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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우리들에게 남겨진 아우슈비츠의 의미 |
서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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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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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철학 |
배*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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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추기 쉽지 않은 고통에 대한 기억. 아우슈비츠. 광기와 죽음과 폭력의 역사. 없는 곳. 바깥. 나는 그것을 들추고 싶었다. 그때 그곳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고민한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강의는 그것을 현대철학자들의 눈으로 들여다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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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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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
황*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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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times.co.kr/www/news/special/2012/02/182_104527.html
죽였다!? 왜 죽였냐도 법정공방에서 다루어져야 되는 중요한 사안이 되듯이 왜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죽였는가는 묻지 않는 것인가? 왜 죽여야만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반성하고 되잡을 것이 아닌가?
왜 히틀러는 그렇게 잔인하게 유대인들을 죽여야만 했는가? 나는 그것이 더 궁금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죽인 것을 "한 인간의 광기나" 국수주의(나치즘)으로 설명되기엔 너무 피해자적 시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 유대인은 가해의 사실이 없는가? 유대인들은 오로지 피해자인가?
히틀러는 유대인에게 자신이 학대 받았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으로, 기득권으로, 가난한자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옳아메지 않았던가?
아우슈비츠는 복수극의 잔인한 살상의 전형이라는 것.
“가진자가 갖지 못한자를 억압하는 정도가 폭발해 결국 갖지 못한자들은 가진자의 재산을 폭동을 일으켜 몰수하고 잔인하게 동물처럼 죽이는 세기 비극의 종결"
그러나 시대는 죽임을 당했던 자의 피해의식만을 기억한다.
히틀러에게 생명을 앗을 권리는 없다. 어느 누구도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
그러나 유대인 몰살사건 "아우슈비츠"는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부의 기득권의 비극의 결말이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부로써 인간을 노예화하고, 신성(지식인들의 뒷받침)까지 자신들의 편으로 삼아 자신들은 선택받았기에 누리는 부가 정당하다는 그들의 기만속에 헐벗고 굶주린 자들은 유대인들의 더럽다며 무시와 천대의 손가락질 속에서
"그래? 니들 말처럼 우리가 개라면 그 개가 어떤지 보여주지"
결국 그들의 멸시와 천대속에 개가 돼었고, 배고픔을 더 이상 참지 못해 그들의 주인이었던 유대인을 개처럼 학살한 것이 아닌가?
"민중을 굶기면 민중은 더더욱 배고픈 한마리의 늑대(짐승)가 된다는 사실" 나는 이것은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
히틀러의 마지막 목소리 "너희들도 굶어보라고 개처럼 짓어보라고 너희들이 씻지도 못할 가난속에서 더럽다고 했던 그 상황에 너희도 있어 보라고 우리가 살아왔던 그곳이 바로 이곳 아우슈비츠같은곳이었다고 똑똑히 너희들이 보고 증언하라고" 그리고 히틀러는 스스로를 죽였다.
히틀러가 씩 웃으며 "왜 때릴때는 아픈줄 모르더니 맞아 보니 아퍼?"
이 앞에서 "레비"는 과연 무슨 말을 무슨 증언을 할수있을까?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끊임없이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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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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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
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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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에 아도르노의 강의를 들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타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영락없이 움츠려듭니다. 묻혀서도 안되고 묻혀버릴 수도 없는 한사람 한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내가 나의 상처로 숨을 쉬어야한다는 것, 나의 상처로 숨을 쉬면서 저 멀리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는 마음으로 타자의 갸날픈 고통의 숨소리를 듣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것. 그리고 종국에는 상처는 치유가능하다는 그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져야한다는 것.
이상하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 무서웠는데, 이제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듭니다. 때문에 이제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비난을 좀 자제하게 될 것도 같습니다.
아감벤의 책도 사다만 놓고 못읽고 있었는데, 이제 서문이라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처럼 서문도 못 넘기고 좌절할지 모르지만.
김진영 선생님께서 아감벤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하셨는데, 아감벤 강의 해주시면 꼭 듣겠습니다. 아도르노강의에 이어 이번 강의도 정말 좋은 강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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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상처에 대한 철학적 성찰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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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라는 극단의 폭력을 프리모 레비, 장 아메리의 생존자 증언과 아도르노, 아렌트, 아감벤 등 현대 철학의 사유로 입체적으로 조명한 명강의였습니다. 단순히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것을 넘어, '악의 평범성', '호모 사케르' 같은 개념을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내재된 폭력의 메커니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가해자들의 책임 회피와 생존자들의 증언 딜레마를 다룬 부분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21시간이 넘는 긴 강의였지만,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를 탐구하는 지적 고통과 충만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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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에 충격받았습니다. |
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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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강에서 아감벤의 생명정치와 호모 사케르(벌거숭이 생명) 개념을 다룰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가 권력이 인권보다 생명을 배제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난민 문제와 연결 지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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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소름 끼쳤습니다. |
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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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한 악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며 공범이 될 수 있는지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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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훌륭하지만 너무 길어 완강이 쉽지 않았습니다. |
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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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내용의 깊이와 김진영 교수님의 따뜻한 해설은 최고입니다. 하지만 21시간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 꾸준히 집중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주제의 무게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완강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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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의 증언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
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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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에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사람인가』를 다룰 때, 특히 '무슬림'이라 불렸던 최하층 수감자들의 증언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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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
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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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강에서 파울 첼란의 시와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예술 작품을 통해 상처를 다루는 방식이 매우 좋았습니다.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감수성을 동시에 채워주는 강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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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시민적 차가움' 비판에 공감합니다. |
오*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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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비판한 '시민적 차가움'과 이성 위주의 동일화 사고가 어떻게 아우슈비츠를 가능하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현실의 부정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그의 주장이 인상 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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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는 개념이 너무 난해하여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윤*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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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서 다루는 개념들(비동일성, 미메시스, 호모 사케르, 생명정치 등)이 매우 전문적이고 난해합니다. 철학적 배경이 부족한 저에게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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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와 기억 연구의 핵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한*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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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과 침묵, 기억의 위조와 전승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심리학, 문학 분야의 트라우마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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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 '회색지대'의 딜레마 |
박*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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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내에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야 했던 '회색지대'의 딜레마를 다룬 부분이 가장 인간적 고뇌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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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 보충 강의(9강)가 매우 유용했습니다. |
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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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에서 '무슬림 혹은 그의 증인들'에 대한 아감벤 보충 강의를 통해 증언의 불가능성과 필연성이라는 역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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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비극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하는 방식이 탁월합니다. |
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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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는 아우슈비츠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난민 문제, 국가 권력의 폭력 등 현재 우리의 문제와 연결하여 사유의 확장성을 높여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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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이 매우 충실하여 복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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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철학적 개념들과 방대한 인용문이 많았는데, 제공된 강의록이 워낙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복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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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아메리의 '상처에의 권리'에서 공감과 고통을 느끼다. |
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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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서 장 아메리가 주장한 '상처에의 권리'와 구경꾼으로서의 모욕을 다룰 때, 타인의 고통을 쉽게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무감각증을 반성하게 되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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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님의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강의였습니다. |
윤*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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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차가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김진영 교수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져 강의를 듣는 동안 위로와 성찰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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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광기로만 설명하려는 시각을 비판합니다. |
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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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들의 '의도적 무지'와 '책임 회피'를 다루면서, 아우슈비츠를 단순히 히틀러 한 사람의 광기로만 설명하려는 피상적인 시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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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이후, 시 쓰기가 야만인 이유를 이해했습니다. |
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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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가 왜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 했는지 그 철학적 배경과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술과 윤리의 문제를 동시에 성찰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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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김진영 선생님이십니다 |
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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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시어 일상속에서 철학을 녹여주시는 섬세함과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아벤감의 호모 사케르 국가 권력 즉 주권과 법이라는 신성함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물처럼 언제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강의를 들었을때 충격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감벤의 정치철학을 다시 한번 공부할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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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엄*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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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또한 어려운 사상가 중에 한명이죠. 혼자 읽기 힘들었는데 김진영 선생님 강의 들으며 읽으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나 아렌트 중요한 사상가인데 더 많이 다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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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기억 |
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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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정말 끔찍하면서도 가슴 아픈 기억인 것 같아요. 직접 겪지 않은 저까지도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렇지만 꼭 알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강의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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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강의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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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고통의 역사. 학교에서 교과서적으로만 배웠던 역사를 철학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는 이번에 두 번째인데.. 늘 좋은 강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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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미메시스적 접근, 소통의 딜레마>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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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5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고통의 미메시스적 접근, 소통의 딜레마>
언젠가 육식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뒤로 고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육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보다도, 잘못된 육식 문화가 병적으로 팽배한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이런 병적인 육식의 원인 중 하나는 '분업화'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기르던 가축을 도살하여 고기로 먹기까지 가정에서 직접 모든 일을 맡았기에 고기는 귀한 음식일 수밖에 없었고, 가축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 또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눈앞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고 더 이상 '고기=동물=생명체'라는 공식을 떠올리지 않는다.
동물이 도살되는 장면은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고기는 무감각하고 손쉽게 소비한다.
이러한 무감각증과 무지함은 가축의 사육에서부터 도살, 그리고 소비까지 그 모든 과정을 가정에서 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공장식 사육과 도축, 고기의 대량 유통 등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거친 현대 사회의 산물이다.
분업화가 더욱 철저하게 진행될수록, 잔인하게 사육되고 무참하게 도축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는 고기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점점 멀어지고, 오로지 고기를 먹는 단순한 현실에만 집중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이후 가해자들이 뻔뻔하리만큼 당당하게 책임 회피를 했던 이유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될 뿐이기에 자신의 부분적인 임무가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고민할 필요 없이, 상관의 지시에 따라 오직 할당된 부분에만 책임을 지면 되었다.
그들에게 대학살에 대한 주체, 가해자로서의 책임은 없고, 맡은 임무 수행의 책임만이 남겨지는 것이다.
철저하게 기계화, 분업화, 체계화된 아우슈비츠는 수많은 가해자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죄의식을 빼앗고, 학살에 대한 무지와 무감각성만을 심어줄 뿐이었다.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예언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인간이 자연 지배를 성취하고자 모든 대상을 이성 위주의 개념적 사고에 종속시키다 보니 개체의 비동일성이 체제 속에 동일화되어 정체성을 상실하면서 현대 사회의 비극이 생겼으며, 동일화 사고의 폭력적인 지배와 악순환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인간 개개인의 주체성이라는 비동일성을 활성화시킬 심미적 사유, 즉 미메시스적 사유라는 것이다.
아도르노식의 미메시스적 사유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해결 방안을 마련하려는 합리적인 방식을 지양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오히려 수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합리성과 획일성을 거부하고 현실의 부정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아우슈비츠라는 참혹한 사건을 만들었던 그 동안의 이성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그 방식 그대로 아우슈비츠 이후를 해결하려는 '자기 유지'의 냉혹함을 비판하고, '사유의 끝없는 자기성찰 안에 머무르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에 다가서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개념적 사유와 이별하고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이자는 아도르노의 주장이 종종 소극적이고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개념적 사고 없이 그들의 고통이 있는 그대로, 미메시스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고통의 미메시스적 접근이라는 침묵은 어쩌면 소통의 단절을 야기할 위험이 따르는 것은 아닐까?
그의 주장이 기발하고도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정작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무기력함에 빠지기도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처럼, '소통 가능한 미메시스'는 가능한 것일까?
그러는 사이, 아도르노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차가움의 사유는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2012. 2. 8. at 아트앤스터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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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아렌트식 합리적 판단과 아도르노식 판단 유보>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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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6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아렌트식 합리적 판단과 아도르노식 판단 유보>
앞서 아도르노가 판단 유보로써 개념화할 수 없는 비동일성을 활성화하고자 했다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명확한 합리적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녀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정작 어린 시절에 '유대인'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독일인화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때문에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독일의 합리적 정신을 흡수한 서구 유럽화된 정체성이 두드러진 철학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러한 이중적인 위치는 향후에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부당하게 주인으로서의 권력을 빼앗기고 핍박을 받은 유대인의 수난사를 '종족 이데올로기'로 비판하고,
아우슈비츠의 문제도 유대인이라는 종족의 측면보다 전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관점에서 파악했다.
그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의 정보부에 붙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사실을 비판한 이유는,
아이히만의 범죄가 유대인에 대한 범죄에 앞서 전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가 단순히 유대인들의 문제로만 국한되기에는 역사적으로 얼마나 거대하고 끔찍한 범죄였는지를 되새겨보면,
이 문제를 아렌트처럼 전 인류에 대한 보편적 악으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보편성' 속에서, 구체적인 가해자와 피해자, 개인의 고통 등은 모두 한 묶음이 되어 희석되고 만다.
개별적인 고통과 피해는 망각되고, 구체화할 수 없는 보편적 '악'만이 추상적으로 떠돌 위험이 뒤따른다.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의 철학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도르노는 합리적 이성에 의해 끝없이 동일화되어 말살된 개별자, 즉 비동일적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함부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침묵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면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했을 때, 이런 아도르노식 이론의 '무책임함'도 피할 수 없는 난점이다. 아렌트식 합리적 판단과 아도르노식 판단 유보, 그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두 가지 가치 각각의 적합성은 결국 그때그때마다 다른 맥락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합리적 판단의 위험성과 판단 유보의 무책임함, 그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작용이지만,
함부로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수많은 물음과 의심과 갈등의 순간들이 바로 우리가 아우슈비츠 문제에 대해
단순히 표면적인 차원이 아닌, 좀더 가까이 다가가 진정으로 이해하는 통로가 되리라 기대해본다. == 2012. 2. 22. at 아트앤스터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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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어둠의 역사... |
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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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킬링필드...인간이 인간을 다시 보게 되는 사건. 기다려지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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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우리들에게 남겨진 아우슈비츠의 의미>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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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1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우리들에게 남겨진 아우슈비츠의 의미>
수많은 1월 강좌 중에서도 나는 왜 유독 이 강좌에 마음이 끌렸을까. '아우슈비츠', 그 단어만으로도 알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힌 나는 이 수업을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인간답게 살아가겠다는 꿈, 그것은 인간답게 살지 못했던 이들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나만의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역사적 비극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일종의 묘한 의무감에 사로잡힌 듯, 나는 그렇게 주저 없이 이 수업을 선택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과거에 희생된 영혼들에게 많은 부분을 빚지고 사는 우리는 적어도 온전한 기억, '진실된' 기억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음은 확실하다. 사회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아우슈비츠'는 널리 퍼지고 쉽게 소비되는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그렇게 가볍게 소비될 만한 것도 아니고, '온전한 기억'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내가 이 기억을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또 얼마나 알아야 하는지를 가늠하기란 어렵다. 어려운 것보다도, 두렵다. 역사의 비극을 알면 알수록 그에 뒤따를 정신적 부담을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 그러나 잘못된 기억 때문에 두 번 상처받을 희생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원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하는 후세대로서의 임무는 더욱 절실해진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희망차다. 새해에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겠다고 다짐한 나 스스로에게, 보다 건강한 역사 의식을 위한 이 수업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보약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는 원래 폴란드의 작은 도시 이름인데,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가 들어서면서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전쟁 당시 학살된 총 600만 명의 유대인 중 250-400만 명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해볼 수 있다.
전쟁은 인간을 무서울 정도로 영리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양'의 학살을 위해 나치는 유대인의 분리 작업부터 수송, 그리고 학살과 뒤처리까지 빠르고 정확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했다.
유대인 분류를 통해 민족학, 인간학, 의학 등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고, 유대인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는 과정에서 운송업과 건축업 등의 경제 산업이 성장했다. 유대인 색출 정보를 제공한 교회들은 종교적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고, 게토로 강제 이주된 유대인들 덕분에 빈 집들을 확보하게 되자, 귀향하는 독일인들이 늘기도 했다. 엄청난 이득은 결국 엄청난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는 히틀러 혼자만이 아니었다. 유대인 색출에 가담했던 주변국들과 이웃을 고발한 평범한 시민들까지도 모두 이 끔찍한 역사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갑자기, 지금 내가 무심코 향유하는 것들의 이면에도 이런 희생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가해자가 될지도, 언젠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업에 앞서 느꼈던 그 두려움이, 다시금 나를 엄습해 왔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지니고 있는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한 예로 '유대인 전문가'로 불렸던 아이히만의 경우, 전범 재판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조용한 반성의 기미보다는 재판 기록관의 오류를 직접 정정해주기도 하는 등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욱 돋보였다고 한다.
피해자 역시 그와 같은 '말하기 욕망'을 갖고 있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언어 장애를 겪거나 상처를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득 최근 작고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떠올랐는데, '민주화의 대부'로 불리는 그를 한때 심하게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현재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설교자로서 새 삶을 살아가는 가해자와 고문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했던 피해자. 이 인생의 잔인한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70여년 전 묻혔던 아우슈비츠 희생자의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 2012. 1. 11. at 아트앤스터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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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증언>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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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2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증언>
나치에 의하면 무슬림은 인간일 수가 없었다. '무슬림≠인간'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발상을 지극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듯 보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정립한 나치는, 그들의 이름을 빼앗고 인간성도 짓밟은 채 그저 동물이나 물건처럼 다루었다. 가해자로서의 죄의식보다도 명령에 복종하는 책임의식이 앞선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나치에게 무슬림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일은 먹고 자는 행위만큼이나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역사적 대비극은 순식간에 탄생했다. 그리고 무슬림은 살기 위해 '동물' 상태가 되어야 했다. 수용소 내에서 호기심을 갖거나 성찰을 하는 등의 '인간적인' 행동은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인간이지만 인간이어서는 안 되는 인간 이하의 상황 속에서 무슬림은 죽어갔고, 극소수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극도로 힘겨운 어떤 체험 뒤에 인간은 그 기억을 외면하고 지우고 싶어한다.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기억을 잃거나 언어 장애를 겪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에게도 그때의 끔찍했던 경험은 기억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들 정도로 절대 표면화하기 어렵고 두려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을 감안했을 때, 생존자 중 한 사람인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1987)가 당시의 경험을 여러 책을 통해 증언했다는 사실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토리노 출신의 유대계 이탈리아인이었던 레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즘 저항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년 가까이를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3개월을 버티기 힘들다는 그곳에서 열 달을 버텼고, 그는 극소수의 생존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화학자였던 그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신의 체험과 관찰을 증언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추지 않고 다시 토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기억을 하고 증언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 대신 말없이 죽어간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과 의무감 때문일까? 아니면 가능한 빨리 그들에 대한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우리들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강력하고도 지구적인 그 어떤 충동이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그런 불편함, 지금도 잠을 못 들게 하는 어떤 이름 없는 불편함이 있다. 굳이 이름 지어 부르자면, 그 이름 없는 불편함은 격세유전적인 두려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 <침몰 당한 자들과 구조된 자들> 중에서 - 레비 스스로도 이름 지을 수 없는 어떤 충동 혹은 불편함은 그가 수용소 생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이야기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아무리 끔찍하고 충격적일지라도, 우리 또한 아무런 조건 없이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역시나 이름 지을 수 없는 충동을 갖게 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기억에 대한 신뢰도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기억이란 원래 잊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잊지 않으려고 반복을 하게 되고, 잊지 않으려 단편적 기억들을 일련의 사건으로 내러티브(narrative)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억은 왜곡되거나 제외되기도 한다.
때문에 핵심적인 기억이나 진실이 감춰지고 오히려 왜곡된 기억이 표면화될 위험이 따른다. 더구나 기억이나 언어 장애, 기억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가해자보다도 더욱 열악한 조건일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경우, 온전한 기억의 불가능성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더욱 절실할 것이다. 역사적 대비극의 피해자인 레비가 자신의 쓰라린 기억을 용기 있게 우리에게 토해냈을 때, 그 속에 숨겨졌을 수도, 왜곡되었을 수도 있는 진실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이제 과거의 역사를 딛고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 2012. 1. 18. at 아트앤스터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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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있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렇게>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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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1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텅 비어있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렇게>
-아프니까 약자다 왜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여자라서? 가난뱅이라서? 격동의 70년대를 아냐며, 우리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던 386에 대한 애증을 가진 문화적 약자라서? 그런데... 내가 약자인가? 어쩐지 약자는 달동네에 사는 사람에게나 어울릴 것만 같다. 자가 약자라는 걸 인지하는 순간, 때려도 좋다는 허가를 하는 느낌. 난 맞고 싶지 않으므로 약자라는 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약자가 틀린 건 아니지만 약자의 인생은 틀려먹게 되니까.
내세울 것 없는 보통 사람이 살아가기엔 한국은 잔인하다. 아프니까 청춘인 거라고, 원래 청춘은 아픈 거라고, 때리는 사람을 말리지 않고, 저지하지도 않고, 그냥 맞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외쳐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라고 헛소리를 한다. 게 맞은 사람의 상처와 정말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다. 맞은 사람은 아프다고. 약자는 원래 아픈 거니까 그렇게 그렇게 넘어가라는 식이면서 대단한 위로를 했다고 착각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것이 맞은 사람을 더 비참하게 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 맞은 사람을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드는 것임을.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다. 독일까지 갈 것도 없다. 독재로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의 딸이 아비의 죄를 인정하지도 않은 채 잘도 정치를 해대는 그렇고 그런 사회. 박정희대통령의 눈물을 아냐고 최루성 발언으로 집단 최면을 거는 사람들. 용산 철거민 사건, 명동, 위안부 문제에도 난 철저히 남이었다. 그것에 분노하기는 했지만 이내 페이스북에 오늘 먹은 감자튀김은 끝내줬다고 말할 수 있는, 혹은 말하고 싶을 만큼의 여유는 남긴 몹시 제한된 분노. 어느 새 분노하는 것에도 우는 것에도 무감각해져버린 난 강해진 걸까, 불의에 익숙해진 걸까. 난 불안하다. 무섭다. 그래도 변하고 싶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다. 벗어나야겠다.
http://blog.naver.com/ego15/90134463380 (링크를 따라가시면 후기에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말에 대한 욕망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하지만 가해자도 할 말이 있다. 그리고 하고 싶어 한다. 아우슈비츠수용소 소장 루돌프 회스는 자서전의 끝에서 본인은 임무를 다했을 뿐이며, 단 하나 후회되는 것은 너무 일에 열중해 가족에 소홀했던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 전문가 루돌프 아이히만은 숨어 살면서도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재판에서도 국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으며,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하면 재판 중에도 정정했고, 기자와 만나 인터뷰까지 했다. 그들은 할 말이 많았고, 한 말도 많았다. 또한 역사 속에 이름도 남겼다. 대의 살인마들 중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데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자신들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고급 정보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에 존재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이 "살인을 했다"가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로베트 앙텔므는 트라우마로 언어 장애를 겪었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말을 잃거나 말을 더 많이 함으로써 그 트라우마를 숨기려고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은 이 사람들은 "과거 청산"이라는 말 하나로 치유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언급하지 않음으로 완전히 봉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치열하고, 또 잔인하게 그것과 대면해야 한다. 아물지도 않은 큰 상처를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내버려둘 순 없다. 시간을 들여 신경을 쓰고, 고통스러워도 소독하고, 걸리적거려도 물에 닿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무슬림 혹은 디멘터 ▲파스칼 크로시의 [아우슈비츠] 표지 http://blog.naver.com/ego15/90134463380 (링크를 따라가시면 후기에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당할 수 밖에 없다. 절대 해방될 수 없다. 혹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연기하다가도 가둘 수 없는 연기처럼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기억에 괴로울 것이다. 것이 다 소진되도록 하는 수 밖에. 그것을 할 수도 없던 자들은 무슬림이 되었다. 링 도너츠처럼 한 가운데가 뻥 뚫린 채로. 텅 비어있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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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지식인, 아우슈비츠의 비극>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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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3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쓸모 없는' 지식인, 아우슈비츠의 비극>
장 아메리(Jean Améry, 1912-1978)는 아우슈비츠를 '정신의 한계 영역', 정신이 헐벗고 실험대에 오르는 극단의 공간이라고 여겼다. 수용소에서 지식이란 쓰레기 혹은 사치품, 둘 중 무엇이 되었든 쓸모 없는 그 무엇이었다. 정신적 영역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학자로서 아메리는 아우슈비츠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이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비극을 겪게 될 운명이었다. 사유 행위가 독이 되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유 행위가 전부인 지식인은 생존을 위협 받을 수밖에 없었고, 유대인 수감자 중에서도 '쓸모 없는' 지식인보다는 현실적으로 쓸모가 큰 기술자가 오히려 생존율이 높았다. 그는 또한 욕설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자신의 언어인 독일어가 훼손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고, 독일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만으로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아메리에게 수용소는 자신의 정체성, 존재 이유마저 빼앗는 극단의 단계로까지 밀어내는 곳이었다. 모든 정신성을 빼앗긴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곤 감정조차 허용되지 않아 육체적 기능만이 남은 메마른 몸이었다. 나치에 의해 오직 현실적인 사용 가치에 의해 평가 받는 비인간적, 동물적 상태의 유대인으로 규정된 된 후 그가 뼛속 깊이 깨달은 것은, 정신은 육체를 떠나서는 자립할 수 없는 허구일 뿐이라는 참담한 사실이었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을 보면, 주인공 소피가 수용소에서 우연히 얻은 무화과를 먹고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귀하디 귀한 무화과를 눈물을 흘리며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던 그녀가 그 아까운 내용물을 모두 토해낸 것은 그 무화과가 곧 죽음을 맞이할, 혹은 이미 죽었을 어느 유대인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굶주림을 견딜 수 없는 동물적인 본능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구토 행위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인한 폭력을 견딜 수 없는 인간적 이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한동안 잊고 있던 이성적인 인간성이 되살아나는 순간, 육체적 본능은 금세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프리모 레비가 어렵게 얻은 우유죽 한 모금은 베토벤과 슈베르트, 토마스 만과 횔덜린을 떠올리게 하는, 오랜 시간 잠잠하던 정신성을 자극하고 죽어가던 사유의 욕망을 다시 솟구치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육체의 본능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정신성이 생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란 육체나 정신 그 어떤 것의 우위도 확신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다. 이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를 너무 쉽게 '육체적 기능만이 잔존하는 동물적 존재'로만 억지로 특징 지우려고 했을 때,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발생했다. 나치에게 무슬림은 더 이상 추상적인 사유 행위에는 관여할 수 없는, 그저 기능적으로 분류되고 이용된 뒤 깨끗이 사라져야 할 대상이었다. 육체보다는 정신을 상위에 두고 정신의 영역에 오랜 세월 몸 담고 살아온 학자에게 정신성을 버리고 육체적 존재로 생존에 매달려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의심되는 혼란과 충격이었다. 상상력이든 심미성이든 그 모든 인간 정서가 강탈되고 정신의 허구성과 무력함이 몰려왔을 때 이제 남은 것은 잔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합리적 의식뿐이었다. 정신성을 추구하는 학자가 수용소에서 배운 것이 정신의 허구라는 모순적이고도 절망적인 사실은 아메리 역시 프리모 레비처럼 책을 통해 증언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정신의 한계선에 도달한 끔찍한 경험을 공유하고 나서도 살아 남은 자로서의 죄의식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수용소에서 인간성이 말살되고 동물적인 존재가 되어 힘겹게 살아 남았던 아메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고 삶의 존엄을 되찾았을 때 당당하게 자살, '자유죽음'을 맞이했다. == 2012. 1. 25. at 아트앤스터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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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무지, 가해자의 생존법>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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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2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의도적 무지, 가해자의 생존법>
-속옷 검사 "바지 벗어." 그날도 무용선생님은 우리의 속바지를 검사했다. 일주일에 2번 있는 무용 시간은 체육복 바지를 벗는 것으로 시작하곤 했다. 비율이 좋지 않은 황인종에게 5대 5 가르마는 어울리지 않는다, 너희 나이대에는 앞머리가 없어야 한다, 여자는 속옷을 반드시 제대로 챙겨 입어야 한다 등 나름의 확고한 지론을 가지고 계시던 선생님은 눈썹 정리를 한 사람이 있는지, 속바지를 입었는지를 검사하고, 그것을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하곤 했다. 익숙한 몸짓으로 차례대로 바지를 내리던 학생들 중 1명을 골라낸 선생님은 무용시간 내내 체육복 바지를 벗고 있을 것을 명령했다. 이유는 속옷 거들이 아니라 쫄반바지를 입고 왔다는 것. 왜 교사가 남의 속옷을 검사하는 건지, 안에 속바지를 입고 왔는데 그게 속옷용이 아니란 이유로 수업 시간에 벗게 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우린 점수를 받아야 했고, 그 사람은 어른이었고, 그곳은 학교였다. 당시, 해당 학생이 무용에 대한 강한 반발을 내게 피력했지만 사실 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넌 그냥 룰을 지키지 못한 거야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앞에서 체육복을 던지고 교문을 박차고 나갈 게 아니라면 애초에 걸릴 짓을 하지 마라는 식. 때로는 구질구질해지지 않기 위해서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폭력의 명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더 비참해지더라도. -정신 승리법 아큐처럼 사는 사람은 많다. 차라리 정신 승리법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거리감이라도 지녔으면 다행이다. 신자유주의를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고, 자신의 불행을 내일의 행복을 위한 제물쯤으로 상상한다. 내 자존심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 사실은 내가 원한 거라고 말하는 것이 날 덜 불쌍하게 만드는 거라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연금술이라도 부리듯 우리는 지치지도 않고 정신승리법을 활용한다. 자기기만은 미치지 않고서 살기 위한 하나의 보호색인 동시에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든다. -의도적 무지 아트앤스터디, 김진영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KZ는 인간 종족의 실험실이었다. 그곳에서 무슬림(혹은 디멘터)은 만들어졌고, 존재할 뿐인 상태로 존재했다.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은 SS들은 살인에 가담했으나 "의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KAPO(강제수용소에서 같은 처지인 포로를 감시하는 사람)는 피지배자면서 지배자. 회색지대인 KZ에서 인간성을 간직할 여유 따윈 없었기에 미래의 자신이 겪을 일을 그대로 동료에게 행했다. 。3,4개월 단위로 교체되는 많은 무슬림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P. Levi (프리모 레비)는 아무도 가해자의 기억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음을 지적했다. 피해자(피해자의 경우, 트라우마를 대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와 가해자의 기억 모두 "위조"가 있음을 전제하고 볼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가해자는 필연적으로 수용소 상황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피해자보다 "더 많은 앎"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와 달리 피할 수 없는 어떤 도덕적 인식, 판단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은 이를 모른다. 그렇다면, "성찰을 통한 앎"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이는 위장이라는 것이다. 의도적 무지, 자기기만, 이기적인 타협. 。가해자와 달리, "수용소"라는 세계와 피해자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수용소 안에서 피해자는 성찰을 할 수 없었고, 성찰을 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피해자=강제수용소≠가해자. -고 김근태 。고문이 연상돼 치과조차 갈 수 없었다. 수술대에 오르는 것도 칠성판에 오르는 것 같아 수술을 거부해 왔다. 그는 이근안을 TV에서 보는 것도 힘들어 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할 때 김근태를 고문하던 순간들을 즐겨 늘어 놓았다. 。저곳에 빛이 있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빛이 눈부실 뿐이다. 그 외엔 모든 게 까맣게 보인다. 사람은 거기에 빛이 있음을 알지만 그 눈부심에, 그리고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음에 무엇도 할 수 없다. http://blog.naver.com/ego15/90134657346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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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렛미인과 아우슈비츠> |
월**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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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3주차 수업 후기입닏다.
<영화 렛미인과 아우슈비츠>
아트앤스터디, 김진영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中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는 고백을 피할 수 없는 것,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고자 하는 도덕적 코드라고 표현했다. -음험한 물구덩이: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속에 둘러싸고 있는 증언, 기억은 "이 웅덩이 안에서 헤엄을 치는 일"이고, 헤엄은 밖을 나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익사 당하는 것은 결국 밖에 나오지 못함을 의미한다. -아우슈비츠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을 죽이기 전에 "유대인은 사람이 아니다"를 증명하는 것, 탈인간화시키는 것이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 무슬림은 수용된 자들은 물론 가해자기도 한 SS나 KAPO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시선조차도 외면 받는 그들의 존재는 육체가 가지고 있는 정서마저 깡그리 없어진, 기계와도 같은 것이었고, 접촉공포증의 대상이었다. -무슬림은 메두사였다. 매혹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메두사는 없애야 하는 존재이자, (없애기 위해) 찾아가야만 하는 존재였다. 페르세우스는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며 메두사를 죽였다. 직접 볼 수도 없는 이를 밖으로 내몰아야 하는 욕망을 불어 일으키는 무슬림은 프리모 레비로 하여금 <이것이 사람인가>에서 도덕적 코드로 무슬림과의 관계성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반복적으로 하게 한다. 이를테면 빵을 준다든지, 인간적인 따뜻함을 주는 사람을 제시하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을 제시하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변명을 대신했던 것이다. 비인간성에 대한 죄의식을 없애려는 시도이자, 그런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것(=고백)이다. 해결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 아메리(Jean Amery) -장 아메리는 자유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수면제를 복용, 자살이 아닌 자유죽음을 택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독문학자였던 그는 독문학자란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구타당했다. 독일어권의 지적 전통 속에서 살아온 그는 독일어의 영역에서 핍박당할 뿐 아니라 인정받지도 못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그가 의지하고 사유해왔던 모든 것을 부정당해야 했던 장 아메리는 이전에 머물렀던 정치범 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의 차이를 "정신이라는 것이 소통할 수 있음과 없음"으로 설명했다. -그는 아우슈비츠가 정신이라는 게 시험대에 오르는 공간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에게 더 힘들 수 밖에 없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식인을 지성과 상상력을 존재의 근원으로 갖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존재가 아우슈비츠에 내던져지는 것은 정신적 존재가 야만성과 직접적으로 마주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지식인은 구체적인(실용적인) 기술이 없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육체의 시스템 그 자체 속에서 아무 기능을 못 했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사용한 언어가 그 속에서 소통의 기능을 하지 못 했다. 그를 구성해온 그 어떤 것도 아우슈비츠 내에서는 쓸모가 없었고, 지식인으로서의 그는 완벽한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장 아메리는 "정신의 속성은 사회화되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지식의 공공성을 획득하려고" 하기에 그는 아우슈비츠수용소 방 안에서 그 정신을 공공화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단말마적인 욕설들뿐이었다. 살아남는 것조차 힘겨운 그 안에서 정신성은 쓰레기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치품에 지나지 않았다. 아우슈비츠에 대한 내적인 저항은 비인간적 수용소 안에서 자신을 거둬들이게 했다. 자기 안에서 인문학적 상상력, 지식이 현실과 마주치게 했을 때 위안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조소, 고통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처음엔 내적 저항을 하나 무기력 상태에 빠지고, 결국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지적인 힘이 아니라 경멸, 극력한 고통 안에서 부유하기 십상이다. -아우슈비츠라는 비인간적인 공간 안에서 보통 사람들은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알게 모르게 체제를 흠집 내는 행위, 예를 들어 식량을 훔치는 등의 생존을 위한 규율에 어긋난 행동을 통해 자기를 억압하는 체제에 반항을 수시로 한다. 하지만 자기 무력감에 빠진 지식인은 오히려 좌절 속에 빠지고 승인을 하게 된다. 그 승인이라는 것은 KAPO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근원적 승복이자 좌절인 것이다. 그러나 장 아메리는 이러한 지신인의 모습이 이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본래 지식은 그런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지식인은 지적 권력을 비판하는 것인 동시에 지적 권력을 비판하는 또 다른 지적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식인은 지적 권력 앞에 근본적으로 언제나 승복하는 존재다. 이런 지식인이 아우슈비츠 권력 앞에 승복하는 것은 -앞잡이가 되거나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속에서 자신을 죽이는 것-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메리는 지식인도 육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아우슈비츠 병동에서 간호사가 건네 준 멀건 곡물 수프 한 입이 그의 정신을 불타오르게 한 순간을 말했다. 그 순간, 무력한 가운데서도 그 한술에 도취되기 시작하면서 읽었던 책들의 제목, 슈베르트의 음악 등 망각 당한 지적 충동이 다시금 사유하고 싶다는 충동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육체가 그 곡물 수프를 한 입 넣자마자. 몰론 이러한 도취상태는 쓸쓸한 허무감으로 남게 될 수 밖에 없고, 위안이 아니라 무력감 확인할 뿐이라 도취 열정이 격렬한 고통으로 왔다고 했다. 결국 남는 건 의식(심미적인 연상, 감성)뿐인데 현실 앞에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아우슈비츠 밖에서 중요시되던 사유, 상상력, 정서(심미성)는 전혀 인정받지도 못하고, 쓸모도 없었고, 아우슈비츠 안에서 필요한 것은 냉철한 의식, 합리성만이 생존에 도움이 될 뿐이었다. 우리가 믿었던 정신은 허구였다. 그런 정신성 중 하나인 이데올로기나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유대교 신자나 맑시스트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믿음/이데올로기로 그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재구성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관념의 절대성을 구현하려다 실패한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우슈비츠를 인정해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 아메리는 비전의 제단 앞에서는 바로 내가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고, 더 현명해지지도 않았으며, 지혜를 갖게 되지도 않았고, 눈이 더 밝아졌고, 더 똑똑해졌고, 속지 않게 됐을 뿐이라고. 정신이 관념성에 갇혀 있으면, 얼마나 무기력하며,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고, 정신은 관념성(심오함)이 아니라 분명함과 자명함이라는 것을 육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단어(관념)가 희미해질수록 세계는 밝아진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 http://blog.naver.com/ego15/90135535054 (링크를 따라가시면 첨부된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스칼이 집단 괴롭힘을 당한다는 걸 알게 된 이엘리는 한번이라도 맞서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오스칼은 고개를 저으며, "난 사람을 죽이진 않아."라고 했다. 뱀파이어 이엘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벌써 죽이지 않았어?"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강하게 맞서라는 이엘리의 말은 누구보다 오스칼이 기다려왔을 말이다. 그리고 야외 수업 날, 여느 때처럼 괴롭히려는 아이에게 마음으로, 머리로 수십 번도 했을 일을 결국 오스카는 해치운다. 귀를 흥건하게 적시는 피를 보며, 오스칼은 미소를 짓고, 그 순간만큼은 화를 내는 선생도, 주위의 어느 것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자랑스레 엘리에게 이야기하며 피의 맹세를 하려는 찰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속칭 <피도둑>이 엘리의 짓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들어오라는 말 없이는 다가갈 수 없는 이엘리는 제발 들어가게 초대를 해달라고 애원을 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잔혹한 일들을 일으킨 이엘리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스칼은 냉대한다. 이엘리는 온몸에 피가 나오면서까지 오스칼에게 다가갔을 때 오스칼은 알게 됐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와야 했고, 그렇게 올 수 밖에 없는 이는, 그의 일부인 것은 이엘리 뿐임을. 대체 넌 누구냐는 오스칼의 물음에 이엘리는 말한다. "난 너야. 한번이라도 내가 되어봐." 하지만 더 이상 마을에 남아있을 수 없는 이엘리는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너의 엘리."란 쪽지만을 남기고 떠난다. 혼자 남겨진 오스카는 어느 날 학교 수영장에서 앙심을 품은 아이의 형에게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그 때 나타난 이엘리는 그 일당들의 몸뚱이를 갈기 갈기 찢는다, 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스칼을 구하기 위해서 오스칼은 기차를 타고 떠난다. 그 옆 커다란 나무 상자 속에 있는 사람과 함께.
오스칼의 초대 없이는 들어갈 수 없고, 오스칼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강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야 마는 이엘리는 오스칼의 내재된 본능적인 “나”다. 이엘리는 오스칼의 이성 혹은 보통의 “나”의 허락 없이는 존재를 드러내기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몇 년 전에 본 <렛미인>이 떠오른 것은 오스칼과 이엘리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보고 온 사람들, 살아남아버린 이들에게 그 과거는 자신의 일부기도 하지만 대면하기 힘든 존재다. 오스칼이 선뜻 함께 있지만 다른 세계의 이엘리를 초대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기억을 자신의 일부기에 받아들여야 함에도 두려움에 할 수 없었다. 돌이 되어버릴까 메두사 대신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고 싸우듯, 그들은 드라마로 만들어버린 기억에 의지해 살아가거나 아예 그 기억에 함몰되어 버렸다.
증언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용서", "화해"를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 대면할 수 있는 기회마저 강탈당해버렸다. 그들은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을 잃었음에도 과거의 망령은 여전히 그들을 묶어두고 있다. 그들은 초대를 해달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괴물이기도 하고, 악몽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반드시 불러내야 하는 그것, 자신의 일부를 초대하지도, 초대해달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없었던 일처럼 혹은 창에 비친 모습을 보며 재현된 것에 자신의 것을 짐작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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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의무: 증언할 것, 올바르게 기억할 것> |
정**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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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의 <아우슈비츠 혹은 상처의 철학> 4주차 수업 후기입니다.
<두 가지 의무: 증언할 것, 올바르게 기억할 것>
아프고 힘든 경험에 대해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말에, 나는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이 말처럼 대화 상대와의 단절감을 크게 느끼는 말도 없을 것이다.
경험조차도 소유의 개념으로써 권력의 기준이 된다면, 그 말은 마치 가진 자의 허세나 무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도 나도 경험을 이와 같이 각자 쌓아두려고만 한다면, 상대와의 진실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경험이란 혼자 간직했을 때보다도 여러 사람과 공유했을 때 더욱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프리모 레비나 장 아메리의 증언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침묵하지 않고,
깊은 사유와 통찰로 승화시켜 소통의 장을 마련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에게 아우슈비츠에서 겪었던 경험을 증언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그 의무는 동물적 상태만을 강요 받았던 수용소 내에서
그가 인간적인 자세를 잃지 않게 했고, 다음 세대에게도 인간적인 깨달음을 되새기게 했다.
경험을 가진 자에게 증언할 의무가 있었다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자에겐 그 증언을 다시 올바르게 기억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대중과 공유했을 때
그 개인이 또다시 경험할 지 모를 상처에 대해 우리는 또한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진중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타인의 개인적인 고통에 대해 무감각증이 팽배한 지금의 사회에서, 그 기억이 왜곡되거나 지나친 상업화에 휘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지하고 도덕적인 자세가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하며, 이것이 바로 철학적 이론이나 담론이 함께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 2012. 2. 1. at 아트앤스터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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