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철학 -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으며
어머니와의 관계가 보통 이상으로 내밀했던 것으로 유명한 롤랑 바르트. 그가 어머니를 잃은 '사건'을 계기로 『애도 일기』라는 글쓰기 작업을 통해 펼쳐 보이는 슬픔의 철학!
수강료 : 49,000원 (적립5% : 최대2,450 원)
강사 : 김진영
구성 : 총 10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제작년도 : 2013년 ( 고화질 )
총 17명 참여
 
한*배 님
김*신 님
s**3706s 님

이 강의는 김진영 선생님의 번역으로 출간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밀착 독서하는 강의다. 강의는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애도 일기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다. 이를 위해 여타 바르트의 텍스트들, 특히 어머니의 사망 이후 남겨진 텍스트들, 강의록들, 에세이들이 참조 인용된다. (‘카메라 루시다’, ‘소설을 준비하기’, ‘중립’, 스탕달, 프루스트, 일기 형식 등등에 대한 에세이들) 또 하나의 강의 방향은슬픔자체를 테마로 한 논의다. 이를 위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기호론,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등의 다방면의 담론들이 원용된다. 이를 통해 어머니를 상실한 슬픔, 이 슬픔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가, 이 슬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슬픔은 생의 어떤 진실과 만나게 하는가 등의 인간 본연의 문제들이 규명될 것이다.

만년의 롤랑 바르트를 이해해보자


1977년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가 사망했을 때 바르트는 자신이 양자택일 앞에 서 있음을 알았다. 생의 마감인가 아니면 새로운 생의 시작인가. 이 양자택일을 앞에 두고 바르트는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 날부터 자신의 애도 작업을 노트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남겨진 유고가 어머니의 사망과 바르트 자신의 사망 사이 2년간의 기록인 『애도 일기』.


우리는 『애도 일기』를 통해 바르트의 사적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바르트의 공적 활동의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사적 영역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어머니의 상실 즉 사랑의 상실로 인한 바르트의 절망적 멜랑콜리를 바라볼 수 있다.


『애도 일기』는 아주 짧은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기록에 날짜가 붙어 있어 형식적으로는 일기이지만, 통상적인 일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인 일기는 내면적 자아가 화자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지만, 『애도 일기』는 내면적 자아가 허물어져 가는 과정과 새로운 자아를 찾아나가는 이중의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일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일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가? 『애도 일기』는 어떤 의미에서, 바르트가 쓰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소설 『비타 노바』(Vita Nova)의 근본적인 자료에 해당한다.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밑그림으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의 형식을 창출해내려고 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애도 일기』는 바르트의 이러한 의도와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바르트가 『애도 일기』를 가지고 한 편의 소설 혹은 에세이를 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하면서 읽어야 한다. “과연 어떠한 소설과 에세이가 나왔을까?” 하는 질문을 바르트의 지적 행로와 연결시킬 때, 우리는 바르트가 이 텍스트에서 추구했던 목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상실과 애도의 문제 "슬프기만 한 수많은 아침들"


『애도 일기』가 일기라는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할지라도, 사실상 이 기록들은 순간순간 죽음 충동처럼 내습해서 육체에 각인되는 문장들이 사진처럼 찍혀서 남겨진, 언어의 스냅 사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짧고 단순한 이 날것의 문장들은 그 직접성 때문에 한편 무의미하지만, 다른 한편 농익어 이제 곧 과육과 과즙이 누설되고 말의 과일처럼 의미들로 만숙하다. 물론 파열되어 흘러나오게 될 과육과 과즙의 의미들은 불투명하고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일의 이름은 분명하다. 그건 슬픔, 바르트 식으로 말하자면, 절대 기호로서의 슬픔이다. 절대 기호인 슬픔 - 그것은 애도/멜랑콜리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슬픔, 사랑과 죽음 사이를 떠나지 않는 슬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슬픔이다.


그렇다면 바르트가 이 글을 통해 전개했던 슬픔이라는 애도 작업의 끝에서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상태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한 애도의 과정 후에 도달하게 되는 슬픔의 끝이며, 어떤 지고한 상태, 말하자면 죽은 어머니마저 대수롭지 않아지는 상태이다. 이를 언어화하기는 힘들지만, 사진은 그것을 증거한다. 그러나 또 한편 사진은 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말로 풀어내는 것이 문학이며, 따라서 바르트에게 문학은 사진에서 태어난다.



이별은 많은데 애도는 없는 이 시대, 에고의 글쓰기에서 헌정의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삶은 어떤가? 우리는 살아갈수록 세상의 많은 것들과 수없이 이별하고 살지만, 정작 슬퍼하는 것즉 애도가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애도 작업을 시작하고 끝내는 삶이다. 애도 작업을 끝낸다는 것은 무덤을 만들어주는 일이며, 그 무덤은 문자와 글쓰기로 짓는 무덤이다.


에고(ego)의 글쓰기와 헌정의 글쓰기라는 두 글쓰기 형태 중 이제 우리는 헌정의 글쓰기로 이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했다면 그것은 에고의 글쓰기에 해당한다. 이제는 에고의 글쓰기에서 애도 작업에 해당하는 헌정의 글쓰기로 이행해야 한다. 즉 글쓰기는 이렇게 헌정의 영역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이제 바르트의 『애도 일기』와 함께 슬픔을 깨닫고, 에고의 글쓰기에서 헌정의 글쓰기로 건너가보자.

제2강 슬픔과 육체: 부재, 아케디아, 기다림 중에서
제5강 슬픔과 도덕: 니체, 아도르노 중에서
제8강 슬픔과 재회: 보들레에르, 벤야민 중에서
- 본 강의는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김진영역, 이순)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