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 강의는 알튀세르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정치철학적 이론들을 살펴보고 이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이론적 가능성들을 알아본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인문좌파의 현재성을 점검해보자.
수강료 : 49,000원 (적립5% : 최대2,450 원)
강사 : 이택광
구성 : 총 7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총 10명 참여
 
김주일 님
김혜원 님
박석훈 님

이 강의는 인문학적 사유와 좌파적 전망에 대한 이론적 고찰들을 다룬다. 알튀세르 이후에 출현한 다양한 정치철학적 이론들을 살펴보고 이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이론적 가능성들을 알아본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자리잡을 수 있는 인문좌파의 현재성을 점검해보자.

인문좌파란?


"굳이 나에게 이름을 붙여줄 거라면 '인문좌파'라고 불러야 할 거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문이라는 건 철학이나 문학 같은 대학의 근대 학문 체계가 만들어낸 제도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이건 오히려 이런 합의된 체계를 회의하는 사유 자체를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한다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가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의문을 던지는 행위가 바로 인문적 사유이다. (...)

인터넷에서 아무리 좌파연 떠들어도, 자신이 다니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평범한 표정'으로 '선한 눈빛'으로 마음씨 좋은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면서 살아간다면, 무슨 소용인가? 주변에 모인 몇몇 지인들과 술이나 마시면서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좌파적인 행태라고 잘못 판단하는 게 다반사인 상황에서, 내가 제기하는 인문좌파는 이런 조건들을 거부하는 '다른' 생활방식과, 날카로운 사유 체계로 무장한 주체들이다." - 이택광


 

대중과 호흡하는 비평가 이택광, 인문학 가이드로 나서다!


지난 강좌에서 문화비평을 위한 이론의 칼날을 갈았다면 이번 강좌에서는 그 칼을 자유롭게 사용할 비급을 전한다. 그의 저서『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를 따라 인문학의 지도를 세밀하게 그려나가도록 한다.  



인문좌파를 위한 가이드라인


이택광이 제시하는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카를 마르크스, 자크 라캉, 슬라보예 지젝, 자크 데리다를 비롯, 진정한 좌파적 기획을 실천한 이론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실천하고 개진한 인문적 사유와 이론들을 흡수하여 사유의 장을 30평 남짓 넓히도록 하자! 


      

이택광교수가 '인문좌파'에게 전하는 말 - 이택광


▼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주장하고 있듯이, 문학비평도 제도화의 과정에 진입하기 전까지 영국의 대학 제도에서 주변부를 차지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론은 처음에 비평의 혁신을 위해 비평담론의 내부로 인입되었지만, 실제로 이론 자체의 위상과 역할은 엄연히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독일의 경우 ‘문화학’이라는 학문 체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였다.

 

문화학의 출현은 “산업화된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학문 분과의 전통적인 구조 사이에 깊은 단절이 생겨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물론 문화학은 특정한 학문 체계로 자리를 굳건히 잡았다기보다, “학문들의 경계를 안팎으로 넘나들며 여러 문제들을 종합하고 재구성하는 요소”였다. 독일의 문화학은 시간이 지나면서 민족심리학, 문화사, 문화철학, 상징형식이론, 정신분석학, 비판이론으로 발전했는데, 이런 발전은 기본적으로 정신과학을 문화학을 통해 개혁하려고 했던 취지에서 추동력을 얻었다. 영미 비평계와 한국 비평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또한 이런 독일 문화학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셸 푸코는 여러 군데에서 자신의 이론이 프랑크푸르트학파에게 빚진 것임을 밝히고 있는데, “만일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해 제때 알았다면 그동안 들인 수고를 덜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은 유명하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가 있듯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담론의 체계들은 이렇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자신의 현전성을 엄연히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비평의 바깥에서 ‘외삽’될 수밖에 없는 이론의 운명은 언제나 과잉의 논란을 그 속에 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산업은, 이론의 상품화, 달리 말하자면, 이론의 물화를 가중시킨다. 그러나 이론의 물화가 도처에서 목격된다고 해서 이론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임슨의 말이 옳다면,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론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집단적 유토피아 충동이 일시적으로 실천의 맥락으로부터 단절된 것이고, 이 단절은 적절한 실천의 장을 만났을 때 소멸할 것이다. 물론 이 실천의 장은 그냥 때가 되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조건을 핑계로 이론의 물화를 극복할 의지가 없는 이론가의 태만은 비평이라는 실천 행위를 방기하는 것이고, 이런 상황은 실천을 통해 부단하게 현실에서 ‘매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이론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문화학이 보여주듯이, 이른바 ‘이론’이라는 것은 정신과학의 혁신을 위한 ‘문화적 전회’를 통해 탄생한 ‘문화이론’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다. 이 문화이론의 기능은 다양한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혁신’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론을 둘러싼 문제점들은 이런 혁신의 대상들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논리 속으로 포섭당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이론의 쓰임새가 과잉이어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이론이 자본의 논리를 넘어 현실에 대한 개입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 개입의 지점은 바로 이론의 무기력증을 초래하는 그 현실 자체에 대한 이론가의 ‘재귀적 사고’일 것이다. 그 현실은 이론의 혁신성마저도 시장의 논리 속으로 집어 삼키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이고, 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이론의 생명력을 보장한다. 최근 한국에서 목격되는 이론의 무기력증은 자신의 기반을 허물고 있는 이 ‘자본’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자본의 실재를 밝혀내는 것이 이론의 임무라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론의 종언이 마르크스의 복귀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제1강 마르크스주의 이후의 마르크스 중에서
제3강 라캉주의적 반이론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 중에서
제5강 바디우와 사건 중에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이택광)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