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자질구레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그럴 때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난 한번도 그런 욕구로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모든 것을 가볍게 떨치고 가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그럴까. 나에게 ‘나’는 늘 뒷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남는 시간을 나 자신에게 돌린다. 그런데 어디 일상의 굴레에서 남는 시간이 그리 녹록하던가. 그러다 보니 내가 꿈꾸는 여행은 입때껏 이루지 못했다. 여행은 혼자 가면 쓸쓸하다. 그렇다고 떼지어 가면 성가시다. 지난 늦가을 무렵, 뜻을 같이 하는 동인 몇이 아랫녘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떠날 때 밟는 자동차의 페달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구름 위를 밟는 기분이 이럴까. 나에게 붙어 있는 수많은 부속을 떼어내고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여행은 아무래도 이 맛에 하지 않을까. 장성에 있는 백양사를 가게 되었다. 신새벽에 가기로 약속을 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의 산사라, 생각만 해도 코끝에 싸한 냉기와 운무가 달려 들 것 같다. 새벽 산사를 맛보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일행은 선선히 일어나 백양사로 향했다. 일주문 아래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서 운무가 피어올랐다. 꿈꾸던 그림이다. 연못 속에는 요사채가 들어와 있고 대웅전으로 향하는 다리가 들어 있다. 백학봉 아래 얌전히 앉아 있는 흰양 같은 백양사를 뒤로 하고 산에 올랐다.
백양사는 비자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빛 하나 들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비자나무 숲을 지나게 되었다. 오솔길에는 비자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는데 모두 슬어 있었다. 청설모나 다람쥐 짓이다. 겨울 먹이를 마련하느라 재게 움직였을 그들의 앞발이 눈에 선하다. 산 중턱에 있는 암자를 향해 막 걸음을 잇는데 어두운 비자림 그늘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꽃 한 송이를 보게 되었다. 차 꽃이었다. 다섯 장의 흰 꽃잎 가운데 노란 수술을 달고 있는데 어두운 숲 속에서 달랑 그것 한 송이였다. 꽃은 지고 열매 맺기에 바쁜 늦가을에 홀로 피어나는 꽃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 기쁨은 두 배였다. 서늘한 가을 하늘 아래 찬 서리맞으며 피는 꽃이라. 그 모습 또한 범상치 않았다. 왠지 모를 고고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서릿발같은 냉랭함으로 아랫것들을 호령하는 대갓집 안방마님 같기도 했고 눈물을 자박자박 달고 오지 않는 님을 숨어서 기다리는 여인네 같은 처연함도 느껴졌다. 흔히 차나무는 순을 잘라주기 때문에 꽃을 보기가 어렵다. 차밭의 전경은 새끼손톱 만한 찻잎을 오보록이 달고 고랑고랑 초록 물결을 이루는 것이 다였다. 헌데 이렇게 꽃이 피다니,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다.
차나무는 상록관목이다. 잎은 끝이 뾰족한 길둥근모양이고 두꺼우며 둔한 톱니모양을 하고 있다. 찻잎으로 만든 진짜 차는 녹차다. 찻잎을 증기로 찌거나 가마솥에 덖은 후 손바닥으로 비벼서 만든다. 홍차는 녹차가 변질(발효)되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동방에서 배에 싣고 서양으로 가는 동안 푸른 잎이 변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끊이면 붉은색이 우러나와 홍차가 된 것이다. 당시 동방을 오가는 배의 선원들이 비타민c가 부족하여 괴혈병으로 죽어갔는데 녹차를 실은 배의 선원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면 차나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거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수양을 많이 한 어느 도인이 수도 중 깜빡 졸았다. 이 사실을 알고 후회하여 감겨버린 눈꺼풀을 잘라 땅에 버리면서 신께 용서를 빌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신은 잘린 눈꺼풀에서 나무를 자라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차나무이다. 찻잎을 달여 마시면 잠이 깨는 효능이 있으니 아무래도 눈꺼풀을 잃은 도인의 넋이 스며 있는 것이 아닐까. 차나무 꽃잎 하나하나에도 그 의미가 있다. 모두 다섯 장인데 인생을 너무 힘들게도, 너무 티내지도, 너무 복잡하게도, 너무 쉽고 편하게도 그렇다고 어렵게 살지도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녹차 한 잔 마시며 달고 시고 맵고 짜고 때로는 쓴맛 나는 우리네 인생살이의 시름을 달래보는 것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즘에 좋을 것이다.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내를 그리며 차 꽃잎 다섯 장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고여 있는 물 같은 일상을 털고 바람처럼 훌훌 떠나보는 것도 괜찮겠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얼마간 일상이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겠지. 얼마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