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그리스 비극 일반론

1) 비극의 정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을 어떻게 규정하고 설명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시학』 제6장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비극은 진지하고[심각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하되 각종의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eleos)과 공포(phobos)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런 감정(pathema/pathos)의 카타르시스(katharsis, 정화)를 행한다.”

여기에서 드라마적 형식이란 행위 그 자체를 재현해 보인다는 뜻이다(drama란 말은 동사 drao(=act)에서 왔다). 서술적 형식이란 서사시를 지칭한다. 서사시와 비극은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서사시는 스토리를 전개함에 있어 설명 또는 이야기를 하는 반면, 비극은 드라마의 형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의 정의를 제13장에 가서 조금 더 보완한다. 그에 따르면 비극이란 공포와 연민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불행한 사건, 고통스런 일을 재현하는 것이 비극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재현할 순 없다. 이를테면 악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것은 널리 보아 인류애(philanthopia)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연민과 공포의 대상이 될 순 없다. 다시 말해 비극은 “덕과 정의에 있어 월등하지는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오 때문에 불행에 빠진 인물”이 겪는 고통스런 일을 재현함으로써 격렬한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무언지 모를> 이런 감정(pathos)의 정화를 행한다.

그런데 비극 이론을 전개할 때 어려움은 모든 작품이 이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아 있는 작품만 보더라도 어떤 작품은 공포와 전율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적지 않은 작품은 해피엔딩이다. 예컨대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주인공이 무죄 방면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심지어 소포클레스의 『필로텍테스』 같은 작품은 주인공이 처한 제반 상황이 비극적인지 아닌지 모호하기까지 하다. 이와 같이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비극은 ‘고통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었던 듯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들은 그러한 설명틀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과연 ‘비극’으로 한데 묶어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다양한 편차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2) 비극의 기원과 목적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은 원래 디오니소스 제전 때 불렸던 노래 디튀람보스(Dithyrambos)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디튀람보스는 춤을 위한 리듬과 희극적 대사가 결합된 노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어떤 연유에서 『오이디푸스왕』과 같이 심각하고 비통한 내용을 지닌 비극이 디오니소스 찬가 같은 유쾌한 소극으로부터 유래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많은 해명이 뒤따랐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설명은 없다.

일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는 디오니소스 찬가로 쓰였던 디튀람보스가 ‘몇 가지 결정적인 요인에 의해’ 심각한 비극으로 이행했다고 가정해 볼 수 있겠다. 다양한 작품에서 보이는 편차들 역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비극들 간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비극이 본래 이질적인 것에서 이행하였음을 드러내는 흔적이다.

이 ‘몇 가지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영웅설화의 합류이다. 비극 형식의 출발점은 디오니소스 찬가이지만 비극적인 이야기의 내용을 이루는 것은 전래해 오던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고대에 환각과 도취를 위한 여흥이었던 디오니소스 찬가는 고전기로 전승되면서 점차 아테네 시민들을 교육하고 도야하는 기제로 기능하게 되었다. 시민 교육은 신화적 영웅들의 수난과 위대함을 회상하고 찬미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영웅설화가 디오니소스 찬가와 결합하였다.

두 상이한 전통이 어떻게 하여 합치될 수 있었을까? 그 실마리는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가 차지하는 독특한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디오니소스는 다른 무엇보다 ‘변모의 신’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디오니소스는 ‘하나인 모두, 모두인 하나’(hen kai pem)를 표현하는 신이다. 디오니소스=변모. 이때 변모는 ‘참여’의 뜻이다. 변모=참여는 미메시스(mimesis)의 새로운 양상이다. 서사시도 미메시스였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건조하고 객관적인 진술로서의 미메시스였다. 디오니소스가 보여주는 미메시스는 거리두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서사시적인 것이 아니라 변모하고 참여함으로써 완전히 그것이 되어버리는 행위다. 여기서 드라마가 나온다. 행위함으로 완전히 건너가는 것이다. 영웅들의 생애는 단순히 바깥에서 주어지는 교훈으로 서술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거기에 참여하는 이야기가 된다.

영웅설화와 디오니소스 찬가의 결합은 이와 같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재현’이라는 중요한 전기를 이루었다. 참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창대다. 합창의 형식은 그 자체가 참여를 의미한다. 비극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지평은 코러스이다. 등장 인물들은 코러스라는 지평 위에서 움직인다. 이 코러스는 당시 아테네 시민의 보편적, 집단적 의식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코러스의 합창은 전 시민이 영웅들의 삶과 수난에 더불어 적극 동참한다는 뜻이었다. 말하자면 아테네 시민들은, 마치 디오니소스가 여러 형상으로 변모하면서 자신을 실현하듯, 미적인 도취 속에 영웅적인 인물의 위대함과 숭고에 참여하려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극이 자라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이 일차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은 영웅적 숭고와 위대함이었고, 이것이 후일 비극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리스인들은 영웅적 숭고와 위대함이 어떤 비극적인 것 속에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뒤 애초에 영웅설화와 디튀람보스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던 것에서부터 비극으로 점차 나아갔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인들에겐 본질적으로 고통 그 자체를 재현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인간 정신의 크기와 숭고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인간 정신의 크기는 비범한 정신의 고통 속에서만 나타나는 까닭에 그 재현은 전체적으로 비극의 형태를 띠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같은 작품의 非비극적 요소들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렇듯 그리스 비극은 인간성의 위대함과 숭고를 보여줌으로써 아테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탁월한 정신의 크기를 보여주는 이로 거듭나지 않을 때 그리스 민주주의가 오합지졸들의 형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안고 태동하였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비극 경연을 후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 비범한 고통의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자각이 배어 있었다.

그리스 비극의 본질적 성격

1) 비극성의 요체

다시 우리의 문제는 그리스 작가들이 보여주는 비극적인 것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고통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숭고함, 영웅적 위대함이 드러난다 할 때 과연 그것은 어떠한 고통, 어떤 의미의 비극성인가? 모든 고통은 종류를 불문하고 인간을 숭고하게 만드는 매개가 되는가? 어떤 고통 속에서 인간의 숭고가 계시되는가? 많은 경우 인간의 슬픔은 인간 정신의 숭고를 드러낸다기보다 탐욕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고통이 참된 의미의 비극적 고통이고 나아가 인간 정신의 숭고함이 드러나는 고통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은 과거 한 시대를 지배했던 문학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극적 문학 일반의 바람직한 성격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와 관련, 더욱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위대한 예술과 저급한 예술의 차이는 그것이 드러내는 고통의 깊이에서 두드러진다. 그리스 비극을 보는 것은 이 점에서 각별한 중요성을 더한다. 전형적인 그리스 비극은 굉장히 비참한 이야기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을(또는 읽는 사람을) 울게 하지 않는다. 비참함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손수건이 필요 없는 극. 그리스 비극의 이런 특성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연 비극은 사람을 울려야 하는가? 사람을 울려야 좋은 비극인가? 이 문제는 충분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성의 요체는 주관적으로는 하마르티아(hamartia, 불가피한 과오)이다. 하마르티아는 실수라고도 할 수 있고 성격상 결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다. 그런데 주관적으로 별 것 아닌 그것이 객관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하게 된다. 한편 괴테나 헤겔의 설명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비극성의 요체는 대립(Gegensatz)이다. 불가피한 객관적인 대립이 그 사이 혹은 교차로에 서 있는 개인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다. 니체 역시 비슷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비극이 발생하는 것은 주체나 개인이 보편자의 자리로 격상될 때다. 개인이 국지적인 당파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할 때, 즉 인간 일반의 자리에 올라갈 때, 대립되는 당파성은 주체 내에서 내적 분열을 일으킨다. 개인이 개별적 주체로 존립하지 못하고 찢기고 파열함, 그것이 비극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러한 설명과 별도로 그리스인들이 사유했던 존재의 비극성을 근원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다시 말해 인간성의 숭고를 보여주는 비극성의 본질이 무엇인가가 우리의 물음이다.

2) 그리스 비극성의 역설적 성격

비극적인 것 속에서 정신의 크기를 보는 것은, 말은 쉽지만 현실에선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위대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위대함이 오로지 비범한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깨달음은 그렇게 쉽사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호메로스 이래 그리스 문화와 서양 정신의 본질에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깨달음과 감수성이 놓여 있었다. 이 비극적 깨달음은 인간의 근원적 본질이라 할 ‘죽음’을 통해 최고조로 구현되었다. 죽지 않고 지복(至福) 속에 영원히 사는 신들은 정신의 진정한 크기를 보여 줄 수 없다. 진정한 위대함은 죽어야만 하는 인간 영웅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에게 불가피한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인간 정신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 그것은 호메로스 이래 서양 정신이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략이었다. 칸트의 숭고론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불쾌함, 고통, 혹은 한계 상황을 통해서 발생하는 인간 정신의 무한한 크기,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숭고이다.

기원전 5세기야말로 이 점에서 가장 전범을 보여주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는 흔히들 그리스 역사의 황금 시대라 일컬어지는 시기이다. 어쩌면 전 서양 역사를 통틀어 황금 시대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종 동서양 사관을 비교하여 퇴보사관 대 진보사관이라 말하지만, 공자가 주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인 역시 끊임없이 아테네를 그리워하며 어떻게 하면 기원전 5세기적 삶의 방식 같은 것을 당대에 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는 그 정도로 전범이 된 시대였다. 당시 그들은 외적으로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살아 남았고, 내적으로는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여 최절정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황금시대에 그들은 가장 깊은 어둠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정신의 위대한 점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참된 위대함은 그들이 그렇게 찬란한 빛 가운데서 다른 어떤 시대의 사람들도 보지 못한 깊은 어둠의 심연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비극을 통해 인간 정신의 위대함은 오직 고통의 체험에서 비롯된다는 통찰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처럼 비극적인 역사를 살면서, 우리처럼 비극적인 현실을 살면서, 존재의 비극적 진실을 반성하지 않는 민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둔감하다. 모든 민족은 참된 의미의 비극을 가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자립하게 된다. 그리스에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가 나타났을 때,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나타났을 때, 프랑스에 라신느가, 독일에 쉴러와 괴테가 나타났을 때 그 민족은 문화적 전성기를 이루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이렇게 절망적인 역사 속에서 왜 문학으로서의 비극은 이다지도 드문지 의문스럽기 그지없다. 거꾸로, 위대함을 추구하면서도 우리 시대는 왜 고통 속에서 그것을 길어낼 줄 모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통 없는 위대함, 비극성이 결여된 위대함이야말로 파시즘의 온상이다. 참된 의미의 위대함은 고통을 매개할 때만 가능하다. 고통을 매개하지 않는 크기의 추구는 천박한 파시즘에 빠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뀌어야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이 강의를 통해 우리 문화의 한계를 반성하고 건강한 의미의 미적 이상을 함께 모색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리: 강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