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읽는 서양 근현대 철학사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성가곡, 작품번호 478번에서 발췌) 하지만 죽음은 달콤함과 매혹보다는 우리의 인생을 한 순간에 집어 삼킬만큼 아득하고 검은 것이다. 죽음에 대해 응시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철학의 역사는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해 또렷하게 응시하였다. 철학의 역사로 살펴보는 죽음에 대한 독해법.
수강료 : 49,000원 (적립5% : 최대2,450 원)
강사 : 장의준
구성 : 총 8강
교재 : 강의록 제공
수강 기간 : 6개월
지원사항 :
제작년도 : 2016년 ( 고화질 )
총 2명 참여
 
최*연 님
허*용 님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근대와 현대의 주요
철학 사상들에 입문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죽음’이라는 문제 자체가 철학의 근원적 동기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이 강좌의 목적이다.

시지프스의 형벌에서부터 한 대학생의 유서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에 불어닥친 형벌과 고난, 그리고 죽음이라는
파국을 철학적 관점
으로 다시 조명해본다.

사라질 것을 예고하는 것들과 이미 사라진 것들에 대하여!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 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함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음 이들을 데려갈까


-방의경, <아름다운 것들>




이 글은 마리 라포레(Marie Laforêt)의 <메리 해밀턴 Mary Hamilton>이라는 곡을 번안한 양희은의 노래 가사이다. 강사 장의준은 어린 시절 이 곡이 동요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동요이되 왠지 따라 부르다 보면 조금씩 슬퍼지고, 또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아련하게 사라져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렇게 파릇한 동심에 굵은 주름이 파이도록 만들어주는 노래였다고 이 곡을 회상한다. 요컨대, 이 노래가 어린 그에게 들려준 것은 사라짐의 허망함이었을 것이다. 이슬방울들은 사라진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리고 어디로 그것들을 데려가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의문은 그렇게 피어났다.


이 세계 속에서의 삶을 일종의 놀이라고 상상해보자. 어느 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나는 세상이라는 놀이판에 던져졌다. 나이가 든 지금까지도 이 놀이의 참된 규칙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기는 것인지 등에 관해서는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놀이의 참여자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보다 먼저 참여한 이들이든 아니면 나보다 훨씬 늦게 참여한 이들이든, 온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자들은 하나둘 사라져간다.


그리고 물론 이렇게 사라지는 이들 중에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다. 달리 말해서, 마치 우리의 마음이 마이더스의 손이기라도 한 양, 우리가 사랑하는 주변의 이들은 모두 죽어가거나 죽어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저 앎, 즉 놀이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앎에는 나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내포되어 있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리고 어디로 우리들을 데려가는 것일까?


우리는 이 강의에서 죽음의 문제를 철학사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한다. 또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통해서 서양 근현대 철학사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리고 왜 또는 어디로 우리들을 데려가는 것일까? 만일 모든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다면, 그래서 인간의 삶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면, 이러한 유한한 삶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인간의 유한한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영생이나 사후의 삶인가?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의미 있게 죽을 수 있는가? '제일 죽음'(la mort première)은 나의 죽음인가 아니면 타인의 죽음인가? 자살은 허용될 수 있는가? ‘죽음’에 대한 이 물음들은 결국 각각의 나의 지금 그리고 여기(hic et nunc), 즉 현재의 ‘삶’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또 아마도 이 물음은 서양 철학사 자체를 추동한 제일 물음이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제일 물음은 어쩌면 ‘나(moi)’를 위한 물음이 아니라 ‘타인(autrui)’을 위한 물음일지도 모른다고 이 강의는 제시하게 될 것이다.

제1강 어느 대학생의 유서와 카뮈, 데카르트, 스피노자 중에서
제4강 쇼펜하우어, 헤겔 I 중에서
제7강 하이데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