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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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술과의 첫 입맞춤. 그 짜릿하고 씁쓰레한 액체는 내 혀를 덮쳐와 목젖을 흔들어놓고, 내 심장을 주무르고, 나의 온몸을 뜨겁게 긁어댄다. 그 날카롭고 지독한 향에 이내 나의 정신마저 휘둘리고 만다. 그러나 그 씁쓸함을 이겨낸 뒤의 여운은 달콤하다. 향긋한 색으로 몽롱하게 물든 세상은 싱그럽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봄 마냥 온화하다. 인문학은 그렇게 나에게 쓰디쓴 맛으로 밀려와 향긋한 여운으로 남겨지는 술이다. 낯선 첫 만남, 힘겹고 외로운 긴 싸움, 그리고 어느 순간 번뜩이는 깨달음. 코끝에 남겨지는 알싸한 술기운만큼이나 짙은 흔적을 나의 뇌리에 남기는 인문학은 봄빛으로 물든 새 세상을 펼쳐놓은 채, 이내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인문학은 술이다.

▷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트앤스터디를 어떻게 알게 되었나?
인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일부러 관심을 두겠다고 해서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미술,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정말 우연히 자연스럽게 인문학이라는 범주 속으로 흘러들어온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여태까지의 나의 삶 자체가 알게 모르게 인문학이라는 분야와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것 같기도. 아트앤스터디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가, 마치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다.

▷ 무슨 일들을 해왔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뜬금없이 전혀 관련없는 회사에서 2년 반을 일도 해봤다. 지겨운 회사생활이었지만, 덕분에 물질을 쌓는 삶보다는 지식과 여유를 채워가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미술, 음악, 철학 등 골고루 관심이 많다.

▷ 인문숲 리뷰어 활동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고, 실제로 해보니 어떤가?
딱히 기대라기보다 그냥 '리뷰어'라는 자격이 생겨서 설레었다. 처음에는 리뷰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는데 이젠 나만의 리뷰 요령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도 생겼다.

▷ 듣고 있는 강좌 외에 관심 있는 강좌는? 혹은 이미 수강한 강좌가 있는지?
최근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정윤수 선생님의 <클래식, 시대를 듣다> 강좌를 듣고 싶다. '독설가'로서가 아닌 '미학자'로서 진중권님을 매우 좋아해서, 진중권님 강좌는 모두 들었다.

▷ 인문학 강좌가 실제 삶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사고방식도 유연해졌다.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이제는 더 깊이 더 자세히 바라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사람들과의 어떤 논쟁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웃음)

▷ 내가 느낀 아트앤스터디, 그리고 내가 바라는 아트앤스터디는?
자주 못 가더라도 언제든 갈 때면 편안하고 친근한 고향 같다. 변함없이 늘 지금처럼!

어느 술자리에서 오랫동안 잠적하고 있다가 최근 '아리랑'이라는 영화로 이슈가 된 김기덕 감독 이야기가 나왔다. 우선, 한국에서 김기덕이라는 감독의 위치는 매우 특이하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찍는 감독임에도(적어도 내 생각에는) 한국에서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해외, 특히 유럽 지역에서 인정을 받는 감독이다. 한국에서는 영화의 적나라함이나 자극성 때문에 일부러 인정을 안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한국에서도 그나마 인정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 영화제에서의 수상 '쾌거'를 거두고서야 국내 관객들이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황당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인터뷰에서 김기덕 감독이 말했다. '사실 관객들이 좋아하는 상업영화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외면하는 한국을 일부러 조롱하려 한 걸까?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에 무척이나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에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걸까? '세계 문학'을 주제로 시작된 오늘 수업을 듣다가 떠오른 나의 생각이었다. '세계적'이라는 표현의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의 의식을 되새겨보며, '징후적 독해'를 시도해보려 한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았다. 김 감독의 영화는 국내 영화계와 정부에 대해 적나라한 비판을 담았기에 국내에 개봉될지조차 미지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칸 영화제 수상까지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기사의 마지막 문구가 나의 표적이 되었다.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도 상당하다.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바 있는 김기덕 감독은 이미 세계 영화제가 인정하는 한국의 거장이자 스타 감독이다." 세계 영화제? '세계'라는 수식어에는 과연 어느 나라가 속할 수 있을까? 국내 반응과 상관없이, 김기덕 감독은 '유럽에서 인정받았으므로' 한국의 거장이자 스타 감독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국내에서는 외면받더라도 유럽에서 인정받으면 됐다는 위로일까? 징후적 독해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말 한마디조차도 알고 보면 뿌리 깊은 사대주의에 젖은 무서운 독약임을 깨닫게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라는 말, 그것은 한국적인 것을 찾기도 전에 세계적인 것부터 우선 강조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성급함이었다. 김기덕 감독이 했던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 영화가 잔인한 것은 내가 돌려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토록 비난했던 영화의 그 모든 잔인함과 적나라함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놓고 우리 스스로 외면하고 싶었던 감춰둔 진실일지도.

보편성과 특수성, 시대적 편재성, 이데올로기, 헤게모니, 포스트모던 등등. 수많은 단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할 즈음, 바르톡(1881-1945)의 현악 사중주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흔히 듣던 클래식 음악과는 확실히 다르다. 조화롭고 매끄러운 '보통'의 클래식과 달리, 뭔가 어긋난 듯 어색한 듯 불편한 듯한 악기들의 조합이 단숨에 '현대 음악'임을 알 수가 있다. 그 '불편한 화음'이 지속하다가 중간에 갑작스레 '편안한 화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지점이 바로 하이라이트였다. 침투, 개입, 해체 그리고 이어지는 확장과 역전. 익숙함 속 낯섦과 낯섦 속 익숙함이 동의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익숙함이 '고정관념' '선입견'이 될 가능성, 그리고 낯섦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은 무심하게(con indifferenza), 점점 느리게(rallentando) 드러나야 한다. 발상의 전환, 깨달음의 순간은 그렇게 문득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는 왜 그토록 예술을 찬양했을까. 고통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 유일한 구원을 예술이라고 했던 쇼펜하우어 철학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인 '존재'가 위장되지 않은 채 드러나는 탁월한 영역을 예술이라고 본 하이데거. 도구적 이성에 의해 억압받는 현대 사회는 예술이 그 진리로써 일깨워준다고 주장했던 아도르노. 바르톡의 현악 사중주를 듣는 순간 깨달았던 건 그 많은 철학자가 진리이자 구원으로 여겼던 예술의 위대함이었다. 그 어떤 말보다 더 강렬했던 건 단 몇 마디의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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