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혼돈으로부터의 탈주
『노자』는 지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얼굴을 지닌 텍스트로 오늘날까지 읽혀지는 고전이다. 어떤 이에게는 ''신비''와 ''지혜''의 책으로, 어떤 이에게는 이성을 희롱하는 심원한 철학적 ''사유''나 비판적 ''지성''으로, 또 평화의 수호자이자 동양적 여성주의의 보루처럼 여겨진다. 과거의 『노자』와 오늘의 『노자』는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를까?
수강료 : 39,000원 (적립5% : 최대1,950 원)
강사 : 김시천
구성 : 총 14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제작년도 : 2009년 ( 일반화질 )
총 10명 참여
 
유*자 님
변*영 님
곽*준 님

『노자』는 지난 역사 속에서 무수히 다양한 얼굴을 지닌 텍스트로 역사의 격랑을 파도타기하며 오늘날까지 읽혀지는 고전이다. 어떤 이에게는 '신비'와 '지혜'의 책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이성을 희롱하는 심원한 철학적 '사유'나 비판적 '지성'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평화의 수호자이자 동양적 여성주의의 보루처럼 여겨진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는 어떤 근거 위에서 가능하며, 과거의 『노자』와 오늘의 『노자』는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다름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다 소문으로 들은 것이다.
왜? 한문 원전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문 원전을 볼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도 노자는 역사적으로도 합의된 바가 없고, 현재적으로도 합의된 해석이 없다.

노자에 관한 다양한 주석서들을 동반하고 있는 좋은 번역서들이 많이 나왔다. 왕필본만 하더라도 여러 개가 있고 관점본도 최근에 두,세 가지 나왔고. 그 다음에 가장 빠른 노자라고 하는 박정본 노자도 아주 꼼꼼한 번역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도올 김용옥 등이 노자에 관한 책들도 다양한 노자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강의를 통해 노자와 관련된 기존의 “소문의 벽”을 걷어내고 내 눈 속에 혹은 내가 낀 색안경을 벗고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까를 스스로 조율해보자.


『노자』는 지금부터 대략 2300년 이전에 태어난 책이다. 워낙 오래된 책이다 보니, 번역의 곡절도 있고, 시대마다 노자를 읽던 시각도 다르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유교담론이 커다란 상처를 입고, 거기에 대한 대안적 담론으로써 19세기 말부터 노자가 주목을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이후에 도올 선생님이 독특한 어법으로 노자에 대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도올 선생님의 강의 속에서 노자는 서양 철학적인 문제의식과 동양 철학적인 문제의식이 같이 만나는 지점에서 많이 이루어지다보니, 철학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그 방향이 역전된다. 달리 말하면,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 노자를 읽었던 시각은 이른바 서양에서 말하는 철학 학문 분야 혹은 그 방식에 맞춘 노자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쪽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오면서, 한국 담론계에서는 이른바 진보주의 담론이 방향을 잡지 못 하고, 미국을 거쳐서 들어온, 프랑스 철학이지만 사실은 미국의 여과를 거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사상이 거의 전 담론 분야를 장악하게 된다

그 영향 아래 노자의 경우, 그 해석이 역사적인 시각을 통해서 노자의 본 텍스트의 의미 그리고 시대마다 달리 해석되었던 주석서를 통해서 어떻게 읽혀졌나를 보는 관점으로 이동했다.

특히, 90년대 중반에 우리가 흔히 노자의 가장 뛰어난 주석서라고 하는 왕필의 현학, 그 당시에 노자를 해석했던 철학 사조를 현학이라고 하는데, 이 현학적인 사조마저도 상대화시켜서 봐야 한다는 담론이 뜨게 되었다.

IMF가 터지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렵긴 했지만, 그 이전 과거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워졌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신감이 생겼고, 구태여 서양적인 방식이라는 것과는 다른 우리 동아시아 문화의 고유한 무엇. 혹은 역사적인 그 무엇을 단순히 서양의 보편과 대립시키거나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목소리가 처음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원문을 읽어나가면 어려우니까 에피소드 세 가지를 가지고 접근해보자. 이 세가지가 2500년 동안 논란이 되었던 문장이다.


▲ 첫 번째 에피소드 :『노자』22장 哭則全, 枉則直

哭則全, 枉則直 곡즉전, 왕즉직
꼬부라지면 온전하여지고, 구부리면 펴진다 (번역:도올)

 

·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왕필(王弼)'은 이렇게 풀이한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면 그 밝음이 완전해진다.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으면 그 옳음이 드러난다."
· 한대의 주석석 '하상공(河上公)'은 이렇게 풀이한다.
"자신을 굽히고 대중을 따르며 제멋대로 하지 않으면 온전해진다"
'왕(枉)'은 구부린다는 뜻이다. 자신을 구부리고 남을 펴주면 서서히 자기 자신이 저절로 곧아지게 된다.

“꼬부라지면 온전하여지고, 구부리면 펴진다.” 이 말은 나중에 주희가 권모술수의 대명사라고 엄청나게 비판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왕필이 해석했던 부분은 조금은 누그러뜨린 해석이다. 처세술적인 얘기로 다가가는 중간쯤에서 멈추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상공의 주석에서는, 훨씬 구체적으로 니 스스로를 굽힐 줄 알아야 니가 대접받을 수 있다, 살아남을 수 있다. 라는 얘길 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니 자신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굽힐 때는 굽혀야 하고, 나갈 때는 나가야 하고. 하지만 노자는 기본적으로 굽히고 겸손하고 자기를 아래에 두면서 더 나아가고 더 뻗는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정치이론을 갖고 있는 것이 노자라는 책이다.


▲ 두 번째 에피소드 :『노자』28장,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그 숫컷됨을 알면서도 그 암컷됨을 지키면 하늘 아래 계곡이 된다.(번역:도올)

 

· '왕필'의 해석 : 수컷은 앞서는 부류이고 암컷은 뒤처지는 붙이이다. 천하에서 가장 앞서는 것들은 반드시 뒤처지게 됨을 알기 때문에 성인은 자신을 뒤에 두지만 앞서고, 계곡은 사물을 구하지 않지만 사물이 스스로 돌아가고, 어린아이는 꾀를 쓰지 않지만 스스로 그러한 지혜에 합치한다. · '하상공'의 해석 : 수컷은 존귀함을, 암컷은 비천함을 비유한다. 사람은 비록 자신의 '존귀함'과 '드러남'을 안다 할지라도,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즉 수컷의 '강함'을 버리고 암컷의 '부드러움'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마치 물이 깊은 계곡으로 흘러들 듯이 세상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다.


여기서 계곡이라고 하는 것은 작은 시냇물이 모여서 큰 강물로 변하고 바다로 나가는 것처럼, 작은 지류들이 모여서 그 물들이 이루어낸 커다란 물을 뜻합니다. 밑에 많은 걸 거느리고 있는 걸 말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최근의 해석은 여성주의 담론이 뜨기 시작하면서, 페미니즘 담론과 많이 이야기가 되면서, 노자는 양을 중시하는 유가와 달리, 음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졌고 여성적 가치 즉 낮출 줄 알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포용적이어서 노자철학은 페미니즘적이거나 혹은 여성적 가치를 선향한다는 평가받기도 하였다.

 

일단 왕필의 주석을 보면, 여기에는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성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는 자(雌)가 나오지만 남성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옹(雄)도 나온다.
그런데 두 가치에 대해서 태도를 취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성인과 어린아이이다. 따라서 이건 여성적이냐, 페미니즘적이냐 하는 맥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난 줄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혹은 자기를 낮추고 절제하고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웅과 자에 대비시킨 것뿐이다.
그런데 저 혼자 쭉쭉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망하기 쉽고 오히려 자기를 뒤에 둠으로써 앞에 나가는 전략을 말하고 있다.

하상공 해석은 더 구체적이다.
여성적 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을 바탕으로 해서 처신하고 행동의 원칙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치 집단에 속한 것이고 오히려 잘난 척하는 것보다 겸양할 줄 알고 상당히 탄력적으로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이 실질적인 효과를 본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 세 번째 에피소드 : 『노자』1장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다음에 읽을 부분이 노자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노자를 읽어보지 않았던 분들도 한번 쯤 지나가는 말로 들어봤을 법한.....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길을 길이라 말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이름을 이름지우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번역:도올)

 

· ‘왕필’ : “말할 수 있는 도와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사事나 형形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키니 항상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도는 말할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다.” · '하상공' : 경술과 정교의 도를 말한다. 저절로 그러하게 길이 존재하는 도가 아니다. 영원한 도는 무위로 정신을 기르고 무사로 백성을 안정시키며, 안으로 빛을 머금고 광채를 감추며 밖으로 자취를 없애고 단서를 감추기에 '도'라고 일컬을 수도 없다. 부유함, 귀함, 존엄함, 영화로움과 같이 세상에 높이 드러나는 이름을 가리킨다.

 

보통 '왕필'과 '하상공'처럼 해석해왔고, 20세기 해석은 이렇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 말은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서양에서 20세기에 와서 발견된 진리가 2500년 전에 관문을 타고 넘어간 한 노인네가 발설하고 갔다는 것 자체를 부각시키면서 대단한 철학자로. 노자가 서구 사회에서 대접받게 된 중요한 표현 중 하나이다.

제1강 『노자』제대로 읽기 중에서
제5강 『노자』와 페미니즘 1 중에서
제13강 함석헌과 『노자』 중에서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김시천/ 책세상
씨의 옛글풀이/ 함석헌/ 한길사
홍루몽/ 조설근/ 안의운 옮김/ 청계(휴먼필드)
Religious and Philosophical Aspects of the Laoz/ ,Csikszentmihalyi, Mark (Edt)Ivanhoe, Philip J.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