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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는 간단하다 / 이만교(소설가)

[1]
‘글쓰기 공작소’ 강의를 처음 시작한 것이 2006년 1월이니까, 꼬박 10년을 진행해 왔다. 그 동안 다녀간 수강생의 숫자만도 어림잡아 오륙백 명이 넘는다. 대부분 자신이 공들여 쓴 글을 내게 보여주었고, 나는 매번 꼼꼼히 읽고 체크했다. 이렇게 읽은 작품 수만도 이제 천여 편이 훌쩍 넘는다.

나는 수강생 작품을 매번 정독했다.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수강생들 습작품을 허투루 읽지 않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맑은 정신으로 정성을 다한 만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들 습작품을, 어쩌면 글쓴이 자신보다도 더 꼼꼼히 살펴본 시간들일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나, ‘시민들’이라고 생각할 때면, 내 마음속에는 여기에 상응하는 개념으로서 글쓰기 공작소에 참여했던 오륙백 명의 면면이 떠오른다. 나로 하여금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 것도 이들의 면면이고, 섣부른 낭만이나 환상을 경계하게 만드는 것도 이들의 면면이다.


[2]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언치’다. 대부분의 음치가 그렇듯이, 언치는 자기가 언치인 줄 모른다. 심지어 제법 쓴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오륙백 명 중에, - 그중에는 국문과나 문창과를 졸업한 학생들도 있지만 -, 내게 처음 보여준 글이 그런대로 읽을 만했던 경우는 두셋뿐이었다. 그나마 다른 데서 이미 오랜 시간 습작과 합평을 받은 경우다.

사실 우리가 평소 구사하는 언어와 생각 중에 정말로 쓸 만한 언어와 생각은 많지 않다. 대부분 자신과 친한 사람이나 들어줄 만한 푸념이나 하소연에 불과하다. 생각해 보면 슬픈 일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 쓸모없는 물건을 선물하면 몹시 불쾌하게 여길 거면서, 정작 자신은 남들이 들어보면 별 쓸모없는 언어와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게 있어 읽기 쓰기는 별난 공부나 취향이 아니다. ‘읽기’란 보다 좋은 생각을 갖는 노력이고, ‘쓰기’란 다른 사람도 공감할 만한 생각을 골라내는 과정이다.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면 같은 사건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가령, 담배 끊기가 어려울 때, “금연은 첫사랑 잊는 만큼이나 어려워.” 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금연은 무척 쉬워. 나는 벌써 열일곱 번이나 끊었지!”라고 유머러스하게 너스레를 떨 수도 있다.

또 가령 피곤할 때는, “피곤해서 죽겠어.”라고 습관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피곤해서 쉬고 싶어.”라고 담담한 표현을 고를 수도 있다. “요즘은 피곤하니까 잠이 무척 깊고 달아.”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심지어 이상처럼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곤할 때면 정신은 은화처럼 맑소.” 라는 역설적 표현도 가능하다.

언제나 더 나은 생각, 더 매력적인 문장, 더 빼어난 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읽기 쓰기 공부를 하다 보면 지금까지 해오던 수다나 푸념 따위를 더는 하지 못한다.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상투적으로 통속적으로 떠들어대는 것만큼 지루하고 한심한 일도 없으니까.


[3]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착종된 언어들이 횡행하고 있다. 가령, 지난 대선 때 국가 기관들이 암암리에 개입했지만, 별다른 사과도 재발 방지 약속도 하지 않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이것을 문제삼자 도리어 ‘종북’으로 몰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두고 어느 일간지에서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보도했다.

“트윗으로 증폭된 정권 정통성 시비, 안보로 정면 돌파”
(2013년 11월 26일 세계일보)

얼핏 보면 사실대로 보도한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조직적 관권 개입으로 드러난 부정 선거에 대한 국민적 저항, 종북으로 몰아가기”

두 문장을 비교해보면, 전혀 다른 사건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한두 단어를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단어를 기자 마음대로 바꿔 사용하면, 과연 독자가 기사를 통해 제대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까.


이러한 언어 착종은 그러나 개인적으로도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진다. 가령 ‘집중’과 ‘집착’은 다르다. ‘투정’과 ‘짜증’과 ‘분노’는 서로 다르다. ‘조심스러운 것’과 ‘겁먹는 것’은 다르다. ‘게으른 것’과 ‘여유로운 것’은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단어를 아무렇게나 섞어 쓴다. 집착을 집중으로 착각하고, 게으름을 여유로 착각하고, 투정 부리는 정도에서 그쳐도 좋을 때에 짜증을 낸다.

나는 한 사회의 언어 착종은 그 구성원들 개개인의 언어 착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공자도 정치란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로잡는 시작은 우리 개개인이 언어를 보다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일에서부터 가능하다.

읽기 쓰기란 이러한 의식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자 첫 단추다. 읽기란 더 매력적인 생각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걸 배우고, 쓰기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생각들을 찾아나가는 설레는 작업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라는 질문과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구체적인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은 같다. 자기가 하는 생각보다 더 나은 생각, 자기가 하는 상상보다 더 나은 상상이 들어 있는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생각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생각, 다른 사람들도 공감해줄 생각, 그것을 찾아 쓰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선행해야 하는 일은 단 한 가지다. 이것은 내가 십 년 동안 ‘글쓰기 공작소’를 진행하며 배운 가장 지혜로운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즉, 더 나은 생각을 찾아 침묵하거나, 더 나은 생각을 찾아 책을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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