로 합리화 시키는 것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죠.
특히, 시각 예술이나 음악,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요, 낭만주의의 특징은 일단, 직관이나 강렬한 감정(공포,경이감,두려움)을 미적 경험의 기원, 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로고스가 아닌 파토스! 인 것이죠.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이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는데요.이로 인해 왕정을 타파하고 민중이 중요시되며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각이 넓게 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합리적, 고전적 이상세계의 모델을 넘어서서 '중세주의'의 목가적인 향수를 회복 시키는 것을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이기도 때문일 것입니다.
이국적, 일상적이지 않으며 멀리 떨어진 이국적인 것을 담고 있기도 하고, 바이런의 이상(외롭게 자신만의 창조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예술가이다.)처럼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예술가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죠. 그럼으로써 개인의 상상력이 권위를 가지게 된것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고전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상상력에 기초한 자유분방함을 기본으로 하게 된 것이죠.
지성사가 아서 러브조이는 '낭만주의의 차이점에 대해서'(1948)이라는 논문에서 '낭만주의는 이질적, 복합적 개념이고 서로 상충되기도 하기에 단수형으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늘 복수형으로 표현해야 한다'고도 했고, 보들레르는 '낭만주의는 소재의 선택이나 정확한 진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 느낌에 위치해 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지금의 현대문학에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는데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텍스트를 이끌어 가는 이른바 판타지나 SF, 호러 같은 장르물의 원천이 바로 이 낭만주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미국에서의 낭만주의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알아야 할것은 그 당시 미국엔 모든 것에 문화적 지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문물이 대서양을 건너 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던 것이죠. 적어도 50년은 늦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유럽을 휩쓸고간 낭만주의가 미국에선 늦게 태동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선 메사추세츠 보스톤을 비롯한 동북부의 뉴일글랜드 지방을 위주로 싹을 틔웠는데, 19세기 후반 (1850년대)에 미국의 낭만주의는 꽃을 피웠으니 이미 유럽에선 리얼리즘의 전성기였던 바로 그때 이제서야 낭만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미국은 식민지 경험이 있었던 터라, 민족주의과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루소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헤르더는 '지리라는 것은 민족의 자연경제를 형성할 뿐 아니라 풍습,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라며 이러한 문화적 민족주의를 옹호하기도 했죠. 이는 계몽주의의 '합리성'과 낭만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형태로 상당수 합리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나온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보면 알수 있죠. 어떤 이는 '뉴 잉글랜드 르네상스'라고도 합니다. 보스톤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을 위주로 전성기, 황금기를 이뤘던 사조이기도 하니까요.
정치적 해방과 함께 문화적 해방도 같이 자연스레 시작된 것일테니, 미국 문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바로 이 낭만주의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또한 '아메리칸 르네상스'라고도 하는데, 에머슨과 위트먼의 시대에 나타난 예술과 표현을 중점적으로 이르는 명칭입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너새니얼 호손과 허먼멜빌, 에밀리 디킨슨, 헨리 데이빗 소로우, 에드가 엘런 포우 등이 있습니다.
이젠, 호손의 연대기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손은 1804년 7월 4일생 입니다. 독립기념일에 출생을 했으니 참 의미심장한 생일이군요. 메사추세츠 세일럼 항구에서 자라났습니다. 부친은 해군장교였다가 후에 상선의 캡틴이 되었고, 모친은 모닝가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4세때 부친이 황열병으로 사망하자 모친과 함께 외갓집에 얹혀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821년 사립명문 보든대학에 들어갔는데, 이 당시 미국엔 대학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은 목사를 키워내거나 법관이나 의사 같은 실용적인 인재가 필요해지면서 서서히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호손이 이때 대학을 다닌 것은 일반인들은 꿈도 꿀수 없던 특별한 혜택이었습니다. 졸업생 대부분이 목사, 판사, 변호사, 의사가 되었으니까요.
실제로 호손은 이곳에서 시인 롱펠로우를 만나기도 했고, 후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허나 졸업하면서 호손은 모친에게 충격적인 편지를 띄우면서 은둔생활에 들어가게 됩니다. '남의 죄를 가지고 먹고 사는 목사, 남의 질병을 가지고 먹고 사는 의사, 남의 시비거리를 가지고 먹고사는 법관이 되는 건 싫습니다. 그런 제가 작가 말고 어떤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참 멋진 말이죠?
실은 호손은 어릴때 다리를 다쳐 대학을 절뚝이며 다녔습니다. 어쩌면 이때 대인기피증이 생겼을지도 모르죠. 쨌든 이때부터 은둔생활을 하며 외부와 담을 쌓고 살아가게 됩니다. 친구와 가족도 안만나고 늘 식사도 혼자 외로이 했다고 하니까요. 1825년부터 1837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이른바 청춘을 '고독의 시대'로 보내게 됩니다.
허나 글만써서 생계유지가 되지는 않는지라 보스톤 세관에 취직하게 됩니다. 이전에 일련의 단편소설과 [팬쇼]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하곤 자비로 출판까지 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Hathorne' 에서 'Hawthorne'으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듯 개명을 하는 것은 문학가들의 상징적인 제스추어 인데요, 가문에서 오는 압력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시 포크너도 Falkner 에서 Faulkner 로, 멜빌도 Melvill 에서 Melville 로 바꾼 바가 있습니다. 허나 세관이 몸에 맞지 않아 '브룩농장'이라는 유토피아 공동체 사회로 들어가게 됩니다. 낮엔 농사짓고, 밤엔 글 쓰려고 했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이곳에서도 나오게 되죠.콩코드에 셋집을 사고 화가 소피아와 결혼해 딸 '유너'를 낳게 되는데 '주홍글자'의 '펄'이라는 아이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1847년 고향 세일럼으로 이사해서 다시 세관 직책을 맡게 됩니다. 이는 친구였던 프랭클린 피어스가 대선에 출마했을때 선거용 전기를 써준 보은이었다고도 합니다. 이때 창고에서 천조각 하나를 발견하는데, A자를 수놓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주홍글자'의 모태가 된 그 천조각을 이 시기에 만나게 됩니다. 이에 영감을 받아 그때부터 미국의 엯와 교회사, 연대기등을 마구 읽어대며 이야기를 품어 왔다고 하네요. 허나 얼마 안되어 해직을 당하는데 '이 마을을 끔찍히 싫어해서 길거리 나가고 싶지도 않고, 얼굴을 보여주기도 싫다' 라고 털어놓습니다. 게다가 모친이 사망하고 비탄에 빠지면서 수렁에서야 비로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1850년 드디어 [주홍글자]를 출간합니다. 미국 낭만주의의 첫 스타트를 호손이 시작한 것이지요. 후에 잇따라 허먼멜빌의 [모비딕]이 1851년, 소로우의 [윌든]이 1854년, 휘트먼의 [풀잎]이 1855년 출간되며 줄줄이 낭만주의 문학의 꽃을 피우게 되죠. 명작의 출간은 늘 그렇듯, 동시에 평단과 독자들의 비난을 한껏 받습니다. 간음을 소재로 한 불결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되고 산맥 깊숙이 있는 레녹스라는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허나 이로인해 이곳에서 거주하던 허먼멜빌과 교류를 할수 있었습니다. 멜빌은 호손의 단편 [Mosses From an Old Mane]에 영감을 받아 단순한 고래잡이 모험담이었던 이야기 [모비딕]에 궤도수정을 가해 형이상학적, 철학적 작품으로 뽑아내게 되어서 이 작품을 호손에게 헌정하기까지 합니다.
1851년 [일곱박공의 집]을 출간하곤 브룩농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블라이드 데일 로맨스]도 출간합니다. 1853년 대통령 친구의 배려로 당시 한직이었던 영국 리버풀에 영사로 취임하게 됩니다. '작은 아씨들'을 쓴 앨콧 집안이 소유했던 Hillside 라는 집을 사서 Wayside라고 개명하고 거주하게 되죠. 후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유럽에서의 체험담을 소재로 [대리석 목신]과 [우리의 고향]을 출간하게 됩니다. 1864년 퇴직한 친구 피어스와 함께 그 유명한 [큰바위얼굴]이 있는 뉴햄프셔에 거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다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듯 풍파와 영광이 함께 있었던 삶이었지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 그것을 문학적 자산으로 창작해 낸 작가적 역량만은 위대해 보입니다. 특히, 허먼멜빌과 교류하며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그 그림을 떠올려 보면 한편으론 꽤나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럼, 호손의 문학적 유산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호손은 청교도주의와 마녀재판을 주로 다뤘습니다. Puritanism(청교도주의)은 Purify(정화시키다)에서 파생된 용어로 원래 목적은 타락한 교회를 깨끗이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헨리8세는 이혼과 관련한 다툼 끝에 결국 로마 카톨릭에서부터 떨어져나와 영국은 영국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성공회)를 만들게 됩니다. 허나 영국국교회는 아직 로마 카톨릭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비숍제도라던가, 미사때 예복이라던가, 화려한 장식의 교회까지 말이죠. 그래서 루터나 칼뱅에 영향을 받아 교회를 보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순화시켜야 한다는 종교 순화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청교도주의자들은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에 정착하지만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피난 오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보스톤 근처에 정착해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 미국의 시작인 것이죠. 호손은 바로 그러한 청교도주의자들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손은 선조들의 전통인 그 청교도의 모순을 비판한 작품을 쓰게 됩니다.
또한, 유럽에서 중세에 있었던 마녀재판이 세일럼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큰 소동이 벌어지게 되죠. 아서밀러의 [시련]이 바로 이것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호손의 증조부가 바로 이 재판의 재판관이었는데, 늘 이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고, 가문에서 벗어나려 개명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 화두는 호손의 작품 전반에 소재로 차용되거나,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해 결국 초창기 미국의 전통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게 됩니다.
호손은 또한 작가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했습니다.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목사,법관,의사를 마다하고 고난의 길인 작가가 되기를 일찌감치 정하곤 나아갔으니까 말입니다. 포크너만 해도 시인이 되려다 포기하고, 단편소설이 안되니 또 포기하고, 결국엔 장편에서야 작가로써 자리잡았으니 말이죠. 그는 세일럼 세관의 측량원 경험이 큰 문학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정치적 비리나 인간의 문제를 목격하기도 했고, 꽤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죠.
그럼 [주홍글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초기단편들에서 '간음'등 이 작품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져 있습니다. 허나 초판엔 2,500부, 사망전까지도 7,500부 정보밖에 팔리지 않았고, 인세도 1,500불 밖엔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잔워너라는 지금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통속소설작가는 6개월에 4,500불까지 벌어 들였는데 말이죠.
호손은 이같은 여성작가의 선정적인 통속애정소설만이 히트를 치는 현상에 대해 한숨을 내쉽니다. '이제 미국문학은 글 나부랭이나 끼적거리는 빌어먹을 여편네들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대중의 취향이 쓰레기 같은 그들의 작품에 기울고 있는 한 어찌 나에게 성공할 기회가 있겠는가'라고 말이죠.
그는 비평가들의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서평 일색이었으니까요. '창녀의 도서관' '음란한 거간행위' 라며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구입을 못하게 하였고, 동네 사람들까지 비판을 해대자 결국 고향을 등지고 버크쇼로 이사를 가야만 했죠. 물론 이 당시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도 쓰레기라 평 받으며 화형식까지 당했던 시대였습니다. 언제나 고전명작들은 동시대엔 인정을 못받기 마련이니까요.
리얼리즘 전통의 일상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Novel과는 달리, 낭만주의 계열의 일상적이지 않고, 본적이 없는 특이한 경험을 그려낸 Romance의 대표작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홍글자]에서 밤 하늘에 빛나는 A자를 목격한다는지 처럼 초자연적 경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해서 식민지를 건설한지 얼마되지 않던 17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인디언의 습격도 종종 있고, 생존의 위협에 시달렸던 초창기 미국이었습니다. 당시엔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신정'시대였고, 일명 무쇠와 같던 시기였습니다. 메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식민지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작명법도 재미가 있는데요. 헤스터 프린은 구약성서 '에스더'에서 따 왔고, 목사 아서 딤스데일은 '어두운 골짜기', 로저 칠링워스는 '소름끼치는', 펄은 '진주'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죠.
플롯은 '한중간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서사시 전통을 따른 것인데요, 죄를 범하는 과정은 관심없고 오직 죄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는 작가적 플로팅이라 생각됩니다. 희랍비극도 보면 '오이디푸스'도시작은 이미 '부친살해'모친근친'역병시작'이 모두 벌어지고 나서 '한중간에서' 시작하듯 말입니다.
상징과 이미지 또한 가득한데요. 가슴에 수 놓은 A자부터, 감옥 문 앞에 핀 들장미(본성,자연), 육중한 참나무 장식못(청교도주의 엄격사회), 마을(이성), 숲속(본능)... 끝이 없이 등장합니다.
테마는 엄격한 청교도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모든것이 헤스터의 잘못인 건가 하는 문제를 오프닝부터 보여주고 있죠. 처형대 위에 어린아이를 안고 당당하게 서 있던 헤스터의 모습을 흡사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그린 성화로까지 묘사하니까 말입니다. 당연히,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그리면서 죄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나아갑니다.
당시 기독교적 죄는 '죽음' 이었습니다. 야보고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리라" 로마서 6장 23절 "죄때문에 죽을 인생죄의 삯은 사망이요" 허나 호손의 죄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가 죄를 받아 들여야 죄인 것인데, 거렇지 않다면 죄가 아닌것이고(헤스터는 A자 낙인을 아주 화려하고 멋들이지게 장식하고 뽑냅죠) 객관적인 잣대로 잴수 없고 오히려 청교도 사회의 위선이 더 큰 죄라는 것입니다.
또한 Felix culpa 즉, Fortunate Fall (다행스런 죄)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에덴추방은 다행스런 죄라고도 합니다.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가졌지만 그로인해 삶의 희열을 느낄수 있었으니까요. 헤스터는 죄를 지어서 결국 남의 죄를 이해할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안아줄수 있었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병든자는 치료해주고, 임종을 앞둔자는 지켜주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다행스런 죄' 덕분에 알게 됩니다. 조용필도 그렇게 노래하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라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철학자 데리다는 이 작품을 '해체주의'의 시선으로 분석해 냈습니다. 주홍글자 A가 비단 Adultery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Angel, Able, Admirable, America, Arthur, Amor ... 이렇듯 이 작품의 A를 지닌 헤스터에겐 다양한 의미의 A가 존재하니까요. 시니피앙(기호)는 의미와 의미를 연결고리로 낳는다고 하죠. 고로, 고정된 의미란 없는 것이라 라고 말입니다.
또한, 미쉘푸코는 '담론이론'으로 이 작품을 풀어 내기도 합니다. 명저 [감시와 처벌]에서 그는 사회는 안전망이라는 미명으로 개인에게 낙인을 찍고 감옥과 병원,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훈육시킨다는 것이죠. 바로 이 작품에서의 A자 낙인과 유럽죄수들의 낙인, 도망노비의 낙인처럼 말입니다. '주홍글자'는 후에 여러차례 영화화 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척 시대의 미국을 다룬 두편의 명작도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 합니다.
'주홍글자'라는 작품은 '낙인'이라는 화두가 중요해 진 요즘에 와서 더 큰 진가를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서 푸코의 지적처럼 현대의 모든 매커니즘은 바로 이 '감시'와 '낙인'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는가.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에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하며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정부와, 웹 로그인 정보,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로 인해 모든 삶의 영역의 흔적을 당연스레 남기는 소비사회와 CCTV와 전자발찌와 범죄자 유전자 은행 등으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검경은 말할 것도 없고, 마녀사냥과 가쉽과 루머에 열광하는 우리들 자신들까지! 어쩌면 '돈'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자본만능주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낙인일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벤쯔'라는 낙인을 가슴에 박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성형미인'이라는 낙인을 박으며, 누군가는 '타워펠리스'라는 낙인을 박고, 누군가는 'S대'라는 낙인을 박고 ....우리들 모두는 스스로 가슴에 커다란 A 자를 새기고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의 가슴에 달린 그 A자를 가리키며 손가락질 하며 살아가고 있을거다. 그래서인지, 호손의 주홍글자를 낭만적으로 읽기엔 이 시대가 너무 벅차다... |
|
|
|
|
|
|
19 |
조지오웰 '동물농장'으로 본 문학과 정치 |
이*현 |
|
|
|
스탕달의 꽤 많이 알려진 아포리즘이 있다. '문학작품에 정치가 엮이는 것은 음악 연주회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권총을 발사한 것과 같다' 일견, 이는 예술은 정치와 철저히 무관하게 순수한 미학적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는 순수문학론을 외치는 듯 하다. 허나 스탕달의 첨언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권총소리를 무시한 채 연주회를 계속할 순 없는 일이다' 권총이 발사되었다면 저격수를 찾아 내거나,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해야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정치와 절대 무관할 수 없다는 그의 묘한 역설이라 할수 있겠다. 당연히 '문학은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라는 테제조차도 정치성을 가진 발언일 테니 말이다. 이 땅에서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위 운동권 문학이니 후일담 문학이니 해서 정치색이 농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불온도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20세기는 '타자'(the other)가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제3세계나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혁명이나 정치운동이 사회과학의 중심에 서 있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주어져 있다는 일명 생물학적 결정론인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대항해서 페미니즘의 젠더운동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활발해졌다.
당연히 문학에서의 대표적인 정치문학가는 누가 뭐래도 아마 '조지오웰'일 것이다.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오웰은 르포따쥬 형식의 산문을 주로 발표했었다. 그의 몇 마디를 들어보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Why I Write] (1946)
어떤 원칙도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산문을 쓰는 작가에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4가지 글쓰는 동기가 있다.
첫째, 순전한 이기주의를 위해서이다. 똑똑해 보이려는 욕망, 입에 오르내리고 싶은 명예욕, 죽은 뒤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동기에서 비롯된다. 어릴때 문제아로 당한 치욕과 수치심을 줬던 어른들에게 당당히 복수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일 거다.
둘째, 미적 열정을 위해서이다. 외부세계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언어로 탈바꿈해 표현해 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아름다운 리듬감으로 가득한 시나 문체가 명징한 산문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셋째, 역사적 충동을 위해서이다. 사물이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그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서 후대에 전해주기 위한 사명감 같은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이다.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한 정치적 의식 때문인 것이다. 세상과 인간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할 것이다.
나는 1936년부터 글을 써왔는데, 어느 문장 하나 '전체주의'에 대항해서 쓰지 않은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민주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영어] (1946)
영어는 타락했다. 문명은 퇴폐적이다. 사회의 반영인 언어도 붕괴되고 있다. 이는 정치가 타락해서 그렇다.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어를 순화해야 정치가 바로 선다. 언어와 정치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자꾸 더 마시게 되고, 결국 알코홀릭이 되고, 알코홀릭이니까 술을 또 찾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외계어나 신조어를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땅의 언어파괴현상도 무척이나 심각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르다'라는 표현을 '틀리다'라고 당연하게 사용하는 우리 국민의 언어적 정치는 무척이나 '타자'와 '다른 생각'에 대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건 '다르다'고 말해야지, '틀리다'라고 하면 안되는 거야 라고 조곤조곤 이야기 하면 융통성 없는 꽉막힌 사람이 되거나 젠체하는 현학자로 몰리게 된다.
최근의 '나는 가수다' 파동과 '신정아 자서전' 열풍만 봐도 가쉽에 대한 열광과 타자에 대한 마녀사냥은 정말이지 새로운 정보 파시즘으로까지 보여진다. 오웰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의 이런 세상을 어떻게 그려내었을까...
그럼 이쯤에서, 오웰의 생애를 한번 살펴보자. 오웰은 1903년 인도 뱅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세관아편과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오웰의 본명은 Eric Arthur Blasir 이다다. 어릴적 모친을 따라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부친과 오랜시간 얼굴을 볼수 없었고, 어쩌다 한번 볼때도 혼나기만 해서 부자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가족은 중하위층으로 가난했지만 영특한 그는 상류층 귀족만 들어간다는 이튼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허나, 자신와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보면서 깊은 소외감을 느끼며 이때부터 계급의식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그후 경찰시험을 쳐서 버마 경찰국에 조수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 원주민 학살과 착취등을 목격하며 서서히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결국 경찰을 그만두고 파리에서 방황하며 부랑아 생활을 하며 지낸다. 자학이랄까 가책이랄까 그는 하층 육체노동자로 살면서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폐렴으로 입원하기에 이른다. 회복한 후에도 런던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에세이를 투고 하기 시작하고, 잠시 사립교사로 근무하기도 한다.
드디어 1933년 '조지오웰'이라는 필명으로 펜대를 세우며 '버마시절'이라는 첫 작품을 발표한다. 랭캐스터, 요크셔 공업지대 노동자들을 취재하며 열악한 그들의 실상과 폭동과 실업에 대한 르포따쥬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스페인 내란이 터지자 자원 참전하여 '마르크스 통일 노동당'에 사병으로 근무하지만 저격병에 의해 부상 당하고 의가사 제대하고 만다. 다시 결핵이 발병해 요양원에서 투병하며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을 엮어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와 '고래 속으로'라는 작품을 발표한 뒤, 2차 대전이 터지자 또 다시 지방 방위군으로 자원입대한다. BBC에서 근무하며 전쟁선전방송의 책임자로 일하다 드디어 1945년 그 유명한 '동물농장'을 발표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때 마르크스 노동당에서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실상을 낱낱히 폭로하는 정치소설의 대표작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에 '비평적 에세이'를 발표한 후 쇠약해저 작은 섬에 들어가 조용히 집필을 하기 시작한다. 1949년 드디어 '1984'라는 희대의 걸작을 발표한다. 초판이 40만부가 판매되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지만 결국 1950년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자, 그럼 '동물농장'은 어떤 작품인가. 스페인 내전 부상후에 영국 시골에서 요양하며 목격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이 소설은 태동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10세 소년이 마차를 끌고 가며 말이 말을 듣지 않자 채찍으로 계속 때리는 장면을 보곤 큰 충격에 빠진다. 무산자가 바로 저 말과 같구나, 이 세상은 유산자가 무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지옥과 다름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니체가 이태리 여행 중 마부가 말을 때리는 것을 보곤 껴안고 눈물 흘리다 쓰러져 정신착란에 빠졌다는 유명한 일화와 평행이론에 가까운 사건이다. 그는 헤밍웨이처럼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코 정부와 인민전선정부의 대립을 소설화 하기 시작한다.
2차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전역을 초토화 시켰고, 그는 소비에트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에 큰 실망을 경험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위해서 사회주의자의 시선으로 소비에트 정부를 비판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허나 이 작품을 1944년에 이미 탈고했지만, 소비에트 비판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당시의 시선에 모든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부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1945년 8월 17일 출간하는데, 아이러닉하게 원폭 투하 시점과 일치해서 당시 '펜은 원자탄보다 강하다'라는 평을 얻게 된다. 오웰은 이 작품에서 정치와 예술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려 각고의 노력을 했고, 결국엔 위대한 정치소설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다. 이 작품엔 어찌보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과 사건이 정치적 알레고리로 엮여 있는데,
존스씨 - 제정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 메이저 영감 - 막스 + 레닌 핀치필드 - 나치 독일 프레드릭 - 아돌프 히틀러 폭스우드 - 영국 필킹턴- 처칠 + 루즈벨트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스퀼러 - 프라우다 미니머스 - 마야코프스키 복서 - 프롤레타리아 클로버 - 중산층 몰리 - 쁘띠 부르주아 벤저민 - 유태인 뮤리얼 - 인텔리겐차 아홉마리 개 - 비밀경찰
등 일일히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캐릭터와 플롯이 당시 구 소련을 비롯한 국제 정세와 정치인들을 알레고리화 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살펴보자. 첫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 소비에트 신화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출간본 서문 중)
둘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전체주의까지 포함하고 있다.
셋째는 유토피아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 막스와 엥겔스의 세계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 U-Topia(No-Place) 라는 것이다.
넷째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나폴레옹과 스노볼로 대표되는 두 돼지 지도자의 대립은 현실주의자 스탈린과 이상주의자 트로츠키와 궤적을 같이 한다.
다섯째 언어의 본질과 진리의 왜곡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라틴어, 그리스어를 일체 쓰지 않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순수 앵글로 색슨 영어로만 표현했다고 한다. '살해하다'라는 표현이 아닌 '죽이다' 라고 하는 식인 것이다.
여섯째, 권력의 속성을 꼬집고 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내고 일곱가지 계율을 정해서 지키도록 하는데, 후에 그 계율을 슬며시 바꾸게 된다.
'동물은 침대에서 자면 안된다' (이불을 깔고선...) '술은 절대 마시면 안된다' (지나치게는...) '죽이면 안된다' (이유없이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지만...) '네발 동물이 좋다' (두발은 더 좋지만...)
이런 식으로 권력에 빠진 돼지들은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다른 동물들을 우롱하며 계율을 자신에 맞게 바꿔가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론 오웰의 작품은 '1984'를 최고의 작품으로 치곤 한다. 유수의 SF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 이 작품은 판옵티콘부터 시작해서 미쉘 푸코의 '시선의 권력'까지 철학적 화두로 등장하며 21세기 정치철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생체권력' 혹은 '유전자권력' 어쩌면 최근의 '스마트권력'까지 오웰의 선견지명은 시대를 초월해서 세상을 읽어내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것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읽게 되는 이 '동물농장'은 단순히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한 풍자우화 정도로 도덕시간에 학습해 오곤 했다. 허나, 밑바닥 삶과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회주의자 웰즈가 비판한 것은 '전체주의' 혹은 '권력의 속성'에 가까울 것이다. 작금의 '신 자유주의' 혹은 '무한경쟁' 사회의 비인간화와 '디지털 정보화'의 소외현상 또한 이 작품이 비판했던 '파시즘'일테니 말이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웰의 '1984'에서 영감을 받아 쓴 '1Q84'라는 작품으로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치고 있다. 오웰의 작품은 이제 그의 의도처럼 정치소설로서 뿐 아니라, 사회정치역사경제예술을 통섭하는 위력적인 고전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도 몇백년이 지난 후에도 오웰의 작품들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읽히고 밑줄 그어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진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위에서 발췌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 집이 출간되었다. 요즘엔 오웰의 정치소설을 벗어나 르포따쥬와 에세이들 또한 주목받고 있다. 골방에서 글만 쓰는 관념적 작가가 아니라, 실제 하층민이 되어 뒹굴어 보고 전쟁에 참전하여 참상을 겪기도 한 그의 삶 그 자체가 감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처럼 작가는 삶을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야만 진정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나는 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과 행동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장자의 '대붕'편에 등장하는 일년에 한번 오는 바람이 떠오른다. 수면 위에 몸을 가라앉히고 저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서 그 바람을 기다리는 대붕의 마음 말이다.
그 바람이 삶 이라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 바람이 독서라면, 책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고, 그 바람이 투쟁이라면, 투쟁을 해 내야 하는 것일게다.
'바람이 분다...'
|
|
|
|
|
|
|
20 |
'한 순결한 여인에 대한 진실된 묘사' |
계*비 |
|
|
|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시골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그녀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이 가난해 부잣집에 가서 가정부로 일하던 중 방탕한 그 댁 아들과 하룻밤 잠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임신을 한 그녀는 그를 떠나 혼자 살게 되고 진심으로 한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청년과 결혼식을 올린 첫날 밤, 그녀는 그를 믿고 과거를 털어놓지만 자신의 고백에 그는 충격을 받아 멀리하기 시작한다. 비참한 기분에 시달리며 그와 잠시 이별하게 된 여자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현실은 고되었고 남편에게서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한편 자신의 옹졸함을 깨닫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한 남편은 그녀를 다시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러다 예전의 그 부잣집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꼬임에 넘어가 정부가 된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에게 복수하고 남편과 도망을 간다. 꿈같은 시간을 보낸 여자는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경찰에게 담담하게 몸을 맡긴다. 곧 끝날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듯이.
이번에 아트앤스터디 김욱동 선생님의 <디킨즈부터 샐린저까지 - 현대영미문학의 지형도를 읽는다> 두 번째 강좌는 ‘자연주의와 토마스 하디의 테스’였습니다. 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는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단골 소설 중 하나입니다. 2008년도에는 BBC의 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영국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녀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젬마 아터튼 Gemma Arterton이 테스 역을 맡아 인상적이었어요. 위에서 말한 내용은 소설 테스의 큰 줄거리입니다. 요즘 시각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신파적이기도 하며 여성들에게는 꽤나 잔인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스를 읽다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테스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안을 대신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단호히 떠났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굳은 일도 참으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운명은 꼬이기만 합니다. 마치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죠. 테스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보다 작가의 세계관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 Thomas Hardy는 영국에서는 드문 ‘자연주의 naturalism’ 작가입니다. 자연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의 정경을 묘사되고,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을 그린 뭐 그런 소설? 정도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김욱동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예사조입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평범한 삶의 모습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묘사하죠. 자연주의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비극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에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가난, 인종차별, 섹스, 폭력, 선입견, 질병, 부패, 매춘 등 인생의 어두운 면을 결정론에 근거해 그대로 드러냅니다. 결정론은 생물학적으로(유전학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Biological Determinism과 사회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Socio-economic determinism, 그리고 최근 정신분석학의 영향이 커지면서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인생이 그려진다는 Psychological determinism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테스를 읽다보면 하디는 제일 처음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따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테스에서는 우연, 시간, 사물의 무상함 등이 운명의 대리자로 제시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겪는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론적인 상황에서 테스의 인물들은 선이나 악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의지와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떠한 맹목적인 힘 아래, 체념하고 복종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해가는거죠.
어떻게 보면 생에 굉장히 부정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의지'로 운명을 개척해나가자는 요즘 대세적인 헤게모니와는 정반대인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사실 하디는 자신을 염세주의자(pessimist)라기보다는 개량주의자(meliorist)로 불러주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작품에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드러내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넘어서려고 시도합니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오히려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선택, 그리고 책임감을 가진 주체로서 등장합니다. 이는 하디가 단순히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상이 드러나는 작품을 쓰는 염세적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작품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도덕의 변화를 바라는 개선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테스가 알렉Alec의 집을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 벽에 양철통을 든 사나이가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쓴 “THY, DAMNATION, SLUMBERETH, NOT”과 “THOU, SHALT, NOT, COMMIT”이라는 성경 구절은 그녀의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옵니다. 테스는 세상의 벽, 종교의 벽, 도덕의 벽을 실감하지만 이내 그 내용이 사람을 짓밟아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Pooh- I dont' believe God said such things!”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믿는 신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거죠. 또한 테스의 남편 에인젤 클레어 Angel Clare 역시 인습과 관습에 저항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테스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납니다. 스스로 종교의 위선과 상류계층의 우월의식을 벗어던지고 성실한 농부로서 뿌리 내리고자 했던 에인젤의 선구자적 사상은 정작 이러한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자 움츠러들어 자신이 기존에 속했던 계층으로 희귀해버리고 만 것이죠. 그는 테스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기독교의 편협한 교리에서 파생한 사회적인 인습의 잣대로 테스를 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농민들의 존엄성을 짓밟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기계 문명은 필연적으로 사회 저변의 건강한 사고 체계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건강한 문화의 부재 속에서 위선적인 교회 그리고 비합리적인 관습의 타성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속에서 교육받은 에인젤의 이중성 또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테스에 대한 에인젤의 사랑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전통적인 순결 관념에 사로잡힌 이기적 사랑이었던 거죠. 그러나 Angel은 브라질에서 만난 낯선 나그네를 통해서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깨닫게 되며, 여태까지 그가 받아온 교육과 그에게 새겨진 관습의 상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진정한 사랑으로 그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에인젤이 철학과 인습의 고리를 끊고서 테스에게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테스의 부제는 '한 순결한 여인에 대한 진실된 묘사'입니다. 이는 당시에 많은 논란을 불어일으켰는데, 사생아를 낳았고 함께 살았던 남자를 살해한 죄로 결국 교수형을 당하는 여자가 동정과 이해로 대접받는다는 것이 기존의 도덕 기준에 대한 모욕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하디는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인데 특히 이 시대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디는 많은 비판에 부딪혔고, 그가 '이름 없는 주드 Jude the Obscure'를 쓴 후에는 대대적인 비난을 받고 소설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됩니다.
당시의 도덕적, 윤리적 관습과는 다른 하디의 작품은 그래서 오늘날 더 유의미해집니다. 각색된 그의 작품들은 영화나 텔리비전을 매체로 해 나오고 있고 많은 비평과 학술 논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구요. 하디의 세계관과 '순결한 테스'의 이야기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세련되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테스의 불꽃같은 삶은 마음 한구석을 찌르르 하게 만들어주긴 합니다. |
|
|
|
|
|
|
21 |
고마워요, 테스. 당신을 알게되어 말입니다. |
심*옥 |
|
|
|
자연주의(naturalism)는 무엇인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보면 개구리를 해부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면이 있다. 이렇듯 실험실에서 자연을 해부하듯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 자연주의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고, 크게 보자면 너무 협소한 정의일 것이다.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큰 맥락을 살펴보자.
우선, 철학적 자연주의가 있다. 초자연적이라 부르는 모든 현상과 가정은 틀렸거나 자연현상,가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초자연적 원인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형이상학적으로는 자연과학으로 연구할 수 없는 비물질적 대상은 우주로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엔, 윤리적 자연주의가 있다. 이는 윤리적 용어도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정의될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휴머니스틱한 자연주의도 있다. 과학적인 이성,사고를 인간행동의 기초로 삼는 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자연주의는 자연세계,사회는 유사한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고, 정치적인 자연주의는 법제도, 정치제도도 자연법칙의 존재를 믿음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일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꽤나 위험한 생각일수도 있다. 초자연적 현상과 비물질적 대상은 틀렸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에 기초해 자연의 원칙에 의해 세상은 굴러간다?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자본주의의 태동은 어찌보면 이러한 과학 만능주의라는 이론으로 중무장하면서 더 폭발적인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의 신자유주의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 연약한 동물같은 우리의 삶은 이러한 테제에 동의하면서도 늘 변화와 혁명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문학적 자연주의란 무엇일까? 1880-1940년도에 부흥한 사조로, 리얼리즘의 뒤를 이어 일어난 문예사조를 일컫는다. 리얼리즘과는 일상적 삶의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유사한 면이 있다. 이는 이전에 팽배했던 낭만주의의 상징성과 몰락 이후에 태동했던 쉬르리얼리즘의 초자연성과는 대조된다 할수 있다.
허나 삶 그 자체를 거울에 비춘듯 그려내는 리얼리즘과는 달리 자연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성을 앞세운다는 것은 꽤나 다른 점이다. 자연주의의 대부라 할수 있는 에밀졸라가 말했든 누추한 삶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삶의 그늘진 곳, 삶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이 정확하게 잘라내어 처절한 모습들을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관찰하듯 그려낸다는 것이다. 가난, 인종주의, 섹스, 폭력, 편견, 질병, 부패, 매춘, 탐욕 등 인간의 가장 저열한 욕망과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당시에는 꽤나 이러한 소재가 충격적이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현대 독자들에겐 그러한 면이 모던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할수 있다. 마치 희랍비극처럼 운명과 신탁, 환경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는 이러한 세계관은 염세적이고 암울하고 비극적일수 밖에 없다.
DNA에 의한 유전자 결정론, 사회적 상황과 환경에 의한 사회경제적 결정론, 트라우마에 의한 심리적 결정론등이 이 당시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삶은 개척가능하고 변화 시킬수 있다는 낙관적인 '자유의지' 세계관과 대척되는 점에 있는데. 막시즘과 기독교 사상등이 대표적인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사상일 것이다. (물론 막시즘은 계급투쟁에 의해 만인평등의 세상을 만들어내자는 '자유의지'가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프랭크 노리스는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내재가 아니라 낭만주의의 한 형태다 라고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허나 에밀졸라와 플로베르를 위시한 프랑스 작가들에게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자연주의 사조가 영국의 토마스 하디, 미국의 존 스타인벡, 잭 런던, 이디스 워튼, 테오도르 드라이저, 스티븐 크레인 까지 희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럼, 영국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 토마스 하디는 누구인가? 1840년 출생한 그는 어릴적부터 불어, 라틴어를 수학하며 독서를 즐겼고, 건축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었다. 런던에 사환으로 들어간 그는 박물관과 연극, 오페라를 보며 문화적 소비를 통해 습작시를 틈틈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체스터로 귀향한 후 [가난한 남자와 귀부인]이라는 첫 책을 출간하고, 이후 [귀향]을 쓰며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감독하기도 했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을 출간 한 후 드디어 1891년에 [테스]라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1895년 [이름없는 쥬드]로 큰 인기를 얻는다. 허나 작품의 성적묘사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소설절필선언을 하고 이후엔 평생 시창작에만 몰두한다. 1898년 [워섹스 시편]이 대표작이다.
그럼 이제 토마스 하디의 문학세계를 살펴보자. 그의 극적공간은 주로 워섹스, 캐스터 브리지 라는 가상의 상상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스버그' 윌리엄 포크너의 '제퍼슨' 김승옥의 '무진' 황석영의 '삼포' 처럼 말이다.
그는 자연주의 작가인데, 초월적 존재자가 세상이라는 거미줄을 쳐 놓고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내재적 의지'를 그려내고 있다. 운명을 다룬 희랍비극같은 세계인 것이다.
그의 대표작 '테스'를 살펴보자. [The Graphic]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소설인데, 당시 수록 제목은 'Daughter of the D'urbervilles' 였다. 부제는 'a Pure Woman as Faithfully Presented' 이다. 불륜을 다룬 이야기의 부제가 순결한 여인이라니 아이러니컬 하지 않는가? 이 소설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었다. 빅토리아 시대느 그 경직성으로 인해 이 소설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지방이라는 공간에서 공황시대라는 시대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영국의 날씨를 세팅하고 시작한다. 테스와 엔젤, 알렉이라는 세 남녀를 사이에 둔 전형적인 삼각 불륜 멜로담인데 테스의 부모인 잭과 로안도 중요한 서브플롯으로 작용한다.
제도화된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띄는데, 바위에 새겨넣은 성경구절이나 테스를 바라보는 성공회 목사와 부모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가부장 질서에 대한 공격이 있는데, 타자화된 여성을 억압하는 엔젤의 이중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효과를 그려내면서 농장이 기계화 되며 일자리를 잃어가는 농민들을 그려내기도 하고, 근거없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살며, 제대로 역할수행을 하지 못한 테스의 부모를 통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그려내기도 한다.
'테스'란 작품 역시 수차례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는데, 가장 유명한것은 로만 폴란스키(차이나타운) 감독, 나타샤 킨스키 주연의 '테스' 일 것이다. 어릴적 이 영화를 몇번이고 동시상영관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나타샤 킨스키의 그 순수한 눈망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드라마로 두차례나 방영되었는데, 이런 테스 같은 고전 텍스트는 긴 호흡을 가진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 '오만과 편견'도 여러차례 영화화 되었지만 영국 드라마 버전이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적'이름 없는 주드'도 출간되어 있다. 이 역시 영화화 되었는데, 마이클 윈터바람 감독(관타나모로 가는길)에 케이트 윈슬렛 주연작이다. 사촌과의 근친결혼을 다룬 당시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인데 사랑에 대한 율법을 강요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다.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이미 오래전 사라진 문예사조일 뿐이지만, 인간의 저열한 욕망과 비참한 현실을 현미경으로 보듯 그대로 잘라내어 보여준다는 점에선 무척이나 현대적이다. 특히나 플로베르, 발자크의 묘사를 보면 정말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정밀하고 섬세해서 책 전체에 밑줄을 그을수 밖에 없다.
재벌가 이야기나 막장 드라마가 스토리의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자연주의 작가의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인간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그려내는 그 지긋지긋한 열정이야 말로,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자본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실험이 아닐까.
아마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던 테스나 쥬드의 삶이 지금 나의 삶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거나 미래의 천국을 꿈꾸면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 솔직하게, 욕망하면서 말이다.
고마워요, 테스. 당신을 알게되어 말입니다... |
|
|
|
|
|
|
22 |
모난 마음이 깎여 둥글둥글한 원이 되는 것 같은 느낌 |
민*준 |
|
|
|
아트앤스터디에서 이번 좋은 기회를 얻어 김욱동 선생님의 <디킨즈부터 샐린저까지 - 현대영미문학의 지형도를 읽는다> 라는 강좌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꽤나 쌀쌀했던 3월 9일 늦은 저녁,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간 인문숲은 밝고 아늑한 모습으로 반겨주더군요. 강의실 안에는 나와 같은 수강생들이 벌써 와서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대학생인 나부터 연령대가 조금 높은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어요. 이윽고 김욱동 선생님은 조근조근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과 리얼리즘, 그리고...
영국에서 18세기에 태동한 산업혁명의 물결은 유럽을 넘어 북미 그리고 세계에까지 흘렀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죠. 지금이야 환경, 노동문제 등 다각적으로 바라보고 법을 제정하지만 산업혁명 초기에는 그저 물질적인 번영이 최대의 가치가 되던 시대였였어요. 그렇게 볼 때 기계로 인해 여가시간이 늘어나 문학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어쨌든 이 시기에 소설의 장르가 크게 발달했는데 특히 19세기 중엽에는 사실주의가 대두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재현, 묘사, 모방하는 사실주의는 그 당시 척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고발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했을지 몰라요. 부의 축적, 외형적인 발전은 나라를 번영시켰지만 어린 아이들의 노동 문제, 비위생적인 도시 주거, 그리고 오염 문제 등으로 속으로는 곪아있는 사회를 문학에서 꼬집듯이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죠.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사실주의 문예 사조에 대해서 꽤 자세히 말씀해주셨는데요, 사실주의는 부르주아 사실주의, 비판적 사실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 사실주의는 영국을 거쳐 유럽에서 유행한 문예사조로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재현, 묘사, 모방하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실주의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작품들을 주로 말하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20세기 초 러시아를 중심으로 성행한 민중의 삶을 소재로 인민성이나 계급성을 담아낸 문학을 일컫습니다. 그 중에서도 찰스 디킨스는 Bourgeios와 Critical Realism 양쪽에 걸쳐있는 작가로 그의 소설을 보면 당시 영국 산업 혁명 바람 속 사람들의 삶이 깔끔하면서도 생기 있게 드러납니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위대한 유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는 영문학도라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작가입니다. 이름을 잘 못 들어봤다고 해도 그의 작품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 '어려운 시절' 등은 한번쯤 듣거나 읽어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가이죠. 김욱동 선생님은 산업혁명 시기 작가들 중 찰스 디킨스와 그의 작품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로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찰스 디킨스는 1812년에 태어나 그 시기를 온 몸으로 느꼈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일찍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는 12살때 구두공장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아래 이면을 체험했고 15살 때 변호사의 사환으로 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위대한 유산은 All the Year Round라는 잡지에서 1860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작품입니다. 다소 자서전적인 소설로 주인공 핍 Pip의 성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보자면 주인공 핍은 누나와 대장장이 매형 집에 얹혀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익명의 부호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돈을 받게 되어 런던으로 나가서 신사교육을 받게 되죠. 하지만 갑자기 돈이 생기자 핍은 허영심에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속물로 변해갑니다.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핍은 외형적인 허세와 야망이 아닌 진정한 가치-사랑, 용서, 희생 등-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핍의 정신적, 도덕적 성장을 중심으로 19세기 영국의 금전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뻔한 교훈을 주는 스토리같지만 작품 속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핍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면서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를 읽으면서 각자가 공감하는 부분은 다 다르겠지만, 김욱동 선생님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짚었던 부분 중에 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이 있었어요.
“…when suffering has been stronger than all other teaching, and has taught me to understand what your heart used to be. I have been bent and broken, but – I hope – into a better shape.”
고통과 좌절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의 구원을 받는다는 부분입니다. 핍이 갖고 있던 허영과 야망은 무너지지만 오히려 그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무엇이 삶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하지 알게 됩니다. 결국 그가 겪은 괴로움은 그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저 역시 지금 여기저기 쿵쿵거리며 부딪히고 있습니다. 좌절하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도 있죠. 그럼에도 나의 모난 마음이 깎여 둥글둥글한 원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 앞으로 더 조금은 쉽게 삶이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다고 도망치지 않고 고통을 통해 더 단단해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이런 용기와 긍정적 통찰이 이 소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
|
|
|
|
|
|
23 |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
김*선 |
|
|
|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바로 이 시대 고전에 대한 정의를 한마디로 정의해 주는 문구이다. 특히나 고전 소설을 만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두꺼운 페이지 분량에 꽤 많은 등장 인물, 난해한 묘사와 고어체 문장까지. 일단 그 무게감에 압도당해 쉽사리 손을 내밀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허나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은 언제나 있는 법.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붙잡고 늘어져서 완독을 해냈을때의 그 성취감이란...
읽던 책을 벽에 집어 던지거나 갈가리 찢어 발기고 싶은 유혹을 견뎌내고 참아내면 어느순간 그 고고한 고전이란 녀석은 내 품으로 파고 들어온다. 실은 고전, 만나고 보면 그거 별거 아닌 책이다. 그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어왔고, 그래서 경쟁력이 있는 시공간을 초월한 베스트셀러일 뿐이다.
고전읽기에 대한 비밀을 하나 누설 하자면, 실은 대부분의 고전이 읽기 힘든 것은 '번역' 이란 놈 때문이다. 수년간 본격적으로 고전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바로 이 '번역'의 문제였다. 물론, 축약본과 요약본으로 주제와 줄거리만을 달달 암송하게 만드는 이 땅의 교육 시스템과 출판현실이 한몫 하지만 말이다.
그럼, 어떤 책이 잘된 '번역'일까. 직접 읽어 보는 수 밖에 없다. 잘 읽히지 않는다면 분명 번역이 잘 못된 것이다. 내 지적 능력이 모자란다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거나, 갑작스런 난독증에 빠져 그런것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러니,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든 디씨갤의 횽아들에게 여쭤보든 잘 된 번역을 찾는 것이 제 1의 지상과제이다. 당연히 원본에 가장 충실한 '완역본'이 어떤 버전인지도 중요하지만 말이다.
여러 책을 읽다보면 믿음이 가는 출판사의 문학전집이 눈에 들어오고, 특히 완소 번역자들의 이름이 슬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 언어를 직접 습득해서 '원어'로 읽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은 그렇다고 해도 그 수많은 언어를 전부 습득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럼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자. 어떤 역자의 번역이 가장 잘 된 책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품을 팔지 않고도 나름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바로, 가장 많이 번역한 역자를 찾아보는 것이다.
'아트앤스터디'(www.artnstudy.com)라는 온/오프라인 아카데미에서 '디킨스에서 샐린저까지'라는 유혹적인 문구를 걸고 시작한 강좌가 있다. 그곳엔 민음사 영미문학 번역계의 스타 '김욱동'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앵무새 죽이기,위대한 개츠비,허클베리핀의 모험,동물농장,주홍글자, 피츠제랄드단편선,왕자와거지,호밀밭의파수꾼,톰소여의모험,오만과편견...
그가 번역한 역서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늘 그의 이름이 담긴 번역서의 책을 보면서 꽤나 편안하고 읽기 쉬운 문체에 감탄하곤 했었다. 바로 그가 '현대 영미문학 강의'를 펼치는 것이다.
첫 주의 강연은 <리얼리즘과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이라는 제목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웬, 문예사조?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현대영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문예사조의 사전지식은 필수이다. 또한, 작품을 읽기 전에 혹은 읽고 나서 그 작가의 생애와 작품경향등을 위시한 작가론을 공부하는 것도 폭넓은 이해를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것을 풀어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허나 미시적인 분석보다는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적일 것이다.
자,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선 그 당시 사회상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바로 리얼리즘의 태동은 '산업혁명'의 소용돌이가 일던 시기와 맥을 같이 한다.
18-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을 거쳐 미국,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하나의 커다란 혁명적 사건이었다. 지주제에서 농노제로 바뀌어간 산업 시스템은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기계와 공장의 시대로 변환되면서 문명의 발전에 큰 도약을 한 시기였다. 제조업과 탄광업, 교통산업, 기술과학등이 발전하면서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소득이 증대되고 생활이 간편해졌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났다.
바로! 여기서 글 읽을 시간이 탄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문맹률은 점차 낮아지고, 인쇄업의 발전과 함께 신문과잡지의 창간이 붐을 이루면서 지면을 채울 이야기 꺼리가 필요했던 시기가 된 것이다. 수요와 공급이 절묘하게 팽창한 이 시기는 그야말로 '소설장르의 탄생'을 만들어냈다. 이전의 이야기는 역사, 일기, 모험담 위주였는데,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이다.
새뮤엘 리차드슨의 [패밀러]라는 책이 선구자 격인데, 시골 젊은이가 도시로 와 가정부가 되어 집주인의 아들에게 유혹당하지만 물리치고 결혼한다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유혹'이라는 인간적인 욕망이 드러난 것을 보면 현대적인 소설의 시초가 보이는 것이라 할수 있다. 물론, 일견의 학자는 [로빈슨 크루소]나 [탐 존스]등을 소설의 시초로 거론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중산층의 수요가 증가 했는데 귀복보다 사업가, 생산자들의 수입이 늘어나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로 이번 강연의 텍스트 '위대한 유산'의 핍이 도시로 가서 신사가 되는 중산층 성공담이 이 시기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자리 기회도 증가하여 윈윈한 듯 보이지만, 그 뒷모습은 추악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도시화 문제였다. 일자리가 부족하자 미성년을 노동현장으로 투입시켰고, 어둡고 환기 안되는 열악한 근무조건과 긴 노동시간으로 노동자가 죽어 자빠지기 일수였다.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 몸집이 작은 아이를 시켜 청소를 하다가 그 안에 끼어 죽은 이들이 수없이 많았다고도 하니 그 참혹함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20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고 하니 산업화가 가져온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폐해는 이미 그 씨앗부터 썩어 있었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문예사조의 역사는 작용과 반작용의 역사라 생각하면 아주 쉽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에 반발한 직관과 개성, 내면을 중시한 낭만주의, 이에 반발한 합리성을 중시한 리얼리즘, 이후에 이에 반발한 비이성적 상징주의와 모더니즘 또한 이것에 반발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말한 예술의 두가지 갈래, 즉 아폴론적 세계와 디오니소스적 세계가 늘 작용과 반작용을 하며 문예사조의 흐름을 만들어 온 것이다.
바로 리얼리즘이 태동한 19세기 중엽은 산업혁명의 전성기였다. Realism 의 'res' 라는 어두는 'thing' 즉 물건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만질수 있는, 현실의 대상을 그려낸 것이 바로 리얼리즘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철학적 리얼리즘'과 '문학적 리얼리즘'은 구별된다는 것이다. 철학적 리얼리즘은 유명론, 명목론(선,악,사랑,희생 같은 보편개념은 이름만 존재한다. 만져볼수없다.)이란 개념의 반대되는 개념인데 바로 '실재론'(보편개념은 존재한다!)이라 할수 있다.
문학적 리얼리즘은 부르주아 리얼리점, 비판적 리얼리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세분화 된다. 먼저, 부르주아 리얼리즘은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재연, 묘사, 모방한다는 것이다. Life as it is. 낭만주의에서 이상적으로 과장해서 크게 그려내던 것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즘의 필부필녀의 평범한 삶은 많은 이 시대 작가들이 매혹된 이야기였다.
'거울'이라는 메타포가 꽤 등장하기도 하는데, 조지 엘리어트의 말처럼 '소설가는 거울에 사물을 비춰내듯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탕달 또한 '소설가는 길거리에 걸어놓은 거울 이다'라고도 한 바 있다.
프랑스의 스탕달, 플로베르 그리고 영국의 디킨스,엘리어트,샬롯브론테 미국의 마크트웨인,헨리제임스,드라이저,프랭크 노리스등이 바로 이 리얼리즘 작가의 대표선수들이다. 비판적 리얼리즘은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부작용(파업,인권유린)등을 고발하는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가 제정 러시아 지주를 비판했듯, 이광수가 그랬듯 말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20세기 초 러시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혁명의 리얼리즘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재산이 국유화 되면서 예술가 작가동맹이 당파성과인민성, 계급성이라는 기치로 이 사조를 이끌어 갔다.
자, 이렇게 이 시대는 산업혁명과 리얼리즘이라는 큰 물결이 흐르던 시대였다. 그럼, 이러한 배경지식이 왜 중요한가? 바로 텍스트를 읽기 위해선 문화, 사회적 배경인 컨텍스트를 읽어내야만 깊은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 디킨스에 대해 살펴보자. 디킨스는 위에서 말한 부르주아 리얼리즘에 비판적 리얼리즘이 결합한 작가라 볼수 있다. 디킨스는 1812년 출생하여 부친이 채무로 옥살이 하는 동안 구두약 공장에서 아동노동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런던 법률사무소 사환으로 들어가서 사회현실과 부조리를 목격하며 '에스텔라'의 모델인듯한 소녀와의 첫사랑에 실패하며 창작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캐럴][데이비드 코퍼필드][두 도시 이야기]에 이어 드디어 [위대한 유산]을 발표한다.
실은 디킨스는 잡지를 하나 창간해서 운영중이었는데 연재되던 소설이 별 반응이 없자 연재를 중단하고 자신이 팔을 걷고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 [위대한 유산]의 위대한 탄생이었다고 한다.
칼라일은 '인도와도 세익스피어는 바꾸지 않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면 그 다음은 누구일까. 바로 '찰스 디킨스'일 것이다. 그 당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책을 판 베스트셀러 작가가 바로 이 '찰스 디킨스' 였다.
위대한 유산은 어떤 작품인가? 이 작품은 1860.12-1861.8까지 잡지에 연재된 소설인데, 그 당시의 선풍적인 인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250여회 이상 연극과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니 마스터피스중의 마스터피스일것이다.
[Great Expectations] 위대한 유산인가? 유산이 위대할수 있나? 아마 막대한 유산으로 번역해야 올바를 것이다. 첫 역자의 제목이 중요한 것이 비록 그것이 오역일지라도 대중적으로 일반화 되었기 때문에 바로 잡기가 힘들다. [The Great Gatsby] 또한 일본 번역어 제목 그래도 가져와서 위대한 개츠비가 되었는데, 이미 일본은 그냥 원어 그대로 바꾸어 사용한다. 화려한 개츠비 정도가 아닐까?
이 작품의 배경은 지리적으로 켄트라는 시골에서 런던이라는 도시로 이동되고, 시간적으로는 1812년 크리스마스이브에서 1841년까지 30여년간이다.
중요한 배경은 기후적 배경인데, 안개가 자욱한 오프닝의 켄트의 풍경은 이 작품 내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 좌표를 정하지 못하고 미망하고 무지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핍'의 어린시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의 안개를 떠올리면 기후배경이 얼마나 소설에서 중요한지 알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는 '핍'이라는 고아와 '조 가저리'라는 형부, 유산을 물려준 탈옥수 '매그위치'와 노파 '미스 해비셤' 그리고 첫사랑 '에스텔라'가 있다.
장르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이는 교양소설 Bidungs Roman의 전형적인 작품이라 할수 있다. Grow라는 Bidungs라는 독일어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대표하는 교양소설이라는 흐름을 말하는데, [제인에어]나[허클베리핀]도 이 당시 리얼리즘 교양소설에 속한다. 젊은 주인공이 시련을 당하다 삶의 인식을 얻어내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이다.
시점은 1인칭으로 끌고 나가는데, '나'는 단순히 전달자 일때,[암흑의 핵심] '화자'이면서 부분적으로 캐릭터 일때,[위대한 개츠비] '나'는 곧 주인공 일때[위대한 유산] 모두 1인칭 소설이라 할수 있다.
플롯은 자서전적인에 작가는 로렌스의 말처럼 '원고지에 피를 쏟아내는' 고통으로 바로 이 플롯을 짜곤 한다. 주제는 역경과 시련을 딛고 성장하는 영혼의 개안과 도덕적 성장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는 두가지 중요한 테마가 있다. 바로, 'What is a gentleman?' 과 'Redemption through Suffering' 이다. 진정한 신사란 무엇인가? 그리고 고통을 통한 구원!
핍은 막대한 유산을 받고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하여 신분상승에 성공한다. 허나 뭔가 결핍이 되어있다. 바로 진정한 신사란 형부 조 가저리 처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 걸 잊고 있었다. 에스텔라는 후에 핍을 찾아와 고백을 한다. '나는 휘어지고 부서졌어. 하지만 희망컨대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졌다고 생각해...'
진정한 고전 독서가란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책을 많이 읽더라고, 그것을 통해 사랑하는 맘으로 세상에서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독서는 무엇인가? 휘어지고 부서지더라도 책을 덮고 나면 좀 더 나은 모양으로 휘어지고 부서진 자아로 바뀌어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 허나 나는 읽어내고야 만 책!' 고전을 만나러 가자. 휘어지고, 부서지더라도... |
|
|
|
|
|
|
24 |
흐름의 제시 |
윤*림 |
|
|
|
영미문학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강의 입니다.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듣게되네요. 문학사의 지도에 비해 작품에 대한 해설과 그것을 깊이있게 설명하는 시간은 좀 적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동안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해주시느라 그렇겠지요. 기회가 된다면 작품자체를 더 파고드는 강의도 듣고 싶습니다. |
|
|
|
|
|
|
25 |
뵙기 어려운 분의 강의를 듣게 되니 너무 기쁩니다. |
t**hyen78 |
|
|
|
교수님의 저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던 적이 있죠. 이러한 분을 아트앤스터디에서 뵙게되니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책에서도 그러셨지만, 어떤 지형도를 통해서 넒은 시각과 이해가기 쉽게 하시는 강의가 참 인상깊습니다. |
|
|
|
|
|
|
26 |
하실말씀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 |
이*순 |
|
|
|
하실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하실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말슴만하시고 쓸대없는 잡답없이 필요한거만 말하시는 강의 |
|
|
|
|
|
|
27 |
슬픕니다. |
임*람 |
|
|
|
해설서를 읽는 대학의 일부 교수들의 강의와 별반 차이가없습니다. 그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나은 강의는 절대 아닙니다.. 강의자료와 강의가 그대로입니다. 그렇다고 강의자료가 알찬것도 아니며, 그냥 일반 검색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들입니다. |
|
|
|
|
|
|
28 |
저는 조금 실망이예요! |
김*현 |
|
|
|
생태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김욱동 선생님의 책을 읽어봤었는데요, 그것때문에 이 강의를 듣기 전에도 많이 기대를 했어요- 그런데 설명해주시는 것들이 그냥 인터넷에 있는 자료들이나 문학 책 뒤에 붙어있는 해설서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 그래서 이 강의 듣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구요! |
|
|
|
|
|
|
29 |
정확한 영문학 번역 ! 김욱동 선생님 |
김*신 |
|
|
|
정확한 번역으로 유명하신 분의 문학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각 작품마다 핵심이 되는 구절을 정리해주신 점이 특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영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데요. 김욱동 선생님께서 계속 강의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
|
|
|
|
30 |
준비되지 않은 듯 성의없는 강의 |
고*숙 |
|
|
|
김욱동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 강좌를 신청했는데 실망이 큽니다. 강의록을 읽는 것 외에 다른 게 없네요. 좀 더 깊이있고 성실한 강의를 원했는데... 아쉽지만 다음 강의 기대합니다. 생기있는 강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
|
|
|
31 |
이렇게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되다니 흥분되는군요 |
이*진 |
|
|
|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제가 좋아하는 여러 영미문학 저서에서 번역자로 김욱동 선생님의 이름을 자주 접해왔습니다. 인문숲을 통해서 이렇게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되다니 흥분되는군요. 특히, 헤밍웨이와 J.D 샐린저를 다루는 수업이 기다려집니다.
|
|
|
|
|
|
|
32 |
선생님이 워낙 명망높으신 분이라 믿음이 갑니다 |
채*희 |
|
|
|
왜 제가 좋아하는 문학작품을 인문학적으로 다루는 강의는 없을까? 늘 의아했답니다. 이번 강좌는 커리큘럼이 뜨자마자 바로 신청했어요. 게다가 선생님이 워낙 명망높으신 분이라 믿음이 갑니다. 참, 오늘부터 다음 주 수업에서 다루는 책을 예습겸 다시 읽기 시작했어요ㅎㅎ 인문숲엔 처음 가보았는데, 아담하고 깔끔한데다 친절하기까지^^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
|
|
|
|
|
|
33 |
나의 모난 마음이 깎여 둥글둥글한 원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 |
한*미 |
|
|
|
아트앤스터디에서 이번 좋은 기회를 얻어 김욱동 선생님의 <디킨즈부터 샐린저까지 - 현대영미문학의 지형도를 읽는다> 라는 강좌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꽤나 쌀쌀했던 3월 9일 늦은 저녁,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간 인문숲은 밝고 아늑한 모습으로 반겨주더군요. 강의실 안에는 나와 같은 수강생들이 벌써 와서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대학생인 나부터 연령대가 조금 높은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어요. 이윽고 김욱동 선생님은 조근조근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유산'을 읽으면서 각자가 공감하는 부분은 다 다르겠지만, 김욱동 선생님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짚었던 부분 중에 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이 있었어요.
“…when suffering has been stronger than all other teaching, and has taught me to understand what your heart used to be. I have been bent and broken, but – I hope – into a better shape.”
고통과 좌절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의 구원을 받는다는 부분입니다. 핍이 갖고 있던 허영과 야망은 무너지지만 오히려 그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무엇이 삶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중요하지 알게 됩니다. 결국 그가 겪은 괴로움은 그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저 역시 지금 여기저기 쿵쿵거리며 부딪히고 있습니다. 좌절하기도 하고 우울의 늪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도 있죠. 그럼에도 나의 모난 마음이 깎여 둥글둥글한 원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 앞으로 더 조금은 쉽게 삶이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다고 도망치지 않고 고통을 통해 더 단단해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것, 이런 용기와 긍정적 통찰이 이 소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유산'이었습니다.
|
|
|
|
|
|
|
34 |
그 동안 좋은 강의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
이*나 |
|
|
|
3~4월에 걸친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의 영문학 강좌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김욱동 선생님께 그 동안 좋은 강의를 들려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바로 J.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입니다. 얼마전에 영화 '파수꾼'을 본터라 이 작품에 대해 강의를 들으니 이제서야 영화에 대한 어떤 생각들이 가지쳐서 뭉게뭉게 떠오르고 그랬습니다. 저는 사실 이 작품을 워낙에 어렸을 적, 그러니깐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 Holden Caulfield와 비슷한 나이쯤 되려나요?ㅎㅎ 그때 읽었던지라 나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작품을 살펴보니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고작 불평투성이 십대 소년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홀든이 사실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고 있었는지에 대한 것 등등 말이죠.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샐린저는 뉴욕 맨해튼에서 자란 뉴욝커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으로 1960년대 유태인 문학 전성기 Gewish Renaissance의 대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하였는데요, 몇몇 단편들은 그가 2차대전에 참전하기 전 1940년 초에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샐린저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대에 지원하여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후 돌아와서 계속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데, 주로 뉴요커 지에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 후 1951년, 첫 장편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점점 은둔적으로 변합니다. 1965년 이후로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으며 1980년 이후로는 인터뷰도 가지지 않았는데요. 이와중에 헤밍웨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게 끊임없이 연애스캔들에 휩싸입니다. 세 번 결혼을 하고 한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학생과 Love affair가 있기도 했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인기 작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폭로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의 생을 다룬 전기의 출판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스캔들에 휩싸인 여학생이 자서전을 쓰면서 자신과 샐린저의 관계를 마구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딸인 마가렛 Margaret 마저도 샐린저의 딸로 자란 이야기를 책으로 출판하면서 자신의 아빠를 슬쩍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년전인 2009년에 타계했습니다.
샐린저의 작품은 '반문화 Anti-Culture'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반문화는 가장 넓은 개념으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를 일컫습니다. J. M. Inger가 어떤 집단의 문화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크게 대립될 때 이 문화를 일반적인 하위문화와 구분하기 위하여 도입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부분집단을 형성하고 전통적인 기성문화에 도전한 1960년대 미국의 히피 같은 하위문화가 있습니다. 반문화를 때로는 저항문화 Counter Cultrue라고도 하는데, 지배문화에 대립한다는 의미에서는 반문화나 대항문화 어느 것이든 별 차이가 없겠으나, 모든 세대에서의 지배적인 문화에 대해 저항하는 반문화보다는 좁은 개념으로써 바로 이전 세대에 대해 대항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60년대에 미국 ·유럽을 휩쓸었던 청년문화는 기성문화, 즉 이들 지역의 지배문화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지배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으나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닌 새로운 질서에 의한 대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반문화는 미국 대중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0년대 말부터 50, 60년대가 바로 Mass Society라 할 수 있는데요, 경제적 번영과 관료주의로 하여금 전통적인 사회 유대감(결속)이 약화되었던 시점입니다. 현대적인 산업 시대였던 그 시기는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와 타인에 대한 체면과 허위의식이 강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1950-6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건들이 벌어진,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극우적 반공 이데올로기인 매카시즘 McCarthyism이 1950년에 대두됨과 동시에 공중파 NBC 방송이 개국하면서 대중 문화가 부흥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맥도날드 패스트푸드점이 열어 전세계로 확장되었고 첫번째 디즈니랜드가 캘리포니아에 개장했고 록큰롤이 주류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편에선 로사 팍스 Rosa Parks 사건으로 인해 흑인 인권 운동의 도화선이 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1957년부터 소련이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세계 최초로 발사하면서 미국과 소련과의 우주 전쟁 Space race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59년에는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각각 미국의 49번째, 50번째 주가 되었구요. 1961년에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베트남 전쟁이 일어납니다. 1963년 즈음부터 여성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으며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비극도 벌어졌습니다. 1964년에는 비틀즈가 미국에서 공연을 펼쳤구요, 1966년에는 풀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1969년에는 닐 암스트롱이 달 위를 걸었고 청년문화의 대표적인 록 페스티발인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뉴욕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급속도로 사회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여러가진 사회 비판이 생겨났습니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 홀든이 1인칭으로 독백하듯 자신의 성장통을 독자에게 고백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읽을 때 청소년의 은어, 속어, 비어 등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해석의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온갖 괴상망측한 청소년 인터넷 용어들이 쓰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겠죠?ㅋㅋ
홀든은 어린 나이이지만 아주 냉소적으로 사회를 바라봅니다.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생활 방식-즉 물질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려는 성공에 대한 과도한 열망, 아메리칸 드림 따위 등등-을 혐오하는 소년이죠. 같은 학교의 친구들도, 자신의 여자친구도, 심지어 자신의 형과 부모까지도 phoniness, 가짜이고 엉터리며 위선자라며 염증을 느낍니다. 홀든을 둘러싼 주변이 모두 허위고 가식이므로, 그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간의 의미있는 소통은 단절될 수 밖에 없죠. 이러한 상황에서 홀든은 소외와 고립감을 느낍니다. 성공신화를 주입하는 사회에서 천편일률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비슷한 형편의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는 일련의 과정에서 홀든은 벗어나려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가는, 세속적인 가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지키고자 그 아이들이 뛰노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 자유를 찾아 방황하는 한 개인,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저 자신과 우리 사회를 되돌았습니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을 끝까지 추구해나갈 열정이 있는지 고민해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성공'해야만 한다고 세뇌시키는 우리 사회가 슬퍼졌습니다. 회피적으로 자기 정당화를 하면서 경쟁 구도에서 쳇바퀴를 열심히 굴려보지만 허무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
|
|
|
|
|
|
35 |
상실의 시대와 '무기여 잘 있거라' |
무**대 |
|
|
|
1차 대전(1914-1918)은 서구인들에게 문명에 대한 회의와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류가 문명화되고 나서 맞닥드린 최초의 전 세계적인 커다란 전쟁이었으니까요. 전쟁의 사상자가 800만, 부상자는 2000만, 실종자는 800만이었으니 가히 엄청난 인류의 손실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유보트가 영국 전함을 공격하면서 미국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그제서야 당시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선언합니다. 허나 미국인 사상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곧바로 휴전이 되었기 때문이죠. 유럽은 패전 후 경제공황과 함께 전체주의 정치가 대두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만, 미국은 오히려 'Roaring Twenties' 번영의 시대가 펼쳐졌죠.
하지만 당시 지성인들은 집단적 신경쇠약에 걸린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이 당시 전후파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했고, 환멸과 절망 그리고 냉소주의에서 허우적 거렸습니다. 이 시대를 '상실의 시대' 혹은 '길을 잃은 시대' 라고 합니다. 모든 가치관이 상실 되었고, 도덕과 윤리의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이른바 전후파 3대 작가.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포크너가 바로 이 '상실의 시대' 작가군에 속한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셔우드 앤더슨의 소개로 파리로 넘어가 문학수업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미국의 여류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게 되죠.
'자동차가 고장나면 정비소에 찾아갔는데 무책임한 기계공은 말하더군요. 모두가 다 길을 잃은 세대라고...' 그녀는 헤밍웨이에게 이렇게 기계공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참전경험을 한 젊은 세대는 다 잃어버린 세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1926)의 에피그라프(소설 첫 부분에 적어놓는 경구)로 바로 이 말을 적어 놓았죠. '당신들은 모두가 잃어버린 세대입니다-거트루드 스타인의 말 중에서' 라고 말입니다. 이 시대에 활동한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엘리어트, 존 파소, 왈도 피어스, 알란 시거, 레마르크같은 작가들을 구별해서 칭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헤밍웨이는 1899년에 출생했습니다. 얼마전까진 1898년생으로 알려져 왔지만 군대에 참전하기 위해서 나이를 속여왔던 것으로 밝혀졌죠. 시카고 근처 시골마을 오크파크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는 '켄서트 시티 스타' 지 신문기자로 직업을 얻었습니다. 1918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자원하여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었죠. 그곳에서 무릎에 직격탄을 맞고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절단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의사소통도 안되는 타지에서 겪은 절망과 좌절이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1920년 '토론토 스타'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그는 다음해 룸메이트 여동생의 친구인 해들리 리차드슨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셔우드 앤더슨의 충고로 특파원 자격으로 파리로 향합니다. 당시엔 달러가 강세인 시절이라 가난한 젊은 작가들이 유럽으로 문학수업을 많이들 떠났습니다. Expatriate Community 라 해서 스스로 미국을 떠나 유럽에 살면서 문학가와 예술가의 수업을 쌓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1922년엔 그리스와 터키의 전쟁을 종군기자로 취재하기도 했고, 1923년 '단편 세편과 시 열편'이라는 첫 작품집을 출간합니다. 1925년엔 '우리 시대에' 라는 단편집을 셔우드 앤더슨의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1926년엔 셔우드앤더슨을 풍자한 작품인 '봄의 분류'를 출간하곤 이때 사이가 나빠져 죽을때까지 관계가 회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유명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피츠제럴드의 소개를 받아 찰스 스크리브너스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1927년엔 '여자없는 남자'라는 단편집을 출간하고 결국 해들리와 이혼하곤 폴린 파이퍼와 재혼을 하게 됩니다. 다음해엔 부친이 자살하게 되고 1929년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출간하게 되는데 원고를 분실해서 기억을 살려가며 다시 써내려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932년엔 스페인 투우 경기를 아내 폴린과 구경하며 쓴 '오후의 죽음'이라는 논픽션을 출간 합니다, 이후 '승자에겐 아무것도 주지마라'라는 단편집과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 사냥경험을 실은 '아프리카의 그린힐'이라는 산문을 출간하죠. 1937년 드디어 스페인 내전이 터지고 특파원으로 참전한 그는 '가진자와 갖지 않은자'를 출간하는데 당시 사회에 팽배했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인류의 역사는 유산자와무산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공산당 선언에 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1940년 폴린과도 이혼한 그는 마더 갤혼과 삼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쿠바에 집을 얻어 스페인 내전경험을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출간합니다. 1942년 '전쟁남자'라는 산문을 내고, 1944년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특파원 자격으로 프랑스와 독일에 종군하게 되고 연합군의 파리탈환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듯 전쟁경험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걸 좋아하는 '야성적인 작가'로 유명합니다. 파리에선 또 다른 연인 메리월쉬를 만나게 됩니다. 1945년 자동차 사고 후 입원한 헤밍웨이를 비웃었다는 이유로 부인 갤혼과도 이혼하게 되고 1946년 결국 메리 월쉬와 사혼째 결혼을 하게 됩니다. 1947년엔 파리탈환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브론즈 스타 훈장을 받았고, 1950년엔 '강건너 숲속으로'를 출간한 뒤 비행기 사고로 죽을 뻔 하게 됩니다.
1951년엔 모친이 사망하고 이듬해 드디어 '노인과 바다'를 출간하게 됩니다. 53년엔 이 작품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하고, 54년엔 노벨상을 수상합니다. 1960년엔 아이다호로 가는데요, 알콜중독과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허나 혈압도 관리 안되고, 간질환이 겹치고 우울증까지 닥친 그는 각종 치료를 받게 되지만 굉장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됩니다. 바로, FBI가 자신을 늘상 미행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헌데 쿠바에 거주했던 경력을 비춰보면 실제로 감시를 당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환각에 시달리던 그는 1961년 엽총자살로 생을 끝마치고 맙니다. 이후 파리에서의 경험을 담은 논픽션 (해마다 달라지는 휴일이라는 뜻의) 'A Moveable Feast' 유고집을 출간하게 되고, 이후로도 각종 단편집과 전집류가 속속 출간 되었습니다.
헤밍웨이에게 1차 세계대전 참전은 뜻 깊은 사건이었습니다. 먼저,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부상을 빼놓수 없겠죠. 1918년 적십자 부대의 유럽 파견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자원하여 입대합니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파견된 그는 두 달 뒤 박격포탄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전쟁에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결코 나는 죽지 않는다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허나 실제 부상을 입게 되면 그런 환상은 깨어지게 되고 이런 일은 내게도 닥친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간이 치료소에서 응급처치를 마친 후 밀라노 적십자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과 물리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곳에서 일곱 살 연상인 애그니스 쿠로스키라는 간호장교를 만나서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 후 요양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1919년 애그니스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 사랑이었던 그녀의 변심은 헤밍웨이에게 정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때의 경험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왜 헤밍웨이는 네번이나 결혼했을까요? 바로 첫사랑 애그니스의 배반경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배반 당할지 모르니,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차버려야 해! 뭐 이런 독한 맘이 그의 가슴 속에 새겨지진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게다가 이 때의 부상경험은 어린 그에게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미시간 호수에서 동창과 낚시와 캠핑을 하며 시련을 잊는 치유의 시간을 갖었습니다. 그의 단편을 보면 '닉 아담스'라는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데 그는 헤밍웨이 자신이 투영된 반자서전적인 인물입니다. 늘 밤에 전기를 켜 놓고 잠에 들고, 악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익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20년에 프리랜서 작가가 된 그는 '토론토 스타'지 특파원 생활을 거친 후 셔우드 앤더슨과 해들리 리처드슨을 만나게 되죠. 해들리는 애그니스와 비슷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허나 성숙한 애그니스에 반해 해들리는 유아적이었다고 합니다. 후에 오히려 그것이 결혼생활에 방해가 되었다고도 하지만 결국 둘은 파리로 가서 작가 수업을 쌓게 됩니다.
당시 파리는 달러의 환율이 강세여서 무명작가가 생활하기 좋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원체 파리는 문학과 예술의 지망생들이 모이는 예술의 메카 이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이 운영 하던 살롱에서 '제임스 조이스' '에즈라 파운드' '스코트 피츠제랄드' 등이 모여 정기적으로 문학과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곳에서 피카소나 미로, 그리스등 입체파 화가들을 만나기도 했구요. 그래서 이들의 문학 작품에는 큐비즘적 요소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실비아 해변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 극장에서 우연히 헤밍웨이를 만나 제임스 조이스에게 그를 소개해서 어울려 다녔다고도 합니다.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선배로써 그에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고도 하구요.
헤밍웨이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유명하지요. 일명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는 강건하고 간결한 문체가 대표적입니다.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을 보면 천사는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산문집을 보며 지내다 맥 라이언에게 음식의 맛을 물어 볼때, '어떤데? 맛이 말이야. 헤밍웨이처럼 설명해줘'라고 대사를 하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만큼 '헤밍웨이 같은'문체는 현대에 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출판되었을때 뉴욕타임즈의 리뷰를 보면 쉽게 알수 있을겁니다.
"이 소설의 질은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할 길이 없다. 살코기만 있는, 딱딱한 근육질의 산문으로 되어 있어 수사적으로 현란한 문체의 영어문장들은 이 걸 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워 할것이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산문은 실내장식이 아니라 건축이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즉 그의 글은 강철과 유리로 그냥 세워놓는 모더니즘 건축과 같은 것이라는 겁니다. 당연히 경제성과 효율성의 원리로 말입니다.
1954년 노벨상 위원회는 '서사 예술의 장인, 현대 스타일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공로로' 라며 수상의 변을 발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문체는 빙산과 같은 것이라는 'Iceberg Theory'를 주장했습니다. 작가는 수면 위 1/8 만을 가지고 나머지 물 속에 있는 7/8 까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나머지는 독자가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빙산의 움직임이 우아한 것은 1/8만이 물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 참전시 죽음에 직면해 싸우면서 이러한 문체를 배우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기도 합니다. 그를 비롯한 당시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서구 문명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고로 그 이전과는 다른 문체나 작품을 쓰려고 했으니까요. 분명 그의 문체는 19세기의 장황한 만연체의 문장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일찍이 단편소설로 출발한 경력으로 보건데 이것에서 간결한 문장을 배운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합니다. 에드가 앨런 포우가 '하나도 더해도 안되고, 하나도 빼어도 안되고, 낭비가 있어서는 안된다'라며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혹은 기자생활을 한 이력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육하원칙에 의해 팩트만 기술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테지요.
이제 [무기여 잘 있거라]에 대해 이야기 해 보지요. 제목에 들어간 arms 라는 단어는 캐서린이 남긴 두 딸을 의미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무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자서전적 작품이기에 이 작품에는 쿠로스키와의 실연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두고 보자며 자기 앞에 무릎을 꿇려 신처럼 받들게 해서 철저하게 캐서린을 굴복시켜 버립니다. 예술가는 현실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을 전부 다 예술세계를 통해 대리만족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선 캐서린이 너무 개성이 없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입니다. 정신적, 심리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배경은 비와 눈이 내리는 이탈리아 전선의 밀라노 병원의 1917년 막바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론 1인칭 시점이지만 가끔 철학적 사색이나 명상을 할 때면 2인칭으로 나레이션을 하기도 합니다. '개츠비'가 1인칭 소설이지만 주인공은 사건에도 개입하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선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만 합니다. 화자이면서 주인공이기 때문이지요.
이 작품에서 '비'는 재앙이나 불행을 뜻합니다. 초반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투가 벌어지거나 콜레라가 퍼지거나 부상을 입거나 할때 등장하곤 합니다. 허나 후반부의 스위스에서의 '비'는 유쾌한 맛을 내기도 합니다. '안개'는 캐서린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같은 여성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자르려 하니까 못자르게도 하니까 어쩌면 남성적 시선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론 '러브 스토리' 입니다. '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결국 둘은 끝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이별하게 되니까 말이죠. 또한, 반전 소설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비인간적 늙은이들과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당하고마는 젊은이들을 그려내고 있으니까요.
인식론적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유한한 생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니까 말입니다. "나는 모르고 있던 것을 그는 늘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알았다 할지라도 잃어버리기 일쑤인. 그러나 그당시엔 나는 몰랐다. 나중엔 알게 되었지만."
캐서린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이 결정된 운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골반이 작아 분만을 못해 결국엔 제왕절개를 하지만 죽고 마는 것이죠. '생물학적 덫'이라고도 합니다만, 삶은 죽음을 향한 행진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처럼 점차 헨리는 알아가게 됩니다.
캐서린을 사랑하고 떠나보내면서 말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란 이 얼마나 소중한가,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런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원래는 장교 위안소보단 조금 낫기 때문에 그녀를 만난 거였습니다. 허나 시련을 겪고 입원하면서 가까워지게 되며 사랑은 희생이란걸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실존주의'적 이기도 합니다. '실존은 본질은 앞선다'라고도 하지요. 산 다음에서야 인생을 논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인공 헨리는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하는 무신론자로 등장합니다. 오로지 삶은 현세 밖에 없기에 그 삶을 아주 만끽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영광, 명예,용기,신성함 같은 추상적 단어는 동네 마을 이름이나 길거리 번짓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러브스토리에서 인식론적 철학적 이야기로 점차 옮아가게 하는 겉보기보단 무척이나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빙산 아래 감추어 놓은 것입니다.
|
|
|
|
|
|
|
36 |
반 문화와 '호밀밭의 파수꾼' |
무**대 |
|
|
|
오늘은 전설적인 작품 [호밀밭의 파수꾼] 단 한편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샐린저'와 그의 소설이 그려낸 '반문화'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반문화(Anti-Culture)란 말 그대로 어떤 문화에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모든 세대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이지요. J.M.Inger는 이를 가르켜 '주류 문화에 반대하는 하부문화다.' 라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히피족'이 바로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모든 전통적인 가치나 인습을 부정하고 마약, 섹스, 폭력, 선불교등에 탐닉했지요. 특히나 1960년대 중엽에 이는 청년문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 전역을 거쳐 전 세계로 전파되어서 지금까지도 면면히 흘러오고 있습니다. Hipster 라고도 하는데요, 그리니치 빌리지 주위에 이주한 비트족들이 hip,hep 이라는 속어를 사용한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흑인 문화에서 사용하던 단어인데요 '알고 있다' 라는 뜻이라고 하니 일견 인식론적 철학을 담고 있는 듯도 하네요.
유사한 용어로 저항문화(Counter Culture)라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이전 세대에 대한 저항을 하는 것이니 반문화 보다는 협의의 반항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청년문화(Youth Culture)도 있는데요, 이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저항문화'의 하위 개념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반문화, 저항문화, 청년문화의 등장으로 인해 드디어 대중사회 (Mass Society)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산업화, 현대화가 되면서 경제적 풍요로 인해 관료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과 교회, 사회 동질성등 기존의 전통적인사회결속을 약화시킨 결과를 낳게 되었죠. 이렇듯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이른바 '대중사회'라 불리우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대중사회'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미국의 역사를 훓어봐야 할 듯 합니다.
1950년엔 맥카시즘에 의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출스 슐츠의 '피너츠'라는 만화가 출간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지요. NBC 방송국이 개국되어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가 만들어지기도 시작했죠.1951년엔 맥아더 장군이 전역했습니다. 한국전쟁시 중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원자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의 반대로 무산되어 전역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전역에 TV가 방송되기 시작하였고, 시트콤의 원조 'I Love Lucy'가 첫 방을 타기도 했죠. '텔레비전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52년엔 이민법이 통과되었고, 아이젠하워가 취임하기도 했습니다.
1953년엔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된 유명한 사건이 있습니다. 1954년엔 맥카시가 정치권력을 잃었고, 브라운 vs 교육위원회 사건으로 들썩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흑인과 백인 학생들이 분리교육을 받고 있었고 흑인 아동은 동등하지 않은 교육기회를 가졌죠. 이에 반발한 고소가 대법원까지 올라가 차별금지 헌법이 만들어지게도 되었습니다. 또한 '투나잇 쇼'도 첫 방을 타기 시작했죠. 1955년엔 '맥도널드'가 첫 오픈을 했습니다. 맥도널드화, 코카콜라화 라고 하는 미국의 음식문화가 전 세계를 파고 들게 한 계기가 되었죠.
'로자파크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앨러바마의 흑인 아줌마가 일을 마치고 힘이들어 버스 빈자리에 앉았는데 백인이 탔는데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버스기사가 버스를 세우고 강제로 끌어내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엔 관례적으로 백인이 버스에 타면 흑인들은 자리를 비켜줘여야 했으니까요. 헌데,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디즈니랜드가 개장을 했구요, 'Rock Around The Clock'로 되표되는 '로큰콜 뮤직'의 시대가 개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엔 동서남북을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20년에 걸쳐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7년엔 투표권의 확대를 담은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발사하면서 이른바 'Space Race' 우주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우주시대의 선점을 빼앗긴 것에 큰 충격을 받아 과학이나 수학같은 기초과학 교육에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해에 세계 최초의 핵 발전소가 만들어 지기도 했구요.
1959년엔 알라스카와 하와이가 미국의 마지막 주로 편입되었습니다. 1960년엔 이른바 'U-2사건'이 발생했습니다. CIA 스파이 비행기가 정찰 도중 소련 공중에서 피격된 사건입니다. 그린스보로우에서 흑인계 대학생들이 기숙사 식당에서 백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수 있게 해 달라며 연좌데모를 시작되어 인권법에 반영이 되었구요.
1961년엔 케네디가 취임하였고, 월남전이 발발했습니다. 1962년엔 존 글렌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 한반퀴를 돌았구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고조되어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각을 세웠습니다. 1963년엔 그 유명한 마틴 루터킹이 워싱톤으로 행진하며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잡지가 출간되어 여성운동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엔 비틀즈가 미국에 공연을 와서 영국대중문화가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를 표어로 걸고 가난퇴치, 인종차별등 사회개혁과 교육, 의료, 도시화, 교통문제 개선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또한 흑인과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막는 인권법이 통과 되었고 동양인 이민 차별법도 폐지 되었지요. 1965년엔 말콤 X가 암살당했고, 이로 인해 'Watts Riot' LA 폭동이 발생 해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1966년엔 NBC,CBS,ABC가 칼라 TV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1967년엔 드디어 저항문화가 등장했고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문화적으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요. 1968년엔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하고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로 최초의 흑인 여성이 의회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엔 닐 암스트롱이 달에 도착했고, 우드스탁 페스티발이 베이비 붐 세대에게 크나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세미 스트리트'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이 교육방송에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엔 이러한 '반문화'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작가 '샐린저'의 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문학은 유태계 문예부흥(Jewish Renaisance)이라 불리우기도 합니다. 노먼베일러와 필립로스, 그리고 샐린저가 대표적이죠.
샐린저는 1919년 1월 1일에 맨하탄에서 유태계로 출생했습니다. 1932년 맥보니 스쿨에 다니며 학교신문에 글을 게재하곤 했는데 적응을 잘 하지 못해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고 합니다. 결국 1934년 15세에 사관학교식 밀리터리 아카데미로 전학을 갔는데, 이곳이 바로 [호밀밭]에서 콜필드가 다니는 학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1936년엔 유태계 학교인 NYU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중퇴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유학을 가서 육류가공 포장업을 배우게 됩니다. 바로 샐린저의 부친이 소시지, 육류 수입상이었는데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죠.
1938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자 다시 귀국해 콜롬비아 대학교 문창과 사회교육원에서 강좌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STORY'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Whit Burnett이 그를 격려하며 글을 실어주기로 북돋아 주었다고 하네요. 1940년에 'The Young Folks'를 발간하고 1941년엔 'Slight Rebellion Off Medison'을 출간하려 하지만 다 거절당하고 겨우 뉴요커 잡지에서 원고를 받아 주지만 이도 5년 뒤에나 싣게 됩니다.
1942년엔 징집되어 유럽에 배치되 범죄자 신문을 하기도 하고 실제 전투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헤밍웨이와 친교를 맺으며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지프차에 타자기를 어디든 싣고 다니며 단편소설을 쓰곤 했다고 합니다. 1944년 이른바 D-Day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하기도 했습니다.
1945년엔 '실비아'라는 독일여성과 첫 결혼을 했고, 8개월 뒤 헤어지고 맙니다. 1946년엔 글래스 패밀리를 다룬 첫 작품인 'A Perfect Day for Bananafish'를 여러군데 거절 당한 후 뉴요커에 실었고, 이후로 후속작을 연재하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1949년엔 'Uncle Wiggily in Conneticut'을 발표하고 'My Foolish Heart'라는 영화로 만들어 졌지만 혹평을 받습니다. 1951년에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출간하고 하루아침에 대 작가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한편의 작품으로 평생 먹고 산 작가가 여럿 있는데요.[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가 그렇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 미첼 여사, [폭풍의 언덕]의 브론테가 그러합니다. 샐린저는 이 작품을 출간하고 대중앞에 서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1952년엔 선불교와 힌두교 같은 종교에 심취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엔 'Nine Stories'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후 뉴 햄프셔주 코니쉬로 칩거에 들어갑니다. 1955년 클레어 더글라스와 결혼을 하는데 그녀는 레드 클리프 대학생이었습니다.그녀에게 Franny Glass 이야기 사본을 결혼선물로 주기도 했지요.
1961년엔 [Franny and Zooey]를 출간하고 1963년엔 [Raise High Roof Bean. Carpenters and Seymour]를 출간하지요. 1965년엔 [Hapworth 16,1924]라는 단편을 발표하고 이후에 절필을 선언합니다. 1867년엔 이혼을 하고 1972년엔 예일대 학생인 조이스 메너드와 연애를 시작하는데 무려 35살 연하였지요. 1986년엔 한 비평가가 은둔작가 샐린저에 대한 '전기'를 출간하려 하자 소송을 걸어 막았습니다. 1988년엔 40세 연하인 콜린 오닐과 삼혼을 하게 됩니다. 1998년엔 조이스가 샐린저와 나눈 편지를 옥션을 올리고 회고록으로 폭로하는 출간을 합니다. 2000년엔 누이인 마가렛이 어린시절의 산골성장 이야기인 [Dream Catcher]를 출간하는데 샐린저는 이에 또 다시 분노하였다고 합니다. 2009년에 91세의 나이로 샐린저가 사망 하게 됩니다.
그럼, 샐린저의 유일한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로버트 번스의 시 'Coming Through the Rye'에서 가져 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 시가 <고향의 하늘>이라는 메이지 창가로 번안되어 유명져서 현재 신호등의 음향 멜로디로 쓰이고 있다고 하고, (스윙걸즈 라는 일본 영화를 보면 신호등에서 나오는 이 음악에 맞춰 재즈를 연주하는 장면이 있지요^^) 한국에서도 개화기때 <들놀이>라는 노래로 들어와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다고 합니다.
Comin Thro' The Rye (Coming Through The Rye)
Robert Burns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어요 Chorus. O Jenny is all wet, poor body, 이런, 제니는 다 젖었군요, 가엾기도하지. Jenny is seldom dry: 그치만 잘 마르질 않네요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제니는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가지요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Coming through the rye, poor body, 가엾어라, 호밀밭을 걸어오네.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She draggled all her petticoats,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오는구나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거닐면서말이죠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a body cry? 울고싶나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어야 할텐데 Coming through the glen, 계곡을 걸어오네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주어야 할텐데 Need the world know? 사람들이 알까요? Should a body meet a body 따뜻하게 안아주어야 하는데 Coming through the grain, 밭을 거닐어 오고 있어요 Should a body kiss a body, 키스해 줘요 The thing is a body's own. 제니가 원하고 있답니다.
<들놀이>
나아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 시내 건너 재를 넘어 들과 산으로 산들산들 가을바람 시원하구나 랄라랄라 씩씩하게 발맞춰 가자
나아가자 동무들아 손목을 잡고 산새 들새 노래하는 들과 산으로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랄라랄라 우리들도 노래 부르자
홀든이 맨하탄을 걷도 있을때, 어떤 소년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취직도 싫고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게 애들을 볼보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번뜩 들게 됩니다. 이 작품속엔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여동생 피비, 한때 유망한 작가였다가 헐리우드 대본작가가 된 D.B.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친구 제인, 대기업체 고문변호사인 아버지등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성장 소설입니다. 헉핀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이 작품은 고백체 소설 입니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으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허클베리핀의 "톰소여를 읽지 않았다면 나를 모를것이다..."와 닿아 있습니다. 바로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독자들에게 고백하는 1인칭 고백체 소설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언어 스타일은 속어와 비어, 은어로 가득합니다. 1950년대 고등학생들이 사용했을 법한 언어로 가득한 것이지요. 이 작품엔 lousy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라는 어근을 활용한 비어로 '이같이 씨부리는'이라는 뜻이지요.
테마는 미국적 삶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물질주의나 성공신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인 것이지요. 홀든은 친구들의 삶은 내 삶은 아니다 라며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 보다는 나는 내 식으로 살겠다라는 의지로 보여집니다.
가짜와 진짜의 대립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단절되어 있는 미국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미국은 가짜이고 위선이 판치는 사회이며 우리 모두는 고립 속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홀든의 아버지는 돈 버는 데 바쁘고, 어머니는 그걸 쓰느라 바쁘고 형은 대본 쓰느라 바쁘게 묘사 됩니다. 가족 사이에서 어떠한 의사소통도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따위는 모두 허위이자 가식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을 불신하고 의사소통이 부재한 이 시대의 소외와 고독을 그리고 있습니다. 홀든은 사람없는 서부의 양지 바른 곳에서 오두막 짓고 벙어리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물질주의 가치관을 혐오해서 반항의 몸짓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또한 겉모습과 실제의 대립으로 인한 괴리와 갈등, 긴장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게다가 개인의 개인적 자유와 사회의 성공신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는 대표적인 미국 문학의 주제이기도 한데요. 때묻은 구대륙에서 새로운 신대륙을 찾아 건설했기에 사회를 중요시하는 영국과 개인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문학적 유산이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너서니얼 호손의 <주홍글자>의 프린이 그러한 엄격함에서 뛰어나오고,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자연으로 들어가고, 소로우의 <윌든>이 오두막을 짓고 살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이 뗏목을 타고 자유를 찾아 흘러가고, 헤밍웨이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의 상흔을 입고 사회로부터 벗어나듯. 이 작품은 이러한 미국적 문학의 유산의 흐름 속에서 제목 '호밀밭'이 상징하 듯 1950년대 미국의 가치관을 통렬하게 비판한 대표작이라 할수 있습니다.
|
|
|
|
|
|
|
37 |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로스트 제너레이션 |
이*나 |
|
|
|
김욱동 선생님의 7차 강의는 학교 중간고사 관계로 참여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수강해서 리뷰를 올리게되었습니다. 흐. 그 주에 살펴볼 작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의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헤밍웨이 소설이 작품성이 있는건 알겠지만 좀 지루하달까? 그래서 꾸준히 읽지 못했는데요 이번을 계기로 다시한번 헤밍웨이 소설들을 읽어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헤밍웨이가 살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건인 세계 제 1차 대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은 1914년부터 1918까지 4년 남짓하게 일어난 전쟁입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대규모 전쟁이기 때문에 서구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서구 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죠.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를 합쳐서 4천만명에 육박할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미국은 이 전쟁에 뒤늦게 참전했습니다. 거의 끝 무렵에 말이죠. 대서양을 두고 있던 거리 덕분에 미국인 희생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고 경제 공황이 몰아닥치고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것과 반대로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유럽에서는 집단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사상적, 정신적으로도 무너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쟁을 겪은 후, 삶의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세태가 나타났습니다. 서구 문명에 대한 환멸과 냉소주의가 유럽 사회를 휩쓸다시피 했죠.
특히 문학과 관련해서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상실을 일컬어 상실의 세대 Lost Generation가 나타났습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는 방향으로 봐서 ‘길 잃은 세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헤밍웨이입니다. 헤밍웨이는 1차 대전에 직접 참전을 했구요, 그래서 직접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작품을 읽다보면 다른 작가들보다 직접적으로 더 피부에 와닿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Lost Generation이라는 말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이 처음으로 썼습니다. 스타인은 "That is what you are. That's what you all are... All of you young people who served in the war. You are a lost generation."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수리공부터 문학 작가들까지 모두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있고 모두가 ‘상실의 세대’라는 말이죠. 그리고나서 헤밍웨이가 1926년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라는 작품의 제사Epigraph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비로소 이 용어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Lost Generation의 대표작가로 부상하게 되었죠.
결혼도 여러 번 하고 이사도 여러 번 다니고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긴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생을 살았던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기자로 취업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제도적인 교육보다는 실제적 경험이 작가적 기반이 된거죠. 그러다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이에 헤밍웨이는 미국의 적십자 부대에 속해 앰뷸런스 병으로 자원을 해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이 되게 됩니다. 하지만 박격포탄을 맞은 헤밍웨이는 심한 부상을 입고 수술을 합니다. 이 때 헤밍웨이가 겪은 공포감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이때를 겪어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When you go to war as a boy you have a great illusion of immortality. Other people get killed; not you... Then when you are badly wounded the first time you lose that illusion and you know it can happen to you." 그 후 회복을 하게 된 헤밍웨이는 다시 신문 기자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을 하고나서 파리에 특파원으로 갑니다. 당시 미국의 환율이 강세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생활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던 이점도 있었죠. 파리에서 여러 유명한 문인들과 피카소 등 입체파 화가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그는 작가로서 작품 활동도 왕성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FBI에 쫓기고 있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긴 헤밍웨이는 결국 엽총으로 자살을 하면서 삶을 마무리 짓습니다.
헤밍웨이는 장편과 단편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입니다. 1953년에 퓰리처 상을 받고 1954년에 노벨 문학상을 타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필수 독서 목록에 헤밍웨이의 작품이 꼭 올라가게 되기도 하였죠. 사실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 내용만큼 제목도 하나같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 멋진 타이틀과 더불어 무겁고 깊은 주제를 문학에서 주로 다루었죠.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헤밍웨이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를 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 전선, 병원이 장소적인 무대가 되고 있고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7년 즈음이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서 기본적으로 1인칭을 쓰되, 어떤 철학적인 사색이라던가 하는 부분에서는 You라는 2인칭을 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헤밍웨이 자신의 첫사랑과 그 실연에 밑바탕을 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Agnes von Kurowsky라는 여성에게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녀가 이탈리아 장교와 약혼을 하면서 헤밍웨이를 배신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1929년 발표된 ‘무기여 잘 있거라’의 내용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거죠. 그래서 작품 제목에 Arms는 ‘무기’로 번역되지만 동시에 프레드릭이 사랑하는 연인인 캐서린의 양 팔을 가리키는 걸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흔히 작가들이 문학이라는 허구적 세계에서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그려내듯이 헤밍웨이 역시 현실과는 다르게 소설에서는 여자 주인공을 남자주인공에게 완전히 굴복시킵니다. 남자주인공 앞에 두 무릎을 꿇고 그를 신격화할 정도로 찬사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거든요.
여기서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자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탈리아 전선에 의용군으로 종군한 미국인 군의관 프레드릭 헨리Frederic Henry 중위와 영국의 지원간호사 캐서린 버클리Catherine Barkley는 열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냉혹한 전쟁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는 내용입니다. 부상한 프레드릭 중위는 밀라노에서 캐서린의 간호를 받다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캐서린은 임신을 합니다. 부상이 완치되어 전선으로 복귀한 프레드릭 중위는 이탈리아군이 총퇴각할 때 스파이 혐의를 받고 총살 직전 탈주합니다. 그 후, 두 사람은 스위스로 탈출, 산촌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했으나, 봄이 되어 캐서린은 사산하고 심한 출혈로 사망합니다. 혼자 남은 프레드릭은 비를 맞으며 쓸쓸하게 호텔로 돌아갑니다.
번역판이 아닌 영어로 쓰여진 원작을 읽다보면 알 수 있겠지만, 헤밍웨이는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의 문체를 Hard-boiled Style 이라고 하는데 강건하면서 간결하고, 딱딱한 문체를 말하는데요. 어느 작가보다도 딱 ‘아, 이건 헤밍웨이다.’라고 알 수 있는 그만의 문체가 있는거죠. 그래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가 발표되었을 때 The New York Times에서는 "No amount of analysis can convey the quality of The Sun Also Rises. It is a truly gripping story, told in a lean, hard, athletic narrative prose that puts more literary English to shame" 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심플하면서도 힘이 있는 그 문체. 헤밍웨이가 "Prose is not an interior decoration but an architecture, and Baroque is over."라고 말한 걸로 봐서도 그의 스타일이 좀 드러나죠?ㅎㅎ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어떻게 이런 문체가 나오게 되었을까요? Henry Louis Gates 교수는 헤밍웨이가 1차 대전을 경험했던 것이 그 이전의 장황한 만연체의 문체와 다르게 되었던 계기가 아니겠냐고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Carlos Baker 작가는 헤밍웨이가 단편 소설 작가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언어를 낭비하지 않는 간결한 문장을 배운 것이 아니겠냐고 짐작합니다. 강의를 하시는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기자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헤밍웨이가 신문 기자를 하면서 글쓰기의 잔뼈가 굵었는데 육하원칙에 따라 분명한 Fact만 쓰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헤밍웨이가 간명하게 글을 쓰게 되지 않았냐고 분석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의 themes은 다양한 각도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작가의 반전에 대한 인식이 담긴 소설이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프레드릭이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고통을 받으면서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사랑의 중요성 등을 깨닫는다는 관점에서 인식론적인 소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본질보다 선행하는 것이 존재(삶)이다.’ 라는 실존주의적인 면도 보입니다.
전쟁이 사람들에게 주는 상흔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일까요? '휴전'이라는 상황에 있지만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현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무섭고도 잔인한 전쟁의 상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듭니다.
|
|
|
|
|
|
|
38 |
세계대전과 피츠제럴드 |
이*나 |
|
|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 와타나베의 선배 나가사와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합니다. 하루키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할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했던 인물입니다.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 영원히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해 작품을 써야 한다."라는 작가적 야심을 당차게 드러냈던 F. 스캇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그의 포부처럼 그의 작품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는 세대를 아울러 유명 작가들부터 영문학도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혼돈과 낭만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1920년대를 가장 잘 그려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1920년대의 미국은 'Second Flowering'이라고 일컬어지던 시기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국가들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참전했지만 어쨋거나 전승국으로 인정받았으며 경제적 피해가 덜했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그야말로 패권을 잡은 국가가 되었죠. 주식시장의 수익률이 엄청나면서 경제적인 번영을 급작스럽게 이루었던만큼 퇴폐적이고 환락적인 문화가 주를 이뤘던 이 때를 가리켜 "the Age of Intorlerance," "the Age of Wonderful Nonsense,", "the roaring twenties" 등등 많은 별칭이 붙었는데 피츠제럴드 역시 "the Jazz Age"라고 지칭했죠.
혼란스러운 이 시기는 'Red Scares'라고 한마디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했던 시기였습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다른 쪽으로 가서 이민자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사용되기도 했죠. 한편 Ku Klux Klan (KKK)라는 백인 우월주의 비밀 결사조직 역시 다시 나타났습니다. 남북전쟁 직후 남부에서 생겨났다가 1920년대에 Racism이 강해지면서 다시 나타난거죠. 법적으로 금주법 Prohibition이 나타난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미국과 그 관할에 속하는 모든 영토 내에서 음용할 목적으로 주류를 양조, 판매 또는 운송하거나 미국에서 이를 수입 또는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주법은 사실상 집행이 불가능한 법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법을 비웃듯 집에서 술을 주조하고 오히려 흥청망청 더 마셔제끼는 모습을 볼 수 있죠.
한편, 1920년대 미국은 문화적으로 꽤나 낭만적인 시대였다고 보여집니다. 일명 "Flapper" 스타일의 불리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요. 짧고 물결치는 커트 머리와 몸에 붙는 짧은 스커트, 빨간 립스틱 등 강한 메이크업으로 치장하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파티를 열고 사교 댄스를 여는 문화도 이 시기에 성행했던 것입니다. 베이브 루쓰 Babe Ruth 를 비롯한 스포츠 영웅이 급부상하기도 했죠. 문학에서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포크너 등 유수한 작가들이 쏟아져나왔고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조지 거쉰 George Gershwin 등 재즈 스타들도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 사에서 첫번째 만화영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제작되었고 천연색 영화도 생산되었습니다. 라디오가 집집마다 놓이기 시작했고 포드 사에서는 조립라인을 통해 T 모델이라는 자동차가 대량생산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패션, 음악, 스포츠, 대중 문화 각각의 분야에서 활짝 꽃피운 황금시기였죠.
'재즈 시대의 왕자'인 F. 스콧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더불어 '미국 문단의 삼총사'로도 불립니다. 옆에 사진을 보면 아시다시피 굉장히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는데요. 사실 그는 몰락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자였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그는 여기저기 전전해야했죠. 그의 이런 경험은 작품 속 어떤 돈에 대한 매력이랄까. 이런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이를 보고 어떤 비평가는 '휘황찬란한 진열장 앞에서 침 흘리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영화화되어 알려지기도 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비롯해 단편 소설을 주로 쓴 피츠제럴드의 주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습니다. 당대에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작품 당 2~3만불이라는 높은 원고료를 받았지만 허영심과 낭비벽으로 항상 돈이 부족했죠. 그런 그가 "나는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 말고도 정교하게 고안한 그 무엇을 쓰고 싶다"며 집필한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미국의 사회상을 잘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는 1920년대, New York City의 Long Island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인칭 화자인 닉 Nick Carraway은 개입화자 Involved Narraotr로 사건에 개입하면서 독자에게 제이 개츠비 Jay Gatsby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플롯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닉은 내레이터이자 프로타고니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개츠비는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주인공입니다. West Egg 대저택에서 날마자 호화스러운 파티를 여는 제이 개츠비는 데이지 Daisy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데이지는 전통적인 세습 부자였던 톰 Tom Buchanan 과 결혼을 하죠. 가난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던 개츠비는 이후 약국사업으로 지칭되던 밀주 수입 및 판매, 훔친 증권 판매와 석유 사업 등으로 몇년 사이에 엄청난 재산을 쌓게 됩니다. 범법행위였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일구어낸, 그야말로 American Dream을 이루었던 거죠.
그렇다면 개츠비는 왜 '위대'할까요? 아마도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모에 작가는 개츠비에게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요. 개츠비는 집념으로 생을 살았습니다.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부를 쌓았고, 데이지의 집에서 눈길을 끄는 초록불빛을 밤마다 장식하면서 화려한 파티를 열었죠. 헤어진 지 오년이나 지났고 이미 유부녀가 되었지만 사랑하는 여자 주변을 부나방처럼 맴도는 개츠비는 애처롭습니다. 그의 최후 역시 비극적이고 어처구니없기까지 하죠.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통해서 오히려 무작정 소비하고 향유하고 어리석은 꿈에 젖는 우리의 삶을 드러내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자본주의와 손잡으며 변절해버린 초기 개척자들의 American Dream이 이제 American Nightmare가 된 것은 아닐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
|
|
|
|
|
|
39 |
희망하라, 조류를 거스르면서! |
무**대 |
|
|
|
피츠 제랄드를 알기 위해선 우선 1920년대의 미국을 살펴봐야 할듯 합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선 '뉴잉글랜드 르네상스'라 해서 미국문학의 제 1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호손, 멜빌, 포우, 위트먼, 에밀리 디킨슨, 소로우 등이 문학의 꽃을 피웠죠. 20세기 초반 1920년대 1차 세계대전 이후 이곳에선 미국문학의 '제 2의 전성기'가 펼쳐집니다. 바로 오늘 살펴 볼 '피츠제랄드'와 '헤밍웨이' 그리고 '포크너'가 활약한 시기이지요.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은 실질적으로는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헤밍웨이와 같은 앰뷸런스 운전병이나 병원인력만 후방에서 지원하곤 했으니까요. 허나 미국은 어찌되었든 연합군으로 함께 참전했기에 종전 후 승전국이라는 지위를 얻었습니다. 군수산업이 약간 움추러들었긴 했지만 바로 풍요를 개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경제력에 힘입어 문학도 발전하기 시작했지요.
전쟁터였던 유럽은 경제공황에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같은 독재정권이 들어서며 경제적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별 손실이 없었던 미국에겐 경제적 부를 쌓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지요.
그럼, 미국의 1920년대에 대해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대는 그 유명한 '재즈시대' 입니다. '무관용의 시대'라 하기도 하고, '넌센스의 시대' 혹은 '번영의 시대'라 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 미국이 현대로 들어선 시기이지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아주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진보적이었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의회와 각을 세웠습니다. 베르세이유 평화조약 인준도 거부당하고, 국제연합 가입도 실패하게 되었죠. 여론이 전후에 고립주의로 급선회 하면서 수입관세를 높여 무역장벽을 쌓았고, 이민금지법을 만드는 등 점차 국수적인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그 후 워렌 G 하딩은 '정상으로 돌아가는'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자국 국수주의와 패쇄주의 정책을 펴며 자유를 억압했고, 캘빈 쿨리지 또한 관세를 높이며 무역장벽을 더 높이 세웠습니다. 뒤를 이어 허버트 후버 시절엔 산업적으로 융성해 졌고, 드디어 1932년 미국 민주주의의 우상인 루즈벨트가 당선이 되었죠.
사회적으론 당시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감이 의도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반공 이데올로기가 들끓었다는 것이죠. 15만명이나 공산주의자 혹은 반기독교주의자로 몰려 탄압과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사코와 반제티 케이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 보스톤 노동자인 이들은 살인누명을 쓰고 좌익분자로 몰려 의혹이 남겨진채 사형을 당했으나 후에 진범이 밝혀져 미국 재판 역사상 큰 오점으로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Ku Klux Klan 또한 이 당시의 악몽으로 남아있습니다.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백인우월주의의 오명이죠. 남북전쟁 이후 노예가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남부에서는 그것을 거부하며 잔인한 일을 일삼는 비밀결사조직이 공공연히 활동했습니다. 이 시기는 수정헌법 18조에 의한 '금주법'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단체나 여성단체에 주장에 의해 악의 축인 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술의 제조, 운송, 판매는 물론 음주까지 금지되었던 시기였습니다. 허나 오히려 알콜 소비량은 더 증가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덕분에 알카포네와 갱단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고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수가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보면 금주법 시대의 문화가 아주 고스란히 드러나 있지요.
문화적으로 당시엔 Flapper(젊은 여성)의 시대였습니다. 미니스커트와 단발머리, 과감한 헤어스타일과 흡연으로 되표되는 이른바 '신여성'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후에 피츠제랄드가 쓴 소설의 제목도 [Flappers and Philosphers]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플래퍼 걸들의 찰스턴 댄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설적인 야구스타 '베이브 루스'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였구요. 싱클레어 루이스, 윌라 카터, 칼 샌드버그, 윌리엄 포크너, 헤밍웨이, 피츠제랄드 같은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재즈의 시대답게, 듀크 엘링턴, 루이 암스트롱, 플레쳐 핸더슨, 조지 거쉬윈, 콜 포터등이 대중음악계를 주도해 나갔습니다. 무비스타의 시대이기도 했는데, 찰리 채플린과 루돌프 발렌티노부터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와 디즈니 첫 애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아르데코'라는 스타일이 건축, 헤어, 의상, 가구, 영화, 회화 까지 전 분야에 걸쳐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경제, 기술, 과학에 있어서도 전후 미국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소비문화라는 게 탄생하기 시작했고, 노동자 평균 하루 일당이 5달러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 풍족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발명품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모델T'를 대량생산하면서 이른바 '포디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때가 바로 이 시절입니다.
1927년까지 1500만대를 판매하였다고 하니 과히 엄청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포디즘은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뜻하는데, 최근엔 포스트-포디즘이라고 하여 다품종 소량생산, 고급화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라디오가 미국 안방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갔고, 린드버그가 대서양을 최초로 단독횡단하기도 했고, 깡통식품과 가사용품시장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주식 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는 점입니다. Bull Market 이라 하는데, 108프로의 평균 수익을 내었다고 하니 과히 어땠을지 짐작이 갑니다. 허나 실은 이것은 1929년 검은 화요일 '대폭락'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자살자가 속출하는 등 사회문제가 급증했고, 결국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 들어서면서 Red Decade 즉 사회주의 사상이 떠오르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러한 격동의 1920년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작가 '피츠제랄드'의 연대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896년 미네소타 세인트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가구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칫밥을 먹으며 자라났죠. 그래서 어릴적부터 유독 '돈'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았다고 합니다. 배를 움켜쥐고 대도시의 화려한 진열장 속 음식을 바라보는 격이었죠. 카톨릭 학교를 나와서 프린스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만, 문학청년입네 하면서 진탕 술마시며 놀기만 했습니다.
그 후 자원입대하여 장교훈련을 받던 중 운명적인 여인 '젤다'를 만나게 됩니다. 젤다는 당시 판사의 딸에다가 명문가의 자녀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청혼을 거절하다 이내 둘은 1920년 첫소설 [낙원의 이쪽]의 출간과 함께 결혼에 골인합니다.
연달아 첫번째 단편 모음집인 [말괄량이 아가씨와 철학자들]이 호평을 받고, 두번째 소설 [저주받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출간하게 됩니다. 곧 [재즈 시대 이야기들]이 호평을 받기 시작하고 [개츠비]의 배경의 모델이 된 롱 아일랜드 그레이트 넥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 곳에서 [개츠비]를 구상하다가 1924년 드디어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게 됩니다.
그는 이 시기에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파리에서 만나 '찰스 스크리브너'라는 출판사를 소개시켜줘 출판을 도와주게도 됩니다. 이후에 [모든 슬픈 젊은이들]을 출간하고 1927년 헐리우드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이주하게 됩니다. 그 당시 피츠제랄드를 비롯한 재능있는 소설가들이 돈을 위해 헐리우드로 갔다가 안타깝게 재능을 낭비한 경우가 많은데요, 포크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내 젤다가 파리에서 신경쇠약에 걸리게 되고, 이어 [밤은 부드러워]를 출간하게 됩니다. 이어 [기상 나팔소리]를 출간하고 다시 헐리우드로 들어가 셰일러 그레이엄이라는 칼럼니스트와 사귀기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1940년 헐리우드의 아파트에서 젊은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1941년 윌슨 편집장이 [마지막 거물]이라는 유고집을 출간하게 되고, 1948년 아내 젤더가 화재로 사망하게 됩니다.
그럼 이번엔, 피츠제랄드의 문학적 유산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는 몰락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물질적 파산은 곧 정신적 파산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돈'에 대한 집착을 가지게 된 것이고 이것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삼총사 중의 한명입니다.
특히 단편소설들을 많이 출간했는데, [Saturday Evening Post]라는 독자가 많은 대중적 주간잡지에 연재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풍속화가 Norman Rockwell과 콤비가 되어 표지를 담당하고, 피츠제랄드는 단편소설을 엮어 내곤 했습니다.
헌데 이 당시 편당 원고료가 당시 시세로 2만-3만 달라였다고 하니 과히 엄청난 몸값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에너지를 쏟아 써낸 작품은 10여편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Pop-boilers 돈을 위해 마구 써내려간 작품들이었습니다. 허나 지금의 그를 최고의 작가로 칭송하는 걸 보면 역시 작가는 좋은 작품만으로 평가 받는듯 합니다. 절대 나쁜 작품으로 평가받거나, 평균을 내서 평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작가의 세계이니까요.
헌데 이렇게 막대한 수입을 벌었던 그가 돈을 벌기 위해 헐리우드에 갔던 것은 가난했던 어린시절에 대한 보상으로 심한 낭비벽이 있어서였습니다. 부인과 함께 유럽을 돌아다니며 파티며 대저택과 고급차 구입에 흥청망청 써 댔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작가적 야심이 무척이나 커다랗기도 했습니다. "모든 작가는 자기 세대의 젊은이들,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그 뒤 영원히 미래 세대의 교육자들을 위해 작품을 써야한다"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실제로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대학의 필독서에 꼽히면서 영문학의 필수코스가 되어버렸으니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고나 할까요.
이제 [위대한 개츠비]의 창작과 출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922-24년 동안 그레이트넥에서 거주하면서 경험한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미네소타주 출신으로서 자신이 가난하게 자란 경험과 부인 젤다와의 결혼경험도 함께 엮여 들어갔지요. 파리에서 주로 쓰다가 1925년 드디어 출간하게 됩니다.
"나는 새로운 그 무엇- 색다르고 아름답고 단순한 것 말고도 정교하게 고안한 그 무엇을 쓰고 싶다" "마침내 참으로 내 작품이라고 할 그 무엇을 썼다"
그는 편집자 Maxwell Perkins에게 집필 당시와 탈고 후 보낸 편지에서 위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이 작품엔 1920년대가 고스란히 녹아나 있습니다. '191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시스터 캐리]를 읽고, 193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분노의 포도]를 읽어라. 헌데 1920년대의 미국을 알려면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 라고들 합니다.
대공황 직전까지 금주법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 당시 시대상은 도덕적으로는 해이해졌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번창했던 시기였습니다. 제목인 [The Great Gatsby]에서도 알수 있듯 이 작품의 개츠비가 진실로 위대한 것인지, 아이러닉한 표현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달려있겠지요.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왔지만 최근엔 그냥 [그레이트 개츠비]라고 제목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위대한' 이라는 번역이 아무래도 걸렸던 탓이겠죠. 터키에서는 [스플랜디드] 라고 하기도 하고, 한때는 [화려한] 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자주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스테디셀러가 되는데 한몫하기도 했지요.'개츠비'를 3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수 없다는 주인공의 설레발에 너도나도 궁금해서 사보기 시작했다고도 하네요. 실제로 하루키는 부인과 까페를 하면서 문학수업을 하면서 최초로 텍스트를 삼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번역해서 출간하기도 했는데요, 일본에서는 꽤 많이 팔린 번역서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과연 개츠비는 위대할까요? 그는 실정법을 어기면서 조폭과 손잡아 막대한 돈을 번 범법자일수 밖에 없습니다. 허나 경멸스럽지만 예민하기도 하고 꿈과 이상이 있어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어 높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이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입니다. 롱아일랜드의 이스트 에그/웨스트 에그라는 문학적 가상공간에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실제 롱 아일랜드 지도를 보면 달걀 모양의 작은 지역이 있는데요, 이 곳을 개츠비의 공간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웨스트 에그는 그가 살았던 그레이트 넥 즉 신흥부자들의 공간이고, 이스트 에그는 세습부자들이 있는 타락한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물은 우선 1인칭 화자이면서 사건에 개입도 하는 닉이 있고, 개츠비와 톰, 데이지, 조던 베이커와 마이어 울프쉼등이 등장합니다. 닉은 involved narrator 즉 개입화자 입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본인이 주인공이기도 한 것이지요.
이 작품은 상징과 이미지로 가득차 있습니다. 녹색의 묘사는 희망과 꿈을 상징하고, 노란색의 묘사는 개츠비의 넥타이처럼 돈의 색이라 할 수 있죠. 쓰레기 하치장은 잿빛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이는 죽음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것입니다. 초기 필그림들이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보스톤에 도착해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꿈꾼것은 언덕위에 도시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예루살렘, 즉 종교적인 자유가 있는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자유가 있는 정신적 이상향이 원래 그 건국이념이었습니다.
허나 미국은 점차 황금을 꿈꾸게 됩니다. 원래부터 청교도주의자들은 한손엔 성경책을 또 한손엔 황금을 들고 있었다고들 합니다. 애초에 물질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지요. 교리중에 가난한 이에겐 절대로 적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이고 빈자는 저주이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논리를 차곡차곡 펼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이러한 청교도 정신안에 내포되어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싹이 자란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은 현재에 와선 아메리칸 나이트 메어가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개츠비의 꿈은 순수했지만, 과정은 옳지 않았습니다. 조폭과 연결되어 채권을 불법 수령하고 금주시대에 술을 팔면서 마구잡이로 부를 축적했으니까요. 허나 그의 목적은 집짓도 돈 벌어 헤어졌던 첫사랑 데이지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점차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을 그려낸 것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가 [블루, 레드 앤 화이트]이기도 했는데요, 미국의 성조기 색깔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의 미국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이 작품은 또한 동부와 서부의 갈등을 그려내고도 있습니다. "서부인들은 패할수 밖에 없어. 영악한 동부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거든"이라 자조적인 말을 내뱉습니다. 닉은 동부에 와서 증권과 채권을 배우며 부를 축적하다가 결국엔 다시 서부로 돌아오게 됩니다. 동부가 쾌락이 넘치는 유럽적 가치관적 세계라면, 서부는 청교도 정신이 남아있는 성실한 신대륙의 가치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꿈과 환상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츠비는 꿈을 잃지 않습니다. 남의 아내가 되어 아이까지 가진 데이지를 되찾다는 것은 잃어버린 청춘, 젊음, 사랑을 되찾는 것이니까요.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을 보면 커츠대령이 죽고 말로가 커츠의 애인을 찾아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커츠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환상마저 없다면 이 세상은 삭막하고 살 가치가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콘라드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피츠제럴드도 이 작품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 역사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텍스트 이기도 합니다. 인종이나 계급, 성차에 따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 작품속에 있는 그러한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 신 역사주의인데요. 인종을 보면, 닉은 밥 먹으면서 책 한권 읽지 않던 탐이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백인종이 조심하지 않으면 침몰할 거야" 라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타도해야 해요"라고 한마디 거들기도 합니다. 백인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계급을 보면, 탐은 유산자이고 무산자들을 무척이나 탄압하곤 하지요. 성차를 보면, 데이지는 그냥 탐의 악세사리로 등장합니다. 그저 같이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닉은 이것에 화가 납니다. 나같은면 뛰쳐나올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이러한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그러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관해 몇가지 의견을 말하고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유명 소설가에 의해 이 작품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는데요, 작가적 감수성으로 유려하게 풀어 낸것은 좋으나 몇가지 우려할 만한 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퍼블릭 도메인이 되어 국내에만 25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만 번역이 아닌 번안 수준인것이 태반이라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작품의 묘미를 알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피츠제랄드 하면 '재즈시대 작가' 라며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이 작품은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 동명의 영화로도 무척이나 유명한 작품이죠. 얼마전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그의 단편 중 한편이 영화화되어 호평을 얻기도 했습니다. 개츠비의 인기는 레고, 만화, pc 게임으로까지 만들어질 만큼 그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물랑루즈' 의 감독인 바즈 루어만이 '디카프리오'와 '캐리 멀리건'을 캐스팅 하여 3D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강도하의 웹둔 '위대한 캐츠비'로 이 작품은 다시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재미난 사실은 사석에서 강도하 작가에게 이 소설의 어떤 면을 참고 했냐고 묻자, 제목을 정하던 중 머리를 감고 나서 왁스를 바르려고 보니 '갸스비' 라는 이름이 발음도 좋고 입에 달라 붙어서, 이 왁스의 이름과 비슷한 소설의 제목이 생각나서 '위대한 캐츠비'로 지었다는 답변을 듣고 뒤로 넘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전설은 참 묘하게 이렇게 재생산되기도 합니다.
유명했던 피츠제랄드와 그의 아내 젤다의 연애에 관한 소설도 한편 따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젤다가 피츠제랄드가 죽은 후에 그와의 연애담을 회상하는 소설이라는데, 젤다에 촛점을 맞춘점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의 한 복판에서 생을 살아갔고, 실제로 작가로서의 부와 명성으로 그 성공을 한몸에 받았던 그는 신경쇠약에 걸린 부인을 홀로 두고, 헐리우드에서 더욱 부를 쌓기 위해 재능을 낭비하다가 심장마비로 생을 마쳤습니다. 부의 한복판에 섰다가 다시 스러져 간 개츠비의 인물들처럼 그의 삶 또한 아스라이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 세계대전 후의 경제적 풍요가 곧 바로 경제 대공황을 맞게 한 것처럼, 성공은 언제나 실패를 전제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화려한, 혹은 위대한 어쩌면 그레이트한 삶 또한 그렇게 사라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잠시나마 그 찰라의 풍요를 맛보았으니 개츠비와 피츠제랄드의 삶은 위대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이 화려한 재즈시대를 그려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엔딩은 금주법 시대에 갱스터로서 엄청난 부를 맛보고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연인까지 빼앗고 정치인의 권력까지 얻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늙은이가 뒤늦게 찾아온 친구의 순수함을 간직한 모습에 자신의 온 삶이 무너져 내려 쓰레기 수거차에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아마도 개츠비의 삶도, 피츠제럴드의 삶도, 아니 그 당시 경제적 부로 인해 현재 전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인들의 삶도, 순수했던 그 한 순간을 잊고 살았던 자신의 과거를 깨닫는 순간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오직 인생의 목적이 부자되는 것에만 올인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남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에 무릎꿇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소소하지만 작은 희망에 만족해 하며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아갈 것인가는 오롯이 우리들의 선택일 것입니다.
개츠비의 마지막 문단을 곱씹어 보며 말을 맺습니다. 희망하라, 조류를 거스르면서! "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
|
|
|
|
|
|
40 |
제게도 '짐' 같은 방랑의 동반자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무**대 |
|
|
|
다시 한번,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철학에서 리얼리즘은 유명론(nominalism)과 반대되는 용어입니다. 유명론이란 선,악,정의 같은 추상적 개념은 이름으로만 존재하지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죠. 이와는 반대로 리얼리즘은 이러한 추상적 개념은 실제 시공간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은 중산층의 일상적인 경험을 사소설 형식으로 사실적,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부르주아 리얼리즘'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비판적 리얼리즘' 그리고 문학을 국유화 하여 공산당의 노선에 따라 창작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있습니다.
그럼, 이중에서도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유럽에선 이미 리얼리즘은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 한껏 개화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남복전쟁(1861)직후 에서야 꽃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은 '차 한잔의 비극'이라는 윌리엄 딘 하월즈의 표현처럼 가정에서의 결혼, 부부,가족갈등을 담은 '가정적 사실주의'와 헨리 제임스를 중심으로 하는 작중 인물의 심리에 촛점을 두어 심리적 갈등이나 뉘앙스를 담아낸 '심리적 사실주의. 그리고 마크 트웨인으로 대표되는 특정지역이나 배경에 촛점을 맞춰 그 지역의 삶을 생생히 담아내는 '지역적 사실주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마크 트웨인의 연대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935년 미주리주 플로리다 마을에서 7남매중 6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사무엘 랭혼 클레멘스' 입니다. 후에 '마크 트웨인'이라는 이름으로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수로 안내인이었던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증기선이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선 대략 2피트 정도 깊이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 깊이를 재어 봐라' 라는 수로 안내인의 용어가 'Mark Two!' 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트웨인은 필명을 지을때 이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크 투->마크 트웨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그닥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소년시절 미시피피 강변에서 살면서 이런 저런 사건을 체험하며 자랐던 트웨인은 4세대 부친을 여의고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만 겨우 수료하고 정규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작가수업을 쌓아 갔습니다. 13세부터 이미 인쇄소 활자공으로 먹고 살기 위한 생활전선에 나아간 그는 시골 신문사에 근무하며 간간히 글을 발표하곤 했습니다. 미주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쇄공 일을 하면서 틈틈히 독서와 창작에 매진하게 됩니다. 당시 미시시피 지역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증기선에서 형이 폭발로 인해 사망하게 되고 그는 수로 안내인 자격증을 따게 됩니다. 허나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더이상 증기선이 다니지 않자 그만두고 신문기자로 전업하게 되죠.
1865년에 [뜀뛰기 개구리]라는 단편을 발표하며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지금의 하와이인 '샌드위치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취재를 하기도 하고, 뉴욕에서 잠깐 체포되어 감옥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단편 단행본이 인기를 끌자 지방 신문사의 후원으로 지중해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도 하죠. 이때의 경험을 기록한 '해외 여행기'를 출간 하고, 아내 '올리비아'와 결혼을 하고 수잔과 클레어 두 딸을 얻습니다.
드디어 1876년에 [톰소여의 모험]을 출간하고 자매편인 [허클베리핀]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1881년에 [왕자와 거지]를 출간하고, 미시피피강을 따라 증기선을 타고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때의 경험이 [미시피피강의 생활]이라는 논픽션으로 출간되게 됩니다. 드디어 1883년 7년간의 산고 끝에 [허클베리 핀]을 탈고 하고 1884년 영국에서, 1885년 미국에서 출간하게 됩니다.
1988년엔 예일대에서 명예석사 학위를 받고 1894년엔 [톰소여 어브로드]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1896년엔 간디와 만나기도 했으며 [존 오브 아크]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이듬해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도 만남을 갖게 됩니다. 예일에서 다시 문학박사 확위를 받고는 부총장으로 근무하기도 합니다. 1902년 고향 한니발을 방문해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1909년 트웨인은 재미있는 말을 건넵니다. "핼리혜성이 미국에 나타났을때(1835년) 나는 태어났다. 아마도 내년 쯤이면 그 혜성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아마 사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1910년 트웨인은 정말 사망하고야 말았고, 이틀후에 혜성이 예언처럼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참 멋진 전설을 남기고 떠난 셈입니다.
그는 평생동안 30여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대표작 [허클베리 핀]은 미국 리얼리즘 문학의 역사를 시작한, 아니 미국 문학의 역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럼, 트웨인의 문학적 전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는 제도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명문 보든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너서니얼 호손과는 달리 그는 오직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자랐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한 살아있는 공부를 통해 그는 작품속에서 거침없이 삶의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헤밍웨이도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했고, 포크너 역시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당대 최고의 작가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저널리즘'으로 삶의 투쟁 한 가운데 늘 있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며 전국각지와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트웨인의 리얼리즘은 '미국적 리얼리즘'과 '지역적 리얼리즘'의 결합된 형태입니다. 고향에 뿌리를 박고 흙냄새 맡아가며 구체적인 경험을 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관념적이고 공간을 오갔던 헨리제임스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는 원래 수로 안내인이나 목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허나 작가로 멋진 삶을 살아냈습니다. "나는 큰 야심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수로 안내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느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성공했고, 다른 한가지는 실패했다. 다른 한가지에서 실패한 이유는 그 직업에 필요한 도구, 즉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째 소명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문학에 뜻을 두었다. 격이 낮기는 했지만 해학 문학에 소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도 자랑할 게 못 되는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가장 큰 장기였다."
당시엔 대중문학이라며 격이 낮다며 그닥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시대를 초월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세계인이 읽는 대중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작가로서의 삶은 그야말로 '위대한 소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의 작품은 대략 두가지 경향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미시시피 3부작'이라 불리는 [톰소여의 모험]와 [허클베리 핀] 그리고 [미시시피 강변의 생활]과 유럽을 배경으로 한 일련의 소설들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왕자와 거지][이상한 손님][잔다르크] 이 있습니다.
그는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휘트먼과 트웨인을 읽어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특히 그는 '미국의 세익스피어' 혹은 '미국문단의 링컨'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적 이상을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고, 자연존중, 물질문명의 배척, 사회풍자, 뛰어난 유머감각이 작품 전반에 흘러나옵니다. 허나 그의 이러한 '낙관주의'는 후반기에 '염세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가정불행과 딸의 투병과 죽음 그리고 사업실패와 파산같은 개인적 배경과 함께 미국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목격한 사회적 이유까지 합쳐져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작품에서 보면 삶에 대한 아주 진겁고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염세'로 시작해 '낙관'으로 전향한 헤밍웨이의 행보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트웨인에게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대중성'에 있습니다. "내 작품은 물과 같다. 위대한 천재들의 작품은 와인이라 할수 있다. 다행히도 모든 사람들은 물을 마신다." 교육을 받은 식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었던 고급문학을 추구했던 '헨리 제임스'와는 전혀 반대라 할수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허클베리 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 현대문학은 허클베리 핀 이라는 소설 한 권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극찬을 마지 않았고, 포크너 또한 '트웨인이야 말로 나의 문학적 아버지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출간 당시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쓰레기'라 불리며 공공 도서관에선 금서로 올렸고, 학교에선 교과과정에서 못 읽게 했을 정도 였습니다. [허클]에는 본 받을 게 전혀 없다며 물건을 훔치고, 학교도 안가고, 거짓말을 밥먹듯 하며, 욕이 난무하고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 논란의 핵심은 'Nigger'라는 단어에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이 단어는 무려 300여차례나 등장을 합니다. 흑인을 비하하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욕설에 가까운 말이 난무하기에 이 작품은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인디언'이라는 단어도 등장하는데, 원주민을 지칭하는 이 단어도 직접적으로 사용하기엔 위험한 단어였습니다. 콜롬버스는 인도에 가려다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죽을 때까지도 이들이 인도사람인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디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들은 원래 몽고족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대이주를 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게 된것입니다. 몽고반점도 있고, 맷돌을 사용한다거나, 어린애를 업고 다니고, 항아리를 머리에 지고 다니는 등 전형적인 몽고족의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장르적으로 '피카레스크 소설'에 속합니다. 스페인어로 '피카로'라는 '악한'이 등장하는 일명 '악한 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주인공 '핀'은 모친이 사망하고, 부친도 주정뱅이라 더글라스 아줌마에게 양자로 키워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피카레스크 소설' 답게 방랑과 여행의 모티프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성배나 아버지를 찾아 헤메이는 '추구의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성장소설'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핀'은 온갖 경험을 겪으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을 얻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유산'에서 '핍'이 도로를 타고 여행한다면, '핀'은 강변을 흘러 방랑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셋팅은 시간적으로는 '출간되기 40-50년전 이야기다'라는 서두에 따르면 1835년-1945년 즈음으로 추정됩니다. 공간은 미국의 미주리주 세인스피퍼스버그 남부 아칸소주라 설정했습니다. 세인스피터스버그는 하디의 캐스터 브릿지처럼 지도에 없는 가공의 공간인데 러시아의 쌍페쩨르부르크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작품은 '여행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여행은 심리적 여정의 메타포 이기도 합니다. 계속 노예제도가 있는 남부로 흘러 내려갑니다. '짐'은 주인이 팔려하기에 '육체적 자유'를 추구하고 있고, '핀'은 부친의 학대와 문명으로부터의 도피를 하므로 '형이상학적 자유'를 추구 하고 있습니다. 옷도 입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는 이런 모든 제도적 삶이 거추장 스러웠던 것입니다.
이 작품은 '사해 동포주의' 혹은 '인류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짐'과 '핀'은 친구의 우정을 나누면서 유사부자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원래 핀은 흑인은 인간이 아니고 그저 소유물일뿐이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짐과 함께 여행하며 내 생각이 잘못되었구나, 백인들의 신화일 뿐이구나, 흑인도 슬픔을 느끼는 인간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 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합니다. 남자 둘이 웃통 벗고 뗏목으로 여행하는 이야기라 섹슈얼한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또, 이 작품은 흑인과 백인이 모두 평등한 사람이라는 미국적 민주주의의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그리기도 하는데, 강변의 마을이 칼뱅주의나 빅토리아 시대의 낡은 도덕률, 미시시피 강변의 폭력과 악, 흑인 노예제도가 문명이라면, 강가 그 자체는 자유와 안정, 행복, 평화, 휴식, 조화가 있는 소로우의 윌든 같은 자연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위선적 도덕과 타고난 양심을 그려내고도 있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위선적 노예제도에 맞서 '핀'은 '아, 좋아. 지옥에 가겠어' 라며 아줌마에게 짐을 데려가라는 편지를 찢어 버리게 됩니다. 청교도 사회에서 이러한 아이의 깨달음은 위험한 것이어서 아마도 금서의 목록에 올리게 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문학이 개인이 굴복하고 사회가 승리하는 이야기라면, 미국문학은 개인이 갈등하다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사회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호손의 헤스터 프린이나 트웨인의 핀, 헤밍웨이와 샐린저의 주인공들이 그러합니다. 종교적 박해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찾아 온 곳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인종차별주의'적 작품이라 훼손된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최근까지도 'Nigger'라는 단어를 전부 삭제하고 'Slave'로 바꾸어 새로이 작품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핀이 남쪽에 도착했을때 증기선이 사고났다고 했을때, '누구 다친사람없냐?'며 질문을 받았을때 '없어요. 검둥이 하나 밖에요' 라는 핀의 대답이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흑인은 인간이 아니기에 다친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허나 '헉 핀은 인종차별주의자인가?'라는 최근의 논문에서 이것에 반박하는 구체적인 논거가 흥미롭게 제시되었습니다.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가 배경인 작품인데 누구나 사용하던 'Nigger'라는 단어가 문제시 될 것이 없다는 것과 오히려 남부의 흑인을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헤밍웨이가 했던 말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수 있습니다.
"내 생각 중 하나는, 스킨 색이 어떻던지 간에 이 세상에서 인간의 마음이란 다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대게 검고 갈색인 피부는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백인은 극히 드물다" "이 세상엔 웃기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것 중 최고는 백인들이 다른 야만인들보다 덜 야만스럽다고 하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트웨인은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삶을 몸으로 살아내다가, 자신의 어린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감동할수 있는 '대중적'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출간해서 부를 쌓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예술가로 대접받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짐'과 같은 유년시절 친구와 자신의 분신 '핀'같은 낮은 곳에 있는 못 배우고, 못 먹는 민중들을 위해 자신을 한껏 낮추고 그들을 위한 이야기를 써 내려 갔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유와 평화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펜을 들었다기 보다는 자본주의적 세계로 점점 탐욕스러워지는 미국의 초창기의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기며 추락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자신의 딸들에게 좀 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한 모험 성장담을 써 내려갔을 것입니다.
만약 트웨인이 지금의 전 지구적 국제 깡패가 되어있는 미국의 현실을 목도했다면 어떠한 소설을 써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가 노년기에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지며 종교와 인간에 대한 묵직한 작품을 써 내려간 것에서 유추해본다면 어쩌면 '핀'과 '짐'이 이슬람과 동남아를 순례하며 유랑하는 이야기를 쓰진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 개봉한 영화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보면 주인공이 바로 이 작품 '허클베리 핀'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쾌하게 웃으며 즐기던 두 연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명성에 걸맞게 유수의 영화와 드라마, 애니로 제작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만들어질 것입니다.
미국의 트웨인 박물관에 가면 트웨인이 사용하던 타자기와 담뱃대, 핸드 프린팅, 그리고 육필원고가 남아 있습니다. 타자기와 담배, 그리고 종이와 펜. 이것이 얼마나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것인지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제게도 '짐' 같은 방랑의 동반자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책을 함께 읽어가는 여러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뗏목은 바로 트웨인과 같은 작가들의 책일 것입니다...
|
|
|
|
|
|
|
41 |
비가 그치면 집 앞 우이천이라도 따라 걸어야겠어요. |
이*나 |
|
|
|
사물을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온 'res(=thing)' 리얼리즘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문예사조입니다. 예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포스팅에서 유럽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말했었다면, 오늘 김욱동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과 함께 말씀해주셨습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을 기준으로 그 이후에 리얼리즘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리얼리즘을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먼저 가정적 사실주의Domestic Realism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 즉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등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룬 작품들이 속합니다. 두 번째로 심리적 사실주의Psychological realism는 작중인물들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특정한 지리적 배경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지역적 사실주의Regional realism에 속합니다. 마크 트웨인 지역적 사실주의의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시시피 강변에 위치한 미주리 주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미시시피 강에서 증기선의 수로 안내인을 하던 마크 트웨인은 월트 휘트먼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이고, 미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힙니다. 저는 8월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굉장히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 다녔는데, 마크 트웨인의 “The coldest winter I ever saw was the summer I spent in San Francisco”라는 말에 엄청나게 공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보다도 더 강렬했던 기억이죠. ㅋㅋ
트웨인은 제도적인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독학했던 사람입니다. 설명하고 교훈을 주려기보다는 거침없이 삶의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진솔한 감동을 줍니다. 또한 트웨인은 여러 신문에서 특파원 등 저널리스트로 일했습니다. 직접적으로 다른 이들을 접하고 경험하고 체험했던 트웨인은 그렇기 때문에 삶을 구체적으로 더 드러내는 작품을 쓸 수 있었죠.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큰 야심이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하나는 수로 안내인이 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성공했고, 다른 한 가지는 실패했다. 다른 한 가지에서 실패한 이유는 그 직업에 필요한 도구, 즉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째 소명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문학에 뜻을 두었다. 격이 낮기는 했지만 해학 문학에 소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도 자랑할 게 되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가장 큰 장기였다.”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트웨인은 작가로서의 소명감을 가졌습니다. 트웨인은 유머 Humour가 담긴 해학 문학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은 어렵지 않고 대중적입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을 ‘물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물을 마십니다. 즉 그는 뛰어난 문학적 감식력이 뛰어난 몇몇 지식인들을 위한 작품을 쓰기 보다는 글을 읽을 줄만 알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일반 독자까지 아울러 쉽지만 깊은 작품을 쓴 거죠. 트웨인은 30권이 넘는 많은 작품을 썼는데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그가 쓴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유명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과 이어지는 작품입니다. 톰 소여의 모험이 끝나는 시점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시작하거든요. 이 두 소설과 더불어 미시시피 강의 생활 Life on the Mississippi을 "Mississippi Trilogy"라고 하며 트웨인의 작품 중에 가장 알려진 세 가지 작품으로 꼽힙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Picaresque Novel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종의 성장 소설이랄까? 악한(여기서 악하다는 의미는 ‘나쁘다’라기 보다는 고아, 불행한 사람 등을 일컫습니다) 주인공이 삶의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소설이죠. 예전에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도 여기에 속했죠?ㅎㅎ 이러한 유의 소설에서는 특히 ‘여행’의 모티프를 삼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미시시피 강에서의 모험을 통해 헉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강을 따라 한 삶의 유형에서 다른 삶의 유형으로 가는 정신적인 여행인거죠. 예를 들면 짐Jim이 노예제로부터의, 신체적 자유를 향한 여행이라면 주인공 헉 Huck Finn의 경우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문명사회의 제도적인 것으로부터의 벗어나고픈 정신적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면, 더글러스라는 미망인에게 의탁하여 살고 있는 헉은 숨 막힐 것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과 주정뱅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도망쳐 나와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내려갑니다. 두 사람은 때때로 육지에 올라가서 본 젊은이들의 비련의 이야기, 불량배들의 싸움, 악당들의 사기 등에서 헉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이야기는 톰 소여의 큰어머니에게 팔려간 짐을 헉이 톰의 도움으로 구출하는 데서 끝납니다.
이 소설의 theme는 다양합니다. 인류애,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 위적인 도덕과 타고난 양심, 인간의 잔인성이 담긴 문명과 대조되는 자연 등 여러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처음 출판되었을 당시에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평단으로부터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으며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헉은 매번 거짓말하고 도둑질을 일삼는 아이거든요. 그리고 'nigger'라는 흑인을 비하하는 욕이 이 작품에서는 300번 이상 나옵니다. 따라서 헉, 나아가 작가인 트웨인까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게 됩니다. Native American 들이 'Indian'이라고 노골적이고 부적절하게 나오기도 하죠.
그러나 이 소설 자체는 남북 전쟁 후인 1885년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사실 작품은 출판되기 30년 전쯤인 1850년대가 시간적 배경입니다. 즉 남북 전쟁 전입니다. Peter Salwen이라는 학자가 쓴 “Is Huck Finn Racist?"라는 논문에서는 그 당시,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 남부에서 오히려 n-word를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쓰면 오히려 이상한 소설이 된다는 거죠. 소설에서 문제가 되는 장면으로 배 사고가 난 후 Aunt Sally가 "Good gracious! anybody hurt?"라는 질문에 헉이 "No'm. Killed a nigger."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친사람이 있냐는 말에 아무도 없고 그냥 흑인 한명이 죽었다는 이 말은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 다분히 녹아있습니다. 하지만 Salwen은 트웨인이 인종차별주의자라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부의 흑인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트웨인의 말을 인용합니다. 트웨인은
"One of my theories is that the hearts of men are about alike, all over the world, whatever their skin-complexions may be."
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차별적 시각으로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흑인들을 잔인하게 차별했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읽는게 저는 더 옳다고 생각해요.
헉은 다른 사람의 '소유'인 노예 짐과 함께 여행하고 있는 자신에게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이라고 말하며 소유주에게 보내는 편지를 찢어버립니다. 위선적이고 학습적인 도덕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양심에 솔직히 따르고 있는 헉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평등'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지옥을 가겠다고 말하는 어린 소년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에 대해 나는 눈을 감고 외면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방황하는 길 위에서 제 자신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비가 그치면 집 앞 우이천이라도 따라 걸어야겠어요.
|
|
|
|
|
|
|
42 |
"Everything is ideological" |
이*나 |
|
|
|
"Everything is ideological"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성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까? 스탕달이 'Politics in a literary work is a pistol shot in the middle of a concert'이라고 말한 아포리즘은 문학 작품은 정치적인 의도를 배제해야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는다. 하지만 스탕달은 이 문구 뒤에 'a rather coarse matter, but, on the otehr hand, something which one ignores at one's peril'라는 대목을 덧붙였다. 즉 문학에서 정치성은 결코 무시할 수 만은 없다는 불가피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아트앤 스터디 영문학 강좌는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로 조지 오웰도 그의 작품 동물 농장을 살펴보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역시 "Why i write" (1946)에서 어떠한 책도 정치적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는 우선 글을 쓰는 목적(동기)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번째는 순전히 이기주의적인 목적에 의해서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여러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다거나, 죽은 뒤 이름을 남기고 싶다거나 등등 자신의 욕망에 의해서 글을 쓰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심미적 열정을 위해서이다. 외적/내적 세계의 아룸다움 혹은 자신이 느낀 고귀한 경험 등을 놓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역사적 충동에 의해서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거짓을 가려 호대에 올바르게 남기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 마지막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이다. 세계를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고 싶은 정치적인 열망에 의해서 글을 쓰게 된다. 특히 오웰은 자신이 글을 쓰는 동기로 마지막 정치적인 목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민주 사회주의를 옹호하며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오웰은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 에서 언어 자체와 정치성을 연결한다. 그는 영어가 갈수록 타락해간다고 보았고 그 이유는 다름아닌 정치가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정치와 언어가 밀접하게 연관지으면서 언어의 순화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도 바로잡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서는 라틴어원에서 비롯된 단어 보다는 순수 영어 단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로 치면 한자어에 기원을 둔 단어가 아닌 순우리말을 주로 사용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그의 정치적 성향은 "동물 농장 Animal Farm" (1945)에서 극대화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정치성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는 정치와 예술을 창조적으로 접목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allegory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먼저 어린 아이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고 억압받는 계층에 대해 생각하게 되어서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오웰이 2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되는 스페인 내란에 사병으로 참전해서 소비에트 정부의 실사을 깨닫게 되면서이다. 오웰이 "동물 농장"을 집필하던 시점인 1943년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나치를 소련의 the Red Army가 후퇴시킴으로써 스탈린의 소련은 미국과 영국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와 함께 소련의 잔혹한 정치 체계, 군사력, 불순분자에 대한 강력한 숙청이 소련 체제의 강력한 장점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 지식인들의 친소련적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오웰은 ‘스탈린주의도 전체주의라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당시의 흐름과는 다르게 크게는 전체주의와 소비에트 신화를 공격하고 작게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풍자했던 오웰의 "동물 농장"을 출판해준다는 출판사는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1945년, 독일과의 전쟁이 끝나던 달에 출판되었다. 그래서 '동물 농장'은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정치색이 담긴 작품이라고 읽어낼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자면, 러시아 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러시아의 경제적, 사회적 모순이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던 1917년 2월에 혁명이 발생되어(2월 혁명) 기존의 차르 체제가 붕괴되고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하였으며, 그 해 10월에는 사회주의 혁명(10월 혁명)이 발발하여 레닌을 지도자로 한 볼셰비키(구 소련의 공산당)가 집권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동물농장의 핵심캐릭터인 나폴레옹이 상징하는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로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10월혁명 전까지 스탈린은 정계에서 주목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으나 1918년 이후 민중감독관에 임명됨과 동시에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군사지휘권을 받았으며, 1920년엔 소련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다. 1924년에 이르러 이미 거의 모든 내부 정치 조직체는 스탈린의 지배권 하에 들어갔고, 1920년대 말에, 국제 공산주의 혁명을 주장하던 트로츠키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를 보면 ,
존스씨 인간들 동물들 메이저영감 프레드릭 필킹턴 돼지들 나폴레옹 스노우볼 복서 클로버 몰리 벤저민 뮤리얼 닭들 아홉 마리 개 양들 오리들 들쥐들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자본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 칼 맑스/블라디미르 레닌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프랭클린 D.루즈벨트 볼셰비키 이오시프 스탈린 레프 트로츠키 프롤레타리아트 (민중 계급) 중산층 러시아 백군/쁘띠부르지아지 소련에 살고 있는 유태인/조지 오웰 인텔리겐치아 (지식인층) 부농 계층 (클라크) 비밀경찰 (NKVD)/내무인민위원부 우둔한 민중 선전대 소련 북부의 원주민들
이뿐만 아니라, 배경과 사건들까지 모두 당시의 정치적인 사건들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문학과 정치가 만나는 경계에서 이 작품은 문학적으로도 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에 담긴 동물 군상에 대한 비유는 인간들에게 긴장과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텍스트에서 계속 조금씩 변형되다 결국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라는 돼지들의 명제는 결국 '모든 권력은 타락할 수 밖에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거시적인 명제를 상기시켜주며, 복서의 성실하고도 고된 삶은 어쩌면 복서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이 작품 이후 유명작가가 된 오웰은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여 살다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당시 영국에서 나치에 유화적인 보수적 자본주의 세력과 친소련적 진보 지식인 모두를 공격하는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의 작품은 당시에 공격받았을지 몰라도 하나의 고전 Canon으로 자리잡아 현대에서도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 "동물 농장"은 정치적 맥락에서 쓰인 소설이므로, 소설과 시대적 상황과의 관련성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미 그 시대를 벗어난 지금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왜 현대에서도 "동물 농장"이 고전으로 읽히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계속되면서 이 작품의 존재감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
|
|
|
|
|
|
43 |
낭만적 개인주의와 너새니얼 호손 |
이*나 |
|
|
|
삼월의 마지막 주 아트앤 스터디 김욱동 선생님의 영문학 강좌는 미국 소설로 넘어와서 낭만적 개인주의로 시작하셨습니다. 낭만주의 Romanticism는 18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전성기를 맞이한 문학적, 예술적 지적 운동입니다. 대부분의 문예 사조들이 바로 그 전의 사조에 반발해 태동되었듯이 낭만주의도 산업혁명에 대한 반작용과 이성 중심의 고전주의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에서는 계몽, 과학적 이성 보다는 인간의 직관과 강한 감성을 중요시하게 여겨집니다. 조금 어려운 말을 빌어보자면 로고스 Logos-사물의 존재를 한정하는 보편적인 법칙, 행위가 따라야 할 준칙, 이 법칙과 준칙을 인식하고 이를 따르는 분별과 이성(理性)을 뜻한다-보다는 파토스 Pathos-철학상의 용어로 정념(情念) ·충동 ·정열 등으로 번역되며 로고스와 상대되는 말이다-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낭만주의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다들 아시다시피 민중 혁명입니다. 전국민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하여 일어선 혁명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죠. 프랑스 혁명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문학에서도 민중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또한 합리성에서 탈피하고자 하였고 목가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낭만주의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어떤 규정되고, 강제되는 사회 규범에 따르기 보다는 개인의 상상력에 맡기는 자유분방함을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는 "Romanticism is precisely situated neither in choice of subject nor exact truth, but in the way of feeling"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던만큼 당연히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문화적인 지체 현상이 있었습니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했다면 세계의 흐름에 기민하게 동참할 수 있었겠지만 배타고 한달이상을 오고갔던 유럽과 미대륙의 거리상의 차이만큼 낭만주의 역시 뒤늦게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미국 땅은 청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 New England를 건설한 곳입니다. 이런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미국의 낭만주의는 유럽과는 조금 다르게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하나의 독특한 형태로 발현되었죠. 정치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문화적으로도 미국적인 것, 미국만의 것을 확립해나가던 시기였던만큼 낭만주의는 미국 문학사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보스톤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을 위주로 문학의 황금기를 이루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낭만주의 시기는 New England Renaissance 혹은 American Renaissance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의 낭만적 개인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하나인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너새니얼, 너대니얼 등으로도 읽힙니다)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엄격한 17세기의 청교도를 선조로 모신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볼 때 청교도, 청교도적인 전통, 마녀 재판 등은 빼놓을 수 없는 문학적 유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에 세일럼 세관에서의 근무 시절도 그의 문학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컸습니다. 호손은 초현실적인 장면도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등 낭만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썼습니다. 제가 예전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영 굿맨 브라운 Young Goodman Brown" 이라는 작품에서 세일럼 마을에서 벗어난 숲에서 마을 사람들이 악마 의식을 하는 등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던 게 문득 기억이 나더군요. 아무튼 호손은 작가가 되겠다는 소명 의식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서 '남의 죄를 가지고 먹고 사는 목사, 남의 질병을 가지고 먹고 사는 의사, 남의 시비거리를 가지고 먹고사는 법관이 되는 건 싫습니다. 그런 제가 작가 말고 어떤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때까지 작가로서 인정받지도 돈을 많이 벌 수도 없었죠. 사명감을 갖고 심층적이고 진지한, 수준 높은 글을 썼으나 대중적으로 평단에서도 인기가 없었던 불운한 작가였습니다. 당시 인기있었던 문학은 여성 작가 위주의 통속 소설이었습니다. 이에 호손은 격분했죠. 하지만 현재 역사가 기억하는 것은 호손과 그의 작품입니다. 현재 신정아씨의 자서전이 화제가 되고 많이 팔리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법도 합니다. 호손은 1850년, 그의 대표작인 "주홍 글자 The Scarlet Letter"를 발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품이 '주홍 글씨'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주홍 글자'가 더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 17세기의 청교도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간통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그린 이 작품은 청교도의 엄격함을 교묘하게 묘사하고 죄인의 심리 추구, 긴밀한 세부구성, 정교한 상징주의로 말미암아 19세기의 대표적 미국소설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독특하게 서사의 한 중간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헤스터가 이미 간음을 저질렀고 그 죄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판사들은 그녀에게 간음한 남성이 누구인지를 묻지만, 끝까지 답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간음한 여인을 뜻하는 A(adulteress) 라는 낙인을 찍인 채, 사람들의 앞에서 치욕을 당합니다. 김욱동 선생님에 따르면 호손이 헤스터의 간통과정을 묘사하지 않고 그 결말부터 쓰기 시작한 것은 그는 '죄 sin'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범하는 과정보다는 죄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동안 전통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는 죽음으로써만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는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죽음을 낳는다"라고 쓰여있습니다. 하지만 호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죄라고 보았습니다. "주홍 글자"의 헤스터는 자신이 한 행위를 결코 죄악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지요. 헤스터는 죄의 표식인 A를 오히려 크고 화려하게 수놓음으로써 자신에게 당당해집니다. 그리고 호손은 사람들 앞에서 그 커다란 A자를 가슴팍에 달고 아기를 들고 있는 헤스터의 모습을 굴욕적이기보다는 아기 예수를 들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같이 그림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작품 속에서 구현해냅니다. 호손은 이렇게 미국정신의 원류로 간주된 청교도주의가 실상은 인간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한 이데올로기임을 드러냄으로써 이념의 맹목적 추수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헤스터가 죄의 표식인 ‘A’자를 가슴에 달고 청교도 사회가 요구하는 참회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벌에 승복하지 않고서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듯이 말이지요. 그렇게 헤스터의 A는 점차 마을사람들에게 Angel, Able의 A로 인식되어 갑니다. "주홍 글자"는 저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살아 있는 고전으로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읽혀온 것은 미국적 이념과 그것에 입각한 바람직한 삶의 길을 탐구한 지극히 ‘미국적’인 소설이면서 동시에 근대사회의 보편적 관심사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삶의 진실과 인식, 여성의 정체성과 권익 문제 등을 깊이 성찰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
|
|
|
|
|
44 |
호손의 주홍글자를 낭만적으로 읽기엔 이 시대가 너무 벅차다 |
무**대 |
|
|
|
낭만주의란 무엇일까요?
낭만주의는 문학적, 예술적, 지적 운동으로,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초 전성기를 이루고, 19세기 중엽 리얼리즘이 태동하기 전까지 주류를 이뤘던 문예사조 입니다. 이는 '산업혁명'(도시 인구 급증, 공장, 자연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되었으며, 농경사회, 자연 등 이전의 세계를 그리워 하게 되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낭만주의 이전엔 '고전주의'(계몽, 이성의 시대)가 18세기 전반부까지 대세를 이끌었으나 너무 이성에만 무게를 두어, 감성이나 상상력, 직관 같은 감수성에 대한 향수가 터져나왔고 함께 귀족, 사회, 정치적 규범에 대한 거부가 맞물려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을 너무 과학적으로 합리화 시키는 것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죠.
특히, 시각 예술이나 음악, 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요, 낭만주의의 특징은 일단, 직관이나 강렬한 감정(공포,경이감,두려움)을 미적 경험의 기원, 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로고스가 아닌 파토스! 인 것이죠. 독일의 '질풍노도 운동'이 대표적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제공하기도 했는데요.이로 인해 왕정을 타파하고 민중이 중요시되며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시각이 넓게 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합리적, 고전적 이상세계의 모델을 넘어서서 '중세주의'의 목가적인 향수를 회복 시키는 것을 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는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이기도 때문일 것입니다.
이국적, 일상적이지 않으며 멀리 떨어진 이국적인 것을 담고 있기도 하고, 바이런의 이상(외롭게 자신만의 창조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예술가이다.)처럼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예술가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죠. 그럼으로써 개인의 상상력이 권위를 가지게 된것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고전주의와는 달리 개인의 상상력에 기초한 자유분방함을 기본으로 하게 된 것이죠.
지성사가 아서 러브조이는 '낭만주의의 차이점에 대해서'(1948)이라는 논문에서 '낭만주의는 이질적, 복합적 개념이고 서로 상충되기도 하기에 단수형으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늘 복수형으로 표현해야 한다'고도 했고, 보들레르는 '낭만주의는 소재의 선택이나 정확한 진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 느낌에 위치해 있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지금의 현대문학에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는데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텍스트를 이끌어 가는 이른바 판타지나 SF, 호러 같은 장르물의 원천이 바로 이 낭만주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럼, 미국에서의 낭만주의는 어떤 것일까요? 먼저 알아야 할것은 그 당시 미국엔 모든 것에 문화적 지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문물이 대서양을 건너 오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던 것이죠. 적어도 50년은 늦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유럽을 휩쓸고간 낭만주의가 미국에선 늦게 태동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선 메사추세츠 보스톤을 비롯한 동북부의 뉴일글랜드 지방을 위주로 싹을 틔웠는데, 19세기 후반 (1850년대)에 미국의 낭만주의는 꽃을 피웠으니 이미 유럽에선 리얼리즘의 전성기였던 바로 그때 이제서야 낭만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또한 미국은 식민지 경험이 있었던 터라, 민족주의과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루소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들어가 있기도 합니다. 헤르더는 '지리라는 것은 민족의 자연경제를 형성할 뿐 아니라 풍습,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라며 이러한 문화적 민족주의를 옹호하기도 했죠. 이는 계몽주의의 '합리성'과 낭만적 '민족주의'가 결합된 형태로 상당수 합리주의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나온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보면 알수 있죠. 어떤 이는 '뉴 잉글랜드 르네상스'라고도 합니다. 보스톤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을 위주로 전성기, 황금기를 이뤘던 사조이기도 하니까요.
정치적 해방과 함께 문화적 해방도 같이 자연스레 시작된 것일테니, 미국 문학이라고 할만한 것은 바로 이 낭만주의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또한 '아메리칸 르네상스'라고도 하는데, 에머슨과 위트먼의 시대에 나타난 예술과 표현을 중점적으로 이르는 명칭입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너새니얼 호손과 허먼멜빌, 에밀리 디킨슨, 헨리 데이빗 소로우, 에드가 엘런 포우 등이 있습니다.
이젠, 호손의 연대기를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호손은 1804년 7월 4일생 입니다. 독립기념일에 출생을 했으니 참 의미심장한 생일이군요. 메사추세츠 세일럼 항구에서 자라났습니다. 부친은 해군장교였다가 후에 상선의 캡틴이 되었고, 모친은 모닝가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4세때 부친이 황열병으로 사망하자 모친과 함께 외갓집에 얹혀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1821년 사립명문 보든대학에 들어갔는데, 이 당시 미국엔 대학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은 목사를 키워내거나 법관이나 의사 같은 실용적인 인재가 필요해지면서 서서히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호손이 이때 대학을 다닌 것은 일반인들은 꿈도 꿀수 없던 특별한 혜택이었습니다. 졸업생 대부분이 목사, 판사, 변호사, 의사가 되었으니까요.
실제로 호손은 이곳에서 시인 롱펠로우를 만나기도 했고, 후에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허나 졸업하면서 호손은 모친에게 충격적인 편지를 띄우면서 은둔생활에 들어가게 됩니다. '남의 죄를 가지고 먹고 사는 목사, 남의 질병을 가지고 먹고 사는 의사, 남의 시비거리를 가지고 먹고사는 법관이 되는 건 싫습니다. 그런 제가 작가 말고 어떤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참 멋진 말이죠?
실은 호손은 어릴때 다리를 다쳐 대학을 절뚝이며 다녔습니다. 어쩌면 이때 대인기피증이 생겼을지도 모르죠. 쨌든 이때부터 은둔생활을 하며 외부와 담을 쌓고 살아가게 됩니다. 친구와 가족도 안만나고 늘 식사도 혼자 외로이 했다고 하니까요. 1825년부터 1837년까지 무려 12년간이나 이른바 청춘을 '고독의 시대'로 보내게 됩니다.
허나 글만써서 생계유지가 되지는 않는지라 보스톤 세관에 취직하게 됩니다. 이전에 일련의 단편소설과 [팬쇼]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하곤 자비로 출판까지 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Hathorne' 에서 'Hawthorne'으로 개명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듯 개명을 하는 것은 문학가들의 상징적인 제스추어 인데요, 가문에서 오는 압력에서 벗어나 작가로서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시 포크너도 Falkner 에서 Faulkner 로, 멜빌도 Melvill 에서 Melville 로 바꾼 바가 있습니다. 허나 세관이 몸에 맞지 않아 '브룩농장'이라는 유토피아 공동체 사회로 들어가게 됩니다. 낮엔 농사짓고, 밤엔 글 쓰려고 했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이곳에서도 나오게 되죠.콩코드에 셋집을 사고 화가 소피아와 결혼해 딸 '유너'를 낳게 되는데 '주홍글자'의 '펄'이라는 아이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1847년 고향 세일럼으로 이사해서 다시 세관 직책을 맡게 됩니다. 이는 친구였던 프랭클린 피어스가 대선에 출마했을때 선거용 전기를 써준 보은이었다고도 합니다. 이때 창고에서 천조각 하나를 발견하는데, A자를 수놓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주홍글자'의 모태가 된 그 천조각을 이 시기에 만나게 됩니다. 이에 영감을 받아 그때부터 미국의 엯와 교회사, 연대기등을 마구 읽어대며 이야기를 품어 왔다고 하네요. 허나 얼마 안되어 해직을 당하는데 '이 마을을 끔찍히 싫어해서 길거리 나가고 싶지도 않고, 얼굴을 보여주기도 싫다' 라고 털어놓습니다. 게다가 모친이 사망하고 비탄에 빠지면서 수렁에서야 비로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1850년 드디어 [주홍글자]를 출간합니다. 미국 낭만주의의 첫 스타트를 호손이 시작한 것이지요. 후에 잇따라 허먼멜빌의 [모비딕]이 1851년, 소로우의 [윌든]이 1854년, 휘트먼의 [풀잎]이 1855년 출간되며 줄줄이 낭만주의 문학의 꽃을 피우게 되죠. 명작의 출간은 늘 그렇듯, 동시에 평단과 독자들의 비난을 한껏 받습니다. 간음을 소재로 한 불결한 작품이라는 것이죠. 결국 고향을 떠나게 되고 산맥 깊숙이 있는 레녹스라는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허나 이로인해 이곳에서 거주하던 허먼멜빌과 교류를 할수 있었습니다. 멜빌은 호손의 단편 [Mosses From an Old Mane]에 영감을 받아 단순한 고래잡이 모험담이었던 이야기 [모비딕]에 궤도수정을 가해 형이상학적, 철학적 작품으로 뽑아내게 되어서 이 작품을 호손에게 헌정하기까지 합니다.
1851년 [일곱박공의 집]을 출간하곤 브룩농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블라이드 데일 로맨스]도 출간합니다. 1853년 대통령 친구의 배려로 당시 한직이었던 영국 리버풀에 영사로 취임하게 됩니다. '작은 아씨들'을 쓴 앨콧 집안이 소유했던 Hillside 라는 집을 사서 Wayside라고 개명하고 거주하게 되죠. 후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유럽에서의 체험담을 소재로 [대리석 목신]과 [우리의 고향]을 출간하게 됩니다. 1864년 퇴직한 친구 피어스와 함께 그 유명한 [큰바위얼굴]이 있는 뉴햄프셔에 거주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다가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듯 풍파와 영광이 함께 있었던 삶이었지만,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 그것을 문학적 자산으로 창작해 낸 작가적 역량만은 위대해 보입니다. 특히, 허먼멜빌과 교류하며 문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그 그림을 떠올려 보면 한편으론 꽤나 낭만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럼, 호손의 문학적 유산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호손은 청교도주의와 마녀재판을 주로 다뤘습니다. Puritanism(청교도주의)은 Purify(정화시키다)에서 파생된 용어로 원래 목적은 타락한 교회를 깨끗이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헨리8세는 이혼과 관련한 다툼 끝에 결국 로마 카톨릭에서부터 떨어져나와 영국은 영국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성공회)를 만들게 됩니다. 허나 영국국교회는 아직 로마 카톨릭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비숍제도라던가, 미사때 예복이라던가, 화려한 장식의 교회까지 말이죠. 그래서 루터나 칼뱅에 영향을 받아 교회를 보다 소박하고 단순하게 순화시켜야 한다는 종교 순화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청교도주의자들은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에 정착하지만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피난 오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보스톤 근처에 정착해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 미국의 시작인 것이죠. 호손은 바로 그러한 청교도주의자들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호손은 선조들의 전통인 그 청교도의 모순을 비판한 작품을 쓰게 됩니다.
또한, 유럽에서 중세에 있었던 마녀재판이 세일럼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큰 소동이 벌어지게 되죠. 아서밀러의 [시련]이 바로 이것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호손의 증조부가 바로 이 재판의 재판관이었는데, 늘 이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고, 가문에서 벗어나려 개명까지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두가지 화두는 호손의 작품 전반에 소재로 차용되거나,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해 결국 초창기 미국의 전통을 비판하는 작품을 쓰게 됩니다.
호손은 또한 작가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했습니다.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목사,법관,의사를 마다하고 고난의 길인 작가가 되기를 일찌감치 정하곤 나아갔으니까 말입니다. 포크너만 해도 시인이 되려다 포기하고, 단편소설이 안되니 또 포기하고, 결국엔 장편에서야 작가로써 자리잡았으니 말이죠. 그는 세일럼 세관의 측량원 경험이 큰 문학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정치적 비리나 인간의 문제를 목격하기도 했고, 꽤 많은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죠.
그럼 [주홍글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초기단편들에서 '간음'등 이 작품의 씨앗이 곳곳에 뿌려져 있습니다. 허나 초판엔 2,500부, 사망전까지도 7,500부 정보밖에 팔리지 않았고, 인세도 1,500불 밖엔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수잔워너라는 지금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통속소설작가는 6개월에 4,500불까지 벌어 들였는데 말이죠.
호손은 이같은 여성작가의 선정적인 통속애정소설만이 히트를 치는 현상에 대해 한숨을 내쉽니다. '이제 미국문학은 글 나부랭이나 끼적거리는 빌어먹을 여편네들에게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대중의 취향이 쓰레기 같은 그들의 작품에 기울고 있는 한 어찌 나에게 성공할 기회가 있겠는가'라고 말이죠.
그는 비평가들의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부정적인 서평 일색이었으니까요. '창녀의 도서관' '음란한 거간행위' 라며 금서목록으로 지정되어 구입을 못하게 하였고, 동네 사람들까지 비판을 해대자 결국 고향을 등지고 버크쇼로 이사를 가야만 했죠. 물론 이 당시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도 쓰레기라 평 받으며 화형식까지 당했던 시대였습니다. 언제나 고전명작들은 동시대엔 인정을 못받기 마련이니까요.
리얼리즘 전통의 일상적 경험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Novel과는 달리, 낭만주의 계열의 일상적이지 않고, 본적이 없는 특이한 경험을 그려낸 Romance의 대표작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홍글자]에서 밤 하늘에 빛나는 A자를 목격한다는지 처럼 초자연적 경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해서 식민지를 건설한지 얼마되지 않던 17세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인디언의 습격도 종종 있고, 생존의 위협에 시달렸던 초창기 미국이었습니다. 당시엔 정치와 종교가 일치된 '신정'시대였고, 일명 무쇠와 같던 시기였습니다. 메사추세츠 보스턴 근교의 식민지 마을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작명법도 재미가 있는데요. 헤스터 프린은 구약성서 '에스더'에서 따 왔고, 목사 아서 딤스데일은 '어두운 골짜기', 로저 칠링워스는 '소름끼치는', 펄은 '진주'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죠.
플롯은 '한중간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서사시 전통을 따른 것인데요, 죄를 범하는 과정은 관심없고 오직 죄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라는 작가적 플로팅이라 생각됩니다. 희랍비극도 보면 '오이디푸스'도시작은 이미 '부친살해''모친근친''역병시작'이 모두 벌어지고 나서 '한중간에서' 시작하듯 말입니다.
상징과 이미지 또한 가득한데요. 가슴에 수 놓은 A자부터, 감옥 문 앞에 핀 들장미(본성,자연), 육중한 참나무 장식못(청교도주의 엄격사회), 마을(이성), 숲속(본능)... 끝이 없이 등장합니다.
테마는 엄격한 청교도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모든것이 헤스터의 잘못인 건가 하는 문제를 오프닝부터 보여주고 있죠. 처형대 위에 어린아이를 안고 당당하게 서 있던 헤스터의 모습을 흡사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그린 성화로까지 묘사하니까 말입니다. 당연히,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그리면서 죄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나아갑니다.
당시 기독교적 죄는 '죽음' 이었습니다. 야보고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으리라" 로마서 6장 23절 "죄때문에 죽을 인생죄의 삯은 사망이요" 허나 호손의 죄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입니다. 내가 죄를 받아 들여야 죄인 것인데, 거렇지 않다면 죄가 아닌것이고(헤스터는 A자 낙인을 아주 화려하고 멋들이지게 장식하고 뽑냅죠) 객관적인 잣대로 잴수 없고 오히려 청교도 사회의 위선이 더 큰 죄라는 것입니다.
또한 Felix culpa 즉, Fortunate Fall (다행스런 죄)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에덴추방은 다행스런 죄라고도 합니다.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가졌지만 그로인해 삶의 희열을 느낄수 있었으니까요. 헤스터는 죄를 지어서 결국 남의 죄를 이해할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안아줄수 있었습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요. 병든자는 치료해주고, 임종을 앞둔자는 지켜주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으면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다행스런 죄' 덕분에 알게 됩니다. 조용필도 그렇게 노래하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죄, 사랑때문에....' 라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철학자 데리다는 이 작품을 '해체주의'의 시선으로 분석해 냈습니다. 주홍글자 A가 비단 Adultery 뿐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Angel, Able, Admirable, America, Arthur, Amor ... 이렇듯 이 작품의 A를 지닌 헤스터에겐 다양한 의미의 A가 존재하니까요. 시니피앙(기호)는 의미와 의미를 연결고리로 낳는다고 하죠. 고로, 고정된 의미란 없는 것이라 라고 말입니다.
또한, 미쉘푸코는 '담론이론'으로 이 작품을 풀어 내기도 합니다. 명저 [감시와 처벌]에서 그는 사회는 안전망이라는 미명으로 개인에게 낙인을 찍고 감옥과 병원, 학교라는 제도를 통해 훈육시킨다는 것이죠. 바로 이 작품에서의 A자 낙인과 유럽죄수들의 낙인, 도망노비의 낙인처럼 말입니다. '주홍글자'는 후에 여러차례 영화화 하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척 시대의 미국을 다룬 두편의 명작도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 합니다.
'주홍글자'라는 작품은 '낙인'이라는 화두가 중요해 진 요즘에 와서 더 큰 진가를 발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앞서 푸코의 지적처럼 현대의 모든 매커니즘은 바로 이 '감시'와 '낙인'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는가.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에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하며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정부와, 웹 로그인 정보,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로 인해 모든 삶의 영역의 흔적을 당연스레 남기는 소비사회와 CCTV와 전자발찌와 범죄자 유전자 은행 등으로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검경은 말할 것도 없고, 마녀사냥과 가쉽과 루머에 열광하는 우리들 자신들까지! 어쩌면 '돈'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자본만능주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낙인일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벤쯔'라는 낙인을 가슴에 박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성형미인'이라는 낙인을 박으며, 누군가는 '타워펠리스'라는 낙인을 박고, 누군가는 'S대'라는 낙인을 박고 ....우리들 모두는 스스로 가슴에 커다란 A 자를 새기고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의 가슴에 달린 그 A자를 가리키며 손가락질 하며 살아가고 있을거다. 그래서인지, 호손의 주홍글자를 낭만적으로 읽기엔 이 시대가 너무 벅차다...
|
|
|
|
|
|
|
45 |
조지오웰 '동물농장'으로 본 문학과 정치 |
무**대 |
|
|
|
스탕달의 꽤 많이 알려진 아포리즘이 있다. '문학작품에 정치가 엮이는 것은 음악 연주회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권총을 발사한 것과 같다' 일견, 이는 예술은 정치와 철저히 무관하게 순수한 미학적 완성도를 가져야 한다는 순수문학론을 외치는 듯 하다. 허나 스탕달의 첨언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권총소리를 무시한 채 연주회를 계속할 순 없는 일이다' 권총이 발사되었다면 저격수를 찾아 내거나,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해야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문학은 정치와 절대 무관할 수 없다는 그의 묘한 역설이라 할수 있겠다. 당연히 '문학은 정치적이어서는 안된다'라는 테제조차도 정치성을 가진 발언일 테니 말이다. 이 땅에서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위 운동권 문학이니 후일담 문학이니 해서 정치색이 농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불온도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20세기는 '타자'(the other)가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제3세계나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혁명이나 정치운동이 사회과학의 중심에 서 있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주어져 있다는 일명 생물학적 결정론인 '본질주의'(essentialism)에 대항해서 페미니즘의 젠더운동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활발해졌다.
당연히 문학에서의 대표적인 정치문학가는 누가 뭐래도 아마 '조지오웰'일 것이다. 소설을 발표하기 전에 오웰은 르포따쥬 형식의 산문을 주로 발표했었다. 그의 몇 마디를 들어보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Why I Write] (1946)
어떤 원칙도 정치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산문을 쓰는 작가에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4가지 글쓰는 동기가 있다.
첫째, 순전한 이기주의를 위해서이다. 똑똑해 보이려는 욕망, 입에 오르내리고 싶은 명예욕, 죽은 뒤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동기에서 비롯된다. 어릴때 문제아로 당한 치욕과 수치심을 줬던 어른들에게 당당히 복수하고 싶은 마음같은 것일 거다.
둘째, 미적 열정을 위해서이다. 외부세계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언어로 탈바꿈해 표현해 내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아름다운 리듬감으로 가득한 시나 문체가 명징한 산문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셋째, 역사적 충동을 위해서이다. 사물이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그것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서 후대에 전해주기 위한 사명감 같은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이다.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한 정치적 의식 때문인 것이다. 세상과 인간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할 것이다.
나는 1936년부터 글을 써왔는데, 어느 문장 하나 '전체주의'에 대항해서 쓰지 않은 문장은 단 하나도 없다. 나는 민주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영어] (1946)
영어는 타락했다. 문명은 퇴폐적이다. 사회의 반영인 언어도 붕괴되고 있다. 이는 정치가 타락해서 그렇다. 정치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언어를 순화해야 정치가 바로 선다. 언어와 정치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자꾸 더 마시게 되고, 결국 알코홀릭이 되고, 알코홀릭이니까 술을 또 찾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외계어나 신조어를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땅의 언어파괴현상도 무척이나 심각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르다'라는 표현을 '틀리다'라고 당연하게 사용하는 우리 국민의 언어적 정치는 무척이나 '타자'와 '다른 생각'에 대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건 '다르다'고 말해야지, '틀리다'라고 하면 안되는 거야 라고 조곤조곤 이야기 하면 융통성 없는 꽉막힌 사람이 되거나 젠체하는 현학자로 몰리게 된다.
최근의 '나는 가수다' 파동과 '신정아 자서전' 열풍만 봐도 가쉽에 대한 열광과 타자에 대한 마녀사냥은 정말이지 새로운 정보 파시즘으로까지 보여진다. 오웰이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의 이런 세상을 어떻게 그려내었을까...
그럼 이쯤에서, 오웰의 생애를 한번 살펴보자. 오웰은 1903년 인도 뱅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세관아편과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오웰의 본명은 Eric Arthur Blasir 이다다. 어릴적 모친을 따라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부친과 오랜시간 얼굴을 볼수 없었고, 어쩌다 한번 볼때도 혼나기만 해서 부자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가족은 중하위층으로 가난했지만 영특한 그는 상류층 귀족만 들어간다는 이튼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허나, 자신와 다른 그들만의 리그를 보면서 깊은 소외감을 느끼며 이때부터 계급의식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그후 경찰시험을 쳐서 버마 경찰국에 조수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 원주민 학살과 착취등을 목격하며 서서히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 결국 경찰을 그만두고 파리에서 방황하며 부랑아 생활을 하며 지낸다. 자학이랄까 가책이랄까 그는 하층 육체노동자로 살면서 노숙자 생활을 하다가 폐렴으로 입원하기에 이른다. 회복한 후에도 런던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에세이를 투고 하기 시작하고, 잠시 사립교사로 근무하기도 한다.
드디어 1933년 '조지오웰'이라는 필명으로 펜대를 세우며 '버마시절'이라는 첫 작품을 발표한다. 랭캐스터, 요크셔 공업지대 노동자들을 취재하며 열악한 그들의 실상과 폭동과 실업에 대한 르포따쥬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스페인 내란이 터지자 자원 참전하여 '마르크스 통일 노동당'에 사병으로 근무하지만 저격병에 의해 부상 당하고 의가사 제대하고 만다. 다시 결핵이 발병해 요양원에서 투병하며 스페인 내전 참전의 경험을 엮어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와 '고래 속으로'라는 작품을 발표한 뒤, 2차 대전이 터지자 또 다시 지방 방위군으로 자원입대한다. BBC에서 근무하며 전쟁선전방송의 책임자로 일하다 드디어 1945년 그 유명한 '동물농장'을 발표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때 마르크스 노동당에서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실상을 낱낱히 폭로하는 정치소설의 대표작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에 '비평적 에세이'를 발표한 후 쇠약해저 작은 섬에 들어가 조용히 집필을 하기 시작한다. 1949년 드디어 '1984'라는 희대의 걸작을 발표한다. 초판이 40만부가 판매되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주목을 받지만 결국 1950년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자, 그럼 '동물농장'은 어떤 작품인가. 스페인 내전 부상후에 영국 시골에서 요양하며 목격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이 소설은 태동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10세 소년이 마차를 끌고 가며 말이 말을 듣지 않자 채찍으로 계속 때리는 장면을 보곤 큰 충격에 빠진다. 무산자가 바로 저 말과 같구나, 이 세상은 유산자가 무산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지옥과 다름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니체가 이태리 여행 중 마부가 말을 때리는 것을 보곤 껴안고 눈물 흘리다 쓰러져 정신착란에 빠졌다는 유명한 일화와 평행이론에 가까운 사건이다. 그는 헤밍웨이처럼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코 정부와 인민전선정부의 대립을 소설화 하기 시작한다.
2차대전의 전초전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전역을 초토화 시켰고, 그는 소비에트 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에 큰 실망을 경험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제대로 된 사회주의를 위해서 사회주의자의 시선으로 소비에트 정부를 비판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허나 이 작품을 1944년에 이미 탈고했지만, 소비에트 비판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당시의 시선에 모든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부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1945년 8월 17일 출간하는데, 아이러닉하게 원폭 투하 시점과 일치해서 당시 '펜은 원자탄보다 강하다'라는 평을 얻게 된다. 오웰은 이 작품에서 정치와 예술을 창조적으로 결합하려 각고의 노력을 했고, 결국엔 위대한 정치소설의 대표작으로 남게 된다. 이 작품엔 어찌보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과 사건이 정치적 알레고리로 엮여 있는데,
존스씨 - 제정 러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 메이저 영감 - 막스 + 레닌 핀치필드 - 나치 독일 프레드릭 - 아돌프 히틀러 폭스우드 - 영국 필킹턴- 처칠 + 루즈벨트 나폴레옹 - 스탈린 스노볼 - 트로츠키 스퀼러 - 프라우다 미니머스 - 마야코프스키 복서 - 프롤레타리아 클로버 - 중산층 몰리 - 쁘띠 부르주아 벤저민 - 유태인 뮤리얼 - 인텔리겐차 아홉마리 개 - 비밀경찰
등 일일히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캐릭터와 플롯이 당시 구 소련을 비롯한 국제 정세와 정치인들을 알레고리화 해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살펴보자. 첫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명과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 소비에트 신화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출간본 서문 중)
둘째는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전체주의까지 포함하고 있다.
셋째는 유토피아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 막스와 엥겔스의 세계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 U-Topia(No-Place) 라는 것이다.
넷째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나폴레옹과 스노볼로 대표되는 두 돼지 지도자의 대립은 현실주의자 스탈린과 이상주의자 트로츠키와 궤적을 같이 한다.
다섯째 언어의 본질과 진리의 왜곡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라틴어, 그리스어를 일체 쓰지 않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순수 앵글로 색슨 영어로만 표현했다고 한다. '살해하다'라는 표현이 아닌 '죽이다' 라고 하는 식인 것이다.
여섯째, 권력의 속성을 꼬집고 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동물들은 인간을 몰아내고 일곱가지 계율을 정해서 지키도록 하는데, 후에 그 계율을 슬며시 바꾸게 된다.
'동물은 침대에서 자면 안된다' (이불을 깔고선...) '술은 절대 마시면 안된다' (지나치게는...) '죽이면 안된다' (이유없이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지만...) '네발 동물이 좋다' (두발은 더 좋지만...)
이런 식으로 권력에 빠진 돼지들은 언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다른 동물들을 우롱하며 계율을 자신에 맞게 바꿔가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론 오웰의 작품은 '1984'를 최고의 작품으로 치곤 한다. 유수의 SF영화에 모티브를 제공하기도 한 이 작품은 판옵티콘부터 시작해서 미쉘 푸코의 '시선의 권력'까지 철학적 화두로 등장하며 21세기 정치철학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생체권력' 혹은 '유전자권력' 어쩌면 최근의 '스마트권력'까지 오웰의 선견지명은 시대를 초월해서 세상을 읽어내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것이다.
학창시절 누구나 읽게 되는 이 '동물농장'은 단순히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한 풍자우화 정도로 도덕시간에 학습해 오곤 했다. 허나, 밑바닥 삶과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사회주의자 웰즈가 비판한 것은 '전체주의' 혹은 '권력의 속성'에 가까울 것이다. 작금의 '신 자유주의' 혹은 '무한경쟁' 사회의 비인간화와 '디지털 정보화'의 소외현상 또한 이 작품이 비판했던 '파시즘'일테니 말이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웰의 '1984'에서 영감을 받아 쓴 '1Q84'라는 작품으로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치고 있다. 오웰의 작품은 이제 그의 의도처럼 정치소설로서 뿐 아니라, 사회정치역사경제예술을 통섭하는 위력적인 고전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마도 몇백년이 지난 후에도 오웰의 작품들은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읽히고 밑줄 그어지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진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위에서 발췌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 집이 출간되었다. 요즘엔 오웰의 정치소설을 벗어나 르포따쥬와 에세이들 또한 주목받고 있다. 골방에서 글만 쓰는 관념적 작가가 아니라, 실제 하층민이 되어 뒹굴어 보고 전쟁에 참전하여 참상을 겪기도 한 그의 삶 그 자체가 감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이처럼 작가는 삶을 온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내야만 진정한 글을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에 앞서, '나는 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과 행동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장자의 '대붕'편에 등장하는 일년에 한번 오는 바람이 떠오른다. 수면 위에 몸을 가라앉히고 저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서 그 바람을 기다리는 대붕의 마음 말이다.
그 바람이 삶 이라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그 바람이 독서라면, 책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고, 그 바람이 투쟁이라면, 투쟁을 해 내야 하는 것일게다.
'바람이 분다...'
|
|
|
|
|
|
|
46 |
'한 순결한 여인에 대한 진실된 묘사' |
이*나 |
|
|
|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시골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그녀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이 가난해 부잣집에 가서 가정부로 일하던 중 방탕한 그 댁 아들과 하룻밤 잠자리를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임신을 한 그녀는 그를 떠나 혼자 살게 되고 진심으로 한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청년과 결혼식을 올린 첫날 밤, 그녀는 그를 믿고 과거를 털어놓지만 자신의 고백에 그는 충격을 받아 멀리하기 시작한다. 비참한 기분에 시달리며 그와 잠시 이별하게 된 여자는 홀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현실은 고되었고 남편에게서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한편 자신의 옹졸함을 깨닫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한 남편은 그녀를 다시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러다 예전의 그 부잣집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의 꼬임에 넘어가 정부가 된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남자에게 복수하고 남편과 도망을 간다. 꿈같은 시간을 보낸 여자는 자신을 붙잡으러 온 경찰에게 담담하게 몸을 맡긴다. 곧 끝날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듯이.
이번에 아트앤스터디 김욱동 선생님의 <디킨즈부터 샐린저까지 - 현대영미문학의 지형도를 읽는다> 두 번째 강좌는 ‘자연주의와 토마스 하디의 테스’였습니다. 테스 Tess of the D'Urbervilles는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단골 소설 중 하나입니다. 2008년도에는 BBC의 4부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영국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과 소녀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 젬마 아터튼 Gemma Arterton이 테스 역을 맡아 인상적이었어요. 위에서 말한 내용은 소설 테스의 큰 줄거리입니다. 요즘 시각에서 보면 통속적이기도 하고 신파적이기도 하며 여성들에게는 꽤나 잔인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스를 읽다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테스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안을 대신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고,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단호히 떠났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굳은 일도 참으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다르게 운명은 꼬이기만 합니다. 마치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죠. 테스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보다 작가의 세계관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 Thomas Hardy는 영국에서는 드문 ‘자연주의 naturalism’ 작가입니다. 자연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의 정경을 묘사되고,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을 그린 뭐 그런 소설? 정도의 느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김욱동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예사조입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평범한 삶의 모습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묘사하죠. 자연주의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비극적이고 염세적인 세계관에 있습니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가난, 인종차별, 섹스, 폭력, 선입견, 질병, 부패, 매춘 등 인생의 어두운 면을 결정론에 근거해 그대로 드러냅니다. 결정론은 생물학적으로(유전학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Biological Determinism과 사회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Socio-economic determinism, 그리고 최근 정신분석학의 영향이 커지면서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인생이 그려진다는 Psychological determinism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테스를 읽다보면 하디는 제일 처음의 생물학적 결정론을 따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테스에서는 우연, 시간, 사물의 무상함 등이 운명의 대리자로 제시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겪는 돌발적이고 우연적인 사건들은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론적인 상황에서 테스의 인물들은 선이나 악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의지와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떠한 맹목적인 힘 아래, 체념하고 복종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해가는거죠.
어떻게 보면 생에 굉장히 부정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의지'로 운명을 개척해나가자는 요즘 대세적인 헤게모니와는 정반대인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사실 하디는 자신을 염세주의자(pessimist)라기보다는 개량주의자(meliorist)로 불러주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는 작품에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드러내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넘어서려고 시도합니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오히려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선택, 그리고 책임감을 가진 주체로서 등장합니다. 이는 하디가 단순히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상이 드러나는 작품을 쓰는 염세적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는 작품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도덕의 변화를 바라는 개선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테스가 알렉Alec의 집을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물 벽에 양철통을 든 사나이가 페인트로 큼지막하게 쓴 “THY, DAMNATION, SLUMBERETH, NOT”과 “THOU, SHALT, NOT, COMMIT”이라는 성경 구절은 그녀의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다가옵니다. 테스는 세상의 벽, 종교의 벽, 도덕의 벽을 실감하지만 이내 그 내용이 사람을 짓밟아 죽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Pooh- I dont' believe God said such things!”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믿는 신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거죠. 또한 테스의 남편 에인젤 클레어 Angel Clare 역시 인습과 관습에 저항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 테스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납니다. 스스로 종교의 위선과 상류계층의 우월의식을 벗어던지고 성실한 농부로서 뿌리 내리고자 했던 에인젤의 선구자적 사상은 정작 이러한 문제가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자 움츠러들어 자신이 기존에 속했던 계층으로 희귀해버리고 만 것이죠. 그는 테스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기독교의 편협한 교리에서 파생한 사회적인 인습의 잣대로 테스를 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농민들의 존엄성을 짓밟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기계 문명은 필연적으로 사회 저변의 건강한 사고 체계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건강한 문화의 부재 속에서 위선적인 교회 그리고 비합리적인 관습의 타성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속에서 교육받은 에인젤의 이중성 또한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테스에 대한 에인젤의 사랑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전통적인 순결 관념에 사로잡힌 이기적 사랑이었던 거죠. 그러나 Angel은 브라질에서 만난 낯선 나그네를 통해서 자신의 편협한 생각을 깨닫게 되며, 여태까지 그가 받아온 교육과 그에게 새겨진 관습의 상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 진정한 사랑으로 그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에인젤이 철학과 인습의 고리를 끊고서 테스에게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테스의 부제는 '한 순결한 여인에 대한 진실된 묘사'입니다. 이는 당시에 많은 논란을 불어일으켰는데, 사생아를 낳았고 함께 살았던 남자를 살해한 죄로 결국 교수형을 당하는 여자가 동정과 이해로 대접받는다는 것이 기존의 도덕 기준에 대한 모욕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하디는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인데 특히 이 시대는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하디는 많은 비판에 부딪혔고, 그가 '이름 없는 주드 Jude the Obscure'를 쓴 후에는 대대적인 비난을 받고 소설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됩니다.
당시의 도덕적, 윤리적 관습과는 다른 하디의 작품은 그래서 오늘날 더 유의미해집니다. 각색된 그의 작품들은 영화나 텔리비전을 매체로 해 나오고 있고 많은 비평과 학술 논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중 가장 유명하기도 하구요. 하디의 세계관과 '순결한 테스'의 이야기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세련되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테스의 불꽃같은 삶은 마음 한구석을 찌르르 하게 만들어주긴 합니다.
|
|
|
|
|
|
|
47 |
고마워요, 테스. 당신을 알게되어 말입니다. |
무**대 |
|
|
|
자연주의(naturalism)는 무엇인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보면 개구리를 해부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장면이 있다. 이렇듯 실험실에서 자연을 해부하듯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이 자연주의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고, 크게 보자면 너무 협소한 정의일 것이다.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 큰 맥락을 살펴보자.
우선, 철학적 자연주의가 있다. 초자연적이라 부르는 모든 현상과 가정은 틀렸거나 자연현상,가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는 초자연적 원인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과학은 실험과 경험을 통해 파악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고, 형이상학적으로는 자연과학으로 연구할 수 없는 비물질적 대상은 우주로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엔, 윤리적 자연주의가 있다. 이는 윤리적 용어도 자연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정의될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휴머니스틱한 자연주의도 있다. 과학적인 이성,사고를 인간행동의 기초로 삼는 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자연주의는 자연세계,사회는 유사한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고, 정치적인 자연주의는 법제도, 정치제도도 자연법칙의 존재를 믿음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일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꽤나 위험한 생각일수도 있다. 초자연적 현상과 비물질적 대상은 틀렸거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에 기초해 자연의 원칙에 의해 세상은 굴러간다?
산업혁명과 함께 불어닥친 자본주의의 태동은 어찌보면 이러한 과학 만능주의라는 이론으로 중무장하면서 더 폭발적인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의 신자유주의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 연약한 동물같은 우리의 삶은 이러한 테제에 동의하면서도 늘 변화와 혁명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문학적 자연주의란 무엇일까? 1880-1940년도에 부흥한 사조로, 리얼리즘의 뒤를 이어 일어난 문예사조를 일컫는다. 리얼리즘과는 일상적 삶의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유사한 면이 있다. 이는 이전에 팽배했던 낭만주의의 상징성과 몰락 이후에 태동했던 쉬르리얼리즘의 초자연성과는 대조된다 할수 있다.
허나 삶 그 자체를 거울에 비춘듯 그려내는 리얼리즘과는 달리 자연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과학성을 앞세운다는 것은 꽤나 다른 점이다. 자연주의의 대부라 할수 있는 에밀졸라가 말했든 누추한 삶을 솔직하게 그려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삶의 그늘진 곳, 삶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이 정확하게 잘라내어 처절한 모습들을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관찰하듯 그려낸다는 것이다. 가난, 인종주의, 섹스, 폭력, 편견, 질병, 부패, 매춘, 탐욕 등 인간의 가장 저열한 욕망과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당시에는 꽤나 이러한 소재가 충격적이어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현대 독자들에겐 그러한 면이 모던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할수 있다. 마치 희랍비극처럼 운명과 신탁, 환경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는 이러한 세계관은 염세적이고 암울하고 비극적일수 밖에 없다.
DNA에 의한 유전자 결정론, 사회적 상황과 환경에 의한 사회경제적 결정론, 트라우마에 의한 심리적 결정론등이 이 당시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삶은 개척가능하고 변화 시킬수 있다는 낙관적인 '자유의지' 세계관과 대척되는 점에 있는데. 막시즘과 기독교 사상등이 대표적인 '결정론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사상일 것이다. (물론 막시즘은 계급투쟁에 의해 만인평등의 세상을 만들어내자는 '자유의지'가 결합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프랭크 노리스는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내재가 아니라 낭만주의의 한 형태다 라고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허나 에밀졸라와 플로베르를 위시한 프랑스 작가들에게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자연주의 사조가 영국의 토마스 하디, 미국의 존 스타인벡, 잭 런던, 이디스 워튼, 테오도르 드라이저, 스티븐 크레인 까지 희대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그럼, 영국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 토마스 하디는 누구인가? 1840년 출생한 그는 어릴적부터 불어, 라틴어를 수학하며 독서를 즐겼고, 건축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었다. 런던에 사환으로 들어간 그는 박물관과 연극, 오페라를 보며 문화적 소비를 통해 습작시를 틈틈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체스터로 귀향한 후 [가난한 남자와 귀부인]이라는 첫 책을 출간하고, 이후 [귀향]을 쓰며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 감독하기도 했다.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을 출간 한 후 드디어 1891년에 [테스]라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1895년 [이름없는 쥬드]로 큰 인기를 얻는다. 허나 작품의 성적묘사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소설절필선언을 하고 이후엔 평생 시창작에만 몰두한다. 1898년 [워섹스 시편]이 대표작이다.
그럼 이제 토마스 하디의 문학세계를 살펴보자. 그의 극적공간은 주로 워섹스, 캐스터 브리지 라는 가상의 상상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스버그' 윌리엄 포크너의 '제퍼슨' 김승옥의 '무진' 황석영의 '삼포' 처럼 말이다.
그는 자연주의 작가인데, 초월적 존재자가 세상이라는 거미줄을 쳐 놓고 인간은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내재적 의지'를 그려내고 있다. 운명을 다룬 희랍비극같은 세계인 것이다.
그의 대표작 '테스'를 살펴보자. [The Graphic]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소설인데, 당시 수록 제목은 'Daughter of the D'urbervilles' 였다. 부제는 'a Pure Woman as Faithfully Presented' 이다. 불륜을 다룬 이야기의 부제가 순결한 여인이라니 아이러니컬 하지 않는가? 이 소설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었다. 빅토리아 시대느 그 경직성으로 인해 이 소설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이 작품은 가난한 시골지방이라는 공간에서 공황시대라는 시대에 비가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영국의 날씨를 세팅하고 시작한다. 테스와 엔젤, 알렉이라는 세 남녀를 사이에 둔 전형적인 삼각 불륜 멜로담인데 테스의 부모인 잭과 로안도 중요한 서브플롯으로 작용한다.
제도화된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띄는데, 바위에 새겨넣은 성경구절이나 테스를 바라보는 성공회 목사와 부모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가부장 질서에 대한 공격이 있는데, 타자화된 여성을 억압하는 엔젤의 이중잣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산업화의 역효과를 그려내면서 농장이 기계화 되며 일자리를 잃어가는 농민들을 그려내기도 하고, 근거없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살며, 제대로 역할수행을 하지 못한 테스의 부모를 통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그려내기도 한다.
'테스'란 작품 역시 수차례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는데, 가장 유명한것은 로만 폴란스키(차이나타운) 감독, 나타샤 킨스키 주연의 '테스' 일 것이다. 어릴적 이 영화를 몇번이고 동시상영관에서 본 기억이 있는데, 나타샤 킨스키의 그 순수한 눈망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국에서 드라마로 두차례나 방영되었는데, 이런 테스 같은 고전 텍스트는 긴 호흡을 가진 드라마로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 '오만과 편견'도 여러차례 영화화 되었지만 영국 드라마 버전이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적'이름 없는 주드'도 출간되어 있다. 이 역시 영화화 되었는데, 마이클 윈터바람 감독(관타나모로 가는길)에 케이트 윈슬렛 주연작이다. 사촌과의 근친결혼을 다룬 당시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이야기인데 사랑에 대한 율법을 강요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담고있다.
자연주의라는 사조는 이미 오래전 사라진 문예사조일 뿐이지만, 인간의 저열한 욕망과 비참한 현실을 현미경으로 보듯 그대로 잘라내어 보여준다는 점에선 무척이나 현대적이다. 특히나 플로베르, 발자크의 묘사를 보면 정말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혀를 내 두를 정도로 정밀하고 섬세해서 책 전체에 밑줄을 그을수 밖에 없다.
재벌가 이야기나 막장 드라마가 스토리의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이러한 자연주의 작가의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인간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그려내는 그 지긋지긋한 열정이야 말로,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자본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하나의 실험이 아닐까.
아마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던 테스나 쥬드의 삶이 지금 나의 삶보다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거나 미래의 천국을 꿈꾸면서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삶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한다. 솔직하게, 욕망하면서 말이다.
고마워요, 테스. 당신을 알게되어 말입니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