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읽기 Ⅲ
삶, 죽음, 운명
이 강의는 <죽음욕동을 넘어서: 들뢰즈 『차이와 반복』2>에 이어『차이와 반복』2장 ‘대자적 반복’을 완독하는 강좌입니다. 특히 ‘삶, 죽음, 운명’에 대한 들뢰즈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유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세요.
수강료 : 29,000원 (적립5% : 최대1,450 원)
강사 : 이정우
구성 : 총 10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제작년도 : 2008년 ( 일반화질 )
총 6명 참여
 
박*현 님
임*보 님
서*태 님

이 강의는 <죽음욕동을 넘어서: 들뢰즈『차이와 반복』2>에 이어『차이와 반복』2장 ‘대자적 반복’을 완독하는 강좌입니다. 특히 ‘삶, 죽음, 운명’에 대한 들뢰즈의 기발하고 독창적인 사유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세요.

 

 

 

죽음본능은 에로스와 더불어 다람쥐 쳇바퀴의 다람쥐처럼 하나의 원환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죽음본능은 에로스의 반대말이 아니며, 반대로 에로스와 상호적인 관계도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사랑 대신 죽음을 택하진 않는다. 물론 간혹 사랑의 또 다른 형태로 죽음을 택하긴 하지만 사랑의 반대급부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를 보아도 사랑의 안티테제로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닌 사랑의 또 다른 방편으로서 죽음을 이용한 것이다. 물론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어쨌든 죽음은 처음 말한 대로 사랑의 반대급부도 아니며, 상호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랑의 또 다른 형태로서의 죽음, 애증의 도구로서의 죽음, 외사랑이 겪는 시한부로서의 죽음 등 죽음본능은 다만 에로스의 여러 가지 형태들로 나뉘거나 혹은 그러한 ‘죽음들’은 ‘사랑’이라는 말로 귀결되기도 한다. 죽음본능은 다만 또 다른 차원을 종합할 뿐이다.

 

나르키소스적 자아는 기억을 지니지 않는, 지독한 건망증 환자이다. 나르키소스적 자아가 소유하는 것은 단지 죽은 신체뿐이다. 나르키소스적 자아는 대상들을 잃어버리는 순간 동시에 신체도 잃어버렸다.

우리는 ‘욕심 많은 개’의 일화를 알고 있다. 다리 밑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뛰어들었던 우둔한 개. 이 개의 일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대상들(자기 외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기독한 건망증 환자이지만, 우화 속 등장하는 개는 자신의 머릿속에 온통 대상(자기 외의 모든 것)들만이 존재하는 우둔한 탐욕자이다. 물론 앞서 말대로 비슷한 면도 있다.

동일한 점은 둘 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나르시스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 우둔한 개는 자신의 모습인지 모르고 물속에 뛰어 들어갔으며, 이 둘은 모두 자신을 잃어버린 죽은 신체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어쩌면 타나토스, 죽음본능에 이끌려 각기 다른 이야기 속 죽음을 향해 몸을 던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들뢰즈는 유년기의 사건은 오로지 사후적으로만 효과를 미친다고 말한다. 즉 그것은 사후적 지연이라는 것이다. 어릴 적 애지중지 기르던 강아지가 있다고 하자.

   

언제나 나를 충직하게 따르고 애교도 곧 잘 부리는 강아지가 어느 날 앞마당에 죽어 누워 있는 것을 상상해 보자. 그 충격은 어른이 되어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더 큰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아이는 그 어마어마한 충격을 발산 혹은 표현하는 방법을 아직 모르고 있다.

충격의 눈으로 삼킨 그 때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 닭이랄지, 늘어져 있는 동물의 모습이랄지 ……. 그 당시의 상황을 반추 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어른이 되어 보았을 때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밖으로 발산된다. 이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한바 ‘유년기의 사후적 효과’이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는 단순히 진시황이 말하는 불멸의 개념이 아니다. 영원회귀는 말 그대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회귀는 기계적으로 돌아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오늘 집에 들어오고 내일도 집에 들어올 것이고 어제도 집에 들어 왔었다. 집에 들어오는 것은 동일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여 시간(세월)이 다르고, 현관문을 열었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열 내일의 마음 상태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다름’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들어오는 집으로 기계적으로 동일하게 혹은 차이를 애써 피하려 노력하며 완전하게 일치하는 복장, 마음가짐으로 귀가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회귀의 주체는 같은 것이 아니라 차이 나는 것이고, 유사한 것이 아니라 유사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주체는 일자(一者)가 하니라 다자(多者)이고, 필연성이 아니라 우연이다. 게다가 영원회귀 안의 반복은 어떤 파괴를 함축한다. 영원회귀는 자신의 작동방식을 방해하는 모든 형상들을 파괴한다. 그리고 같은 것, 동일한 것, 비슷한 것 등과 같은 선행 전제들을 통해 구현되는 재현적 범주들을 파괴한다.

   

이 강의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의 이야기에 근거한 나스키소스적 자아의 죽음본능과, 프로이트가 말하는 어린 아이의 환상, 들뢰즈의 ‘유년기의 사후적 효과’에 대해 다룬다. 삶, 죽음, 운명이라는 키워드에 맞춰『차이와 반복』2장 6절까지 완독하는 이 강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들뢰즈 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제1강 차이와 차이화 중에서
제6강 문학체계와 구조주의적 메타언어 중에서
제9강 허상과 시뮬라크르 중에서
『차이와 반복』질 들뢰즈
『쾌락 원칙을 넘어서』지그문트 프로이트
『의미의 논리』지그문트 프로이트
『천 개의 고원』질 들뢰즈
『앙띠 오이디푸스』질 들뢰즈
『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앙리 베르그손
『순수이성비판』임마누엘 칸트
『존재와 시간』마르틴 하이데거
『광기의 역사』미셸 푸코
『글쓰기와 차이』자크 데리다
『문학의 공간』모리스 블랑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