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김수영의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눈>이라는 작품입니다. 이상이 <날개>같은 뛰어난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시인으로서도 높이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김수영 역시 시 못지않게 뛰어난 산문이 있어 시인으로서도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시적 태도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여줍니다.
김수영은 식민지 시대와 근대화의 과정을 온몸으로 겪은 시인입니다. 그의 시적 여로는 식민성의 이중성, 근대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모든 사물은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민지의 이중성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억압과 근대화입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직접적 억압과 수탈을 받아왔고, 또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근대의 단초를 열었습니다. 근대의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는 ‘속도’가 아닐까 합니다. 근대 이전에는 편지 한 통을 보내기위해서도 누군가 많은 시간을 들여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많은 날들이 흐르고 난 뒤에야 그 편지는 도착할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열차가 등장해서 편지 한 통을 보내는 데에 이틀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근대 이후 우리 역사를 이끌어왔던 사람들은 속도에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식민지 시대에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사람들도 일본 제국주의가 주도한 변화의 속도에 편승한 사람들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미국이 주도하는 변화의 속도에
편승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았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임화는 1930년대에 이미 <네 거리의 순이>를 썼습니다만
분단 이후에도 우리 시단을 이끌어 왔던 사람들은 속도의 개념을 가장 빨리 취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도 양면이 있습니다. 서양의
문화를 전달하는 한 면과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한 면입니다. 김수영은 속도에 아주 민감한 시인이었습니다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경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문화적 제국주의에 잠식당한 당대 지식인의 내면 풍경에 대해 풍자와 야유, 그리고
경멸의 시선을 보낸 것입니다. 그것을 ‘후진성’, ‘치욕의 시대’라는 개념 등으로 신랄하게 비판했지요. 앞의 시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김수영의 설움의식이란 것도 이런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이지요.
김수영은 ‘속도’에 민감한 사람이고, 또 그의 시들이 속도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속도(버스)에
치여 죽었습니다.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속도의 개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시간에는 직선적 시간과 순환적 시간이 있지요.
직선적 시간은 태어나서 자라고 늙고 죽어가는 일직선의 시간입니다. 순환적 시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돌아가듯이 순환하는 시간, 잠자고 일어나고 밥먹고 일하고 다시 잠을 자듯이 그렇게 순환하는 시간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농경 생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순환적 시간의식을 갖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는 시계의 발명,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 자연과학의 발달 등이 직선적 시간관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여기에는 시간을 절약하는 정신, 시간을 계산하는 정신이 들어가 있지요. 이렇게 시간을 관리하다보니 생활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집니다.
더구나 요즘은 정보화 시대,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 않습? src=http://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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