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에 대해 사유하라

"이 책의 필요성은 오늘날 사랑의 담론이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담론은 아마도 수많은 주체들에 의해 말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주변의 언어들로부터 버림받았다. 또는 무시되고 헐뜯어지고, 웃음거리가 되어왔다."

이 인용문은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 첫머리에 기입해 놓은 글이다. 그의 책이 출판된 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 같다(풍요 속의 빈곤!). 사랑 담론이 외로운 처지에 놓였을진대 하물며 죽음 담론의 사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대인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테마를 방기하고 있다.

세세한 모든 담론들이 이곳으로 수렴되어 이들 테마에 대한 논의가 풍성해져야 할 터인데, 상황은 그와는 반대이다. 의미 연관을 잃은 지엽적인 문제들만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성인들조차 전문가가 되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문제에 고민을 쏟을 여유가 없다. 하지만 이런 “궁핍한 시대”일수록 사랑과 죽음에 관한 사유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멜랑콜리라는 ‘결정체’

필자의 『멜랑콜리미학: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문학동네, 2010)은 예술을 삶의 폭넓은 지평, 즉 사랑과 죽음의 지평 속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자세하고 세부적인 관찰보다는 예술이 삶의 어떤 국면들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사랑하다 죽는 우리들 삶 속에서 예술의 의미를 발굴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발굴 과정에서 ‘멜랑콜리’라는 빛나는 결정체를 얻었다. 아직 충분히 갈고 다듬지 못한 개념이지만, 이 개념이 서양 예술을 특징짓는 결정체라는 확신을 얻었다.

본 강연은 이 책의 ‘제 1부 사랑의 면류관’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부의 주요 테마는 사랑이다. 그리고 서양의 사랑 담론에서 뼈대를 이루고 있는 소위, “플라토닉 러브”를 주로 다룬다. 플라톤의『향연』이란 책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플라토닉 러브는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지고지순한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동성애적 에로스이고 궁극적으로 불멸에의 욕망이다. 『향연』에는 총 6가지 사랑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멜랑콜리미학』에서 이 내용에 직접적으로 해당하는 소제목은 선물(파이드로스), 젊음(아가톤), 육체(파우사니아스), 잃어버린 반쪽(에릭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불멸의 사랑(디오티마)이다. 앞의 다섯 가지 사랑이야기는 마지막 디오티마의 이야기로 수렴되고 요약된다

사랑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본 강연의 일차적인 목표는 플라토닉 러브의 본질을 소개하면서 서양의 사랑 담론을 요약하는 데 있다.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의 요체는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불멸을 동경하는 자기사랑’이다. 신적인 것(신격화된 사랑의 대상)에 대한 광기어린 열정을 빙자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친 사랑의 독백이라는 점(나르시시즘), 바로 그것이 플라토닉러브의 요체다. 더 나아가 이것이 바로 서양 사랑담론의 한계지점이다.

고대의 플라톤에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프로이트,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랑담론은 자기-중심적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사랑과 예술이 어떤 연관 속에서 하나로 엮이는지를 간략히 보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본 강연은 예술과 사랑의 본질적인 연관 관계를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바탕으로 풀어 볼 예정이며, 동시에 서양의 사랑 담론 저변에 나르시시즘이 놓여 있음을 보임으로써 그것의 한계를 밝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