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박달재 기슭인 모정리에 텃밭을 일구고 사는 소설가 부부가 있다. 1994년 장편소설 『사람이 아니었어』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임영태씨와 1998년 잡지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한 이서인씨 부부가 그들이다.

복잡하고 바쁜 도시 생활에서 아무런 여유와 가치를 느끼지 못한 이들 부부는 차라리 농촌으로가서 글을 쓰리라 마음먹은 채 모정리를 찾아왔다.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가진 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사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초기에는 도시사람의 면모를 버리지 못해 이웃들에게 경계도 당했다는 이들 부부. 하지만 이제는 제법 농사꾼의 모습이 익숙해지고 저녁나절에는 어슬렁어슬렁 옆집에 마실도 가는 임영태의 모습에서 여유와 행복함이 느껴진다.

「…작가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삶의 향유가 아니라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마음의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들은 어디론가 자신을 버리고 내던졌다가 다시 몸 안으로 품으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작가적 삶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에겐 한없이 정상적이고 편안한 일상의 세계가 그들에겐 줄곧 올바르지 못한 삶의 뒤틀림으로 보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도피적 삶을 위해서일까. 그러나 적어도 도피적 삶은 아니다. 보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보다 더 정신적인 삶의 공유를 위해서임이 분명하다.
굳이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박경리 선생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마 그들이 도시적 삶을 버리고 시골로 간 것은 ‘고통스러운 작가’보다 인간으로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리라.…」
- 중앙일보, 정성욱시인

‘하루 내내 밭에서 올해 첫 씨뿌리기를 했다. 감자·알타리·봄배추·상추·쑥갓·당근·근대 등이다. 씨를 뿌리고 열흘쯤 지나면 크레파스로 점 두어 개 찍어 놓은 것 같은 푸른 싹이 소리 없이 올라와 있다. 이게 그 씨앗인가? 이게 장차 그 열매가 되는가. 정말 신비하다.’

‘해머가 돼지의 정수리에 박히는 소리, 가슴을 후비며 생생하게 찢어지는 길고 긴 비명 소리, 콸콸 쏟아지는 피, 목이 잘려 구렁이 서너 마리 엉킨 듯한 거대한 창자. 나는 이 끔찍한 살육 현장에 동참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우고 있는 개 태인이와 모정이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장에 새끼를 팔러 갔다. 아내는 하루 종일 장에 앉아 새끼 한 마리를 팔았다. 나는 한 마리도 팔지 못했지만 농투성이로 변해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모정리 일기』 중에서>

40년이 넘도록 가게에서 사 먹던 것들을 이제는 직접 가꾸는 농사꾼이 됐다. 올해 집 앞 텃밭 300여평에 참외, 수박, 오이, 땅콩 등 스무 가지 작물을 심었으나 절반도 거두지 못했다. 참외는 구경도 못했고, 수박은 자라다 짓물러 버렸다. 내년에는 가짓수를 대폭 줄여 제대로 길러볼 작정이다. 제법 농사꾼처럼 이러저러한 고민을 하지만 임영태는 진정한 농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자리는 농부가 아닌 소설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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