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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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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
조*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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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 강의를 몇 번 들었는데 역시 좋습니다.
소설을 통해 세계를 읽는 방법, 세계를 통해 소설을 마주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기를 바랍니다.
강의 잘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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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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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모든 것들은 꿈을 꾼다 |
이*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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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이 들려주는 소설들과 소설들에 숨겨진 뒷 이야기. 정말 좋았어요^^ 다음엔 여기 나온 소설들 말고도 다른 작품으로도 강좌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립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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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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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과 함께하는 특별한 책읽기 |
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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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과 함께 청춘, 기다림, 고독, 죽음, 악, 폭력, 문맹, 시간 여덟 개의 주제로 선정된 여덟 권의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움인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깊은 사유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었지만 나의 무지와 몽매를 알아가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는 나만의 고유한 삶으로부터 시작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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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독법 |
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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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에 <울분> 원서로 읽다가 포기했었다. 영어 실력 문제도 있었지만 솔직히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더라. 그러다 이 강의 듣고 나서야 마커스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갔다. 피갈이 사회라는 관점은 처음 접했는데 그 렌즈로 보니까 소설 전체가 다르게 읽혔다. 8강 전부 완강했고 특히 베케트 부분이 인상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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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철학적으로 읽는다는 것 |
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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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불문학 전공 중인데 이런 식으로 텍스트 읽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김진영 선생님 특유의 해석 방식이 있다. 롤랑 바르트나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 관점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시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발자크 <사라진느> 강의에서 바르트 방법론 설명하시는 부분은 논문 쓸 때 참고할 만했다. 다만 가끔 선생님의 주관적 해석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좀 더 객관적인 접근도 병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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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독 추천 |
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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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독 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 다시 듣는 중이다. 첫 번째 들을 땐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반도 못 알아들었음 ㅋㅋ 근데 두 번째 들으니까 아 이런 의미였구나 싶은 게 많다. 특히 조셉 콘래드 <암흑의 핵심> 부분. 식민주의와 악의 변증법 이야기할 때 지옥의 묵시록 영화랑 연결해서 설명하시는데 그 부분 세 번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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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강의 듣고 |
이*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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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트 희곡은 학부 때 읽었었는데 당시엔 그냥 이상한 연극이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이 강의 들으니까 왜 이게 20세기 걸작인지 알겠더라. 구원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구원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역설적 기다림이라는 해석이 충격적이었다. 2강 네 번 반복해서 들었다. 강의록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나중에 다시 보기 좋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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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용은 아닌 것 같음 |
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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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전공도 아니고 철학 기초도 없는데 제목만 보고 신청했다가 좀 당황했다. 프루스트니 카산드라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배경지식이 없으니까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래도 끝까지 들었고 나름 배운 건 많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절반 정도는 무슨 소린지 잘... 다음에 들을 땐 관련 책 좀 읽고 들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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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바다 야스나리 부분 |
정*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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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잠자는 미녀> 강의 들으면서 일본 문학에 대한 편견이 좀 깨졌다. 죽음과 아름다움을 이렇게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노인과 여자, 에로티시즘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고. 선생님이 <감각의 제국> 영화도 언급하시는데 그것도 찾아봤다. 다만 처녀성에 대한 집착을 다루는 부분에서 좀 불편한 감정이 들긴 했다. 작품 자체가 그런 주제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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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
김*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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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 강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총 8강에 17시간 넘는 분량인데 지루할 틈이 없었다. 청춘, 기다림, 고독, 죽음, 악, 폭력, 거세, 시간이라는 여덟 개 주제로 여덟 편의 소설을 읽어나가는 방식이 체계적이었다. 각 작품마다 작가 소개와 내러티브 구조 분석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인 텍스트 해석으로 들어가는 구성이 좋았다. 마르케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서 공동체와 폭력의 정당성을 논하는 부분은 정말 탁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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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아쉬운 점 |
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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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 자체는 수준 높다. 근데 좀 아쉬운 게 현대 작품이 적다는 거. 8편 중에 20세기 후반 작품이 몇 개 안 된다. 물론 고전이 중요하긴 한데 21세기 문학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가끔 선생님 목소리가 작아져서 볼륨 키웠다가 다시 줄였다가 반복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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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
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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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모모라는 아이의 시선으로 고독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애잔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기라는 표현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선생님이 게토 이야기하시면서 여성의 삶과 연결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꼭 원작 읽어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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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인데 |
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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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면서 출퇴근 시간에 들었다. 하루에 한 교시씩 천천히. 가브리엘 마르케스 부분에서 진정한 독서란?이라고 물으시는데 그게 와닿았다. 나는 그동안 줄거리만 파악하고 책 읽었다고 착각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는 6강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개념도 처음 제대로 이해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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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를 이렇게 읽다니 |
김*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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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사라진느> 강의가 제일 충격적이었다. 거세, 동성애, 성 담론을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와 연결해서 읽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롤랑 바르트가 이 소설을 분석한 방법론도 설명해주시는데 그 부분이 특히 유익했다. 예술로서의 사라진느라는 관점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이 소설 제목도 이번에 처음 들어봤는데 원작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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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강 후기 |
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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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에 걸쳐서 천천히 들었다. 매주 두세 교시씩. 솔직히 어려운 강의다. 문학 이론이나 철학 개념이 익숙하지 않으면 버겁다. 나는 그래도 학부 때 인문학 전공했어서 그나마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진영 선생님의 해석이 항상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텍스트를 다층적으로 읽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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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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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 마지막 강의. 동독 문학은 처음 접했는데 시간의 문제를 이렇게 다룰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분단국가 문학이라는 키워드가 한국 문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동독과 서독 사이에서의 정체성 문제, 발작처럼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강의 시간이 111분으로 다른 강의에 비해 좀 짧은데 그래서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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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매 할인으로 샀는데 |
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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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0원에 구매했다. 원래 49,000원인데 이벤트 가격으로. 이 가격이면 완전 가성비다. 강의록도 제공되고 6개월 동안 들을 수 있어서 여유롭게 들었다. 김진영 선생님 다른 강의들도 옵션 상품으로 할인 판매하던데 관심 간다. <경계에서 읽는 세계문학>이랑 <그늘 - 문학과 숨은 신>도 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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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진영 선생님 |
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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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진영 선생님이 소천하신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너무 슬프네요.. 김진영 선생님 강의의 빅팬으로서 정말로 슬픕니다.. 항상 소탈하시고 부드럽게 웃으시며 그 작은 체구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시던 분인데 더 이상 그 분의 강의를 들을 수 없다니 너무 안타깝습니다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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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모든 것들은 꿈을 꾼다. |
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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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것들을 알아보려하는 안목이 철저히 부족한 사람이라 더욱 더 뜨겁게 느껴집니다. 몇 번을 돌려 들어도 가끔은 너무 생소한 것들이 많습니다. 천천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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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
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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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처럼 김진영 선생님의 시각에서 읽은 문학이다. 문학 공부를 어느 정도 한 사람이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들으면 입문과정 생략하고 고급과정으로 들어가는 격일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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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강이에요. |
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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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선생님 강의는 워낙 좋아서 추천해요. 선생님은 소설수업에서는 텍스트를 읽는것을 매우강조하십니다. 읽기를 적극 권하고요. 좋은 소설을 읽고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면 의미있는 시간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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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볼수있는 경험을 갖게 해주었던 강의!!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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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앞의 생" 이란 책에 대해 새로 알게된 점이 너무나 좋았던 강의였습니다. 단순히 책을 읽기 보다는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며 좀 더 비평적으로 읽어 보아야 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다른 강의들도 기대가 되고 빨리 듣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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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는 눈, 돌아온 눈 |
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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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읽히는 것에 의문을 갖게 하는 시간. 그러함에 강의를 듣고 나면 숨겨진 물음표를 내 안에서 찾아 다시 읽게 합니다. (청춘, 기다림, 고독, 죽음, 악, 폭력, 거세,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진 것도 좋아요. 소설을 통해 현실을 보는 눈, 철학적 사유까지 가져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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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님:) 맞아요. 인문학이 주는 배움은 그런 것이지요. 당연하다고 믿는 것에 의문을 갖게 하고, 그 해답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아트걸이 민경님의 소설 읽기를 응원할게요 :) 아트걸 (1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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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청춘 |
신*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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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춘에 대한 책이 많잖아요. 저도 청춘이라면 청춘인 때인데 청춘, 기다림, 고독 이 세 개의 주제로 한 수업이 와닿았습니다. 청춘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아요. 청춘 아니어도 느끼겠지만..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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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인된 모든 것들은 꿈을 꾼다 |
최*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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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봉인되어 있는 의미를 살펴볼 수 있어 좋은 기회였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재미있군요.ㅎㅎ 다른 작품들도 강좌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잘 듣고 갑니다. 김진영선생님 감사해요.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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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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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많이 됩니다. 빨리 수업 듣고 더 깊게 공부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 드립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빨리 수업 듣고 더 깊게 공부하고 싶네요~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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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감수성을 키워주는 강의. |
o**nge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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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이론'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감수성을 키워주는 강의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소설을 읽다보면 줄거리를 파악하느라 휙휙 지나쳤던 그 세밀한 부분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생님 덕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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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선생님과 소설 읽기 |
김*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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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선생님의 강의는 처음 들어봐요. 분위기 있으시고 설명도 잘 해주셔서 좋았어요. 문학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을 사회와 같이 연관시켜서 보니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2도 열심히 듣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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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타수이사이드, 그 역설적 기다림을 위하여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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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반체제음악집단, 레나타수이사이드
2012년 4월 15일, 레나타수이사이드는 "2012선재415 피고인 소환장"(희대의 저질 공판을 받고 나온 박정근의 첫 기획 공연)을 받고 법정에 섰다. 그 죄목은 아래에 써 있는 것 그대로다. "피고인 레나타 수이사이드는 결성된 지 근 십 년 가까이 된 중견 반체제 집단으로서 국익 온존을 위한 국책사업인 한미FTA를 반대하는 공연과 정부 개발정책을 반대하는 작은 용산 두리반을 옹호하는 다수의 반체제적 공연에 찬조출연한 바 있습니다." "이 음악집단의 이름 'Renata Suicide'는, '부활'을 뜻하는 여성 고유명사 'Renata'와 '자살'을 뜻하는 보통명사 'suicide' 사이의 우연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명칭으로서, 끊임없이 자살과 부활을 반복하는 끈질긴 인민의 삶과 그 생명력을 상징한다." "람혼의 머리는 사회주의의 빛나는 미래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피고인 레나타 수이사이드는 결성된 지 근 십 년 가까이 된 중견 반체제 집단으로서 국익 온존을 위한 국책사업인 한미FTA를 반대하는 공연과 정부 개발정책을 반대하는 작은 용산 두리반을 옹호하는 다수의 반체제적 공연에 찬조출연한 바 있습니다." "이 음악집단의 이름 'Renata Suicide'는, '부활'을 뜻하는 여성 고유명사 'Renata'와 '자살'을 뜻하는 보통명사 'suicide' 사이의 우연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명칭으로서, 끊임없이 자살과 부활을 반복하는 끈질긴 인민의 삶과 그 생명력을 상징한다." "람혼의 머리는 사회주의의 빛나는 미래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하,하. 다시 되새김질해봐도 웃긴다 잠깐 눈물 좀 닦고...) 레나타수이사이드의 변은 다음과 같다. 1. 레나타 수이사이드는, 실황만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급진적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기조로 하는 반국가주의/반자본주의 음악집단이며, 녹색성장과 웰빙을 저주하는 극단적 애연가이자 국제주의자들이다. ‎2. 남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 또한 모두 현재에도 상징적/실질적 의미에서 역시나 '식민지' 상태에 있으므로, 반동의 피로 붉게 도색되는 그날이 오기까지 '서울'이라는 도시는 '경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무방하며 오히려 그러한 호명을 권유한다. ‎3. 최근의 총선을 통해서도 징후적으로 드러났던 바, 현재의 인민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을 혁파하거나 해방시킬 능력이 전혀 없으며 대의민주주의는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다. 극렬한 무장투쟁이 요구되는 바, 예술가들이여, 자신들의 무기를 장착하고 투쟁하라. 오지 말아야 할 것을 위한 굿, 그 역설적 기다림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난 불안해졌다. 과연 내가 기다릴 수 있을까? 침묵을 견디기 위한 수다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까. 납득할 수 없는 기다림에, 그 잡설에 난 돌아버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매순간 이 끝없는 배반 속에서 난 계속 기다릴 수 있을까. 가슴이 울렁거려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소설들, 혹은 봉인된 혀들]에서 김진영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다림은 "살아남기"를 위한 것이다. 고도가 구원, 꼭 와야 하는 존재라기엔 그들의 기다림은 너무나 처절하고 불안하다. 오히려 와서는 안되는 존재이기에, 그러나 올지도 모르기에 그것을 쫓기 위한 굿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레나타수이사이드의 음악은 침묵을 깨기 위한 굿이다. 굿 그 자체다. 그들은 아니, 레나타수이사이드는 고도를 부르는 주문도, 고도를 찬미하지도 않는다. 그저, 와서는 안될 그것을 막을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기다림을 끝없이 이어간다. 그 역설적 기다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함께 그 구역질 나는, 그러나 정말 "살아있음"을 위해 해야만 하는 그 기다림을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고도를 까먹는다. 어쩌면 가끔 기다려야 한다는 것조차 까먹는다. 그리고 나는 매순간 기억한다. 지겨운 밥벌이를 위한 시간 죽이기에서, 서로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술자리에서, 자고 싶지 않지만 자야만 하는 그 어중간한 새벽 한가운데서, 웃고 떠드는 공연장 구석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고도를 상기한다. 그리고 이 수다를 멈추면 고도가 와버림을 감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 무서운 수다를 이어간다. 기다림은 치열한다. 살아남기를 위한 기다림은 처절하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아직까지 고요하다. 그 치열한 기다림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린 그 기다림을 계속하는 것을 지레 멈춰버릴 지도 모른다. 지금 이순간, 침묵은 진정 고도를 반기는 것이다. 조금의 빈틈도 용납해선 안된다. 이 빌어먹을 기다림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여야만 가능하다. "너"와 "나"모두가 같을 필요는 없다. 아니, 완전히 다르다. 필연적으로 싸워야만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여야만 너는 나를 상기시키며, 나를 너를 버티게 한다. 고도가 오면 기다림을 끝난다. 우린 고도를 위해 기다린다. 기다림은 고도를 위해 있다. 하지만 우린 고도가 정말 오길 원하지는 않는다. 기다림이 끝나면 마침내 고도는 와버리기에 우린 여기에 있을 수 밖에 없다. 2012년 4월 19일은 레나타수이사이드의 10주년이다.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기쁘지만 그들의 그 음악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는 예감에 떳떳하지 못한 기쁨을 갖는다. 레나타수이드를 보면 만화<진격의 거인>이 생각난다. 안전한 듯 보여도 저 벽 너머의 거인들이 언젠가는 넘어오고 말 것이라고 외치는 앨런을 사람들은 비웃었다. 겁이 너무 많다며.그러나 거인은 마침내 벽을 뚫고 들어와 그들의 세상을 파괴시켰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 아직까지도 진짜 살아있는 것은 앨런이다, 미카사다, 아르민이다. 완전한 숫자의 3인조 밴드 레나타수이사이드가 저 거인들을 물리치길 굳게 믿는다...라니? 미친 건가? 저 3인조가 다해먹었다면 <진격의 거인>이 지금까지 나올 수도 없다. 하아...... 함.께. 합.시.다 레나타수이사이드도, 당신도, 당신 옆의 그 사람도, 그 사람의 그 사람도 함께 하길, 염병 하길 기도해 봅니다. 그대도 염병, 나도 염병 우리 모두 염병! 염병하는 방법 -월간염병의 발기문 중- #1 _ 증상. 언제부턴가 이미 규정된 것에 대해 공격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남들이 쳐다 볼 만큼 새로운 것을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증상이 시작된 이후로는 같은 꿈만 꾼다. 이름 없는 한 사람이 나타나고 다른 사람이 나타나고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함께 세상을 바꾸는, 그런 이상한 몽상. 눈은 마치 물구나무서기 한 것처럼 거꾸로 된 시각을 가지게 되고, 뭔가를 쓰고 그리고 말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심장 깊은 곳에서 숨막히는 답답증이 시작된다. 거창한 구호와 대안 없는 탁상공론에 대한 알레르기는 두뇌 깊은 곳까지도 가만두질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전혀 호전의 가능성이 없는, 이 병은 그런 것이다. #2 _ 진단명 염.병. 이 병의 이름은 염병, 강한 전염병에다가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방도가 없는 불치병이다. 염병은 독특한 사상적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변종이 다양하고 어디로 행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며 보균자의 특성에 따라 증상이 각각 다르게 구현된다. 다양한 증상의 보균자들이 모인 집단 ‘월간 염병’은 온갖 모순과 변수의 집합체이며 병의 특성상 환자들은 서로의 괴질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려 애쓴다. #3 _ 처방. 보통은 보균자를 격리하려고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움직여야 한다. 같은 환자들끼리 모여 유기적으로 행동하라. 허망한 말만 떠들지 말고 글이든 그림이든 노래든 춤이든 누구와 만나 수다를 떨든 밖으로 내 뱉어야만 살 수 있다. 작지만 강력한 방식으로 끈질기게 병균을 퍼뜨리자. 허울뿐인 큰 구호로 소화불량에 시달리지 말고, 소소한 일상에 이상하고 흥겨운 변화를 침투시켜라. 그러면 어느 날 당신의 병은 치유 없이 치유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이 같은 병에 걸린 순간, 그 것은 병이 아니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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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징그럽게 꽃이나 들여다보지 말고요오 좀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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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작품으로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은 얼마나 속 편한가. 힙합 음악을 들으면서도 걸쩍지근한 것은 그 안에 여성 비하적 표현들을 견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베이비복스를 미아리복스라 지껄인 이하늘을 이해하네, 힙합 문화에서는 이런 풍의 디스는 흔하다란 변명들을 듣고 있노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얼씨구, 힙합이 성역이냐? 문화에서 성역이란 게 있니? 랩퍼든, 랩퍼 할아버지든 여성 비하성 발언을 하는 것을 우린 지적할 수 있어, 옙! 꼬우면 걔네도 이하늘 까면 되지 않냐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너네는 너네 방식이 있듯, 나는 나대로 대응하면 되지 않느냐, 이게 나의 방식이다 하면 디스 문화가 어쩌네 얘길 할 건가?
옛날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런 표현에 적응해야 한단 말을 하면서 어떻게 저항을 말하겠다는 거지? 오히려, 더 낯설게 옛 방식을 바라봐야 하지 않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영어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멜로디와 리듬만을 음미할 수 있지만 12년간의 주입식 교육의 세례를 받은 탓에 이따금씩 들리는 그 욕설과 모욕적인 표현은 잘난 "문화"로만 소비할 수 없게 한다. 사회 시간, 미술 시간에 여성의 누드화, 조각이 나오면 따라오는 설명들 앞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여체의 미가 어쩌네 저쩌네 하는 식의, 여성의 몸이 객체로만 인식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미사어구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은 문학에서 남성 작가들이 여성을 그리는 약탈적 시선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정말 미식거릴 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처녀 운운하는 이 할바탕구가 새롭기는커녕, 또 처녀 타령이냐 짜증이 솟구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 꾸역 이 책을 읽은 건 봉인된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과 동시에, 현실에서의 내가 그러한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듯, 예술을 소비할 때에도 그러했기 때문에 약간의 체념. 여느 때처럼 남성 독자에 비해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이 책을 해독해야 한다는 것은 화나지만 일단 읽고 나서 두고 보자고 결심하니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소설들, 혹은 봉인된 혀들]수업을 들으며, 김진영 선생님이 읽어내는 방식에 납득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솔직히 불편함이 더 커서 수업 전에는 그러한 부분들을 읽어내지 못했다. 왜 그들이 허구헌날 여성의 몸을 소재로 삼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그냥 편해서? 내가 볼 땐 그게 그 작가들의 한계라고 본다. 게을러빠진 작가님들 같으니. (당신들, 어떤 면에서는 너무 편하게 가는 거 아냐? 소재 발굴 좀 해봐.) 공범으로는 끊임없이 그것을 용인하고, 취향 정도로 관대하게 봐준 이 세계, 그리고 고매하신 당신들. -왜 소설을 소설로 읽지 못하냐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은 그 소설이 불편하지 않은 계층이었다는 점에서 난 접수 거부! 난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보다 환멸감이 있으며, 어느 것에나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는 태도가 제일 빌어먹을 태도라고 믿기 때문에 그 세계를 강렬하게 싫어하겠다, 이말이다! 그의 유미주의, 그 끈질기게 탐욕스런 시선이 놀랍긴 하지만, 이보시게나, 감탄스럽지는 않다네. 식상한 소재로 여기까지 온 그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것에 열광하는 이 세계에 내가 속할 수는 없다는 것에 내가 절망할 자유조차 없다는 게인가? 이게 잘난 노벨상 수상작이라서? 헐, 이봐, 배포 좀 가져 봐. 난 이게 불편하다고. 그 끈쩍끈쩍한 시선, 물질에 집착하는 것보다도 징그러운 게 그건데, 너네는 여체에 대한 집착은 왜 또 그리 옹호하냐들! 모든 작가가 모든 부류의 약자를 배려할 수는 없지. 또한 어떤 작품이나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하지만 그 말은 남성의 여체에 대한 지나친 왜 남성은 어린 처녀에 끊임없이 탐닉하고, 그 여체를 다루는 폭력적 시선의 미학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꾸에엑. 예를 들면, 끊임없이 남성 작가들이 소재로 써온 여성의 몸 대신에 흑인이나 황인종을 쓴다면 어떨까? 그건 비유일 뿐이고, 작품일 뿐일까. 한국 사회가 인종차별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버블시스터즈는 고의성이 없었음에도 그네들이 보기에 뜨아할 퍼포먼스를 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그 약탈적 시선에 대해서는 예술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 일쑤다. 물론 그게 대중문화인 경우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문학 작품이거나 소위 예술영화일 때는 은근슬쩍 넘기니..... 나원참을 소환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여성이 흔한 비유의 소재라면 난 왜 여전히, 아직도 여체냐 하는 물음을 던지고 싶다. 갈고리로 다 뜯어내버리고 싶다. 망할 영감탱이들 같으니! 변경에 피는 꽃 환갑이 넘은 남자가 화단을 가꾼다 분꽃도 있고 채송화도 있다 햇살에 무차별적으로 드러난 굽은 등 물통에서 가는 오줌발 같은 물이 흘러내린다 울타리는 지난해에 거둬버렸다 그것만 보면 이쯤이 아프다 했다 차라리 바둑이나 낚시를 하세요 궁상맞게 꽃이나 들여다보지 말고요오 좀! 늙은 남자가 꽃을 굽어보고 있는 풍경을 보면 화가 치민다 화단을 죄다 갈코리로 긁어버리고 싶다 환갑이 넘어서야 꽃을 발견한 남자는 행복한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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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감염되지 않은 피를 감염시키려는 이들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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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86에 대한 분노가 있어. 한비야씨가 7급 공무원이 꿈이라는 사람에게 '철썩'했다는 그 오만함에, 안철수의 불쌍한 20대 청춘 운운해도 그 속엔 엘리트 젊은이들만 고려대상인 그 좁디 좁은 스펙트럼에, 새누리의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그 뻔뻔함에, 새누리의 아무 것도 주지 않을 거면서 아무 것도 갖지 못 했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그 차가운 눈초리에, 그것이 뜨거운 격려를 가장하든, 우릴 위한 채찍질로 미화하든, 그것이 우리의 입장이 되어본 적 없기에 나온 것임은 분명하니까. 선거가 되니, 20대 운운하던데 그 뻔뻔함에 나오는 건 웃음 뿐. 여당이나 야당이나 걸핏하면 여성단체를 끌고 와 왜 저 문제엔 언급 안 하냐, 이 문제엔 왜 그랬냐 식의 하나의 도구로만 대하듯, 20대 역시 20대가 세상을 바꾸네 어쩌네 해도 결국 당신들 밖에 표가 갔을 때만 우리의 존재 의미를 인정받는다는 식의 그 사고! 지랄맞아. 아직도 본인들이 억압당한다는 그 피해자 코스프레에 우린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누구나 누군가에겐 약자겠지만 당신들은 이 거대한 사회에서 억압의 주체인 경우가 많음을 왜 인정하지 않는거지? 내가 꿈이 없든, 꿈이 있든, 분노를 하든, 분노를 하지 않든, 그것이 나의 공감이 없이는 그것이 폭력임을 말해야 할 때 난 구차스러워지지. 당신들이 나를 구차하게 만들 권리가 있나? 우린 더 이상 불쌍해질 생각이 없어. 당신들을 숭배할 생각도 없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 문제는 당신들이 그걸 받아들이기엔 너무 꼰대거나 마초라는 것, 선거의 씨받이가 될 만큼 우리가 바보가 아니지만 바보이길 거부하기엔 당신들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 그럼에도 선한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 2. 피는 결코 해방된 기억이 없다. 청춘의 피는 방혈 되지 못한 채 응고되어 갔다. [소설들, 혹은 봉인된 혀들]의 첫 책인 필립 로스의 <울분>에서 유일하게 감염되지 않은 피인 올리비아와 마커스는 결국 떠나야 했다. 얌전한 피, 체제에 순응하는 피, 기존의 모든 것에 허락되는 반응만 하는 피가 아니면 안되었다.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는 피갈이에 의해 지워지지 않는 흉터 혹은 낙인이 되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어. 올리비아가 처음이었다. 마커스가 살아오면서 그가 원한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해주려 하는 이는 올리비아가 처음이었다. 그것은 낯선 경험. 때문에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했다. 어쩌면 원래 그렇고 그런 아이로 정의내려야만 했다. 마커스의 아버지도, 마커스의 어머니도, 그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 대학의 학생 과장도 그의 이유 있는 선택조차 간섭하려 하고, 권한 밖의 힘을 행사하려 했고, 그를 무엇으로 규정지으려 하면서도 그의 말은 들어주지 않았다. 올리비아도, 마커스도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제한된 삶만을 강요하는 가짜 세상은 그것을 원천 봉쇄했다. 눈물이 많은 아가씨야 올리비아의 흉터를 본 마커스의 어머니는 이 둘의 만남을 결사 반대한다. 눈물이 많은 아가씨란 말과 함께. 그 자신도 힘들게 살아왔건만 곱게 체제 속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혹은 거부한다는 이유로 마커스가 가 어쩌면 처음 원하는 무엇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잘 자란 아이"란 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헛소리, 거짓 위로도 역겹지만 "잘 자란 아이"라는 말이 갖는 그 시선은 또 얼마나 소름 끼치는 건가. 자기긍정, 자기확신, 세상에 대한 협조적인 태도, 불만 없음. 그 잘 자란 아이만이 삶을 가질 수 있는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잔인한가. "잘 자란 아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다른 듯 하지만 무서운 강박이자 강요라는 점에서, 그 안에서 내포하고 있는 "체제에의 순응"을 읽어낸다면 이런 말들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폭력이다. 3. 끊임없이 하나의 시대는 희생자를 찾아 희생 제의를 취한다고 김진영 선생님이 수업 중에 말씀하셨다. 청춘의 피는 방혈될 수 밖에 없고, 이 세계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감염을 거부하는 자는 그것으로 끝. 나는 순순히 내어주고 싶지 않다. 이 시대가 제물을 필요로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 감염되지 않은 이들이어서는 안된다. 원래의 세상, 상상할 권리조차 앗아간 그들이 스스로 올라서야 하지 않는가. 피갈이로 부정함을 흘려버린 후여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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