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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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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 샘 트위터 |
오*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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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임근준 샘 트위터 보면 까칠해 보이기도 하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강의는 재미있네요.
독특한 시선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분명하게 표현하셔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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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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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
김*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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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 선생님 굉장히 글 꾸준히 찾아서 보다가 책도 산 사람입니다.
현대예술에 대한 흐름을 파악함과 동시에
예술을 보고 비판적 접근할 수 있게 또 안목도 쌓을 수 있게 해 주는 강의 같아요.
추천합니다. 선생님 강의 또 하시면 오프라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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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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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닉 강의 |
이*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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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작가들에 대한 개론이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임근준 교수님의 태도는 시닉하시네요. 사진에서 보이는 따스함보다는 좀... 하나의 스타일로 보고 현대 미술에서 작가와 주제에 대한 소개 차원에서 듣기에는 괜찮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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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반가운 강좌 ~ |
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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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전까지의 미술사는 여러곳에서 들을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현대미술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강의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런 강좌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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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현대미술과 친해진 수업 |
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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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난해한 현대미술때문에 늘 뮤지움에 가면 지루하고 기가 죽었는데 아주 적절한 예와 참고 사진을 통해 조금의 이해를 갖게되어서 정말 감사 합니다 . 목소리와 발음이 워낙 좋으셔서 지루하지 않고 유쾌한 수업 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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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클리어 |
조*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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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현대미술> 시리즈 연달아 들었습니다.
명쾌한 설명과 풍부한 시각자료가 있어 이해가 쉽고요.
독립연구자로서의 성실함과 특유의 시선과 시의적 발언, 정보공유등 선생님께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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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컬 모멘트 |
최*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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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는 폭넓을지언정
행위는 적확해야한다는거지요.
강의 당시에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였는데
현 시점엔 촛불민중 혁명으로
좀 더 손쉬운 환경을 만들어 낸 듯 합니다
그래도 운수대통.
득이나 볼려는 마인드가
팽배해진다면 아무변화도 없겠지요.
박정희 동상을 빚어낸 기술자에
안녕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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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질문이 여기 있다 |
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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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 이라는 난감함에 ‘두 도사’가 대처하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질문이 여기 있다. 인간의 문명이 제 아무리 최첨단을 이룩하고 자연과학이 경이로운 수준으로 발달해도,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 인간이 절대 가늠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제.
과연 존재한다는 것은 뭘까? 철학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다가 자의식이 생겨난 순간부터 이 문제에 골몰해왔다. 나는 왜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가. 나는 왜 계속 ‘같은 존재’이다가 시간이 쌓여 가면 ‘다른 존재’로 변모하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뭔가? 지금 또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지금’이라는 건 적확한 때에 말해질 수 없다. 이미 ‘그 지금’은 과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강좌 ‘일상의 고고학’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질문에 천착한 두 명의 ‘도사’가 소개되었다.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가는 로만 오팔카
1931년생 폴란드인 로만 오팔카는 평생에 걸쳐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큰 캔버스 위에 “1, 2, 3, 4...”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 그가 평생을 바친 작업의 골격이다. 제목은 <오팔카 1965/1-∞>. 젊은 시절 그의 목표치는 7,777,777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단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큰 숫자를 다 적고 난 다음 세상을 떠나게 될지가 문제는 아닐 거다. 문제는 목표한 숫자에 도달하는 작업의 ‘완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애초부터 로만 오팔카에겐 처음 그려넣은 1과 비교적 최근에 그렸을 5,672,101과 목표치 7,777,777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시간을 물질로 담아낼 수 있을까? 그는 이 ‘특별한 차원’을 숫자로 시각화했다. 숫자라는 ‘추상적인’ 기호가 ‘더 추상적인’ 시간을 눈에 보이는 흐름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입으로 숫자를 읊으면서 발을 조금씩 옆으로 이동해가며 앞의 숫자에 1씩을 더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그는 숫자를 읊었고, 그 음성을 카세트에 녹음했다. ‘시간’에 풍덩 빠진 ‘존재’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 작업의 일부로 제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한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입어온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촬영한다. 숫자가 500만을 넘어섰고, 사진 속 작가의 머리는 허얘지고, 주름은 늘었다. 늘어나는 숫자와 로만 오팔카란 존재, 그리고 늙는다는 것. 그는 같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 된 걸까.
그의 작업에서 변모하는 것이 숫자와 작가의 머리 색깔뿐인 건 아니다. 검정색, 회색 캔버스에 흰 붓질을 했던 그는 작품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캔버스에 흰색 1% 를 첨가해 배경의 톤을 밝히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명하게 드러났던 흰 숫자들은 캔버스가 하얘지자, 행적이 묘연해진다. 셔츠도 희고, 머리도 이제 희었고, 흰 캔버스에 흰 숫자들이라. 로만 오팔카는 모든 것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상태를 꿈꾸는 걸까. 아니라면 ’시간‘이라는 것의 생리가 원래 그런 것일까.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백색의 배경에 백색의 대단위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일은 집중력을 요하는 ‘헛일’”이라며 그가 “무의미한 행위에 인생을 바침으로써 의미 있는 작가가 되는 과정은 흥미롭다”고 말한다. 로만 오팔카는 왜 이런 ‘헛일’을 평생 업으로 삼은 것일까? 그의 힌트는 이렇다.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밋밋하고 의미 없을지도.”
나와 너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온 카와라
로만 오팔카가 보편적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면, 일본인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는 좀 더 ‘존재’에 대한 특수성을 갈구하는 듯하다. 그의 작업 <I WENT>(나는 -에 갔다), <I GOT UP>(나는 -시에 일어났다), <I MET>(나는 -를 만났다), <I'M STILL ALIVE>(나는 여전히 살아있다)의 제목만 보아도 그 자신의 존재 ‘I'가 가장 큰 제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온 카와라는 자신이 일어났던 시간과 뜬금없이 ‘나 여전히 살아있어’라는 메시지만 적은 전보와 엽서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지도에 자신이 갔던 곳을 표시하고, 자신이 하루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는 I, I, I, I를 강조했지만 사실 작업에서 ‘그만의’ 특수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어느 날에는 몇 시에 일어났고, 언제는 어디에 갔었고, 누구를 만났고, 그리고 ‘아, 그는 여전히 살아있군’하는 정도밖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는 거다. 게다가 그는 특이하게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전시 오프닝 때 나타나지도 않는 작가라 얼굴 또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그의 행적(?)을 쫓다 보면 그는 ‘자신의 존재’에 굉장히 겸손하게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I’라는 특수성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이 일어난 ‘시간’과 갔던 ‘장소’, 만난 ‘사람’ 등 자신이 ‘여전히 살아서’ 관계 맺는 ‘다른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가늠할 뿐이다. ‘존재’는 스스로 그 존재를 증명해낼 수 없다. 온 카와라가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지인들에게 전보 친 것 또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 인식해야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기록 1969년 작 <백만 년 (과거)>와 1980년 작 <백만 년 (미래)>는 소소한 일상 작업 시리즈에서 나아가 200만년을 아울러 존재를 ‘통보’하는 블록버스터급 작업이다. 백만 년 전에서 백만 년 후까지의 모든 년도를 빼곡이 타이핑해서 제본한 작품으로 한 페이지 당 500년을 담고 있고, 10만년씩 해서 총 10권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백만 년 (과거)>에 “그동안 살다 죽은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 <백만 년 (미래)>에 “마지막 생존자를 위하여”라고 썼다. 온 카와라는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존재를 끄집어낸다. 내가, 그가,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한 낱 숫자들과 글자들이겠지만, 그는 무력하거나 허망해 보이지 않는다. 한낱 종이에 쓴 숫자들로 2백만 년에 걸친 존재들을 한 자리에 ‘존재시키지’ 않았는가.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 앞에서 두 도사들도 뾰족한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의 필연과 죽음의 운명 앞에서 이들은 머뭇거림이 없어 보인다. 로만 오팔카는 묵묵히 죽음으로 내달리면서 즐거워하고, 온 카와라는 ‘존재 했고’ ‘존재 하고’ ‘존재 할’ 존재들을 불러 모은다. ‘나, 있어,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은’이라고 끊임없이 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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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 |
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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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로 불리는 천재, 헨리 다저의 이중적 예술성
예전에 책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아리송한 감정을 가진 적이 있다. 문예비평가 수전 손택이 <우울한 열정>에서 극작가 아르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미친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사회에서 이 불행한 예지자들을 추방함으로써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아르토는 바로 이 고통을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부과한다.” 정신병원을 오갔던 아르토는 말하자면 당시에 정상이 아닌 ‘미친 사람’이었다. 먹먹하면서 멍해졌던 이유는 미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정신을 모조리 쏟아 부었던 그의 예술이 슬퍼서였다. 또 위대해 보여서였다.
예술과 외설, 정상과 비정상?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다섯 번째 강좌에서 만난 ‘아웃사이더 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 헨리 다저는 그때의 감정을 불러온 특별한 예술가다. ‘애욕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좌는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외설이라 몰아붙이는 것,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다”라며 작품을 옹호하는 것 모두 옳지 않다고 말한다. “포르노가 예술작품으로 제시된 게 언제 적인데 아직도 그런 논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는 “외설로서 예술!”을 주장하는 소수다.
이런 질문들은 ‘경계 짓기’를 감행하려는 의도로 시작된다. 상하를 구분해서 ‘위계’를 생산한다. 이것을 좀 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으로 바꾼다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의 오래된 관행일 것이다. 이 질문은 굉장히 위험한 것임에도 우리의 전 생애를 지배하고 작동시키는 기준이 되면서, 문제의식은 적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상’의 범주에 둘 수 있는가”하는 모호함 때문이다. 또 이 모호한 것의 범위와 경계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임근준씨의 화법으로 말한다면 헨리 다저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 그냥 아트!” “비정상으로서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잔인함과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이중적인 수채화
헨리 다저는 1892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81세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살아갔다. 낮엔 벙원 청소부로 일을 했고, 밤엔 자신의 단칸방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15145쪽, 15권 분량의 원고와 방대한 양의 그림들이 그가 죽은 뒤에나 그의 집주인에게 발견돼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예술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장편 전쟁 판타지 작품”이라고 임근준씨가 설명한 그의 판타지 대작품은 제목이 참 길다. “어린이 노예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안젤리니언 전쟁 폭풍의, 비현실의 영역으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비비언 소녀들의 이야기”다. 1, 2차 대전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그의 대서사시 속에서는 제국주의 냄새가 나는 군인들과 어린 비비언 소녀들이 전쟁을 벌인다. 아니 소녀들이 그들의 폭력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
그의 작품은 극단적 이중성들이 어우러져 환상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것. 제국, 군대, 성인, 남자와 가장 약한 존재인 여자 어린이의 대치. 긴 꼬리의 기괴한 용의 몸과 커다랗고 화려한 나비의 날개를 단 소녀. 옷을 벗으면 남성의 성기가 드러나는 작고 귀여운 소녀들. 기괴하지만 그의 수채화와 꼴라주는 무척 ‘예쁘다’. 폭탄이 터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묘사들이 이어져도, 평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색채와 구성이 신비롭고 오묘하다. 애잔하면서도 희망적이다. 잔임함을 그려냄으로써 잔인함을 이겨내려는 것일까?
“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
거대한 폭력과 맞서 싸우는 작은이들의 평화에 대해 상상했던 헨리 다저는 정신지체가 있었고, 사회에서 구분하는 ‘비정상’에 속했다. 헨리 다저의 집주인은 살아생전 그가 방안에서 여러 사람의 대화를 홀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헨리 다저의 작품을 보고 어떤 이는 “비록 그 삶은 불행했지만...” 혹은 “그는 미쳤었지만...그의 작품은 훌륭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삶’과 ‘그의 예술 작품’을 나눌 수 있을까. 혹은 사회가 훌륭하다고 평가하지 ‘않는’ 어떤 그의 훌륭함이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임근준씨는 헨리 다저를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바보’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그는 그냥 은둔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대한 소설 원고와 90년대 미대생들이 앞 다퉈 따라 그렸던 작품들을 남기는 ‘바보’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설령 그것이 위대한 일이라 할지라도)에게 ‘외설’ ‘비정상’ ‘미친 사람’ ‘바보’ 등의 호칭을 쓰길 원한다. 헨리 다저가 남성의 성기를 단 모습으로 소녀들을 묘사한 것을 두고, 그가 “소아성애자일 것”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주류 예술가의 작품에서 똑같은 묘사가 발견되었어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헨리 다저는 분명히 제목에 썼다. ‘비현실적 영역으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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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누설되는 곳엔 언제나 야릇한 즐거움이 있다 |
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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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 사진의 능력
19세기 말 사진이 보편화되고 기슬복제시대가 열리면서 자연의 모습을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하려는 전통적 회화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갈 곳을 잃었다. 한 사람 앞에 디카, 폰카 하나씩은 소지하고 있는 신세계의 우리들은 상상도 못할 거다. 거대한 자연을 오점 하나 없이 단숨에 포착하는 새 문명의 경이로움이란. 하지만 회화는 허탈해하지 않고 인상파,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등 더 재밌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임무를 띠고 나타난 사진 또한 그 임무를 배신해버렸다. 그 배신의 형태는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이 생활이 돼버린 우리들의 예술 의지(?)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다. 디테일한 상황 설정은 물론 절묘한 조명과 각도에서 되도록 어여쁜 모습을 담아내고, 포토샵으로 아름답게 원본을 수정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가?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강좌 <사진과 영상의 고민>에서 다뤄진 현대 사진예술이 고민하는 지점 또한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가 자연에 개입하거나 의도적으로 특별한 상황을 연출한 상태를 포착하는 것.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발전된 원본의 수정, 합성 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것 등.
왜 이러면 안 되나요? 멋쟁이 린다 벵글리스
1974년 미국의 조형미술가 린다 벵글리스는 미술전문지 <아트포럼>에 직접 모델이 된 자신의 사진 광고를 실었다. 이는 ‘충격적’이었다. 사진 속 린다 벵글리스는 SF영화의 전사들이 쓸법한 선글라스 하나만 착용하고 나체로 섰다. 그리고 남자 성기 모양의 긴 딜도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웠다. 포즈도 표정도 늠름하게. 작가가 옷을 다 벗고 딜도를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야해서 충격적인 게 아니다. 사진은 야하다기보다 신선하고 도발적이라고 느껴진다. 충격인 것은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미술계에 ‘난리’가 났다는 사실이다.
1974년이었기 때문일까? 성문제와 예술적 표현에 있어 한국보다 개방적이라 생각했던 미국에서 사진의 수위를 두고 예술가, 페미니스트 할 것 없이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너무 심했다” 등의 말들로 시끄러웠다고 한다. 결국 <아트포럼>과 갈등을 겪은 예술가들은 그들대로 분리해 나와 <옥토버>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었나보다.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경계는 정치의 최전방이다. 여성들은 이제 겉으로는 남성과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 성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서도 안 되고, 성적 문제에서 주체적 시선을 가져도 안 된다. 남성에게 ‘보여지는’ 성적 대상이 되어야 하지, 성의 주인으로서 남성을 바라보며 린다 벵글리스처럼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비난받고 배제될 테니.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린다 벵글리스는 그래서 ‘예술가다운’ 예술가다. 그의 사진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숨겨둬야 하는 여성의 성욕과 주체성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냈고, 사진을 둘러싼 소란들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미국 예술계의 보수성과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이상한 수위 조절’을 드러내보였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 문제적 사진이 이후 “포스트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분홍과 파랑에 대한 질문, 윤정미
린다 벵글리스보다는 얌전(?)하지만 ‘성’과 관련된 재밌는 작업이 한국에도 있다. 임근준씨가 “인류학적 작업으로 넘어간, 단순하지만 일관성 있는 작업”이라 표현한 윤정미 작가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작가의 딸을 비롯해서 다양한 국적, 인종의 아이들의 방 안에 그들의 물건들을 바닥 빼곡이 정렬해 놓은 풍경을 기록한 작업이다. 어쩜 그렇게 여자 아이들의 방 사진은 온통 분홍으로, 남자 아이들 방은 오통 파랑으로 넘쳐나는지. 당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데, 왠지 섬뜩해온다. 아이들이 원해서 고른 색상들의 물건이었겠지만, 이런 획일적 취향은 처음부터 그들이 원한 취향이 아니다. 개개인의 ‘진짜 취향’을 발견하게 했다면 방들이 성별에 따라 분홍과 파랑으로만 채색되진 않았을 게 분명하다.
임근준씨가 이 프로젝트를 “끈기 있는 탐구 작업”이라 한 것처럼 작가는 사진을 찍었던 아이들의 방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또 찾아갔다. 다시 물건들을 바닥에 줄 세워놓고 찍은 방의 색깔이 분홍에서 하늘색, 보라색 등으로 변한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분홍과 파랑이 대세였다. 윤정미 작가는 귀엽고 섬뜩한 이 작업들로 개인의 취향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는 이의 눈에 진한 색채로 각인시킨다.
고마운 속임수의 예술, 김상길
김상길은 찰나를 기록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시간’을 담아내는 작가다. 방법은 단순하다. 포토샵의 합성 기능을 사용하는 것. 설명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사진들이 ‘조작’된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쉽지 않을 거다.
<오프라인>시리즈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오프라인_14:00+15:00>은 스타벅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 둘, <오프라인_17:30+20:10>은 킨코스(복사 서비스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두 명이 근무 도중 시간을 내서 촬영한 사진이다. 제목의 시간 표시는 사진을 촬영한 때다. 이 작업에서 합성이라는 ‘조작’은 고마운 속임수다. 같은 일을 다른 시간 때에 하는 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들을 우리가 한꺼번에 볼 수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임근준씨는 작가가 “어도비 포토샵 이후의 사진이 지니는 조작성을 문제 삼고, 그를 통해 다시 비가시적 리얼리티를 가시화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비가시적 리얼리티’, 보이지 않는 현실이란 이제 사회 전반이 의지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 시스템’이다. 우리에게 흔히 보이는 것은 파트타임 노동자들,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뿐이다. 사람들은 그들, 그리고 우리들이 노동하는 방식, 또 그 방식을 유지시키는 시스템 자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김상길의 <오프라인>작업은 합성된 사진이 원본 사진보다 현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보게 되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잘 보이게
사진예술은 이제 ‘주어진 자연’을 담아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도된 자연’을 담아낸다. 하지만 이 ‘의도된 자연’은 애초에 우리에게 없었던, 완벽하게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지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거나, 사회적인 ‘당연함’ 속에서 특별하게 인식돼오지 않았던 ‘비밀’ 같은 것이었다. ‘예술적 카메라’들이 더 깊은 비밀들을 캐오지 않을까? ‘비밀’이 누설되는 곳엔 언제나 야릇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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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를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제임스 터렐 |
C*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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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우리의 한계에 대한 생각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자면 머리가 아프다. 보는 것은 늘상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흔한 일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가장 어렵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갖는 무게감만큼이나 ‘본다는 것’에 대한 질문도 묵직하고 어질어질 할 수밖에 없다.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두 번째 강좌에서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현대 미술은 보는 방법에 대한 예술이다.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대 미술이 점점 더 난해해진 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
보는 것에도 정말 ‘방법’이 있는 걸까? 우리는 ‘그저’ 보이는 것을 보고 살아왔고, 본 것을 아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 강좌에서 제시된 작가들은 우리가 늘 봐오던 것들을 다른 방식과 이미지로 형상화해 사람들에게 내보인다. 그것들은 우리가 ‘봤음에도 보지 못한 것’, ‘보고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제 정신을 흩뜨리며 ‘본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저 너머’를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제임스 터렐
“빛과 공간의 작가”로 불리우는 제임스 터렐은 명성에 걸맞게 건물 창문들을 틀어막고 어둠 속에서 ‘빛’을 도구 삼아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업 <모서리 교차투사>연작은 예술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물질성’을 고민했던 “미니멀리즘 조각에 대한 화답”의 차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삼각형, 사각형 등의 ‘미니멀’한 형상을 ‘빛’으로 구상했기에 문제적이었다. 터렐의 작업은 내용면에서 미니멀리즘과
상당한 거리가 생긴 것이다. ‘빛’은 물질적인 것인가, 정신적인 것인가.
이 헛갈림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을 응시하노라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인다. 임근준씨는 <모서리 교차투사>를 “처음엔 빛만, 그 다음엔 형체와 윤곽만, 그러다 계속 보게 되면 저 너머에서 빛을 투사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는 작품이라 설명한다. 새하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신비로운 외형만큼이나 마술사 할아버지 같은 제임스 터렐은 몽환적 도형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는 진짜 근원적 빛, 자연광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도 했다. <하늘 공간>은 갤러리 천장을 뚫어서 하늘빛을 그대로 쬘 수 있는 실내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하늘 공간. 담을 수 없는 하늘을 천장에 그대로 담아낸 발상이었다. 쉽게 늘 보아온 하늘이지만 특수한 공간에서 새롭게 만난 하늘은 색다른 느낌들을 자아낼 것이다. 아니 그곳이 아니라면 바쁜 현대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긋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임근준씨는 <하늘 공간>을 관람하던 관람객들이 아예 공간 바닥에 서로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하늘을 ‘감상’하는 사진을 보고 “이 자체가 아트!”라며 거듭 감탄했다. 하늘이 예술인 걸까. 그 공간을 만들어낸 발상이 예술인 걸까. 정말 사람들의 행위가 예술인 것일까.
이처럼 제임스 터렐은 인공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빛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작가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한다. 빛으로부터 발생하는 명상적 느낌을 자아내는 그는, 그래서인지 ‘종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이었든,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가늘게 떴다 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그 빛의 형상들을 음미하려 애쓰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본다는 것은 주체적인가에 대한 질문, 최병일
최병일의 작업들은 죄다 기계장치들이다. 어떤 조형적 효과를 위해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자체가 작품이다. 그가 직접 끈질긴 공을 들여 거의 발명가 수준으로 만들어 낸 기계장치들은 그의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의 보는 행위를 교란시킨다.
그의 작업 중 <과정 A를 위한 장치>는 카메라가 갤러리 외부의 모습을 거꾸로 뒤집힌 형상으로 담아낸다. 화면 속 건물, 자동차, 땅과 하늘, 모두 뒤집혀져 있다. 그런데 그 중 딱 하나, 담장 위에 놓은 빨간 불빛의 디지털시계만이 또렷이 ‘정상적’이다. 왜 이것만이 뒤집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임근준씨의 설명은 작품에서 제공되는 ‘시점’이란 인간을 배려한 지점이 아니라, “시각기계의 논리가 집약되는 하나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기계를 통해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이상적인 시점에 눈을 맞추려 애쓰는 관람객을 쏘아 보는 꼴”이 돼버린 것이라고.
우리는 온갖 시각적 기계 장치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TV,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컴퓨터모니터, CCTV 등.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린 이런 기계들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의심이 없다. 우리가 기계들을 필요에 알맞게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또 기계를 통해 객체를 주체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서. 최성일은 이런 우리의 확신에 질문 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를 통해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보는 것인지, 기계가 우리의 시각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는 기계가 제공하는 시점에 너무나 길들어져 있어서 기계 작동에 조금의 트릭이 가미되면 어쩔 줄 모르게 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최병일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보는 방법이 ‘얼마나’ 무의식적이었는지, 또 그 무의식의 큰 부분을 기계장치들이 얼마나 담당하고 있었는지, 이와 관련된 체험을 진지한 장난끼로 관람객들에게 권하는 작가다.
한계를 인정하면 더 많은 것이 보일 수도?
작품들을 곱씹으며 잠시나마 생각해 본 ‘본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시각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관습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는 노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눈에 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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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것에 대한 우연의 성찰 |
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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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것에 대한 우연의 성찰, ‘추상이라는 가상 세계’
현대미술은 어렵다? 전공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특히 칸딘스키 이후로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형성한 추상미술은 접하는 이들을 당황시키는 경우가 잦다. 이유는 그림이 너무 단순하거나 혹은 너무 복잡해서. 그림이랍시고 그려놨는데 전혀 예쁘지 않아서. 또 잭슨폴록 그림처럼 손으로 그렸는지 발로 그렸는지, 물감으로 온통 ‘떡칠’을 해놓고는 작품이라고 우겨지고 비싼 값에 팔리는 등. 그래서 종종 억지로 우아한 척을 하지 못하는 ‘솔직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저건 나도 그리겠다”다.
그럴까?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 강좌에서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떡칠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잭슨폴록을 변호했다. 걸쭉한 느낌으로 절묘하게 물감을 ‘떡지게’ 만드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더 큰 이유는 물감을 바르고 흩뿌리는 ‘그 사람’만이 자신만의 느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란다. 어쩌면 여기에 추상화의 매력이 도사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온통 모호한 것들 속에서 살포시 미소 짓는 홍승혜
홍승혜의 작업들은 온통 아이러니 투성이다. 작가는 주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업을 한다. 그는 컴퓨팅 인터페이스의 ‘픽셸’을 가지고 놀듯 하며 작품을 만들어낸다. 주사위 놀이를 하듯, 이런 저런 ‘마우스 드로잉’과 ‘클릭 칠’을 하는 가운데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타나면 사이즈를 엄청나게 확대해서 회화와 조형물을 만들어 낸다. 눈앞의 큰 자연의 모습을 그 비율에 맞춰 작은 화폭에 담아내는 정통적 회화방식과는 정반대로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컴퓨터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를 거대한 물질로 담아내는 것이다. <파편>에서는 알루미늄파이프 수십 개에 픽셸 모양들을 덧 입혔다. 파이프도 픽셸도 우리 삶 가까이에서 우리의 매일 매일을 구성한다. 그런데 함께 어울리니 낯선 모양새다.
무엇보다 낯선 것은 정확한 계산에 능한 컴퓨터에서 ‘우연성’의 순간을 형상화 한 것. 그래서인지 홍승혜의 작업은 차가운 컴퓨터로 이루어진 것임에도 왠지 모를 부드러움과 유머가 있다. 그가 추구하는 아이러니는 그의 작품 시리즈 <유기적 기하학>이란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기적’의 우발성과 ‘기하학’의 정확성이 그의 작품에서 모호하게 융합하는 모습이다. 가구, 건축, 작품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 매 말라 보이기 그지없는 막대 덩어리들이 춤을 추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의 ‘소녀적’ 감상을 소상히 드러내는 홍승혜 작가는, 아무래도 ‘명확한 것의 권위’보다 ‘모호함’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낯선 것을 흔해지도록 반복하는 이소정
홍승혜가 컴퓨터 작업이라는 첨단 문명에서 발견한 우연성으로 흔한 것을 낯설게 표현했다면, 이 젊은 작가 이소정은 수묵화라는 오래된 동양적 도구로 낯선 것을 흔하게 만들었다. 수묵의 자연스러운 흘러내림, 이리저리 튄 먹, 그리고 이미 그려진 것에 다음 것을 얹어가는 우연의 연속 속에서.
그가 우연의 연속들 속에서 반복해서 드러낸 ‘낯선 것’은 무수히 존재하지만 세상으로 발설되지 않는 비밀들 같은 것이다. 여성의 성욕, 거세에 대한 공포, 그런 욕망과 두려움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무섭게 생겼지만 울림이 있다. 에로틱하지만 왠지 슬프다. 먹들이 뭉치고 나아가면서 작가의 ‘아기괴수’들의 형상이 터져 나온다. 스산하면서 진득하다. 신체가 절단되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무언가 똑바로 직시하려는, 욕망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인간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작가의 그림처럼 복잡하게 느껴진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소정의 작품들에 대해 “화가와 그림이 상호 기생적 관계”인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 화가를 숙주삼아 그림이 ‘키워졌다’는 것. 그림이 키워질 수 있는 이유는 작가가 그림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쏟아부어버리고는 이미 벌어진 그 사건(그림)에 다음 사건을 ‘보태어’ 나갔기 때문이다. 우연도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내뱉는 순간 자신이 기대치 않은 객관적 형상으로 자신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그것 또한 결국 작가 자신인 셈이다.
모호함과 우연, 아슬아슬함의 즐거움
‘자의성 +우연성’은 현대 미술의 큰 특징이다. 현대 추상미술을 감상할 때 우리가 당황하는 모호한 감정들, 무언가 느껴지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는 ‘답답함’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굳이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원한다. 그 답이 사실은 명확한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고, 믿을 때야만 비로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예술에서는 좀 다른 방식. 우연적이고, 폭발적이고, 아이러니컬한 것도 ‘무언가’ 느껴진다면,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헛갈리는 그 추상화들이 “자신을 죽이지 마. 우연을 즐겨”라고 속삭이는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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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편을 듣고 |
a**nstu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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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 위치한 아트앤스터디 인문숲 리뷰어로 활동하게 되어 임근준의 '이것이 현대적 미술'이라는 강좌의 첫번째 주제인 '추상미술'을 듣게 되었다. 미술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은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처음으로 듣게 된 임근준의 미술평론은 조금은 어려우면서도 설레기도 했다.
이번 첫번째 강좌는 '추상이라는 가상 세계'라는 주제로 이뤄져 네 명의 작가의 작품세계를 바라보는 수업이었다. 그 첫번째가 홍승혜, 두번째가 줄리 머레투, 세번째가 성낙희 그리고 마지막이 이소정이다. 물론 그 누구라도 이전에 들어본 작가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들의 작품을 보고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까.
나는 이점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곰브리치의 서양예술사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는 붓놀림에 의해 생겨나는 흔적에 관심을 가진 이러한 경향을 타쉬슴이라 했는데 이는 타슈, 즉 얼룩이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물감을 바르는 새로운 방법으로 흥미를 유발시켰던 사람은 잭슬 폴록이었다. 폴록은 초현실주의에 빠져 있었으나 점차 그의 그림에 주로 등장하던 괴이한 이미지를 버리고 추상 회화를 실험하게 되었다.
곰브리치는 이런 잭슨폴록의 작품 또는 그를 추종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동양의 정확히는 중국의 '서예예술'처럼 극단적인 방법이나 자발적인 충동에 의해 작품들을 만들었고 그것이 '액션 페인팅' 오늘날 알려진 '추상 표현주의'라고 알려진 새로운 양식의 주창자들의 하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임근준이 말하는 이 네명의 작가들도 그 뿌리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살펴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일어났던 추상적 표현은 대부분 정신적 추상이었던 반면 2차 대전 이후에는 물질적 추상이 이뤄졌던 것에 있다. 전쟁에 인한 사람들의 심리가 적용된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전쟁 이후 망가져 간 시설에 대한 향수 때문은 아니었는가 여겨본다.
그런 흐름속에서 소개되어진 이 네명의 작가 홍승혜, 줄리 머레투, 성낙희, 이소정은 확실히 추상미술을 이야기 할때 꼭 접근하고 지나가야 하는 작가들이기 때문인지 2시간 동안 강연은 계속 되었다. 보통 강연은 1시간 반이면 끝이 나지만 현대 미술 중 하나인 가장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추상미술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집중을 하면서는 강좌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제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홍승혜 작가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임근준은 홍승혜 작가를 '포스트-미디엄의 추상 구조를 부리는 픽셀의 디세뇨'라고 칭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미디어'는 무엇인가. 굳이 재 해석을 하자면 공간의 재해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임근준이 밝혔듯이 '작품들이 추상조각으로 인지되다가도, 보기에 따라서 가구 또는 건축 자재로 독해될 수 있고, 더 큰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건축적 공간 연출의 장치로 재인실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포스트 미디어'의 한 방향이다.
홍승혜는 이런 공간의 재해석을 '픽셀 추상'이라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했다는 뜻으로 '포스트-미디엄의 추상 구조를 부리는 픽셀의 디세뇨'라고 지어진 애칭. 과연 그녀의 픽셀 추상은 어떤 것일까. 자료를 찾아보면 확실히 언뜻 보았을 때는 어린아이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이것이 추상미술의 최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픽셀 추상은 독자들과의 공감도 이뤄지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물론 이 작업을 하기 위해 한땀 한땀 그녀가 흘린 땀이 크다는 것은 강연자의 말과 그녀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픽셀 추상은 도대체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임근준은 그녀가 만든 '센티멘탈5'에서 그녀는 '자기 논평으로서의 농담'을 던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도 세월을 먹어 늙어가고 있지만 이런 소녀다운 동심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작품.
이런 작품을 보면서 추상미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내 마음대로 상상해 낼 수 있고, 또 그렇기에 독자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추상표현법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질감도 없진않아 존재한다. 너무 허무한 느낌이 드는 그들의 작품이기에 '추상이라는 가상 세계'가 더 낯설고 설레였다. 앞으로 남은 7주의 강연도 설렘의 연속이 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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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한 편 본 느낌 |
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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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이라는 가상 세계'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 전공이 미술인지라, 재밌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니,
무려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더군요.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과 사진을 많이 활용하셔서,
한마디로 아주 유익하고 알찬 '영화'를 한 편 보고 난 느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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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질문이 여기 있다 |
나**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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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에 이라는 난감함에 ‘두 도사’가 대처하는 방법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질문이 여기 있다. 인간의 문명이 제 아무리 최첨단을 이룩하고 자연과학이 경이로운 수준으로 발달해도,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 이성으로 무장한 합리적 인간이 절대 가늠할 수 없는 것.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제.
과연 존재한다는 것은 뭘까? 철학은 인간이 지구에서 살다가 자의식이 생겨난 순간부터 이 문제에 골몰해왔다. 나는 왜 저곳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가. 나는 왜 계속 ‘같은 존재’이다가 시간이 쌓여 가면 ‘다른 존재’로 변모하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뭔가? 지금 또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지금’이라는 건 적확한 때에 말해질 수 없다. 이미 ‘그 지금’은 과거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강좌 ‘일상의 고고학’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질문에 천착한 두 명의 ‘도사’가 소개되었다.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가는 로만 오팔카
1931년생 폴란드인 로만 오팔카는 평생에 걸쳐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했다. 큰 캔버스 위에 “1, 2, 3, 4...”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것이 그가 평생을 바친 작업의 골격이다. 제목은 <오팔카 1965/1-∞>. 젊은 시절 그의 목표치는 7,777,777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단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큰 숫자를 다 적고 난 다음 세상을 떠나게 될지가 문제는 아닐 거다. 문제는 목표한 숫자에 도달하는 작업의 ‘완성’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애초부터 로만 오팔카에겐 처음 그려넣은 1과 비교적 최근에 그렸을 5,672,101과 목표치 7,777,777의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시간을 물질로 담아낼 수 있을까? 그는 이 ‘특별한 차원’을 숫자로 시각화했다. 숫자라는 ‘추상적인’ 기호가 ‘더 추상적인’ 시간을 눈에 보이는 흐름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입으로 숫자를 읊으면서 발을 조금씩 옆으로 이동해가며 앞의 숫자에 1씩을 더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실제로 그는 숫자를 읊었고, 그 음성을 카세트에 녹음했다. ‘시간’에 풍덩 빠진 ‘존재’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 작업의 일부로 제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한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입어온 똑같은 흰색 셔츠를 입은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촬영한다. 숫자가 500만을 넘어섰고, 사진 속 작가의 머리는 허얘지고, 주름은 늘었다. 늘어나는 숫자와 로만 오팔카란 존재, 그리고 늙는다는 것. 그는 같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걸까, 다른 사람이 된 걸까.
그의 작업에서 변모하는 것이 숫자와 작가의 머리 색깔뿐인 건 아니다. 검정색, 회색 캔버스에 흰 붓질을 했던 그는 작품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캔버스에 흰색 1% 를 첨가해 배경의 톤을 밝히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명하게 드러났던 흰 숫자들은 캔버스가 하얘지자, 행적이 묘연해진다. 셔츠도 희고, 머리도 이제 희었고, 흰 캔버스에 흰 숫자들이라. 로만 오팔카는 모든 것이 지워지고 사라지는 상태를 꿈꾸는 걸까. 아니라면 ’시간‘이라는 것의 생리가 원래 그런 것일까.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백색의 배경에 백색의 대단위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일은 집중력을 요하는 ‘헛일’”이라며 그가 “무의미한 행위에 인생을 바침으로써 의미 있는 작가가 되는 과정은 흥미롭다”고 말한다. 로만 오팔카는 왜 이런 ‘헛일’을 평생 업으로 삼은 것일까? 그의 힌트는 이렇다.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밋밋하고 의미 없을지도.”
나와 너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온 카와라
로만 오팔카가 보편적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다면, 일본인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는 좀 더 ‘존재’에 대한 특수성을 갈구하는 듯하다. 그의 작업 <I WENT>(나는 -에 갔다), <I GOT UP>(나는 -시에 일어났다), <I MET>(나는 -를 만났다), <I'M STILL ALIVE>(나는 여전히 살아있다)의 제목만 보아도 그 자신의 존재 ‘I'가 가장 큰 제재라는 걸 알 수 있다. 온 카와라는 자신이 일어났던 시간과 뜬금없이 ‘나 여전히 살아있어’라는 메시지만 적은 전보와 엽서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지도에 자신이 갔던 곳을 표시하고, 자신이 하루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었다.
그는 I, I, I, I를 강조했지만 사실 작업에서 ‘그만의’ 특수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가 어느 날에는 몇 시에 일어났고, 언제는 어디에 갔었고, 누구를 만났고, 그리고 ‘아, 그는 여전히 살아있군’하는 정도밖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는 거다. 게다가 그는 특이하게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전시 오프닝 때 나타나지도 않는 작가라 얼굴 또한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그의 행적(?)을 쫓다 보면 그는 ‘자신의 존재’에 굉장히 겸손하게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I’라는 특수성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이 일어난 ‘시간’과 갔던 ‘장소’, 만난 ‘사람’ 등 자신이 ‘여전히 살아서’ 관계 맺는 ‘다른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가늠할 뿐이다. ‘존재’는 스스로 그 존재를 증명해낼 수 없다. 온 카와라가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지인들에게 전보 친 것 또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 인식해야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기록 1969년 작 <백만 년 (과거)>와 1980년 작 <백만 년 (미래)>는 소소한 일상 작업 시리즈에서 나아가 200만년을 아울러 존재를 ‘통보’하는 블록버스터급 작업이다. 백만 년 전에서 백만 년 후까지의 모든 년도를 빼곡이 타이핑해서 제본한 작품으로 한 페이지 당 500년을 담고 있고, 10만년씩 해서 총 10권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는 <백만 년 (과거)>에 “그동안 살다 죽은 사람들 모두를 위하여”, <백만 년 (미래)>에 “마지막 생존자를 위하여”라고 썼다. 온 카와라는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존재를 끄집어낸다. 내가, 그가,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한 낱 숫자들과 글자들이겠지만, 그는 무력하거나 허망해 보이지 않는다. 한낱 종이에 쓴 숫자들로 2백만 년에 걸친 존재들을 한 자리에 ‘존재시키지’ 않았는가.
시간과 존재에 대한 질문 앞에서 두 도사들도 뾰족한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의 필연과 죽음의 운명 앞에서 이들은 머뭇거림이 없어 보인다. 로만 오팔카는 묵묵히 죽음으로 내달리면서 즐거워하고, 온 카와라는 ‘존재 했고’ ‘존재 하고’ ‘존재 할’ 존재들을 불러 모은다. ‘나, 있어,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은’이라고 끊임없이 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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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 |
나**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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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로 불리는 천재, 헨리 다저의 이중적 예술성
예전에 책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아리송한 감정을 가진 적이 있다. 문예비평가 수전 손택이 <우울한 열정>에서 극작가 아르토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미친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사회에서 이 불행한 예지자들을 추방함으로써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아르토는 바로 이 고통을 표현하고 독자들에게 부과한다.” 정신병원을 오갔던 아르토는 말하자면 당시에 정상이 아닌 ‘미친 사람’이었다. 먹먹하면서 멍해졌던 이유는 미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정신을 모조리 쏟아 부었던 그의 예술이 슬퍼서였다. 또 위대해 보여서였다.
예술과 외설, 정상과 비정상?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다섯 번째 강좌에서 만난 ‘아웃사이더 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 헨리 다저는 그때의 감정을 불러온 특별한 예술가다. ‘애욕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좌는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외설이라 몰아붙이는 것, “외설이 아니라, 예술이다”라며 작품을 옹호하는 것 모두 옳지 않다고 말한다. “포르노가 예술작품으로 제시된 게 언제 적인데 아직도 그런 논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그는 “외설로서 예술!”을 주장하는 소수다.
이런 질문들은 ‘경계 짓기’를 감행하려는 의도로 시작된다. 상하를 구분해서 ‘위계’를 생산한다. 이것을 좀 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질문으로 바꾼다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의 오래된 관행일 것이다. 이 질문은 굉장히 위험한 것임에도 우리의 전 생애를 지배하고 작동시키는 기준이 되면서, 문제의식은 적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정상’의 범주에 둘 수 있는가”하는 모호함 때문이다. 또 이 모호한 것의 범위와 경계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임근준씨의 화법으로 말한다면 헨리 다저는 “아웃사이더 아트로서 그냥 아트!” “비정상으로서 정상!”이라고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잔인함과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이중적인 수채화
헨리 다저는 1892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81세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살아갔다. 낮엔 벙원 청소부로 일을 했고, 밤엔 자신의 단칸방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15145쪽, 15권 분량의 원고와 방대한 양의 그림들이 그가 죽은 뒤에나 그의 집주인에게 발견돼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예술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초-장편 전쟁 판타지 작품”이라고 임근준씨가 설명한 그의 판타지 대작품은 제목이 참 길다. “어린이 노예 반란으로 인한, 글랜디코-안젤리니언 전쟁 폭풍의, 비현실의 영역으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비비언 소녀들의 이야기”다. 1, 2차 대전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그의 대서사시 속에서는 제국주의 냄새가 나는 군인들과 어린 비비언 소녀들이 전쟁을 벌인다. 아니 소녀들이 그들의 폭력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
그의 작품은 극단적 이중성들이 어우러져 환상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가장 강하다고 여겨지는 것. 제국, 군대, 성인, 남자와 가장 약한 존재인 여자 어린이의 대치. 긴 꼬리의 기괴한 용의 몸과 커다랗고 화려한 나비의 날개를 단 소녀. 옷을 벗으면 남성의 성기가 드러나는 작고 귀여운 소녀들. 기괴하지만 그의 수채화와 꼴라주는 무척 ‘예쁘다’. 폭탄이 터지고 폭력이 난무하는 묘사들이 이어져도, 평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색채와 구성이 신비롭고 오묘하다. 애잔하면서도 희망적이다. 잔임함을 그려냄으로써 잔인함을 이겨내려는 것일까?
“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
거대한 폭력과 맞서 싸우는 작은이들의 평화에 대해 상상했던 헨리 다저는 정신지체가 있었고, 사회에서 구분하는 ‘비정상’에 속했다. 헨리 다저의 집주인은 살아생전 그가 방안에서 여러 사람의 대화를 홀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헨리 다저의 작품을 보고 어떤 이는 “비록 그 삶은 불행했지만...” 혹은 “그는 미쳤었지만...그의 작품은 훌륭하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삶’과 ‘그의 예술 작품’을 나눌 수 있을까. 혹은 사회가 훌륭하다고 평가하지 ‘않는’ 어떤 그의 훌륭함이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
임근준씨는 헨리 다저를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바보’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바보라고 묘사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냥 바보라고 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그는 그냥 은둔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대한 소설 원고와 90년대 미대생들이 앞 다퉈 따라 그렸던 작품들을 남기는 ‘바보’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우리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설령 그것이 위대한 일이라 할지라도)에게 ‘외설’ ‘비정상’ ‘미친 사람’ ‘바보’ 등의 호칭을 쓰길 원한다. 헨리 다저가 남성의 성기를 단 모습으로 소녀들을 묘사한 것을 두고, 그가 “소아성애자일 것”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고 한다. 주류 예술가의 작품에서 똑같은 묘사가 발견되었어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헨리 다저는 분명히 제목에 썼다. ‘비현실적 영역으로 알려진 곳’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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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누설되는 곳엔 언제나 야릇한 즐거움이 있다 |
나** 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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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찍는 사진의 능력
19세기 말 사진이 보편화되고 기슬복제시대가 열리면서 자연의 모습을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하려는 전통적 회화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갈 곳을 잃었다. 한 사람 앞에 디카, 폰카 하나씩은 소지하고 있는 신세계의 우리들은 상상도 못할 거다. 거대한 자연을 오점 하나 없이 단숨에 포착하는 새 문명의 경이로움이란. 하지만 회화는 허탈해하지 않고 인상파, 입체파, 추상표현주의 등 더 재밌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임무를 띠고 나타난 사진 또한 그 임무를 배신해버렸다. 그 배신의 형태는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것이 생활이 돼버린 우리들의 예술 의지(?)만 보아도 가늠할 수 있다. 디테일한 상황 설정은 물론 절묘한 조명과 각도에서 되도록 어여쁜 모습을 담아내고, 포토샵으로 아름답게 원본을 수정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가?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강좌 <사진과 영상의 고민>에서 다뤄진 현대 사진예술이 고민하는 지점 또한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포착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가가 자연에 개입하거나 의도적으로 특별한 상황을 연출한 상태를 포착하는 것.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발전된 원본의 수정, 합성 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것 등.
왜 이러면 안 되나요? 멋쟁이 린다 벵글리스
1974년 미국의 조형미술가 린다 벵글리스는 미술전문지 <아트포럼>에 직접 모델이 된 자신의 사진 광고를 실었다. 이는 ‘충격적’이었다. 사진 속 린다 벵글리스는 SF영화의 전사들이 쓸법한 선글라스 하나만 착용하고 나체로 섰다. 그리고 남자 성기 모양의 긴 딜도를 자신의 다리 사이에 끼웠다. 포즈도 표정도 늠름하게. 작가가 옷을 다 벗고 딜도를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야해서 충격적인 게 아니다. 사진은 야하다기보다 신선하고 도발적이라고 느껴진다. 충격인 것은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미술계에 ‘난리’가 났다는 사실이다.
1974년이었기 때문일까? 성문제와 예술적 표현에 있어 한국보다 개방적이라 생각했던 미국에서 사진의 수위를 두고 예술가, 페미니스트 할 것 없이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 “너무 심했다” 등의 말들로 시끄러웠다고 한다. 결국 <아트포럼>과 갈등을 겪은 예술가들은 그들대로 분리해 나와 <옥토버>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예술의 영역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었나보다.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의 경계는 정치의 최전방이다. 여성들은 이제 겉으로는 남성과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성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 성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서도 안 되고, 성적 문제에서 주체적 시선을 가져도 안 된다. 남성에게 ‘보여지는’ 성적 대상이 되어야 하지, 성의 주인으로서 남성을 바라보며 린다 벵글리스처럼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있으면 안 되는 거다. 그러면 비난받고 배제될 테니.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린다 벵글리스는 그래서 ‘예술가다운’ 예술가다. 그의 사진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숨겨둬야 하는 여성의 성욕과 주체성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냈고, 사진을 둘러싼 소란들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미국 예술계의 보수성과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이상한 수위 조절’을 드러내보였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 문제적 사진이 이후 “포스트페미니즘의 상징”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분홍과 파랑에 대한 질문, 윤정미
린다 벵글리스보다는 얌전(?)하지만 ‘성’과 관련된 재밌는 작업이 한국에도 있다. 임근준씨가 “인류학적 작업으로 넘어간, 단순하지만 일관성 있는 작업”이라 표현한 윤정미 작가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작가의 딸을 비롯해서 다양한 국적, 인종의 아이들의 방 안에 그들의 물건들을 바닥 빼곡이 정렬해 놓은 풍경을 기록한 작업이다. 어쩜 그렇게 여자 아이들의 방 사진은 온통 분홍으로, 남자 아이들 방은 오통 파랑으로 넘쳐나는지. 당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데, 왠지 섬뜩해온다. 아이들이 원해서 고른 색상들의 물건이었겠지만, 이런 획일적 취향은 처음부터 그들이 원한 취향이 아니다. 개개인의 ‘진짜 취향’을 발견하게 했다면 방들이 성별에 따라 분홍과 파랑으로만 채색되진 않았을 게 분명하다.
임근준씨가 이 프로젝트를 “끈기 있는 탐구 작업”이라 한 것처럼 작가는 사진을 찍었던 아이들의 방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또 찾아갔다. 다시 물건들을 바닥에 줄 세워놓고 찍은 방의 색깔이 분홍에서 하늘색, 보라색 등으로 변한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분홍과 파랑이 대세였다. 윤정미 작가는 귀엽고 섬뜩한 이 작업들로 개인의 취향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는 이의 눈에 진한 색채로 각인시킨다.
고마운 속임수의 예술, 김상길
김상길은 찰나를 기록하는 한 장의 사진으로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시간’을 담아내는 작가다. 방법은 단순하다. 포토샵의 합성 기능을 사용하는 것. 설명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사진들이 ‘조작’된 합성 사진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쉽지 않을 거다.
<오프라인>시리즈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오프라인_14:00+15:00>은 스타벅스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 둘, <오프라인_17:30+20:10>은 킨코스(복사 서비스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두 명이 근무 도중 시간을 내서 촬영한 사진이다. 제목의 시간 표시는 사진을 촬영한 때다. 이 작업에서 합성이라는 ‘조작’은 고마운 속임수다. 같은 일을 다른 시간 때에 하는 두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생들을 우리가 한꺼번에 볼 수 있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임근준씨는 작가가 “어도비 포토샵 이후의 사진이 지니는 조작성을 문제 삼고, 그를 통해 다시 비가시적 리얼리티를 가시화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비가시적 리얼리티’, 보이지 않는 현실이란 이제 사회 전반이 의지하고 있는 ‘파트타임 노동 시스템’이다. 우리에게 흔히 보이는 것은 파트타임 노동자들, 아르바이트생, 그리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뿐이다. 사람들은 그들, 그리고 우리들이 노동하는 방식, 또 그 방식을 유지시키는 시스템 자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김상길의 <오프라인>작업은 합성된 사진이 원본 사진보다 현실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보게 되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잘 보이게
사진예술은 이제 ‘주어진 자연’을 담아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의도된 자연’을 담아낸다. 하지만 이 ‘의도된 자연’은 애초에 우리에게 없었던, 완벽하게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지만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거나, 사회적인 ‘당연함’ 속에서 특별하게 인식돼오지 않았던 ‘비밀’ 같은 것이었다. ‘예술적 카메라’들이 더 깊은 비밀들을 캐오지 않을까? ‘비밀’이 누설되는 곳엔 언제나 야릇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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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를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제임스 터렐 |
나**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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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우리의 한계에 대한 생각
‘본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자면 머리가 아프다. 보는 것은 늘상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흔한 일에 대한 질문은 어쩌면 가장 어렵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갖는 무게감만큼이나 ‘본다는 것’에 대한 질문도 묵직하고 어질어질 할 수밖에 없다.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2’ 두 번째 강좌에서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현대 미술은 보는 방법에 대한 예술이다. 더 이상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현대 미술이 점점 더 난해해진 것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
보는 것에도 정말 ‘방법’이 있는 걸까? 우리는 ‘그저’ 보이는 것을 보고 살아왔고, 본 것을 아는 것이라 믿어왔다. 그런데 이번 강좌에서 제시된 작가들은 우리가 늘 봐오던 것들을 다른 방식과 이미지로 형상화해 사람들에게 내보인다. 그것들은 우리가 ‘봤음에도 보지 못한 것’, ‘보고도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제 정신을 흩뜨리며 ‘본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저 너머’를 이야기하는 할아버지, 제임스 터렐
“빛과 공간의 작가”로 불리우는 제임스 터렐은 명성에 걸맞게 건물 창문들을 틀어막고 어둠 속에서 ‘빛’을 도구 삼아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업 <모서리 교차투사>연작은 예술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물질성’을 고민했던 “미니멀리즘 조각에 대한 화답”의 차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삼각형, 사각형 등의 ‘미니멀’한 형상을 ‘빛’으로 구상했기에 문제적이었다. 터렐의 작업은 내용면에서 미니멀리즘과
상당한 거리가 생긴 것이다. ‘빛’은 물질적인 것인가, 정신적인 것인가.
이 헛갈림 때문인지 그의 작품들을 응시하노라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이 인다. 임근준씨는 <모서리 교차투사>를 “처음엔 빛만, 그 다음엔 형체와 윤곽만, 그러다 계속 보게 되면 저 너머에서 빛을 투사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는 작품이라 설명한다. 새하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신비로운 외형만큼이나 마술사 할아버지 같은 제임스 터렐은 몽환적 도형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는 진짜 근원적 빛, 자연광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업도 했다. <하늘 공간>은 갤러리 천장을 뚫어서 하늘빛을 그대로 쬘 수 있는 실내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제목 그대로 하늘 공간. 담을 수 없는 하늘을 천장에 그대로 담아낸 발상이었다. 쉽게 늘 보아온 하늘이지만 특수한 공간에서 새롭게 만난 하늘은 색다른 느낌들을 자아낼 것이다. 아니 그곳이 아니라면 바쁜 현대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긋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임근준씨는 <하늘 공간>을 관람하던 관람객들이 아예 공간 바닥에 서로 다닥다닥 붙어 누워서 하늘을 ‘감상’하는 사진을 보고 “이 자체가 아트!”라며 거듭 감탄했다. 하늘이 예술인 걸까. 그 공간을 만들어낸 발상이 예술인 걸까. 정말 사람들의 행위가 예술인 것일까.
이처럼 제임스 터렐은 인공과 자연을 가리지 않고 빛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작가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한다. 빛으로부터 발생하는 명상적 느낌을 자아내는 그는, 그래서인지 ‘종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보여주려 한 것이 무엇이었든,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가늘게 떴다 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그 빛의 형상들을 음미하려 애쓰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다.
본다는 것은 주체적인가에 대한 질문, 최병일
최병일의 작업들은 죄다 기계장치들이다. 어떤 조형적 효과를 위해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자체가 작품이다. 그가 직접 끈질긴 공을 들여 거의 발명가 수준으로 만들어 낸 기계장치들은 그의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의 보는 행위를 교란시킨다.
그의 작업 중 <과정 A를 위한 장치>는 카메라가 갤러리 외부의 모습을 거꾸로 뒤집힌 형상으로 담아낸다. 화면 속 건물, 자동차, 땅과 하늘, 모두 뒤집혀져 있다. 그런데 그 중 딱 하나, 담장 위에 놓은 빨간 불빛의 디지털시계만이 또렷이 ‘정상적’이다. 왜 이것만이 뒤집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임근준씨의 설명은 작품에서 제공되는 ‘시점’이란 인간을 배려한 지점이 아니라, “시각기계의 논리가 집약되는 하나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간이 기계를 통해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이상적인 시점에 눈을 맞추려 애쓰는 관람객을 쏘아 보는 꼴”이 돼버린 것이라고.
우리는 온갖 시각적 기계 장치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TV, 휴대폰, 디지털카메라, 컴퓨터모니터, CCTV 등.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린 이런 기계들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우리는 의심이 없다. 우리가 기계들을 필요에 알맞게 주체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 또 기계를 통해 객체를 주체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서. 최성일은 이런 우리의 확신에 질문 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계를 통해 무엇인가를 능동적으로 보는 것인지, 기계가 우리의 시각을 능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우리는 기계가 제공하는 시점에 너무나 길들어져 있어서 기계 작동에 조금의 트릭이 가미되면 어쩔 줄 모르게 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최병일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보는 방법이 ‘얼마나’ 무의식적이었는지, 또 그 무의식의 큰 부분을 기계장치들이 얼마나 담당하고 있었는지, 이와 관련된 체험을 진지한 장난끼로 관람객들에게 권하는 작가다.
한계를 인정하면 더 많은 것이 보일 수도?
작품들을 곱씹으며 잠시나마 생각해 본 ‘본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보지 못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기도 하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시각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관습에서 벗어난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려는 노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눈에 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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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것에 대한 우연의 성찰 |
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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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것에 대한 우연의 성찰, ‘추상이라는 가상 세계’
현대미술은 어렵다? 전공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특히 칸딘스키 이후로 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형성한 추상미술은 접하는 이들을 당황시키는 경우가 잦다. 이유는 그림이 너무 단순하거나 혹은 너무 복잡해서. 그림이랍시고 그려놨는데 전혀 예쁘지 않아서. 또 잭슨폴록 그림처럼 손으로 그렸는지 발로 그렸는지, 물감으로 온통 ‘떡칠’을 해놓고는 작품이라고 우겨지고 비싼 값에 팔리는 등. 그래서 종종 억지로 우아한 척을 하지 못하는 ‘솔직한’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저건 나도 그리겠다”다.
그럴까? 아트앤스터디 ‘이것이 현대적 미술’ 강좌에서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떡칠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잭슨폴록을 변호했다. 걸쭉한 느낌으로 절묘하게 물감을 ‘떡지게’ 만드는 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더 큰 이유는 물감을 바르고 흩뿌리는 ‘그 사람’만이 자신만의 느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란다. 어쩌면 여기에 추상화의 매력이 도사리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온통 모호한 것들 속에서 살포시 미소 짓는 홍승혜
홍승혜의 작업들은 온통 아이러니 투성이다. 작가는 주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작업을 한다. 그는 컴퓨팅 인터페이스의 ‘픽셸’을 가지고 놀듯 하며 작품을 만들어낸다. 주사위 놀이를 하듯, 이런 저런 ‘마우스 드로잉’과 ‘클릭 칠’을 하는 가운데 마음에 드는 모양이 나타나면 사이즈를 엄청나게 확대해서 회화와 조형물을 만들어 낸다. 눈앞의 큰 자연의 모습을 그 비율에 맞춰 작은 화폭에 담아내는 정통적 회화방식과는 정반대로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컴퓨터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를 거대한 물질로 담아내는 것이다. <파편>에서는 알루미늄파이프 수십 개에 픽셸 모양들을 덧 입혔다. 파이프도 픽셸도 우리 삶 가까이에서 우리의 매일 매일을 구성한다. 그런데 함께 어울리니 낯선 모양새다.
무엇보다 낯선 것은 정확한 계산에 능한 컴퓨터에서 ‘우연성’의 순간을 형상화 한 것. 그래서인지 홍승혜의 작업은 차가운 컴퓨터로 이루어진 것임에도 왠지 모를 부드러움과 유머가 있다. 그가 추구하는 아이러니는 그의 작품 시리즈 <유기적 기하학>이란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기적’의 우발성과 ‘기하학’의 정확성이 그의 작품에서 모호하게 융합하는 모습이다. 가구, 건축, 작품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 매 말라 보이기 그지없는 막대 덩어리들이 춤을 추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에서 자신의 ‘소녀적’ 감상을 소상히 드러내는 홍승혜 작가는, 아무래도 ‘명확한 것의 권위’보다 ‘모호함’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낯선 것을 흔해지도록 반복하는 이소정
홍승혜가 컴퓨터 작업이라는 첨단 문명에서 발견한 우연성으로 흔한 것을 낯설게 표현했다면, 이 젊은 작가 이소정은 수묵화라는 오래된 동양적 도구로 낯선 것을 흔하게 만들었다. 수묵의 자연스러운 흘러내림, 이리저리 튄 먹, 그리고 이미 그려진 것에 다음 것을 얹어가는 우연의 연속 속에서.
그가 우연의 연속들 속에서 반복해서 드러낸 ‘낯선 것’은 무수히 존재하지만 세상으로 발설되지 않는 비밀들 같은 것이다. 여성의 성욕, 거세에 대한 공포, 그런 욕망과 두려움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무섭게 생겼지만 울림이 있다. 에로틱하지만 왠지 슬프다. 먹들이 뭉치고 나아가면서 작가의 ‘아기괴수’들의 형상이 터져 나온다. 스산하면서 진득하다. 신체가 절단되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무언가 똑바로 직시하려는, 욕망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인간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작가의 그림처럼 복잡하게 느껴진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소정의 작품들에 대해 “화가와 그림이 상호 기생적 관계”인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 화가를 숙주삼아 그림이 ‘키워졌다’는 것. 그림이 키워질 수 있는 이유는 작가가 그림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쏟아부어버리고는 이미 벌어진 그 사건(그림)에 다음 사건을 ‘보태어’ 나갔기 때문이다. 우연도 결국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상으로 내뱉는 순간 자신이 기대치 않은 객관적 형상으로 자신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그것 또한 결국 작가 자신인 셈이다.
모호함과 우연, 아슬아슬함의 즐거움
‘자의성 +우연성’은 현대 미술의 큰 특징이다. 현대 추상미술을 감상할 때 우리가 당황하는 모호한 감정들, 무언가 느껴지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는 ‘답답함’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굳이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모든 것에 명확한 답을 원한다. 그 답이 사실은 명확한 것이 아닌데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고, 믿을 때야만 비로소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예술에서는 좀 다른 방식. 우연적이고, 폭발적이고, 아이러니컬한 것도 ‘무언가’ 느껴진다면, 그 자체로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헛갈리는 그 추상화들이 “자신을 죽이지 마. 우연을 즐겨”라고 속삭이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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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2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