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년도 : 2008년 | 일반화질
  • 지원사항 :
소설의 미로
: 이야기 혹은 화이트 노이즈
'화이트 노이즈'란 쉽게 말하자면, 전화가 혼선됐을 때처럼 수화기 가까이서 들려오지만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을 소설 텍스트에 접목함으로써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도출해내는 것이 강의의 목표다. 전형화된 읽기 방식과 해석을 가급적 배제한 채, 텍스트 안에서의 단어, 구절들을 음미해 봄으로써 독자만의 새로운 해석 방식을 모색한다.
    • 수강료
    • 강좌구성
    • 적립금
    • 강좌교재
    • 수강기간
    • 49,000원
    • 총  18강  |  37교시  |   18시간 28분
    • 적립5% : 최대2,450 원   
    • 강의록 제공  
    • 6개월
  • 강사 : 김진영
구플레이어 일반화질 음성
  • 회 차
  • 제 목
  • 시 간
  • 보 기
  • 강별구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래’로 시작되는 소설 속으로의 흥미로운 여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해해 가는 것이 이 강좌의 핵심이다. <소설의 미로 이야기 혹은 화이트 노이즈>는 '화이트 노이즈'라는 개념을 소설 텍스트에 접목시켜 새로운 읽기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화이트 노이즈'란 쉽게 말하자면, 전화가 혼선됐을 때처럼 수화기 가까이서 들려오지만 정확히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화이트 노이즈'라는 개념을 소설 텍스트에 접목시킴으로써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도출해 있는 것이다.
전형화된 읽기 방식과 그간의 철학적, 정신분석학적 혹은 역사학적인 문헌을 통한 해석을 가급적 배제한 채, 텍스트 안에서의 단어, 구절들을 음미해 봄으로써 독자만의 새로운 해석 방식을 모색한다.

예술의 탄생은 사이렌의 노래였다!

 

안개 속에서 환상적인 노래로 배들을 유혹하여 가라앉힌다는 ‘사이렌의 노래’는 사실 소설의 탄생 배경이 된다. 호머(Homeros)의「오디세이아Odysseia」와 카프카의 단편「사이렌의 침묵Das schweigen der sirenen」에 나타난 ‘사이렌의 노래’를 통과한 두 소설 속의 주인공 ‘오디세이’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은 ‘예술의 종말’과 ‘탄생’이라는 대립적인 결과물을 낳았다. 일명 ‘호머 버전’과 ‘카프카 버전’의 ‘사이렌의 노래’가 그것. 이제 소설 속으로의 행복하고도 복잡한 미로 게임에 참여해보자.

 


호머 VS 카프카

 

인류 최초의 서서문학인 호머의「오디세이아」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성적 해석’과 호머의 ‘사이렌의 에피소데’를 변주한 카프카의「사이렌의 침묵」에 대한 블랑쇼의 ‘자연과 인간의 이중적 언어’에 대한 해석단순히 철학적이고 역사학적인 해석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아도르노의 ‘이성적 해석’ 방법‘호머 버전’에 도입한 것은 호머의 네거티브 버전에 담긴 사이렌의 노래 가사 때문이었고, ‘카프카 버전’에 대한 블랑쇼의 해석은 카프카가 묘사한 오디세이아의 행동 때문이었다. 

 

 

오디세이아는 사이렌을 통과했다!

어떻게?

호머 버전: 사이렌의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가 내 노래를 듣게 되면 너는 더 많은 것을 알고 행복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사이렌의 이러한 유혹에 ‘호머 버전’의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몸을 묶고 귀를 열고는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카프카 버전: “사이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귀에 밀랍을 틀어막고 돛대에 자신을 단단히 묶”게 함으로써 ‘사이렌의 노래’를 무사히 통과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또 한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카프카는 오디세우스가 귀를 틀어막았기 때문에 사이렌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아니라, 사이렌이 아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사이렌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디세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는 것이다.

 

왜?

호머 버전: 오디세우스는 귀를 막지 않고 몸을 묶었을까? 우리는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이렌의 노래는 천상의, 자연의 노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이라면 이성을 잃고 자연으로 뛰어 들고픈 욕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에 사이렌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내 노래를 들으면 너를 고향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바로 이 구절, 즉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신화적 존재이면서 자연 그 자체인 사이렌이 말하는 고향은 오디세우스가 생각하는 고향하고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디세우스가 생각하는 고향은 아내와 자식이 있는 집과 자신 땅과 사유재산이 있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곳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지향하는 이성적인, 더 나아가 물질적인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렌이 데려다 주겠다는 대지의 자연, 낙원의 자연에 오디세우스는 몸을 묶는 것이다. 그곳은 갈 수 없는 곳, 그리고 꼭 가고 싶지는 않는 곳이라는 것이다. 반면 사이렌의 노래는 지상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귀를 열어 놓는 것이다.

카프카 버전: 오디세우스는 왜 귀를 막은 척 한 것일까? 사이렌의 노래는 무엇이든 다 뚫고 들어가고 무엇이든지 다 깨뜨려버리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를 묶고 그랬다고 해서 호머버전에서처럼 그냥 통과할 수는 없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카프카 버전’의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보다 무서운 ‘사이렌의 침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도르노의 ‘가짜’ 예술의 탄생 vs 블랑쇼의 상상적 노래
아도르노는 호머의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를 통과한 것을 기점으로 진짜 예술(사이렌의 노래)는 죽었고 대신 가짜 예술(오디세우스의 이성의 승리)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합리성이 자연의 본래적 예술성을 저버리고 예술은 이제 가상의 것으로 변모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블랑쇼는 카프카의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노래를 통과한 것을 상상적인 노래가 탄생했다고 보았다. 즉, 소설의 상상적 측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두 사상가의 입장은 상반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무엇인가의 ‘탄생’이라는 같은 결론이 나왔다. 아도르노가 비록 ‘가짜 예술’이라고는 했지만, 인간적인 예술, 문명화된 예술이 태어난 것이다.

    

 

화이트 노이즈란 무엇인가?

화이트 노이즈는 실제로 내용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는데 들리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서의 화이트노이즈는 무엇일까? 바로 ‘건너가기’이다. 카프카나 블랑쇼가 말하는 ‘상상적인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멀리서 들려오지만 사이렌의 침묵처럼 가까이 있는 바로 그것. 듣지 않으려 해도 내면에 조용히,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고도 확고하게 들려오는 소리. 소설 속의 어떤 텍스트가 자꾸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작가의 의도나 장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그 텍스트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새롭게 읽기 혹은 새롭게 쓰기. 그것이 바로 소설속의 화이트 노이즈이다.

 

제4강 화이트 노이즈_상상적 노래의 탄생중에서

제9강 먹기와 음악의 관계중에서

제16강 소설의 3가지 언어: 경험, 상상, 상징중에서
 
- 참고문헌
『계몽의 변증법』
『미래의 책』
『오디세이아』
『사이렌의 침묵』F. 카프카
『단식광대』F. 카프카
『어느 개의 연구』F. 카프카
『요세피네, 여가수 또는 서씨족(鼠氏族)』F. 카프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
『마담 보봐리』G. 플로베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푸르스트
『향수』파트리크 쥐스킨트
『제49호 품목의 경매』토마스 핀천
김진영 (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아왔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하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 저서
『사랑의 기억』(한길사, 2021)
『상처로 숨 쉬는 법: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한겨레출판, 2021)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여덟 가지 키워드로 고전을 읽다』(메멘토, 2019)
『이별의 푸가』(한겨레출판, 2019)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포스트카드, 2019)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 2018)
- 역서
『애도 일기』(롤랑바르트, 이순, 2012)
 
  • 번 호
  • 제 목
  • 작성자
우수 생각한다는 것 강*연
다른 문학 강좌를 들으면서 실망을 할 때가 많아요. 이유는 기존에 출판된 연구서적이나 논문에 대한 열거만 한다는 점입니다. 선생님의 특별한 사유나 관점이 없어서 강의를 들을 시간에 차라리 책 한자 더 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영 선생님 문학 강의는 굉장히 독특했어요. 훌륭한 강의다, 뭐 이런게 아니라 되게 특별한 점이 있어요. 선생님이 가진 인문학적 소양으로 독자적인 해석을 하시니까요.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근거 없는 논리는 아니니까요.
이 강의가 좋은 것은 선생님 해석도 좋긴 하지만, 강의를 듣는 사람도 텍스트에 대해 기존의 것을 뛰어넘게 하도록 도와준다는 겁니다. 텍스트를 새로 보게 되요. 저는 아직도 1강에서 들었던 세이렌의 노래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이 매미처럼 머리에 붙어서 울어대는 것만 같아요. 문학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말에 적절한 강의네요.




우수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 변*영
발터 벤야민에 관한 김진영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또 다른 김진영 교수님의 강의를 신청하였습니다.. 소설적 미로에 관한 이야기는 문학에 관한 담론뿐 만 아니라 그 속에 신화와 철학적 사고가 융해되어 있어 이런 것이 정말 인문학 강의구나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강의입니다.. 김진영 교수님, 앞으로도 인문학 분야에서 깊고 넓은 다양한 주제로 강의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수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이*원
오래전에 읽었고 익히 알고있다고 여겼던 클래식 문학작품들을 새롭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나 봐요.
선생님 개인의 독서 경험을 얘기하신다고 했는데
그것을 들으며 저는 제 나름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느린 편이라 2배속으로 듣는데요
강의록이 녹취록 형식인 점도 마음에 듭니다.
아주 가끔씩 잘못 받아쓴 부분도 있지만
(예를 들면 '에피스테메'를 '엑기스 때문에'라고 한다든지)
정말 가끔이고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닙니다.
이 정도 문학 강의라면 얼마든지 더 듣고 싶네요.
재미있어서 단숨에 몇 강씩 듣게 되네요.
13 잘들었습니다. 또 들으려합니다~ 김*옥
12 나름 재밌긴한데요 김*한
11 반드시 들어야 할 강의 김*수
10 나만의 읽기 방식을 배우다 임*희
9 김진영 선생님 강의의 시초 l**eforever
8 세이렌의 노래 권*주
7 오디세이아 옮긴이와 출판사가 궁금해요 권*정
6 신기하게 다가온 책읽기 ^^ 정*선
5 소설을 읽은 후 강의 듣는 재미 김*경
4 화이트 노이즈 박*연
3 <소설의 미로..>강의록에 대하여 답변드립니다. 관*자
2 좋은 강의, 엉성한 강의록 전*홍
1 이상과 현실, 욕망의 가까움과 멈 김*아
첫페이지 입니다    1    끝페이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