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풍부한 사유 - 동양철학
'철학'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고 우리는 서양 철학자를 떠올리기 쉽다.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이 유명한 학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묵자, 한비자와 같은 동양의 사상가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고 일컬어지는 '철학'. 우리의 관념 속에서 이 단어는 서양학자들이 선점해버린 듯하다. 그러나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개한 풍부한 사유의 장을 잠깐만 들여다보면, 서양철학이 대신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철학≒서양사상’처럼 인식된 관념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활발한 토론문화를 철학이 만개할 수 있었던 좋은 여건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의 제자백가를 떠올려 보라.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며 사상을 펼치고, 논쟁을 벌였다. 이 거대한 담론의 장에서 싹틔운 사상들은 인류의 지성사에서 보기 드문 방대함을 과시한다. 서구의 사상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동양철학의 진면목은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탁상공론은 싫다! 현실의 사상을 연구했던 제자백가
전국시대, 온갖 사상을 꽃피운 제자백가는 대부분 선비 층에 속해 있었다. 선비 계층의 사람들은 통치할 영토를 갖지 못했는데, 따라서 특정 지역에 귀속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기회를 찾아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고, 이 같은 여건 속에서 현실 참여적인 사상들이 무르익어 갔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유가(儒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도가(道家) 등의 다양한 유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소설이 바로 삼국지(三國志), 수호지(水湖志), 서유기(西遊記)이다. 삼국지를 읽어보면 지략가로 유명한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정치와 병법 외에도 자연지물, 농업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그려진다. 삼국지는 비록 역사적 사실만을 서술한 작품은 아니지만, 제갈공명의 모습은 현실참여적인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아나키스트였던 양주(楊朱)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것은 진나라였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진나라의 통일에 사상적 기여를 한 것은 한비(韓非)로 대표되는 법가였다. 법가는 인간의 이기성을 전제하고 적절한 당근과 채찍으로 인간 행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대 이러한 사상에 반기를 든 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양주(楊朱, BC440?~BC 360?)이다. 양주의 철학은 '긍정의 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주의 철학에 따르면 삶 자체가 목적이면서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양주의 철학에 따르는 삶은 국가를 통치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껄끄러운 것이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 무언가 희생을 바라는데, 양주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주의 사상은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바로 오늘날의 보편적인 관념과 닮아있다. 당시의 양주는 '이기주의자'로 매도되었는데, 유명한 맹자(孟子)도 양주를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 양주의 해석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는 개인을 억압하는 집단의 모습을 간파하였으며, 그런 점에서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
이 강좌에서는 언급한 양주를 비롯해, 제자백가 중 혁명적인 사상을 전개했던 7인을 소개한다. 동서양철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해 온 강신주 교수는 동양철학의 진면목을 보여줄 더없이 적합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왜 묵자는 공자를 비판했는가?
묵자의 겸애설이 가진 내적 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