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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2월 27일] 소래 바다는
::: 이 아침의 시
 
소래 바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 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홍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 시집 <푸른빛과 싸우다> 에서
송재학 (1955~ )
경북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기억들』『진흙 얼굴』 외. 김달진문학상 수상.
소래에 간 적이 있다. 동인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또 한참 가면 거기, 버려지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듯 폐선이며 낡은 그물코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오종종 걸어 다니는 협궤가 있다. 열차의 흔적은 일몰의 아련함에서나 추억해볼 수 있는 것, 거기 그렇게 소래 바다가 있다.
시적 질서는 산문이 구축하는 세계와는 다른 문맥을 구성한다. 이 시에서 재현되는 것은 시적 화자의 ‘현재-소래’의 정서적 작용보다는 ‘과거-소래’ 혹은 ‘미래-소래’라고 말할 수 있는 시적 정황들이다. 현재의 감응이 시간의 축에 따라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 시의 특장은 무엇보다도 그 사유의 자유분방함에 있겠다. 그러니까 시인에 의해 구성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남자의 ‘野史’와 그 남자의 추억을 역사로 재구성하는 시인의 빛나는 눈과 만난다. 이 만남에서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배추 살결’ 같이 맑고 잔잔한 기억의 겹주름 같은 것일 텐데, 시인이 은밀하게 보여주는 한 家族史의 단면에서 우리는 집단의 서러움이 ‘젊은 여자’로 상징되는 시적 세계로 편입되어 뿜어내는 풍경을 보게 된다.
현실-환상의 두꺼운 벽 너머, 혹은 이성의 시간 체계 너머 시인이 펼쳐 보여주는 풍경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빛나는 시적 장치들이 어떻게 현실의 남루함을 보듬어주는지를, 시의 넓은 행간이 어떻게 풍경의 내밀한 속살을 간직하는지를 보게 된다.
몇 년을 찾아가지 않은 소래 바다, 이 새벽 불면의 힘겨움을 고요로 간신히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시 한편이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이리라.

12월 '이 아침의 시' 시 소개는 박진성 시인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박진성 시인의 촌평과 더불어 시의 향기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1978년 충남 연기 출생.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2001년 『현대시』등단. 시집『목숨』간행
디카데미 수강생들이 뽑은 11월의 최고 강좌는 베스트 페키지, <철학 BEST OF BEST>로 선정되었다.
이정우 선생님이 선물하는 철학의 나침반, <철학이란 무엇인가>
역사와 사회의 밑바탕을 관류하면서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는 위대한 철학자들에 대한 사유, <서양철학사 탐방>
회화, 조각, 문학, 영화, 사진, 미디어 모두를 아우르는 진중권. 그가 펼치는 폭넓은 ‘미학’의 세계에 푹 빠져보시라! <현대미학-숭고와 시뮬라크르>
한 상에 차려진 세 개의 강좌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한 사랑, 인간 세계에 대한 진정한 이해이다. 이 추운 겨울, 디카데미의 베스트 강좌를 통해 내 지성과 감성의 온도를 1도씩, 2도씩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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