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께서 수술을 하셨다. 그간 척추 4,5번 사이의 신경이 눌려 다리의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걷지 못했다. 허리는 당연히 구부러들었다. 몇 개월을 망설인 끝에 수술을 결정하고 어머니를 수술실로 밀어 넣었다. 수술은 어머니가 원한 것이었지만 어머니를 수술실로 밀어 넣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불안했다. 고령인데다 골다공증에 당뇨까지 있어서 수술 후유증을 장담할 수 없었다. 모니터에 수술이 끝났다는 메시지가 뜨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수술실에 나오지 못했다. 모니터에는 다시 어머니는 수술중인 환자로 올라갔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벌컥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지나다니는 간호사에게 매달려 물어 보았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란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마취를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던데. 수술실에 들어간 지 다섯 시간 여가 지나자 간호사들이 보호자를 불렀다. 할머니가 자꾸만 잠을 자려고 하니 억지로라도 깨우라는 것이다. 완전히 마취에서 깬 다음에 자도 자야한다는 것이다. 볼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른 끝에 어머니는 간신히 눈을 뜨고 사람을 알아보았다. 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눈을 맞추었다. 됐다.
   어머니를 입원실에 모셔 놓고 병원을 왔다갔다하던 차에 아이들이 할머니 문병 가는 길에 상당산성에 가보자는 말을 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귀찮아하는 큰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반가워서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그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감히 눈돌려 무언가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바람이라는 것을 쐬고 싶었다.
양양지녘 비탈길에는 제비꽃이 한창이었다. 땅 위에 바짝 엎드려 보라색 꽃을 다복하게 피워내고 있었다. 용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사잇길 위에 자리를 잡은 제비꽃은 올 봄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언덕길을 돌아 펑퍼짐한 잔디밭을 걸으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이만 때쯤이면 할미꽃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은 무얼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의 물음에도 아랑곳없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잔디밭 위를 샅샅이 훑어 내려갔다. 꼭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 꼭 보고 싶었다. 이른 봄 하얀 털을 부승부숭 달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빛 바라기를 하고 있는 할미꽃을 꼭 보고 싶었다. 할미꽃 등에 돋아난 솜털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등에 세로로 나 있는 수술자국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보듬어 주고 싶었다. 약간 언덕진 곳에 희뿌연 것이 불쑥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깄다!” 소풍 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보물 쪽지라도 찾은 것처럼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할미꽃 곁에 앉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찾는 것이 겨우 이거야, 하는 눈빛이었다. 엄마는 맨날 꽃밖에 모른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봐, 할미꽃이 피었잖아, 아직은 추운데 말이야. 그래서 키도 아주 작잖아, 이 솜털 좀 봐, 이렇게 등이 휜 것 좀 봐.”
    코끝이 매웠다. 등이 휘는 것도 모르고, 등이 휘어 다리의 신경을 옥죄는 거도 모르고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마음 아파서 눈물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울렁울렁 고여왔다. 나는 연신 할미꽃을 쓰다듬으며 혼잣말하듯 했다. 할미꽃이 고개를 숙인 만큼 나도 고개를 숙인 채 할미꽃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꽃잎 겉장은 솜털이 뒤덮고 있어서 허옇게 보이지만 꽃잎 안쪽은 붉은 빛깔을 하고 있다. 가운데 노란 수술이 더 한 번 치장을 하여 정열적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입원 준비 물품 중에 챙겨오신 빨간 손거울이 떠올랐다. 등이 휘고 뼈가 텅 비어가도 마음만은 할미꽃의 빨간 꽃잎과 노란 수술 같은 열정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한평생 사는 데 급급해서 가슴에 품은 빨간 꽃잎 한번 펴볼 새 없었다는 어머니의 푸념이 귓가를 두드릴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어머니 나이 때쯤 되면 더 높은 목소리로 내 안에 품고 있던 빨간 꽃잎이 소리 없이 지는 것에 대해 억울해할 것이다. 허나, 어머니처럼 담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할미꽃은 이제 내 어머니꽃이 되었다. 내 마음의 어머니꽃. 이른봄, 추위를 견디기 위해 털을 부숭부숭 달고 고개를 내민 할미꽃을 볼 때면 어머니의 휜 등과 그 안에 품고 있는 붉은빛 삶의 열정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바람이 분다. 봄은 간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