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명감독, 미지의 명감독
본 강좌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영화사의 대가들 뿐 아니라, 국내에 덜 알려져 있는 ‘미지의 거장'까지 포함해 총 여덟 명의 ‘영화작가’를 탐구하려 한다. 이러한 영화감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영화의 분석과 영화사의 이해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수강료 : 39,000원 (적립5% : 최대1,950 원)
강사 : 홍성남
구성 : 총 8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레벨 : 초급
총 8명 참여
 
최*경 님
정*우 님
이*우 님
본 강좌에서는 미조구치 겐지나 오슨 웰즈처럼 이미 잘 알려진 영화사의 대가들뿐 아니라, 조셉 폰 스턴버그, 모리스 피알라처럼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미지의 거장’까지 포함해 총 여덟 명의 ‘영화작가’를 탐구하려 한다. 물론 이들과 이들의 작품을 탐구한다는 것은 각 영화 감독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그만의 관점과 열정을 알아보려 한다는 것이고 그가 구축한 영화세계에 대해 진입한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한 영화감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영화의 분석과 영화사의 이해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내용이 아닐까 한다. ‘거장’으로 알려진 영화감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영화가 가질 수 있는 ‘비밀’을 캐내려 한 이들이었고, 또한 이 ‘비밀’의 한계를 넓히려 노력한 이들이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강좌는 우리로 하여금 영화의 ‘비밀’에 다가가게 하는 자그마한 열쇠 하나를 쥐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영화는 가장 큰 파급력을 지닌 매체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면 극장에 가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 혹은 배우의 신작 소식을 확인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한국 영화와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유럽 영화, 제 3세계 영화들은 아직까지 우리에겐 비교적 미지의 영역이다. 그럼 여기서 영화사 백 년의 기간 동안, 세계 곳곳에서 찬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던 명 감독들과 그들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자.


프랑스 - 포스트 누벨바그의 기수, 모리스 피알라[Maurice Pialat]

1987년 칸 영화제에서 <사탄의 태양아래서>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던 감독은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말한다.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알아두시오.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소”. 순간 청중을 침묵하게 만들었던 이 독설가는 바로 포스트 누벨바그의 기수이자, 평생 10편의 영화만을 소작했던 포스트 누벨바그의 거장, 모리스 피알라이다. 이 고집스런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20대를 화가로 보낸 후,단편 작업과 스태프 기간을 거쳐 첫 장편 <벌거벗은 유년기>를 내놓았을 때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누벨바그가 등장한지 10년이 지나서 데뷔했던 그는 공개적으로 누벨바그에 별 관심이 없다고 밝혔지만, 즉흥 연출과 촬영 현장을 중시하고, 배우들로 하여금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누벨바그적인 감독이기도 했다.

그가 심사숙고해서 만들어 낸 10편의 작품 속에선,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야수성, 그리고 메마른 삶이 감정 과잉 없는 건조한 분위기 아래 펼쳐지고 있다. 반부르주아적이고 냉정했던 그의 시선은, 뜨거움을 정제시킨 냉정함이었던 것이다.


포르투갈 -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Manoel De Oliveira]

2009년 전주 영화제에선 <금발 소녀의 기억>이라는 ‘놀라운’ 영화가 상영되었다. ‘놀라움’의 이유인즉,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당시 만 100세를 넘긴 현역 최고령,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였던 것.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점잖게 늙어가는 감독이 있는 반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장난기와 활기가 넘쳐나는 감독이 있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올리베이라이다. 아마도 무성영화시대부터 지금까지 영화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유일한 감독일 듯한 그는, 1908년 출생하여 1942년에 첫 장편 <아니키 보보>를 발표하고, 80세가 넘은 90년대에 <아름다움의 계곡(1993>, <불안(1998)>과 같은 걸작들을 선보이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포르투갈의 전설적인 감독이다.
부유층 가정에서 태어나 찰리 채플린과 막스 린더의 작품을 보고 자란 그는, 젊었을 땐 육상 선수와 카레이서였다고 한다. 또한 데뷔작이 흥행에서 실패하자 가업을 이어받아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등 잠시 외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48세에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이후 거의 1년에 한 작품씩 완성했다 할 정도로 다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영화에서는 권력욕을 비롯한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 포르투갈 특유의 공기와 결합된 혁신적인 판타지 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의 존재야말로 영화 감독이란 운동선수와 달리 은퇴가 필요 없음을 알려주는 최고의 예가 아닐까? 감독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워너비,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의 넘치는 창조력은 2010년 현재도 여전하다.

시인이나 문학가가 나름의 필체를 가지고 있듯 영화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듦에 있어 저마다의 시각과 관점을 지니고 있다. 건조한 시선으로 냉철하게 사회를 묘사하는 리얼리즘 작가가 있는 반면, 따스하고 정감 어린 시선으로 등장인물들을 다독이는 감독이 있고, 환상적인 미장센을 통해 영화가 시각과 공간 예술임을 재확인시켜주는 감독도 있다. 이들은 저마다 작품을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함으로써 영화사를 빛내주었다. 이 강좌에서는 일본, 독일, 이란, 포르투갈, 프랑스, 미국 등 에서 활동했던 ‘세기의 명 감독, 미지의 명 감독 8인’을 살펴볼 것이다

제3강 로베르 브레송, 초월의 시네아스트 중에서
제7강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 창조적 장수의 미스터리 중에서
제8강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단순성의 풍요로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