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한 카페, 1950년대.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에서 다소 예민해 보이는 사르트르와 차분한 인상의 스피노자가 마주 앉아 있다. 둘 사이에는 체스판이 놓여있고, 커피 두 잔이 김을 내뿜고 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은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논쟁 중 하나다. 17세기 이성주의자 스피노자는 모든 사건이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체인 속에 있다고 보는 엄격한 결정론자였으며, 신(자연)의 법칙에 따른 필연성을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했다. 반면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의 본질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인간은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 나간다는 급진적 자유의지론을 펼쳤다. 두 철학자의 이 가상 만남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온 두 거인이 인간 조건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벌이는 지적 대결이다.)
사르트르: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택을 강요받죠. 그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스피노자: 흥미로운 관점이군요. 하지만 저는 모든 것이 필연적 질서에 따른다고 봅니다. 당신이 말하는 '선택'이라는 것도 사실은 원인과 결과의 연쇄에 불과합니다.
사르트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렇다면 인간의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의 결정론에서는 우리의 모든 행동이 미리 정해진 것이라면, 선택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습니까?
스피노자: 책임이라... 제가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이 신의 본성, 즉 자연의 필연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담배를 피우는 것도 우주의 인과 관계 속에서 필연적입니다.
사르트르: (눈을 치켜뜨며) 당신은 내가 이 담배를 피우지 않을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건 제 경험과 맞지 않습니다. 나는 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의 무게를 감당합니다.
스피노자: (미소 지으며) 당신이 선택했다고 느끼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모든 욕망, 생각, 행동은 이전 상태의 결과입니다. 자유의지라 부르는 것은 사실 무지의 표현이죠. 우리가 행동의 모든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르트르: (약간 화를 내며)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기계일 뿐입니까? 내 삶의 고통과 선택의 순간들이 모두 환상이라는 말입니까?
스피노자: 기계라기보다는 무한한 실체의 양태입니다. 당신의 경험이 환상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참된 자유는 필연성을 이해하는 데서 옵니다.
사르트르: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며)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이 체스 게임의 결과도 이미 정해져 있겠군요?
스피노자: 모든 가능한 변수와 조건을 안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제한적이기에 우리에게는 미래가 열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르트르: 바로 그 지점에서 자유가 태어납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이 우리를 정의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피노자: (차분히)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자유란 필연성의 인식이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과 우리 자신의 본성을 이해할 때,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당신의 결정론에서도 우리는 행동해야 하고,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실존의 핵심이 아닐까요?
스피노자: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견해는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다만 접근하는 방향이 다를 뿐이죠. 당신은 주관적 경험에서, 저는 객관적 질서에서 시작합니다.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한다. 카페 주인이 폐점 시간을 알리며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낸다.)
사르트르: (담배를 끄며)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야 할 것 같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카페를 떠나야 한다는 필연성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 (미소 지으며) 그렇군요. 당신은 그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 부르고, 저는 필연적 결과라고 부르겠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두 철학자는 서로를 향해 존중의 눈빛을 교환하며 악수를 나눈다. 그들은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향한 열정을 공유했음을 확인하고, 각자의 시대로 돌아갔다. 그들의 대화는 끝났지만,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