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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08월 02일] 조광제의 철학편지 #1
::: 조광제의 철학편지
세상을 두 번 놀라게 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이론
조광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아시나요?

동성연애자이면서 프로펠러를 맨 처음 설계했고 마지막 죽기 전에 노르웨이의 어느 절벽에 스스로 집을 짓고 살다가 ‘좋았다’(‘Es ist gut.’)라는 말을 남긴 인물, 비트겐슈타인을 아시나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간간히 메모를 해 조그마한 책,『논리 · 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를 출간했더니 그 책을 보고서 인간들이 감탄한 나머지 이른바 ‘비엔나 학파’라고 하는 일단의 학자 집단을 형성하게 만든 인물, 비트겐슈타인을 아시나요?
철학을 다 했다고 아예 철학을 버리고 병원 짐꾼으로 일하기도 하다가 갑자기 철학을 아직 다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서 다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를 출간했더니 이제는 아예 인간들이 기겁을 하면서 감탄한 나머지 ‘일상언어학파’라고 하는 일단의 학자 집단을 형성하게 만든 인물, 비트겐슈타인을 아시나요?
실컷 머리 아픈 세미나를 하고 나면 영화관 맨 앞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곤 했던 인물, 비트겐슈타인을 아시나요?

모르면 어때? 맞습니다. 사실은 몰라도 어쩌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면 또 어떻습니까? ‘노느니 코 푼다’는 말도 있듯이, 알면 그만큼 머리가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아, 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서울 인사동에 있는 만든 지 5년 반쯤 된 철학 전문 시민학교 <철학아카데미>에서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철학 강의를 하는 조광제입니다. 아무튼 오늘은 ‘아시나요?’의 첫 주인공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이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를 하나 전하면서, 그 이야기에 대한 사족을 달아볼까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동물들은 정신적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동물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것들은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말하지 않을 뿐이다. 또는 더 잘 표현하자면: 그것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 우리가 가장 원초적인 언어 형식들을 도외시한다면. ― 명령하기, 물음을 묻기, 이야기하기, 잡담하기는 걷기, 먹기, 마시기, 놀기처럼 우리의 자연사(自然史)에 속한다.(『철학적 탐구』, 이영철 옮김, 서광사, 2002, 6쇄, 33쪽 25절)

철학 공부를 한 30년 쯤 하고 보니 제 나름대로는 말 좀 하는 편입니다. 지금처럼 말이죠.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나더러 ‘네가 정신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지라 그냥 본래부터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의 말과 행동의 배후에 정신능력이 있어서 그것들을 통제하고 조절한다는 생각을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사(natural history)에 속한다는 것이 바로 그 뜻입니다. 동물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하지 않는 것이듯이, 우리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말로 바꾸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하는 것이라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맞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생각한다는 것은 곧 말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말이 없으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말한다는 것은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생각 역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어쩔 거나? 생각을 이렇게 말로 바꾸어버리니 생각한다고 제법 폼을 잡고 살아온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그냥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라고, 아니 말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그런 점에서 다른 동물들과 차이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참 편합니다.

요즈음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 유행인데요. 그 참 뜻은 서로 다른 것들은 그냥 서로 다를 뿐이지 그 다름 때문에 지배/피지배에 의한 차별을 일삼아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오늘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시 쓰기를 좋아한다면, 나는 본래 시 쓰기를 좋아할 뿐이다 하고 생각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조광제 올림.

총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E. 후설의 발생적 지각론에 관한 고찰」로 석사 학위를, 「현상학적 신체론: E. 후설에서 M. 메를로-퐁티에로의 길」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전문 시민학교 <철학아카데미>를 설립한 뒤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건국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몸 철학, 예술 철학, 매체 철학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몸의 세계, 세계의 몸』, 『주름진 작은 몸들로 된 몸』, 『조광제의 철학 유혹: 존재 이야기』, 『쉬르필로소피아: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 등이 있다.
과연 베스트들이다. 모아놓으니 또 다시 베스트다. 디지털문화예술아카데미 철학 강좌의 절대 지존 <철학이란 무엇인가>, <서양철학사 탐방>, <현대미학-숭고와 시뮬라크르> 세 강좌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패키지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요인은 베스트 강좌들을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 강좌가 가진 각각의 분명한 색깔이 잘 조화되었기 때문!
이정우 교수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철학 기초 과정이고, 조광제 교수의 <서양철학사 탐방>은 서양철학사의 핵심적인 대목, 주요 철학자와 철학사상을 죽 훑어보는 과정이다. 진중권 교수의 <현대미학-숭고와 시뮬라크르>에 오면 현대로 시선을 돌려 현대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주요 미학 이론을 다루게 된다. 이 세 강좌를 차례대로 본다면, 철학한다는 것의 참맛은 무엇인지, 철학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철학자들은 누구며 어떤 사상을 펼쳤는지, 현대 예술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은 무엇인지, 대강의 큰 흐름은 충분히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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