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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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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함은 삶이라는... |
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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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듣고 나니... 강의 제목이 왜 각도와 층차였는지...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청춘과 늙음, 선과 악, 고통, 비극과 쾌락, 공부와 배움... 강의 내내 드는 생각... 박기평씨의 말처럼... 타도할 수 없다면 낙후시켜야 한다... 후지면 지는 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희는 너무 후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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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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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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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 무료강의로 선생님의 말씀을 잠깐 듣고 궁금해서 들었는데너무 좋네요 .이런 좋은 강의를 해주셔고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더 듣고 생각을 더 해보고싶네요 ^^깊은 생각을 부드럽게 꺼내주시는듯한 강의가 너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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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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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길을 여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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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인생의 최종 목표인양 살아온 청소년기를 지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누리는 기쁨은 잠시,
나의 인생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사람들과 세상에,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고, 스스로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준 22살의 대학생 입니다.
개인적으로 1년이라는 멈춤의 시간동안 무엇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시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스스로 아트앤 스터디를 찾아 김선희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것을 칭찬하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좋은것인지는 모르겠으나 3일만에 강의를 전부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매 순간 느껴지는 앎의 기쁨과 성취감이 계속해서 다음 강의를 누르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강의를 들으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제 자신의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한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 해주신 김선희 선생님과 경로를 제공해준 아트앤 스터디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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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삶의 자원으로 끌어들이는 법 |
윤*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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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제목처럼 여덟 가지 개념을 통해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유를 '각도와 층차'로 겹쳐 읽는 방식이 정말 신선했습니다. 단순히 철학사를 연대순으로 훑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 청년, 비극, 명랑성 등 우리가 삶에서 고민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철학적 주제로 끌어내어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습니다. 특히 '청년에 대하여' 강의에서 루소의 '제2의 탄생'과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성장을 연결하며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질문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철학을 학문이 아닌 현실적인 삶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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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 대한 비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
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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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초반, '청년에 대하여'를 듣다가 크게 실망했습니다. 강사님께서 청년의 이미지를 상품화하고 유통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동의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이 어린 사람'이 겪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기득세력이 아닌 청년 세대에게 '비판하는 힘', '성숙하려는 의지'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모든 책임을 청년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느껴져 울화가 터졌습니다. 강의는 훌륭했지만, 특정 개념에 대한 강사님의 시각이 저와 너무 달라서 끝까지 듣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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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고통'에 대한 깊은 사유 |
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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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비극에 대하여' 강의는 특히 감명 깊었습니다. 로봇 C-3PO의 대사부터 시작해 비극의 본질을 '행함의 고통'으로 정의하고,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불교, 스토아 학파의 지혜로 연결하는 방식이 탁월했습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짚으며, 타인의 비극을 '쇼'나 '예술'로 대하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제가 최근 겪은 개인적인 고통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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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개념 정리는 좋았으나 깊이가 아쉬웠습니다 |
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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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인 주제를 통해 철학적 사고방식을 익히게 해주는 강사님의 방식은 좋았습니다. '각도와 층차'를 활용해 여러 사상을 펼쳐나가는 마인드맵식 전개도 유익했습니다. 다만, 각 개념에 대한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유를 소개하는 데 그칠 뿐, 논의의 구체적인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치 유명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짜깁기하여 가볍게 풀어놓은 듯한 엉성함이 느껴졌습니다. 철학 입문자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피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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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성과 웃음의 공격성을 발견하다 |
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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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명랑성에 대하여' 강의를 듣고 '웃음' 뒤에 숨겨진 은밀한 공격성과 '분리의 미학'을 발견하게 되어 놀랐습니다. 웃음이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대상과의 거리를 벌려 해방시키는 '양날의 칼'임을 알았습니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조화로 얻는 '명랑성'이 나를 성장시킨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 강의를 듣고 평소 제가 즐겨보던 개그 프로그램이나 유머 코드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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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귀환, 그리고 유목민 |
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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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귀환에 대하여'는 현대인의 불안을 잘 짚어주는 강의였습니다. 집이 사적인 친밀감의 공간인 동시에 공포와 폐쇄성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지적, 그리고 하이데거의 '고향상실의 시대' 정의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특히 자본에 의해 내몰리고 익명적 존재로 타자화되는 현대의 '가난한 유목민'들에 대한 현실적인 비판이 좋았습니다. 단순히 희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기술과 정치적 기획의 실체를 자각해야 유목민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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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제시받다 |
문*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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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를 듣고 철학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지식 습득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를 질문하며 능동적·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강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같은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교육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된 것도 큰 수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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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자료가 없어 불편했어요 |
정*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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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선생님의 강의는 매우 좋고, 부드럽고 자상한 설명 방식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하지만 15시간이 넘는 긴 강의인데도 강의록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철학 용어와 개념들이 쉴 새 없이 나오는데, 필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다른 수강생의 노트가 있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강의록이 없는 점은 빠른 개선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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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과 연대에 대한 스피노자적 접근 |
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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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우정에 대하여' 강의는 동서양의 우정론(피타고라스, 키케로, 공자)을 넘어, 스피노자의 우정 개념과 레비나스의 타인론까지 확장하여 '연대와 공존'의 윤리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공동체와 우정의 관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동감(sympathy)'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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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백하는 철학자들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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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자기 고백에 대하여' 강의는 '나'라는 주체가 어떻게 발견되고 형성되어 왔는지를 루소, 니체, 사르트르, 사마천, 정약용 등의 자서전과 묘지명을 통해 흥미롭게 조명했습니다. 글쓰기가 고통의 증명이자 부재의 극복이며 자기 증명의 작업이라는 통찰이 좋았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셀프 카메라, 김밥 할머니 등으로 표출되는 '과잉적인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은 우리 사회의 문제적 징후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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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삶, 그리고 혁명 |
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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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배움에 대하여'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교육 현실과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논리를 통해 교육의 참의미를 상실한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했습니다. 단순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공부, 지식 습득이 아닌 자기 발견의 과정으로서의 공부(주희의 앎)를 강조하신 부분이 좋았습니다. 이 강의는 우리에게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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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있는 사고방식에 깊은 인상 |
오*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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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의 미시적인 주제 선택과 그 주제를 관통하는 강단 있는 사고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냥 살지 말고 생각하며 살라'는 교수님의 메시지가 강의 전반에 걸쳐 느껴졌습니다. 다만, 중간중간 영화나 음악 같은 보조 자료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스킵하게 되었는데, 이 부분만 조금 줄여주시면 더 집중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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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결론이 아쉬웠던 강의 |
한*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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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초반의 문제 제기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연결하는 방식은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론 부분에서 '이것과 저것을 종합하여 적절히 조화'하는 식의 뻔하고 도덕 교과서 같은 결론이 자주 나와 아쉬웠습니다. 현대의 급진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처럼, 극단적일지라도 더 날카로운 사유를 기대했는데, 마지막은 다소 온건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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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스승의 강의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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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주제나 진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철학 자체에 접근하는 방법, 즉 '철학하기'를 가르쳐주는 강의였습니다. 물고기를 잡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스승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삶의 맥락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하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준 명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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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철학자 |
장*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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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대하여. 맛보기 강좌를 듣고 아..이분은 진짜 철학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비극이나 고통을 대상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들을 바로 짚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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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함이 느껴지는 강사님 |
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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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적인 주제들을 선택하여 우리에게 주제의식을 확실히 인식해주고 그 후에 그냥 살지말고 생각하며 살라고 하시는 강사님.. 강사님의 강단력있는 사고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강의가 깊지 않고 좀 피상적인 것 같았습니다 마치 ppt발표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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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이유를 알게하는 강의 |
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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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이유를 알게하는 강의입니다. 주제를 선정하고 어원을 찾고 주제에 함께 고민했던 철학자를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강사님의 강의는 최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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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생각이 담긴 강좌 |
신*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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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신청한 강좌. 저처럼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강의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설명을 참 잘해주셔서 잘 들을 수 있었어요. 좋은 강의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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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
장*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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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을 읽으려는데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강좌를 신청했다. 내용이 너무 어렵지 않고 천천히 잘 설명되어있어서 보기가 편했다.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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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랐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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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청년에 대하여를 듣다가 울화가 터져서 결국 화면을 껐습니다.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우리사회의 '청춘'이란 이미지를 상품화 해 유통시키는 시스템에 관한 비판은 백번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하지만 노인(늙음)에 관해 사회에서 보는 시선은 전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나이어린 사람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그걸 왜 모르시는지 답답했습니다. 청년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가 애매하지만 기득세력은 아닙니다.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에서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연소자가 더욱 노출이 많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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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를 돕는 강의 |
w**yong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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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주제를 가진 그리고 적절한 진도를 통한 철학 주제를 익히고 이해하기 보다는 철학 자체에 접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강의인 것 같습니다. 고기를 잡아다주는 어버이의 정보다는 고기잡기를 가르쳐주는 스승의 정이 느껴지는 강의인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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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
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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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강의를 보고 거금을 들여 선택한 강의였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뭔가 구체적인 생각거리를 던지고 깊이있는 내용전달이
강의내용일 줄 알았건만 기존의 철학내용을 강사가 짜집기하여
허술하게 풀어놓은 엉성함이 보입니다. 무거움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너무 가볍기에 문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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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좋지만 아쉬웠던.. |
강*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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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드럽고 자상한 강의 입니다. '각도와 층차'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상을 시대나 연도로 보지 않고 마인드 맵식으로 쭈욱 펼처나가는 강의입니다. 어떤 개념에 대해서 연관있는 사상을 펼치는 식으로요.. 참 좋았던 방법입니다.
2.다양한 생각의 폭 위의 방법에 걸맞게 한가지 키워드 혹은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의 폭을 확장합니다. 문제의 단면이 아닌 양면을 보는 강의로 교수님의 방식을보니 아마 이런식으로 말하는 훈련(?)이 몸에 익어보였습니다. 양면성을 보여주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강의입니다.
그러나 아쉬운점은.. 1.너무 도덕 교과서 같은 내용들이.. 물론 그렇지 않은 강의도 있었지만 (교수님 스타일도 반골기질이 강해보이고) 중간중간 뻔한 이야기가 있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특히 결론부분은 이것과 저것을 종합하여 적절히 조화...이런 식의 개인적인 결론을 내신 부분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결론이라 수긍이 갔지만 현대의 급진적인 철학자들의 사상도 소개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극단은 위험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지루한 보조 수업자료 중간 중간 참신하게 미술, 음악, 영화, 만화 등 을 소개해주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딱딱한 수업보다 유연해 보였고 텍스트 중심이 아닌 현생활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혹은 그것들을 볼 수 있는 시각을 염두해 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너무 깁니다. 예를들어 음악, 영화 등은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컨디션이 안좋을 땐 스킵을 해버리게 되더군요.
이 점 수업 들을 때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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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와 층차 2강 리뷰 |
나*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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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이란 주제에 초점을 맞춘 책들의 유행: 청년이나 청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고통 자체가 이슈가 되는 기이한 현상. * '청년' 이미지 쪽으로 편향된 광고들: 한국 사회에서 젊다는 것은 하나의 상품이자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청년 문제를 철학적으로 살펴봐야할 이유. 1)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청춘-청년 2) 사유와 그 확대 및 적용을 요청하는 관념으로서의 청춘-청년 3) 청년을 통한 육체와 정신의 변화를 겪는 인간의 특수한 조건에 대한 성찰
1. 요청으로서의 청년
* 1915년 발간된『청년잡지』 제 1권 1호 권두언에서는 청년의 위치를 '진부하고 부패한 것들을 자연 도태시키는' 신진대사의 도를 따라 사회를 융성하게 할 '신선하고 활발한 세포'로 규정하고 있다. → 사회적 책임을 맡을 특정계층 내지 세대로서의 청년 호명. * 20세기 초 동아시아 사회는 청년의 이미지를 취하고, 이에 맞춰 자신을 근대국가로 쇄신코자 했다. * 그러나 이러한 쇄신은 서양의 현실을 그대로 따온 것에 그쳐. 뿐만 아니라 전통의 단절, 정체성 상실, 비판 부재 등의 한계도 존재했다. → 밖에서 호명된 존재로서의 한계. 이러한 과거를 비춰봄으로써 우리는 밖에서 지명된 방식으로 내부의 내용이 규정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청년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2. 제 2의 탄생
* 청년의 정의: 괴테의 『파우스트』 - 여기서 파우스트 박사란 끊임없이 갈망하고 불만족스러워하는 청춘의 특징을 지닌 청춘의 아이콘. - 만족하는 순간 청춘은 끝난다. - 자기로 시작해서 자기로 끝난다는 단점이 있음
* 루소의 '제 2의 탄생' -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연민하고, 나아가 이를 개선하려고 시도하는 삶. - 참여하는 삶 - 누군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인 '공감(empathy)'의 차원을 넘어서 타인에 대한 관심과 타인의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욕망을 가지고 이를 실천하는 '동감(sympathy)'의 단계까지 나아가야 한다.
→ 이는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제 2의 탄생' - 만물은 같은 기질로 이루어져 있다(장재,『서명』참고) → 때문에 우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에게 연대하여야 한다.(맹자의 '우물가의 어린아이'도 비슷한 요지의 뜻을 전하고 있음) - 소학에서는 신체 차원으로 대면접촉에서 발생하는 관계들을 책임지는 법을, 대학에서는 이치를 가르치는 동양의 전통적인 교육방법 - 주변 세계에 대해 알고 자기 자신을 확장, 자기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넓혀야 하는지 자각하는 것이 동아시아인들이 생각했던 성장의 방향과 가치 - 참여하는 삶
→ 현대 한국 사회가 잃어버린 것
* 문제 제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성장이 아닌 성공에 목매다는 사회. 그러나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할 것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성장할 것인가?'임 - 이런 사회에서 필요한 건 "영원히 삐딱하게 보기", 즉 다시 말해 청년의 비판 능력
* 정리: 청년이란? 1) 만족하지는 않으나 방향 없는 새로움에 종속되지는 않는 사람 2) 세계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3) 타인에게 공감하며 관계를 통해 공존하는 인격 4) 비판하는 힘, 성숙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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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각도와 층차 3강 리뷰 |
나*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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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통 받기 위해 만들어진 인생 같아." 비극적으로 들리는 이 대사를 친 것은 놀랍게도 한 로봇이다. 심지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로봇이기도 하다. 로봇이 이런 말을 할 리가 없다고? 아니다. 로봇에게도 인생은 인생이고 고통은 고통이다. 혹은 이 두 가지가 동가(同價)인지도 모르겠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C-3PO. 스타워즈 시리즈에 등장하는 까불이 깡통로봇이다. 로봇에게도 고통인 인생. 인생은 수많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은 비극이다. 원래 비극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해 노래하는 극이란다. 여기서 관객들은 압도적인 운명과 맞닥뜨린 주인공이 고통에 어떻게 저항하고 견디는가를 지켜보며 그의 고귀함에 취한다. 그것이 카타르시스가 탄생하는 지점이다. 인생은 비극이고, 비극은 고통이고, 고통은 다시금 인생이다. 그렇다면 삶을 비극으로 만드는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외부에서?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삶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은 외부세계에 연원을 가진다. 거꾸로 뒤집어 보자. 고통은 왜 외부에서 오는가? 한 나무가 있다. 태풍은 그 나무를 거세게 몰아치고, 벌레는 그 나무를 갉아대고, 인간은 톱을 들고 그 앞에 선다. 나무에겐 이 모두가 고통이다. 이 나무는 '서있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혹은 '서있는 것을 행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유발한다. 이 행함의 고통이 바로 비극의 본질이다. 오이디푸스 왕, 마녀 메데이아, 덴마크 왕자 햄릿, 베로나의 어린 연인들까지. 행함의 고통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우리와 그들 모두는 이 나무의 분신이다. Doleo ergo sum. 나는 아파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삶의 본질이란 게 이렇다.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고통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곧 인생을 사는 법이다. 아픔을 치료하는 법을 배우고 감정을 삭이고 해소하는 법을 배운다. 철학에서도 이 문제는 오랫동안 천착되어왔다. 불교 교리에서의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蹄), 스토아학파가 추구했던 아파테이아(apatheia)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현들의 지혜를 빌려도 치미는 고통을 해결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그러니 우리 신체에 날 때부터 육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새로 배울 필요가 전혀 없으니!) 에너지가 들기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그것이 잘못된 방식이었단 걸 깨닫는 다가올 인생의 길목길목이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세상에, 이것마저도 고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하나 보다. 나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내 갈비뼈 열두 쌍 아래 들끓는 고통을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 그러나 고통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건 나뿐만이 아니기에 우리는 타인이 살아가며 빚는 고통과도 마주치게 된다. 사회적인 동물 인간에겐 타인의 고통(삶)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중요한 화두가 된다.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쁜데 남의 고통까지 생각하란다. 세상 일 뭐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나. 그렇지만 이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먼저 존중해줄 것.’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고통이 타인에게 가볍게 취급당하길 바라지 않는다. ‘나’의 고통이기에 그것은 중요하고 아프다. 타인의 고통이 일회적이고 소비적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는 타인이 고통 받는 자리에 없고, 그럼으로써 그 고통을 외면할 빌미를 가진다. 그래서 타인의 비극은 쇼가 되고, 지식이 되고, 예술이 된다. 어려울 것 없다. 나에게 타인의 비극이 쇼이고 지식이고 예술이라면 타인에게 있어 내 고통도 쇼고 지식이고 예술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이라는 점에서 동등하다. 여기에 인간적인 이해가 낄 자리는 없다. 그렇게 우리는 분절되고 고립된다. 강의 2교시 시작에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다. 투병 중이던 음악가가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한 마지막 연주였다. 음악을 듣는 순간의 우리는 모두 동등했다. 교단에 서있든 책상 앞에 앉아있든 혹은 강의실 뒤쪽에 서 카메라 손잡이를 잡고 있든. 우린 모두 어떤 특별한 특권의식 업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경청하고 이해했다. 타인의 비극을 바라보는 태도는 그것만으로 족하다. 그것만이 필요하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 달린 두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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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강의 리뷰 |
나*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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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리뷰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영 아니다 싶은 대여섯 가지 서두를 쓰다 지우다 문득 생각한 것이, 아, 집착을 덜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잘 써야한다는 생각. 남부끄럽지 않게 써야한다는 생각. 기한에 꼭 맞춰야한다는 생각 등등을 모두 내버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아까처럼 괴로워할 일은 없었다.
웃음, 분리의 미학
사실 이게 이번 4강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이다. 그러니 서두에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은 것도 마냥 틀린 선택만은 아닌 셈이다. 차근차근 들어가 보자. 웃음과 분리. 어쩐지 멀게 느껴진다. 그럼 이렇게 바꿔본다면? 웃음과 고통에서의 분리. 좀 더 그럴싸해졌다. 그런 이야기다. 사실 웃음만큼 어려운 게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남을 슬프게 만드는 건 쉽지만 웃기는 건 쉽지 않다. KBS의 인기 프로 '개그 콘서트'의 출연진들의 어마어마한 제작 회의와 연구량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웃음이 어려운 이유는 웃음이란 현상이 너무나 일상적인 탓이다. 기쁠 때, 즐거울 때, 행복할 때,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때. 그 외에도 웃음엔 수많은 용법이 존재한다. 슬픔=고통이란 슬픔의 단순한 프로세스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 그래서 지나치는 것일 테다. 웃음 뒤에 숨겨진 은밀한 공격성을,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분리시키는 비밀스러운 칼날들을.
웃음과 슬픔의 관계: 명랑성
놀린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놀림 받는 당사자가 큰 상처를 입었든 아니든, 혹은 그 방식이 세련되었든 아니든 간에 놀림이란 행위는 본질적으로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유희로서의 웃음이 어째서 공격성을 전제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다. 약간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놀림의 대상이 아픈 내 가족인 경우다. 이 경우 즐거움의 자리는 분노가 대신한다. 유희는 더 이상 유희가 아닌 공격으로 변모한다. 생각해 보라. 이러한 예를 우리는 수만 가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앞선 가정은 웃음이 어떤 식의 '거리두기'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굳이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들지 않아도 우리는 웃음이 대상과 나의 거리를 '벌려'서 '해방'시킬 수 있단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거대한 고통, 시간을 끌대로 끌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길게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 마치 생나무 장작불 위에서 타는 것과 같은 고통, 오직 이러한 고통만이 우리 철학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올 수 있게 강요할 것이며, 또한 모든 신뢰, 모든 안일한 것, 온유한 것, 적당한 것, 중간에 베일을 드리우는 모든 것들, 즉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까지 그 속에서 우리의 인간됨을 찾았던 것들을 저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고통이 우리를 좀 더 좋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생각을 좀 더 심오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안다. (중략) 이러한 상태로 병으로부터 도피한다 해도 우리는 이러한 길고 위험한 자체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 니체 <즐거운 지식>
그가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다시 말해 희극과 비극은 주체를 고양시키는 힘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둘의 조화는 예술을 진정한 예술로 만들고 사람을 새로이 성장시킨다. 비극, 슬픔은 나를 다른 것과 통합시키고 희극, 웃음은 나를 다시 개별자로 분리시킨다. 이러한 결합과 분리를 통해 획득하는 게 바로 '명랑성'이다. 명랑성을 갖춘 인간은 근거 없이 낙관하지 않고, 자기가 속해있는 구조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왜 고통스러웠는지 알고 있으며 현재의 자기 고통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실생활과 멀게 느껴지는, 꼭 책 속의 말 같은 이야기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 보자. 웃음은 나를 '분리한다.' 누구나 다 한번쯤은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에서 어느 순간 초연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웃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고통에 웃지 못하던 사람이 웃음을 되찾는 순간 그의 고통은 가벼워진다. 그는 이전 상태로 회복되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다.
웃읍시다!
강의 말미를 장식한 건 유희의 개념이었다. 웃음과 명랑성을 넘어선,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던 무목적성 유희는 나와 너무나도 멀었다. 이번 강의와 리뷰가 유난히 힘겨웠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들은 건 무조건 제 속에 꾸역꾸역 다 우겨넣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작은 팁 하나: 웃자. 시원하게 웃어버리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이 강의는 그래야 재미있는 강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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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강의 리뷰 <양날의 칼, 명랑성> |
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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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양날의 칼, 명랑성>
개인의 문화적 취향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늘 궁금했다. 여럿이 모인 술자리에서 그즈음 유행하는 개그 프로의 유행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든가, 나라면 돈 주고 보고 싶지 않은 빤한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이다. 잘못된 극단에 빠져 성찰력 없는 대중이 하류문화에 빠지는 거라고 결론지은 적도 있다. 내가 보는 영화와 드라마, 소설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거나 냉소적이고 이국적인 유머만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이 남들과 같지는 않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을 그런 식으로 판결하면 위안이 되었던 탓이었을까. 중요한 것은 내가 대중문화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저급하다고 조소하는 것 또한, 타인에 대한 우롱이나 자기 비하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명랑성, 즉 웃음은 어떤 대상의 부조리를 자각하게 될 때, 인격적 우월성의 쾌감을 주는 상황이라 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의 대상이 격하되어 허무로 용해될 때 생긴 것으로 다분히 공격적이다. 오랫동안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한 개그 프로에는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듯 보이는, 상대적으로 미달수준의 연예인들이 나온다. 그들은 대놓고 자기 자신을 비하하거나 비하하는 세상을 향해 아우성을 치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요즘에 들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오래 전부터 연예인, 특히 웃음을 줘야 하는 방송인의 경우가 그 재료로 자신이나 세상을 사용해왔다. 이는 비슷한 듯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풍자와 해학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풍자는 대상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고 적대자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해학은 자기 약점에 대한 자기 부정을 바탕으로 하는 ‘긍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웃음은 분명히 인간만이(지금까지는) 지을 수 있다. 그만큼 소중하고 수많은 부정적 감정에 시달릴 때 긴장을 이완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앙리 베르그송은 웃음을 “경직된 것을 유연하게, 개선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앞서 주지했다시피 이는 얼마든지 잔인한 무기로도 사용된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즉, 타인의 고통에 거리감을 두는 현상이야말로 웃음을 소비만 할 뿐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무감동의 감정은 전염과 파급력이 크며 이기주의와 염세주의에 빠지게 될 우려가 있다. 명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사무엘 베케트는 그의 소설에서 내가 웃으면 누군가 울고 누군가 웃으면 내가 운다는 것으로 삶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이 고통스러울 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듯, 웃음이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신이나 타인, 세상을 웃음의 재료로 쓸 때 농담을 듣는 청자가 나와 같은 인격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선희 선생님은 받아들인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물론 그를 극복한 후에 웃음이 따라오는 것이라 했다. 자신의 현존 그 자체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인 후 얻게 되는 삶의 긍정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날을 세우지 않은 진정한 웃음의 의미일 것이다. 강의의 매일 다른 섹션에서는 동시대에 살지 않았던 각기 다른 동서양의 철학자들의 말을 모아들을 수 있다. 같은 고민을 비슷하게, 혹은 다른 식으로 해내는 그들과 함께. 현대사회에 몸을 담구고 있는 자신을 성찰해보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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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강의 정리 |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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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강 : 귀환에 대하여
1) 집
* 집의 의미 - 보편적인 집의 이미지: 고향, 회귀점,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공간. 목가적·전원적 특성을 가짐. - 현실에서의 집: 항상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부족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지 않은 도전·불만족의 공간 - 한국 사회에서의 집 : 삶의 공간이 아닌 경제적, 사회적 공간.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으로써의 집.
* 집의 성질 - 집은 친밀하고, 사적이고, 일상적인 공간. 그러나 집에는 사적인 친밀감에서 비롯된 폐쇄성 역시 존재한다. - 집에 존재하는 강력한 내부 질서가 은폐막 역할을 하기도 함 ex) 바깥에는 드러나지 않는 가정폭력 등 - 폐쇄공간으로서의 집은 공포영화의 기본적 단위 ex) <검은 집>, <장화, 홍련> 등 - 집을 떠나는 데 대한 공포와 집에 갇히는 데 대한 공포가 공존: 집은 들어와야 하는 공간인 동시에 나가야 하는 공간. 그것이 제한되면 공포가 발생한다. - 돌아가야 할 삶의 회귀점으로서의 집: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 회복의 이미지 ex) <건축학개론>에서의 집
:: 어딘가 돌아갈 곳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욕망
2) 귀환/고향 : 안정감에 대해
* 인간: 귀향자 - 삶의 여정 자체가 고향을 향하는 나그네로서의 삶 - 여기서 고향이란 단순히 태어난 곳을 의미하지 않고 타지의 익명성과 대립하는 자기 동질성을 갖춘 공간을 뜻한다. (확실성, 안정적 존재) ※ 익명성: 개인의 존재를 소거시키는 억압.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 신화적 세계에서의 귀환: 1) 영웅의 성장과 정점 2) 모험과 시련의 끝에서 얻는 보상 3) 신화적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인간적' 경로
* 도가(道家) 철학에서의 '돌아옴'
<도덕경> 40장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 여기서의 反은 상반되다/되돌아가다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 도가에서의 세계의 질서: 어떤 정점에 다다랐을 때 다시 되돌아가는 것 - 같은 자리를 맴도는 순환이 아님. 사물은 어떤 리듬과 계기를 타고 움직이는데, 이 리듬과 계기가 어떤 국면에서 전환된다는 뜻의 순환!
* <주역>에서의 돌아옴 - 단순한 순환이 아닌 발전과 변화 - 우주의 변화와 질서에 대한 신뢰 - 변화에 대한 감수성, 미래에 대한 낙관 존재 ex) "천연론(天演論)" : 진화론의 중국식 번역어. 생물학적 발전과 변화를 하늘이 보장한 체계로 표현하고 있다. "각득기소(各得基所)" : 각각 적절하고 고유한 장소/바를 얻는다란 뜻. 모든 존재가 자신의 고향을 가지고 있단 뜻.
* 동아시아적 세계관 - 초월적 창조자 없이 변화의 거대한 힘만 인정 → 초월적 창조주에 의한 일회적 창조가 아니라 내재적 원리에 따른 자기 생성적 변화 - 낙관적 세계 인식 → 신이 세계를 창조하지 않거나 언제든지 무로 돌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하는 서양적 세계관과는 반대. - 질서와 가치의 회복을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음 cf) "신적 영웅"과 "초인"의 부재 - 변화와 진보에 대한 낙관 → 단순한 순환, 발전 없는 반복과 다른 "국면의 전환"
→ "돌아옴"은 모든 것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똑같다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계기를 타라는 의미.
*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의 형이상학과 "고향" - "철학은 본래 향수다. 그것은 모든 곳에서 (고향에서처럼) 안주하려는 충동이다." 노발리스(Novalis, 시인, 1772~1801)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 → 무한한 변화와 생성 앞에서 근원적인 것과의 합일하고자 하는 욕망: 일종의 형이상학적 충동 - 향수로서의 철학 1) 존재에 대한 절실한 관심 2) 자신을 둘러싼 전체 세계와의 화해 3) 생성, 소멸, 죽음을 겪는 인간이 추구하는 안정성의 충동(신학, 형이상학) - 하이데거는 이 시대를 고향상실의 시대(Heimatlosigkeit)로 정의하고, 기존의 형이상학들이 '세계를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고향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ex) 사람들을 강제로 유랑하게 만드는 산업혁명 시대의 유럽 사회
* 노동력의 이동 - 산업혁명 후 기술 발전(기계의 발전)에 의해 분업 증대 - 대체 불가능한 노동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대체 가능한 노동력 수요는 증가 - 농민들의 대규모 도시 이주 - 개인의 삶이 자본에 의해 적극적으로 포섭됨 → 독립적 생존 능력의 상실 → 도시 유목민의 탄생
3) 유목민
* 현대의 유목적 이동 -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현상: 이주 노동자/비정규 노동자/결혼 이주자 등 경계에 선 소수자들 등장 - 생존을 위한 이동. 내몰림과 부유(浮遊)의 반복 - 익명적 존재로 타자화되는 사람들
* 21세기 유목민에 대한 전망 - 잡노마드: "미래는 국경도 영토도 없을 것이며, 점점 분권화될 것이고, 권력은 개인에게로 향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아는 노마드처럼 움직이는 사회로 변해야 할 것이다." - 군돌라 앵리슈 <잡노마드 사회> 36쪽 - 다음 세기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 유목민의 가치와 사상, 그리고 욕구가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시장은 모든 노력을 총동원해서 유목민을 만족시키고자 한다. 유목민은 자기 집을 가지고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으며 주요 오아시스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 (중략) 대략 세 종류의 유목민이 존재할 것이다. 우선 하이퍼계급의 구성원인 부유한 유목민, 생존을 위해 평생 이동해야 하는 가난한 유목민, 마지막으로 한곳에 정착해서 칩거하는 대다수의 가상 유목민이다. 가상 유목민은 언젠가는 부자 유목민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동시에 가난한 유목민으로 전락하면 어쩌나 하는 강박 관념 속에서 살아간다. (중략) 유목민은 누구든지 가볍고 자유롭고 타인을 환대하고 언제나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접속되어 있으며 박애를 지녀야 한다. - 자크 아탈리, <21세기 사전> - 디지털 노마드
* 현실 - 자본의 이동, 증대되는 노동 유연성 아래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 - 고정된 장소의 강제적 상실 ex) 방문자 수가 없어 사라지는 '홈'페이지. - 단답형 세계, 가상-허상의 접속 - 전방위적 감시와 착취 - 자본을 요구하는 디지털 노마드적 생활 - 이러한 성질들이 마치 우리의 밝은 미래인 양 포장되어 전파되고 있다.
* 유목민으로 살아남는 법 - 자본의 기술과 정치적 기획의 실체에 대한 자각이 필요 - 자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는 기술 필요 - 개인의 실천적 활동, 대중의 자발적 흐름이 표출될 수 있는 유동적 공간 확보의 필요성 - 이질적인 삶에 대한 개방성과 환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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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강의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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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노트 “자기 고백”
자화상의 구조(3개의 자아) Ex)뮈러, 램브란트, 고흐, 쿠르베, 뭉크, 피카소
-실제의 나
-거울 속의 나: 허구적 자아
-그림 속의 나: 해석된 자아
->해석되고 창조된 나
:자아 이해의 길이자 자기에게 거리 두는 방법
:내면으로 향하는 방법이자 표면에 가두는 방법
Q.나는 왜 나를 그리는가/나는 왜 그리지 않고 쓰는가/나는 왜 나를 잊지 않고(흘려보내지 못하고)기록하는가?
=>자기를 드러내려는 욕망: 내면의 발견, 자의식多
∴‘나’는 객체인 동시에 익명적(자기부정) 존재
Ex1)루소, 『고백록』 제1권
:개인과 사회·제도 본성의 문제 탐구, 자기 보존·구성의 힘
2)니체, 『이 사람을 보라』
:과대망상과 광증
3)장 폴 사르트르, 『말 Les Mots』
:존재의 우연성, 잉여적 존재로서의 자각,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시작된 존재, 부정당하고 부재하는 존재의 위안을 위한 놀이, 글쓰기가 자기 존재 증명의 작업인 존재
4)사마천, 『사기』, 「태사공자서」
:자기긍정=부정의 폭우 앞에 대항하는 사명을 가진 존재(↔서구의 개인주의와는 또 다른 학문&사상에 집중한 동아시아적 자아)
5)이덕무, 「간서치전」
6)정약용, 「자찬 묘지명」 집중본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Confessiones』
-기독교에 귀의하기까지의 성장과정&방황을 연대기적으로 기술
-인식의 흐름을 따라 묵상하듯 기록
-선·악·기억·시간·창조 등 종교적 문제들을 바탕으로 전개
->자기 인식과 자기 반성
개인주의의 원천
-기독교에서의 개인적 영혼의 구원
-개인적이고 초월적인 신
:신과의 직접적이고 내면적으로 관계/심층적 차원에서의 해방/인간을 자유롭고 유일한 인격체로 철저하게 내면화/집단이나 국가에 소속되어야 할 의무에서 해방
르네상스: 자유로운 개인의 출현
-자기 고백의 시작->개인주의 출현
*자본주의는 신에 대한 월권: 시간이 돈이 되는 시대
1)자율성을 인정받는 도시에서의 생활 확대
2)시간의 자유로운 조절과 사용(시계제조업의 발달)
3)인쇄술의 발달·자유로운 사상의 교환과 비판 정신의 함양
4)은행의 설립과 사유재산권의 확립·자유시장의 출현
=>‘나’라고 말하는 자기 운명의 주인 등장 Ex)셰익스피어의 고독한 주인공, 자기 작품에 서명하는 예술가들의 등장
개인의 사례
-자기 운명의 주인공
-새로운 지식으로 신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 콜롬버스와 같이 모험을 선택하는 개인
-경제적 주체로서의 상인: 이탈리아 상업도시의 상인들
종교 개혁으로 등장한 개인
-근대적 인간: 성찰하고 계획하는 인간, 시간적으로 미래를 향해 자신을 움직이는 인간
**스스로 자기반성이 가능한 개인,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능동적·주체적·법과 경제적으로 주체가 되는 개인, 시민사회의 도래
르네 데카르트의 ‘Cogito'
-문법적 주어와 사고하는 주체를 하나로 결합
-자기를 기준으로 삼아 생각하는 주체
-세계와 타인으로부터 고유한 존재
-‘나’를 스스로 파악하고 생각할 수 있는 주체적·개별적 인식으로 규정
문학 장르로서의 자서전: 근대적·도시적·개인적 현상
-자아 기술의 특징
:과거에의 호소를 통한 정체성 획득
:현재의 자기를 알기 위해 과거의 자기를 축적
-연대기적 구성
:삶의 과정을 시기적으로 구분하고 재구성함
:개별적 사건을 인과적으로 연결해 현재로 ‘되어진’ 과정을 정당화함
=>자기에 대한 신뢰/자기 보존과 표출의 욕망
∴공통점: 글쓰기는 다른 사람과 다른 고유의 나를 찾는(인식하고 호명하는) 자기 증명의 과정
Q.누구를 향한, 무엇의 증명인가?
:고통의 증명이자 승리의 증명
:부재와 우연성의 극복
:부정의 돌파
:자기 정당화와 정체성의 언어적 구축
***이 시대의 존재 증명: 글 없는 자서전 Ex)셀프 카메라, 김밥 할머니 etc...
-많은 한국 여성이 외부의 부정(부재)에 저항코자 함=문제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자기 보존의 욕구
우리 사회의 징후로서의 존재 증명
:부재(부정)에서 벗어나기(≒치열하고 과잉적인 존재 증명)
∴과잉적인 존재 증명에서 벗어나, 한 개인이 자기 존재·고통·극복과정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존재를 마모시키지 않는 세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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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강의 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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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노트 “배움”
공부(功夫, 工夫, Study, Learn)
:지식을 습득함, 진리를 알아챔, 연구, 수련·달인이 되는 과정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남송의 성리학자 ‘주희’
∴공통점=>다작(多作)하며 학문을 삶의 전체로 채운 사람들
Q1.우리는 왜 공부하는가/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왜 그토록 많이 공부해야 하는가?
:질문 없는 시대, 목표 없는 공부, 성찰 없는 성공, 지향 없는 전력 질주에 대한 의의제기
Ex)낙오(생계문제)가 두려운 아이들
∴제도권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는 근대화·서구화·제국주의·자본주의에서 비롯됨
교육의 가치를 강조해야 하는 근대의 특성
책 읽기의 전도사들
Q2.왜 책을(많이) 읽어야 하는가/(누군가는)왜 그토록 많은 책을 읽는가/그것이 왜 자랑거리인가/그래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수단과 목표의 전도, 경도된 독서, 가볍게 부유하는 자기개발
Ex)책 읽기를 전도하는 책: 진정한 공부로 연결되지 못하고 소비에 머묾(이는 편중된 한국 도서 시장을 반증)
∴책과의 밀도 깊은 관계 필요
‘시장’으로 간 교육: 한국사회의 닫힌 교육적 상상력
Q3.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VS 어떤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가?
/영어 몰입 교육이 기러기 아빠들의 아픔을 더는가?/국가 차원에서 구제해야 할 대상인가?
:삶의 가능성과 경험을 제한하는 과잉 학습, 과잉으로 득을 보는 이들(경제)이 있기 때문에 존재
Q4.왜 한국 엄마들의 직업은 '자녀 공부 매니저‘가 되었는가?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시대, 교육 외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회에서의 과잉 투자, 수능 성적(제한된 방법)이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적을 결정한다는 논리에서 비롯된 교육 전체의 시장화·서열화·경제화는 고착된 사회를 만들고 교육의 참의미를 상실시킨다(기형적 모습)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문화자본”
:출신 계급간의 교육적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 비물질적인 상징 자본의 형태로 은폐되고 위장된 실체가 불분명한 경제 자본
-문화자본의 작동
:고급의 심미적 문화를 소비하거나 그에 참여함으로써 체화, 상층 계급이 하층 계급을 배제하는 문화적 실천 방식, 문화자본으로 상징적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이용해 교육 자원이나 경제 자원을 배타적으로 획득 Ex)명문학교, 엘리트주의
교육을 둘러싼 허구적 논리
-무한 경쟁을 뚫고 나온 엘리트가 국가 경제를 이끈다
-교육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선택할 문제다
-평준화 교육은 하평준화를 초래한다
=>무한 경쟁의 수혜자는 그 과잉 경쟁을 부추겨 돈과 지위만을 획득하게 됨
∴개인의 성취를 묻는 교육을 지향하고, 평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구조 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知)’
:성공적인 삶=인간의 목적이나 기능에 따라 사는 분별력 있는(이성적인) 삶
-테오리아: 지적으로 관조하고, 진리를 이해해야 ‘행복’을 향해 갈 수 있음 Ex)페리클레스
중세의 학문과 목표
-후마니타스: 인간다운 교양을 갖춘 삶, 활동적·관조적인 삶의 조화
동양) <논어>의 학문
:개인의 기쁨의 문제가 사회적 관계로 확대되는 삶
평등한 교육자 공자
:가르침에 부류를 구분하지 않는다
주자의 앎
:지식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 경험을 통해 자기(존재가 내부에 가지고 있는 기·이치)를 발견하는 과정, 나를 내가 아니게 떠나게 해주는 동시에 돌아오게 해주는 것
동아시아 학문의 특징
-공부론과 수양론의 강조
-이념의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에 관심
-도상의 존재로서의 반성과 성찰 강조
-인격의 변화와 이를 바탕으로 세계 변화: 변하지 못하는 공부는 소비일 뿐!
**Q5.어떤 책을 읽고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고민/질문 없는 책을 피할 것, 글쓴이의 의식과 직접 대면할 것, 능동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며 깊이를 부여할 것, 반드시 읽은 기록을 남기고 소통할 것, 정리한 책에서 꼭 원제자로 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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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의 초대 |
노*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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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기의 작은 가지부터 큰 줄기까지, 나무에서 숲을 아우르는 다양한 방법을 담백한 소리로 접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철학하기는 깊은 사유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쓰기와 읽기, 말하기로 드러내야 한다고 다시 되새겨봅니다. 인문학 화이팅! 김선희선생님 화이팅!아트앤스터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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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 있습니다 |
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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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좋아하던 선생님 강의를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의록이 전혀 제공되지 않는 것인가요? 그 점은 너무 불편하네요. ㅜㅜ 조속한 강의록 업데이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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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김선희 선생님 강의를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따로 제공해주신 강의안은 없습니다만 지난 인문숲에서 수강생들이 작성한 강의노트를 커뮤니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207.asp?lessonidx=off_shkim16&clck=4#cnt_view 참고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트걸 (12.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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