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얼음주머니로 뒷덜미의 열을 식혀야만 더위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겨우 가라앉는다. 매년 더위가 심해지는 건지, 매 년 그 해의 더위가 가장 덥다고 느끼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한낮 더위 속을 걸을 때면 그늘이 절로 그리워진다. 끊임없이 들리는 매미울음 소리는 햇빛에 달궈진 지상의 모든 소리가 저처럼 자글거리며 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도심 공간을 꽉 채운다. 한편으로는 한 철 울음소리로 수년 간 품은 뜻을 꼭 펼치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소산이 저렇게 쩌렁쩌렁 도심을 울리나 싶기도 하다. 뜨거운 햇볕에 매미소리가 보태지면 시원한 나무그늘과 청량한 계곡물이 절로 생각난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계곡에 열에 달뜬 발을 담그면 머릿속까지 시원해질 것 같다. 그늘의 품이 너른 나무는 대개 활엽이다. 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엇갈리게 가지를 뻗고, 잎 자리를 낸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해마다 돌려나기 때문에 층이 비교적 선명하게 나뉘는 나무 중 하나이다. 햇볕을 어찌나 효과적으로 받으려고 나름 머리를 썼는지 층층나무 아래 서면 빛 하나 새지 않는다. 완벽한 그늘이다. 햇볕을 받은 잎들이 차양이 되어 말갛게 속내까지 내비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건 나무를 올려다보는 사람에게 주는 보너스이다.
너른 품으로 여유로운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로는 느티나무가 으뜸일 것이다. 느티나무는 마을의 정자목으로 쓰일 정도로 나무의 형태가 안정적이며 여름에 그늘 또한 제법 넓게 만들어 주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는 나무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한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뛰어 놀고, 한쪽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런두런 얘기하고, 일터를 오가는 사람들까지도 넉넉히 품고도 남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잎이 빼곡하게 들어차 빛 하나 흘리지 않는 느티나무야 말로 넉넉한 그늘의 대표급이라고 할 수 있다. 탁족이라도 하려고 계곡에 들어섰다가 우연찮게 쪽동백나무를 보게 되었다. 낭창낭창한 가지를 뻗어 계곡으로 내려오는 햇볕을 가려주어 더더욱 시원한 계곡을 만들어 주었는데 아래서 올려다 본 쪽동백나무의 잎사귀는 겹치지 않게 찹찹하게 잎사귀를 펼치고 햇볕을 사이좋게 나눠 받고 있었다. 위에 난 잎은 아래 잎을 가리지 않았으며 그 아래 잎은 교묘히 비켜나 햇볕을 놓치지 않았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축복처럼 내려오는 그늘을 즐기고 있다. 햇볕이 생장의 필수인 나무의 속성도 있겠지만 수많은 그 잎들이 번갈아 아래로 보내주는 햇볕과 그 햇볕을 소중히 받는 아래 잎이 아니었다면 그늘도 없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는 것이 서로가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나무는 너무나 잘 안다. 나무 그늘에 서면 그늘만 누리지 말고 햇볕이 쏟아지는 나무를 올려다보라, 잎들이 나누어 갖는 햇볕 조각들로 만들어낸 멋진 구성작품을 볼 수 있는 호사도 누리게 될 것이다. 바라보는 얼굴에도 초록물이 들어 시원한 미소가 번질 것이다. 8월 복더위 새중간, 바야흐로 그늘이 아름다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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