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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
마들렌 과자와 차 한 모금은 내게도 유효하다 |
김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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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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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의 만남+ 감성의 발견 |
강*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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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님의 강의를 빠지지 않고 듣는 열광자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지적인 것을 넘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하는 능력을 깨우쳐주는 강의입니다 이런 강의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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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강의 너무 좋습니다. ella3 (12.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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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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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꼭 완독할 작품 |
유*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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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고 유익합니다. 문학적 영감이 마구 떠오르곤 합니다. 엄두가 안 나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년에 꼭 완독할 목표를 갖게 되었어요. 이 강의 안 들었다면, 죽기 전에 그 작품 못 읽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아찔해집니다. 정말 열정적인 강의 너무 감동적이고 재미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강의 많이 많이 개발해서 들려주세요. 다음엔 오프라인으로 꼭 강의 참석하고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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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시겠다니 정말 원대한 계획을 세워놓으셨군요. 김진영 선생님의 본 강좌가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의평 감사합니다. ^-^ artboy (11.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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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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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강의가 있다니 놀랍군요~ |
이*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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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님 강의 매니아 입니다. 특히 제가 가장 흥미있어하는 프루스트와 그의 작품 잃어버린시간을 찾아서를 디테일하게 설명해주시니 정말 앎과 배움의 기쁨이과 공감이 넘친 일주일이었습니다. 매 강의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고 너무 흥미진진해서 일주일만에 전부 수강해버렸더니 이제 꿈속에서도 프루스트가 나오네요ㅎㅎ 앞으로도 좋은 강의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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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인문숲 강좌에서 김진영 선생님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답니다. 빠져드는 강의를 또 맛보세요~ artboy (11.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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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작을 만나는 안내서 |
한*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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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평생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꼭 읽어야겠다"는 동기를 강하게 얻었습니다. 단순히 줄거리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프루스트의 문학적 테마(시간, 공간, 기억, 사랑, 죽음)들을 철학적, 미학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해 주셔서 작품의 심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8강에서 다룬 '무의지적 기억'의 연금술에 대한 설명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맡았던 오래된 나무 냄새가 문득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일부를 되찾는 기분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 곧바로 원작을 다시 펼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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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체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다 |
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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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마들렌과 관련된 에피소드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강의를 통해 그것이 단순한 추억 소환이 아니라 '의지적 기억'과 대비되는 '무의지적 기억'의 연금술이자 예술적 구원의 핵심임을 깨달았습니다. 11강에서 아도르노, 벤야민, 들뢰즈 등 당대 철학자들이 프루스트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까지 다뤄주셔서 문학적 지평이 확장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려운 텍스트를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 김진영 교수님의 유려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으며 한 주를 버틸 힘을 얻었습니다. 이 강의는 저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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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난이도가 너무 높습니다 |
박*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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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입문 강좌라고 해서 들었는데,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 교수님께서 워낙 해박하신 건 알겠지만, 문학적 테마 설명 중에 철학적, 미학적 개념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쫓아가기가 버거웠습니다. 특히 '스노비즘'과 '집단 무의식'을 다루는 4강은 문학 강의가 아니라 사회학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너무 진지하고 깊이만 추구하는 바람에 쉽게 접근하려던 저같은 독자는 좌절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완강하기 전에 벌써 지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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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은 훌륭하지만, 너무 방대한 내용 |
정*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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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님의 강의력은 정말 훌륭합니다. 프루스트의 문장처럼 유려한 해설과 텍스트를 관통하는 깊은 통찰에 감탄했어요. 다만, 총 7부 4000페이지에 달하는 대하소설을 11강 안에 담으려다 보니, 중요한 부분만 '요점만 짚어가면서 강의'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쉽습니다. 강의 자체는 압축적이고 깔끔하지만, 어떤 부분은 너무 빨리 지나가서 다시 돌려봐야 했습니다. 50강 정도로 구성된다면 정말 완벽한 강의가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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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과 예술에 대한 성찰의 시간 |
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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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을 앞두고 남은 생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하던 차에 이 강의를 만났습니다. 7강에서 다룬 '할머니의 죽음'과 '베르고트의 죽음'을 통해 죽음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술, 특히 글쓰기가 어떻게 죽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에 대한 교수님의 해석은 제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평범한 전달이 아니라 '올곧게 주체적으로 해석한 명강의'라는 평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프루스트를 이제라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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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시간의 복구, 그리고 행복 |
황*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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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허송세월'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강의를 듣고 "허송세월의 시간은 없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3강의 '잃어버린 시간, 찾아가는 시간, 다시 찾은 시간'에 대한 분석은 제가 겪고 있는 감정의 상태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무의식적 기억의 각성을 통해 '내 잃어버린 시간의 복구'가 가능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행복을 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제게 마들렌 과자와 차 한 모금이 되어준 강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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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없이 듣기는 너무 어렵네요. |
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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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읽지 않고 강의를 들어서 내용 이해가 될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워낙 자세히 강의해주시지만, 프루스트의 복잡하고 유려한 문체의 감각을 알지 못하고 듣기엔 한계가 명확했어요. 15강까지 겨우 따라갔지만, 2권까지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다시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는 좋았지만, 제 준비 부족으로 아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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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한 지적 성찰의 계기 |
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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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그것은 내가 욕망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것' 등의 통찰은 프루스트 읽기가 감각을 풍요롭게 하며 지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전방위적인 독서의 계기가 될 것임을 예감하게 했습니다. 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보다 더욱 풍부하게 와닿습니다. 프루스트의 두 자아, 사랑과 질투의 역설을 다룬 5강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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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김진영 선생님... |
박*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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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의를 들으니 김진영 선생님의 새로운 강의를 더는 못 듣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픕니다. 선생님의 강의처럼 저의 기억에 살아계실 거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텍스트를 읽지 않고도 내용 이해가 많이 되었고, 기억, 우연의 중요성, 무의지적 기억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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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연주다, 나만의 악보를 찾아 |
추*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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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초반, "책은 문자로 쓰인 악보이므로 독서는 연주를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독서를 수동적인 읽기가 아닌 능동적인 연주로 정의하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총 11권의 방대한 분량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강의를 듣고 '읽었던가, 아니던가 기억을 오솔길을 헤매'는 대신, 나만의 악보를 연주하는 독서에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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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자체는 깔끔, 다만 사담 부족 아쉬움 |
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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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중언부언하지 않고 요점만 짚어가며 깔끔하게 진행되는 점은 좋았습니다. 사담이 없으면서도 가끔씩 위트를 곁들여 주셔서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사적인 에피소드나 감성적인 이야기가 섞여야 더 몰입하는 편이라, 강의가 너무 학술적이고 절제된 느낌이라 아쉽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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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문학, 철학, 감성의 완벽한 만남 |
강*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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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교수님의 강의는 지적인 것을 넘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게 하는 능력을 깨우쳐줍니다. 이런 강의를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프루스트의 소설이 생의 모든 기표들과 19세기의 모든 징후들을 담고 있다는 소개처럼, 단순히 문학을 넘어선 거대한 프루스트적 우주를 탐험한 기분이었습니다. 강의 내내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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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다시 읽게 만드는 힘 |
최*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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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멈췄었는데, 이 강의로 프루스트의 심해에 무한한 보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의 기쁨과 서글픔의 비밀을 알고 싶은 분께 이 강의를 강력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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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포착하고 구체화하는 글쓰기 연습 |
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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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강의를 듣길 잘 했습니다. 자신의 신체로 느끼는 감각, 직관들을 치밀하게 캐치해내서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프루스트의 글쓰기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현상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프루스트를 읽는 것이 바로 이것에 대한 연습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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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볼 수 없는 명강의 |
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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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고 읽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강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프루스트 입문 강좌로 보는게 적절해 보입니다. 이렇게라도 김진영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이 강의후 10년이 지나서 책이 완간 되었으니 나중에라도 꼭 완독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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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가 '내 마음을 알아준' 강의였다고 찬탄할 명강의 |
최*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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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진영 선생님의 벤야민 강의에 이어, 올해는 프루스트 강의를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가 멈췄는데, 이 강의로 프루스트의 심해에 무한한 보물이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프루스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게 해주신 강의, 감사합니다.
생의 기쁨과 서글픔의 비밀을 알고 싶은 분께 김진영 선생님의 프루스트 강의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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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지만 다시 들으니 새롭게 배우게... |
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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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들었지만 그때 들었던 강의내용보다 더욱 풍부하게 와닿습니다. '욕망하는 그것은 내가 욕망하는 것을 줄 수없다는 것'...프루스트읽기가 감각을 풍요롭게 하며 지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전방위적인 독서의 계기가 될듯합니다. 그리운 김진영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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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잘 들었습니다. |
박*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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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읽지 않고 강의를 들어서 내용이 이해가 될까 걱정을 많이 하였으나 김진영 선생님께서 워낙 자세히 강의해주셔서 내용 이해가 많이 되었습니다. 기억이 도대체 뭘까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고 우연의 중요성...무의지적 기억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진영 선생님의 새로운 강의를 더는 못 듣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퍼집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강의처럼 저의 기억에 살아계실거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구요.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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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헐이 탈피하는 애벌레 기둥 |
신*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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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간헐이 탈피하는 애벌레 기둥.
할머니를 '완전히 추억'하게 된 것은, 일상적 시간의 흐름이 끊기며 마음의 간헐 속에서 오히려 마주하게 된 할머니에 대한 참다운 기억이라는 것이 나에게 던진 잔상은 꽃들에게 희망을. 찬란하진 않지만 화려해 보일수는 있을 주변의 욕망에 휘둘려 이유조차 모른 채 기어올랐던 애벌레 기둥에서 내려와, 다시 내려와, 자신만의 고치 속에서 인내의 고통으로 스스로 '망각'의 찬란한 인상을 결국 만들어내었던 나비. 그렇게 나비가 되었던 애벌레 한 마리.
<우리들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는, 우리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런 장소일 수 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버린 모든 삶의 내용들이 간직되어 있는 이 장소는 우리 안에 있으면서도 까맣게 잊혀져있는 그런 미지의 장소이다. 그러나 어느 계기가 있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체 전체를, 우리의 감정들 모두를 다시 만나게 되면, 이 알려지지 않았던 장소는 돌연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그때까지 우리의 주인이었던 '나'를 밀어내고 우리의 육체 모두를 장악하면서 또 다른 우리들 자신의 '나', 예기치 않게 새로 태어나는 '나'가 된다. (강의록)>
그렇게 마음의 간헐 속에, 일상의 예기치 못한 시간의 구덩이 속에 참다운 기억을 상기해내지만, 그것은 고통의 독자성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고통을 통해서만 그러한 기억의 생생함을 간직할 수 있기에,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내 안에 고정시키고 있는 못이 아무리 아픈 것이라고 해도 나는 차라리 그 못이 더 아프게 내 마음에 박히기를 바랄 뿐이다.(강의록)>
할머니에 대한 온전한 기억을 통해, 고통의 독자성을 이렇게 발견해내어, 꼭 붙들어내고, 전달해내는 그 시선과 글의 힘이 무엇보다 놀랍고 또한 그것을 전달받을 수 있는 일주일 속 간헐의 지점. 예기치 못한 별자리와도 같은 인상의 풍경, 보석을 쏟아부어 주고 있는 그것이 감격스럽다. 여유라는 것, 그것을 the rest of it이라기보다 정신의 빛으로 미지의 것을 용기있게 비추는 것으로 알아가기를 바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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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파괴는 아닌, 새로운 듯 보이지만 새로운 것은 아닌 |
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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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이 선언 형식인 이유가 '나는 가수다'의 유행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달여를 <사유의 악보>와 함께 하다보니 이제는 제목 자체가 징후적 독해(毒解)를 유발하고 있음을 직감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언'이라는 형식 자체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때문에 단순히 '미국미술전'이라고 규정할 때와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라고 선언할 때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이 진지하고 단호하고 강요적이기까지한 '선언'의 형식은, 그만큼 큰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그만큼의 책임도 뒤따름을 암시한다. 농담이라곤 통할 것 같지 않은 이 심각한 선언 앞에서 나는 위험한 위엄마저 느끼며, 그 독단에 기죽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침착하게 전시를 둘러보았다.
전형적인 풍경화에서부터 미니멀리즘, 팝아트, 키치까지 온갖 미술사조들이 다 집합한 듯한 이번 전시는 과연 앞서 선언이 단언하던 '미국미술'의 범주가 무엇인지에 집중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인이 그리면 미국미술인가? 미국에서 그리면 미국미술? 미국을 그리면 미국미술? 비디오 아트는 한국인 백남준이 창시했기에 '한국미술'로 규정될 것인가? 온갖 사조들, 그 다양성과 혼성과 낯섦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바로 아주 '쿨한' 미국 스타일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도 같지만, 사실 그 현란한 포장의 이면에는 여전한 차별이나 독단 등이 숨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산만함으로 대중들을 현혹하는 '쿨하지 못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전시가 단순히 '휘트니미술관전'이 아닌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라고 선언되는 순간, 관객들이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선입견을 가질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사실 광고를 통해 전시 제목만 봤을 때 상업적인 냄새부터 강하게 풍겼다)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회화와 조각을 결합한 'Combines' 작품,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1930-), 짐 다인(Jim Dine, 1935-)의 오브제 작품 등을 보았을 땐, 마치 온갖 요소들을 뒤섞고 펼쳐놓는 것이 곧 미국적인 것이라는 편견이 생길까 염려하기까지 했다.
리게티(Gyorgy Ligeti, 1923-2006)의 음악을 듣다가 문득 깨달은 건 라우셴버그의 작품이 의미없이 뒤섞고 펼쳐놓은 작품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듣다보면 악기로 연주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낯설고 충격적인 리게티의 음악이었지만, 사실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처럼 조성을 없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성은 유지하고 단지 그 기준을 파괴한 음악이다. 마치 두 가지 다른 음악을 한꺼번에 듣는 느낌.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성의 확장을 도모하는 전략. 그것은 어쩌면 라우셴버그의 전략과 동일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라우셴버그의 전략은 회화가 재현을 거부하다 결국 사물성으로까지 나아가고 원본을 거부하다 적나라한 복제가 넘쳐나는 그런 극단으로 치닫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회화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브제를 도입하여 회화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었다. 기존 형식을 유지하면서 그 형식을 흐리는 전략은 무조건적인 뒤섞음이 아니었다. 파괴적인 듯 보이지만 결코 파괴는 아닌, 새로운 듯 보이지만 새로운 것은 아닌 그의 작품은 '이것이 미국미술이다'라는 선언에 대한 경계심이 앞섰던 나에게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권유하는 자극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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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과자와 차한모금은 내게도 유효하다 |
하*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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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가 되지 않는다. 분리를 해서 나는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임을 규정하고, 이것에서 해방을 저것에서 다른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나의 평소의 접근방식과 다르게 분리가 되지않는다. 그 종합적인 그 무엇을 덩어리째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하는데, 한편으로 그감각이 생겨야함을 인정하면서도 서툴다. 여전히 서툴다. 당신이 내게 어떻게 왔는지, 나는 규명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상황의 시종이 무엇인지 나는 분리하는 것으로 규명하려고만 한다. 이때의 분리함이 굉장히 맹한 짓인줄 알면서도 내 머리는 그렇게만 작동한다.....
<마들렌 과자와 차 한 모금이 주는 온전한 행복감이듯. 그것이 그에게 삶 속에서 벌어지는 다사다난한 일들이 아무래도 좋은 것들만 같았고, 그 일들이 가져오는 이러저러한 불행한 사건들 또한 사실은 아무런 해도 가하지 못하는 거짓 불행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언젠가는 끝나게 될 짧은 생의 시간 마저도 잘못 된 감각때문에 생기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는(강의록)> 겨우 겨우 한 숨씩 살아가는 것만 같은 요즈음의 시간 속에, 생동감의 환희 처럼 목요일 저녁 프루스트를 들을 수 있는것은 굉장한 위로이다.
잃어버린 시간. 찾아가는 시간. 다시 찾은 시간. <사람들이 죽어서 사라지고 사물들 또한 낡아서 사라지고 말아 그들이 존재했었던 지난 시간들 중에서 더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냄새와 맛만은 아주 연약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 아무런 형태도 지니지 않지만 그만큼 지속적으로, 마치 헤메에는 영혼들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때의 모습 그대로, 그드르이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기억하고 기다리고 또 희망하면서,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폐허 위에서 혹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그 어떤 존재 속에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 기억의 측량할 길 없이 커다란 건축물의 그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 간직한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었다 ..(강의록)>
이해되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상황을 분석하려만 하고 따지려고만 하는 구획적인 그 모든 생각들 너머로 훌쩍 다른 시공간으로 나를 옮겨놓는 것만 같다. 그에게 일어났던 마들렌과자와 차한모금의 도움처럼 나 역시 무의식적 기억이 훨훨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나의 행복의 구가는 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잃어버린 행복.찾아가는 행복. 다시 찾은 행복. 누구는 생이 아름답다는데,.. 그래 나는 그렇게 아름답다 말할 순 없겠지만, 내 안의 잠재워진 다른 무의식적 기억의 각성으로 내 잃어버린 시간의 복구로 다른 아름다움을, 다른 행복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주 연약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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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의 명작이란 읽지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 |
추*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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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를 연주하는 늦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대저의 명작이란 읽지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란 말이 있다. 그중 누군가 진지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잃어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고 읽었던가, 아니던가 기억을 오솔길을 헤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나는 이 책이 11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그것도 서점에서…….수업에 들어가기 전 문고에 들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찾아주세요” 하자 문고 사서는 “11권짜리 연작 인가요, 아님 한 권으로 읽는 책인가요?” 나는 국일 미디어의 김창석엮음의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사가지고 나왔다. 프로스트는 쓰는데 평생을 바치고 역자는 프로스트를 번역하는데 오랜 시간을 바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로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왜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것일까. 아마 개중의 텍스트에 무수히 인용된 한 두 편의 짧은 에피소드 덕분일 것이다. 대저, 강의실에 들면 대체 이 강의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TV는 채널을 돌려 버리면 그만이지만 얼굴을 마주보는 강의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프로스트를 읽는 봄, 독서에 대한 강렬한 한마디가 돌아온다. 책은 문자로 쓰인 악보이므로 독서는 연주를 하는 것이다. 연주란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독서는 연주를 배우고 연주하는 것이다. 꽃잎은 다 스러지고 눈가가 푸르스름해지는 늦봄, 프로스트를 연주한다. 나의 연주는 어디에 가 닿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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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좋네요. |
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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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강의를 많이 들어봤지만.. 이 강의가 가장 깔끔한 것 같네요. 중언부언 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사담이 없으면서도 가끔씩 위트도 곁들여 주시고..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긴 내용이고 할말이 방대하다 보니 요점만 짚어가면서 강의할수밖에 없다는 점인데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50강 정도로 구성해도 좋을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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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영 님:) 김진영 선생님 강의 너무 좋지요. 저도 선생님 프루스트 강의 듣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바로 읽었어요. ^^ 아트걸 (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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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
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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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전에 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신체로 느끼는 감각, 직관들을 치밀하게 캐취해내서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프루스트의 글쓰기가 아닌가 싶네요. 현상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모두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제게 프루스트를 읽는다는 건 이것에 대한 연습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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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를 만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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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덕분에 프루스트를 만났습니다. 물론, 제 끈기와 능력의 부족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3권정도까지 밖에 읽지 못하였지만요, 이 책을 만나기 이전과 만나고 난 후의 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선생님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의미있게 생각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사랑하는 작품을 간직하고 곱씹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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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되는 좋은 강좌입니다. |
조*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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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으신 강의를 듣고 프루스트 읽기에 도전해 보았는데 역시나 제 수준이하의 가독력이 큰 걸림돌이 되는군요. 김진영샘 강좌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나마 지금 분량만큼도 읽지 못했을테지만 너무 어렵네요. 그래도 허송세월의 시간은 없다는 말씀에 위로 받으며 내년엔 정말 2권까지 만이라도 제대로 읽어 볼 수 있길 희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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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코앞에 두고, 프루스트를 만나다 |
조*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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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줄에 프루스트에 빠져듭니다. 정년이 코앞인 나이. 대체 무엇으로 남은 생을 보낼꼬, 궁리에 궁리 끝에 가까스로 붙잡은 프루스트.
오늘 7강 <프루스트와 죽음>을 청취하며 간간히 사념에 잠겼더랬습니다. 죽음과 예술....예술, 글쓰기가 죽음마저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는 것. 거듭 생각을 하게 만드는군요.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이렇게 생각했더랬습니다. 으음~ 흔해빠진 평범한 강의가 아니군. 프루스트를 그냥 전달하는게 아니라, 올곧게 주체적으로 해석한 명강의로군. 하고 말이죠.
프루스트 끝나면, 아예 김진영 선생의 패키지 강좌 전체를 몽땅 들어보려고 작정했습니다.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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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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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읽어보고 싶었는데 엄두를 못내고 있다가 선생님 강의를 보면서 많이 도움 받고 있습니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강의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램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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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하시지 않을까요? ^-^ artboy (11.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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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란? |
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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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 늘 감사드리며 ..... "신의 은총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 존중이란 사랑보다 깊은것 .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그 어려운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우게 되어 었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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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 강의를 들으신 수강생 분들의 댓글에선 늘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 artboy (11.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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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
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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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읽어보고 싶었는데 엄두를 못내고 있다가 선생님 강의를 보면서 많이 도움 받고 있습니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강의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램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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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오긴 오는데 이것이 어떻게 오는지를 알아야 겠다고 |
y**lowhu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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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파악이 안 된다는 어려운 고백. 항상 하는 것이지만 요즘 들어 더하다.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렇다. 조합의 방향과 방식에 따라 다른 내가 만들어지고, 그걸 그 당시 그 순간만큼은 가장 나인 것이라 여긴다. 계속 해부하면 그만큼은 답이 나오겠지 하며 그렇게 분석한다. 알고싶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오늘 강의에서 들은 풍월처럼, 나 역시도 "행복이 오긴 오는데 이것이 어떻게 오는지를 알아야겠다고" 한다.
Object of Love를 찾는다. 그것이 어디있을지 끝없이 탐색한다. 상대의 존재방식의 어떠한 특징으로 인하여 의식적 자아(문제항) 아닌 육체적 자아(대립항)가 내 안에서 튀어올라 트립자아와 만난다. 그리고 그 트립자아를 상대(Object of Love)에 투영한다. 그렇게 자기애는 계속하여 증식하고 생성된다. 그것은 불연속이고, 무한히 증식하며, 정체되지 않는다. 상대에 있지도 않다. 다만 상대에 있을 것이라 착각하며 연애는 맺어져간다. 하지만 빠져들수록 잡히진 않는다. 그런 허송세월의 통과의례속에 글쓰기는 또 다시 한번 자아의 외침으로 솟는다.
'그리고 마침내 알베르틴의 잠이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더는 의식의 암초들에게 부딪힐 위험성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안심하고 침대 위로 올라가서 그녀 곁에 몸을 눕히고 알베르틴의 잠 속으로 함께 실려 내려갔다. 완전히 순수하지만은 않은 기쁨이 나를 감쌌다. .. 나는 그야말로 말을 알지 못하는 자연, 그 어떤 의식도 저항도 없는 자연 한 조각을 완전하게 소유한 것만 같았다.(강의록)'
가장 사적인 영역인 intimacy의 연애를 통하여 트립자아를 알아간다. 트립 자아의 가동으로 쓰는 동력을 부여받는다. 트립 자아의 활동으로 불완전하지만 가장 완전을 지향한다. 이 엎치락뒤치락한 운동이 어떠한 몰아가는 힘을 만들며 어느 방향에서 좌우받지 않는 그 고유의 방향을 정하는 듯하다. 그 지점을 찾는 순간, 찾아지는 순간 "이제서야 나는 알겠다"고 하는 허송세월의 통과제의를 이룩한 정리 그리고 기록이 선다. 그것을 바삐 기록한다.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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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당신의 촌스러움이 사랑스럽습니다 |
y**lowhu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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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지껏 본 사람중에 가장 제대로 대단하게 '촌스러운' 사람을 알아가고 있는데, 그로부터 받는 감동은 삶의 변화라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표현처럼 '매우 은밀하고도 정확하다'. 한편 순수한 갈망을 자아냈다고 여겨졌던 세련됨은 보기는 산뜻하나 닿아지지 않았는데, 그랬던 것은, 그것이 멀리 있어서가 아니라(멀리 있는 줄 알고 더 다가서려 하였던 적도 있었으나) 실체없이 단지 그렇게 보였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제는 담담히 짐작한다. 존재가 현실 속에서 숨쉰다면 육중히 내리고 서 있는 그 무게감에 의해서라도 세련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 무게의 어쩔 수 없는 촌스러움. 그리고 그 촌스러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바른 마음씨. 요즈음에는 그것이야말로 내게 genuine frontier. 아, 나는 당신의 촌스러움이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에너지는 가장 촌스러운 용암에서 흘러넘치는 것이었네요
프루스트 네번째 수업. 집단 무의식을 읽어내려가는 살롱에 대하여. 귀족 살롱과 부르주아 살롱, 우리 안에 이제도 철저히 내재되어 있을, 웃기고도 웃기지만은 않은 스노비즘에 대하여. 속으로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변별하나 .. 그러나 그러지 않은 척. 자신 안의 이중성을 가지고 세련되어 보일 어떠한 분위기에 편승하는 존재의 초라함.. 진실다운 진실은 외면한 채 그저 조류와 세태만이 남는 어느 역사의 한 장면. 그들 간 전혀 다른 안티드레퓌스의 입장.
단순히 한 개인의 무의지적 기억을 넘어선 사회역사적 맥락이 부여하는 생동감, 그 씨실과 날실의 결합 속에 작품이 .. 시간 속에 명멸하지 않는 작품이 탄생한다. 선생님 말씀대로 '명명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명멸을 붙잡아내는' 실로 섬세한 고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목요일 저녁 조금이나마 전달받을 수 있는 그 고유의 시간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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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잠들기에 대한 우연과도 같은 수업 |
y**lowhu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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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새벽 4시 50분께 깨어난 목요일. 불편한 잠들기에 대한 우연과도 같은 수업.
요즈음의 불편한 잠들기를 통해 알아가는 육체적 시간. 그것은 오히려 의식의 시간보다 더한, 순수 의식의 시간. 의식 원형의시간. 의식의 원초적 단계와도 같은 시간. 그 시간은 의도적이지 않아서 불연속적이고, 역사적 시간을 뚫고 튀어올라오는 시간. 하지만, 원하는 바까지도 사회적인 욕망과 인정에 맞추어 함께 길들여져야할 것 같은 그 지점에서 나의 고요하고 원액같은 외침을 발견하는 것. 내 속의 감각덩어리. 삶덩어리에 닿는 시간.
그래, 내 의식적인 시간 안에 나를 통제하고 발전이나 하려 했던 의도와 의욕만 다분했던 그 시간이 분명 진보만으로 흐르진 않았지. 아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밀려드는 반작용에 퇴보하듯 나를 더 안달나고 좌절하게만 만들었지. 그래서 나는 다른 시간의 축을 찾아야만 했지. 진보의 시간을 방해하는 내 안의 moment와도 같이. 그것만이 내게 정말 거창하지 않은 작은 구원. 그리고 마저 그 유한성의 한계에 스러져가지 않도록 나를 옮긴다. 내안의 육체적 감각을 통렬히 깨워 나의 순수자아를 바친다 가장 생생하게.
"돌연 잠이 온다. 나는 무거운 잠 속으로 빠진다. 잠의 휘장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간다. 유년으로, 흘러간 세월로, 사라진 감정들로 돌아간다. 그리고 육신을 이탈해서 영혼의 세계, 망자들의 세계, 광기의 환상들이 있는 가장 원시적인 자연계 속으로 되돌아간다. 꿈 속에서는 확실함 대신에 모호함만이 있어서 마치 환등의 마술처럼 앞의 현실은 뒤따르는 현실로 바뀌면서 사라지는 것이어서 눈앞의 광경은 끝없이 변화하는 환등의 세계를 닮는다. 우리는 자주 꿈 속에서 동물을 만났다고 말하지만, 그 동물은 다름 아닌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우리는 매일 밤 침대 안에서 이렇게 사멸과 부활의 신비를 전수받는 것이다.."(강의록)
내 껍데기 속 껍데기 속 껍데기를 끝없이 캐내어주는 또 한번의 목요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조용한 감격과 감정, 생각을 그대로 봉인한 후, 또 며칠이 지나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게 내 시간의 일부로 계속하여 차지하도록 한 후엔 가장 고요하고 과장 없이 어느 순간 쏟아내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생성해 내기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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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과자와 차 한모금은 내게도 유효하다 |
y**lowhu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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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과자와 차한모금은 내게도 유효하다
분리가 되지 않는다. 분리를 해서 나는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임을 규정하고, 이것에서 해방을 저것에서 다른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런 나의 평소의 접근방식과 다르게 분리가 되지않는다. 그 종합적인 그 무엇을 덩어리째 내 안에 받아들여야 하는데, 한편으로 그감각이 생겨야함을 인정하면서도 서툴다. 여전히 서툴다. 당신이 내게 어떻게 왔는지, 나는 규명하려고만 한다. 이러한 상황의 시종이 무엇인지 나는 분리하는 것으로 규명하려고만 한다. 이때의 분리함이 굉장히 맹한 짓인줄 알면서도 내 머리는 그렇게만 작동한다.....
<마들렌 과자와 차 한 모금이 주는 온전한 행복감이듯. 그것이 그에게 삶 속에서 벌어지는 다사다난한 일들이 아무래도 좋은 것들만 같았고, 그 일들이 가져오는 이러저러한 불행한 사건들 또한 사실은 아무런 해도 가하지 못하는 거짓 불행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언젠가는 끝나게 될 짧은 생의 시간 마저도 잘못 된 감각때문에 생기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는(강의록)> 겨우 겨우 한 숨씩 살아가는 것만 같은 요즈음의 시간 속에, 생동감의 환희 처럼 목요일 저녁 프루스트를 들을 수 있는것은 굉장한 위로이다.
잃어버린 시간. 찾아가는 시간. 다시 찾은 시간. <사람들이 죽어서 사라지고 사물들 또한 낡아서 사라지고 말아 그들이 존재했었던 지난 시간들 중에서 더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냄새와 맛만은 아주 연약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 아무런 형태도 지니지 않지만 그만큼 지속적으로, 마치 헤메에는 영혼들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 그때의 모습 그대로, 그드르이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기억하고 기다리고 또 희망하면서,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폐허 위에서 혹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그 어떤 존재 속에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 기억의 측량할 길 없이 커다란 건축물의 그 어느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 간직한 채로 남아있게 될 것이었다 ..(강의록)>
이해되지 않기에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상황을 분석하려만 하고 따지려고만 하는 구획적인 그 모든 생각들 너머로 훌쩍 다른 시공간으로 나를 옮겨놓는 것만 같다. 그에게 일어났던 마들렌과자와 차한모금의 도움처럼 나 역시 무의식적 기억이 훨훨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나의 행복의 구가는 이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잃어버린 행복.찾아가는 행복. 다시 찾은 행복. 누구는 생이 아름답다는데,.. 그래 나는 그렇게 아름답다 말할 순 없겠지만, 내 안의 잠재워진 다른 무의식적 기억의 각성으로 내 잃어버린 시간의 복구로 다른 아름다움을, 다른 행복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주 연약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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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의 명작이란 읽지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란 말이 있다 |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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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를 연주하는 늦봄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대저의 명작이란 읽지 않았는데 읽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책이란 말이 있다. 그중 누군가 진지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을 잃어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고 읽었던가, 아니던가 기억을 오솔길을 헤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나는 이 책이 11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그것도 서점에서…….수업에 들어가기 전 문고에 들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찾아주세요” 하자 문고 사서는 “11권짜리 연작 인가요, 아님 한 권으로 읽는 책인가요?” 나는 국일 미디어의 김창석엮음의 한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사가지고 나왔다. 프로스트는 쓰는데 평생을 바치고 역자는 프로스트를 번역하는데 오랜 시간을 바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로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왜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것일까. 아마 개중의 텍스트에 무수히 인용된 한 두 편의 짧은 에피소드 덕분일 것이다. 대저, 강의실에 들면 대체 이 강의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TV는 채널을 돌려 버리면 그만이지만 얼굴을 마주보는 강의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프로스트를 읽는 봄, 독서에 대한 강렬한 한마디가 돌아온다. 책은 문자로 쓰인 악보이므로 독서는 연주를 하는 것이다. 연주란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독서는 연주를 배우고 연주하는 것이다. 꽃잎은 다 스러지고 눈가가 푸르스름해지는 늦봄, 프로스트를 연주한다. 나의 연주는 어디에 가 닿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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