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강의개요 설명 및 그리스 비극의 탄생    

전체 강의 진행 방식 설명

1. 개요: 그리스 비극의 본질에 대한 물음
   
   
2. 자유와 주체성: 그리스 비극의 가장 근원적인 바탕(본질)을 이해한다.
   
   
3. 문학사적 배경: 서사시 → 서정시 → 비극 (→ 철학)으로 전개되는 그리스 문학사를 일별하면서 각각의 장르가 어떻게 구별되며 앞선 문학 형식인 서사시와 서정시가 비극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스며들어 있는지 살펴본다.
   
   
4. 철학사적 배경: 철학적 견지에서 합리성과 비극의 관계를 고찰한다. 합리성과 비합리성(종교성), 로고스(logos)와 뮈토스(mythos) 사이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비극이 어떤 의미에서 정신사에서 대립되는 계기들인 신화적 사유와 합리적 사유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태동했는지 알아본다.
   
   
5. 정치적 배경: 비극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살펴 비극이 가진 정치적인 함의를 탐문한다. 비극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후원을 받음으로써 그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무슨 의도로 정치적으로 후원하면서까지 비극 작품을 양산해냈던가. 단적으로 말해 비극의 발생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완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극은 기원전 5세기의 문학 양식으로 이 때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최고의 완성을 이루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과연 민주주의적 정치 환경과 비극 탄생이 어떤 의미에서 맞물려 있는지 함께 고찰하도록 한다.
   
   
6. 비극의 직접적 기원/태동: 일반적으로 비극의 기원은 디오니소스(Dionysos) 제전과 관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비극은 디오니소스 찬가로부터 직접 유래하였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전율스런 비극 이야기와 디오니소스가 상징하는 술, 곧 도취와 환각, 흥겨움의 정서가 어떻게 하여 동근원적일 수 있는가. 즉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은 디오니소스적인가. 이 관계를 탐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니체의 비극론을 경유하게 될 것이다.
   
   
7. 비극의 형식: 그리스 비극은 역사상 다른 어떤 예술보다 종합 예술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형식적으로 볼 때 그리스 비극은 연극인 동시에 시다. 그것은 단순한 시적 대사가 아니라 음악을 동반한 극시(劇詩)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른 한편, 비극은 시로부터 철학에 이르는 다리이다. 예컨대 플라톤(Platon)의 『대화』편은, 등장 인물들의 대립적인 논쟁을 통해 위대한 인물의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코러스(chorus)만 갖추지 않았을 뿐 비극과 다를 바 없는 ‘작품’이다. (플라톤의 대화를 Dialogia 혹은 Dialektike라고 일컫는데, 비극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논쟁은 Antilogia라고 불린다.) 거꾸로 비극 역시 등장 인물들 사이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치열한 인간정신의 탐구로서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비극은 철학과 시 사이에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대화, 코러스 등 형식적인 면의 관점에서 비극의 성격을 규명한다.
   
   
8. 카타르시스(Katharsis) 개념: 마지막으로 우리는 카타르시스 개념과 관련하여 비극의 보편적인 본질을 탐문해 보고자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출발한다. 과연 이 문제적 개념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던가? 이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 비극이 본질적으로 추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총체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앞으로 강의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소포클레스의 주요 작품을 다루게 된다. 이번 여름 학기 강의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 탄생하기까지 전반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그리스 비극의 탄생

    1) 비극의 역사적 기원

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6세기말에 태동하여 기원전 5세기에 절정에 도달한 문학 양식을 이름한다. 약 1백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이름을 떨치며 주요한 작품을 남긴 그리스 비극 작가로 흔히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꼽는다. 거꾸로, 오늘날 그리스 비극을 얘기할 때 우리는 주로 이 세 작가가 남긴 작품들에 의존한다.
비극의 역사적 기원은 서사시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8세기를 전후하여, 그때까지 구전되어 내려오던 영웅들과 신들의 이야기가 호메로스라고 알려진 한 천재(혹은 여러 사람)에 의해 하나의 일관된 작품으로 집대성되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최초의 문학이자 최초로 문자화된 작품이다. 철학이나 학문적인 텍스트가 등장하기 이전에 최초로 등장한 텍스트가 호메로스의 서사시였던 것이다. 서사시가 태동한 곳은 지금의 소아시아, 터키의 서부 해안인 이오니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리스인은 이곳에 식민도시를 건설해 살고 있었는데 여기서 서사시가 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호메로스에 의해 성립된 서사시는 이후 더 이상 발전적인 전개를 보여주지 않는다. 헤시오도스(Hesiodos)가 『신들의 계보』(Theogonia)라는 작품을 씀으로써 서사시의 명맥을 잇기는 하였으나 호메로스에 견주기에는 문학적으로나 다른 의미에서나 완성도가 떨어진다. 서사시의 시대가 막을 내린 후 곧이어 서정시의 시대가 시작된다. 서정시의 시대는 형식적으로 전혀 다른 문학 시대이다. 서정시의 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에는 짤막한 시편들이 다수 씌어졌고, 사포(Sapho)를 비롯한 많은 이름난 시인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서정시의 시대가 서서히 저문 후 비극이 등장하였다.

    2) 서사시-서정시-비극의 장르별 특성 비교

서사시에서 특징적인 것은 객관성이다. 서사시에는 시적 자아, 즉 주체 혹은 개인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또 서사시에서 중요한 지평은 ‘공간’이다. 이야기는 공간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실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얘기되고 있는 사건이 ‘언제’ 일어난 것인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시간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공간의 지평 내에서 사건이 나열될 뿐이다. 서사시에서는 이렇듯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적 관계가 매우 모호하게 처리되고 있다.
반면 서정시는 주관적이며 개별성이 강조된다. 또 비교적 공간보다 시간이 두드러진다. 서사시에서는 이쪽과 저쪽의 대립(이를테면 그리스인들과 트로이안, 신들과 인간) 속에서 존재의 비극적 진실이 드러나는데 비해, 서정시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대립한다. 말하자면 시간이 비극적 대립이 발생하는 지평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비극에 오면 이상의 것들이 함께 맞물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서사시의 객관성과 서정시의 주관성이 비극에 와서 맞물리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서사시-서정시-비극의 발전 과정에 어떤 내적 필연 과정이 있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비극의 보다 구체적인 기원을 살펴 그것이 어떤 경로로 생겨났는지, 그 시원을 돌이켜 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역사적 인식에 대한 관심만은 아니다. 비극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비극의 역사적 시원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면 거기에 사물의 본질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철학에서 존재의 진리를 물을 때 아르케(arche/처음, 시원)를 물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 비극의 역사적 시원을 물음으로써 우리는 그것의 본질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 비극 이해의 의의

우리는 그리스 비극의 역사적 시원을 물음으로써 그것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과연 그리스 비극의 본질적 성격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이 가진 의의는 그리스 비극이라는 특정한 문학 형태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그리스 비극을 돌이켜 보는 것은 사실상 그리스 문화 혹은 그리스 정신 일반의 정체성과 근본 성격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그것은 왜 그런가? 어느 한 시대 또는 한 민족 정신의 본질적 성격은 그들이 보여주는 고통의 이해방식,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인들이 자기 시대를 살며 숱한 고통을 반추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고통과 삶의 비극적 진실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한 시대의 문화와 그 시대 정신을 이해하는 것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통속적인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에 반하고 감명을 받지만, 정말로 크고 위대한 것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 정신이 체험한 고통의 깊이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것은 그 근저에 놓인 그리스 정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며, 그리스 문화가 통틀어 서구 문화의 근저에 있는 한에서 그리스 문화에 다가가는 것은 결국 서양 정신의 근본에 다가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겠다.

또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비극 일반의 본질적 의미, 의의를 묻는 것과 같다. 그리스 비극은 서양 문학 역사 속에서 최초의 비극이었던 까닭에 이후 모든 서양 비극 작품의 원형이 되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그 형식은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스 비극이 형이상학적-종교적인 반면, 셰익스피어 비극은 다분히 심리적이며 성격적이다. 한편 독일의 시민 비극(레싱 등)은 훨씬 사회적이다. 이들 작품에서 비극적 사태가 발생하는 지평은 인간의 인륜적 사회다. 그 속에서 대립하는 신들이 한 개인을 비극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비극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긴 해도 그리스 비극이 비극 일반의 원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숱한 작가들의 끝없는 개작 속에, 그리스 비극은 후대인들에게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인 동시에 비극의 척도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 비극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결국 비극 일반의 성격을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특히 카타르시스 개념 등을 중심으로 그리스 비극을 거울로 삼아 비극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탐문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본질 파악을 위한 전거

그리스 비극의 본질적 성격을 물을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제한적인 전거는 두 가지, 첫째 작품이요,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다.

  작품
 -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등 세 비극 작가들이 남겨놓은 작품들(굵은 글씨로 된 것이 한글로 번역된 작품들).

  1. 아이스퀼로스(Aischylos)

- Persai(페르시아인들), Hepta epi Thebas(테베를 공격하는 일곱 사람), Hiketides(탄원자들), Oresteia 3부작 Ⅰ. Agamemnon(아가멤논), Ⅱ. Choephoroi(코에포로이), Ⅲ. Eumenides(자비로운 여신들), Prometheus desmotes(결박된 프로메테우스-하나짜리인지 3부작 중 하나인지 불분명. 3부작으로 씌어졌으나 뒤의 두 편은 유실되었다는 설이 유력)

  2. 소포클레스(Sophokles)

- Aias(아이아스), Trachiniai(트라키아 여인들), Antigone(안티고네), Oidipous Rex(오이디푸스왕), Oidipous in Kolonos(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Electra(엘렉트라), Philoktetes(필록텍테스)

  3. 에우리피데스(Euripides)

- Alkestis(알케스티스), Medeia(메데이아), Hyppolytos(히폴뤼토스), Heraklidai(헤라클리다이), Andromache(안드로마케), Hekabe(헤카베), Herakles(헤라클레스), Hiketides(탄원자들), Ion(이온), Troiades(트로이아 여인들), Electra(엘렉트라), Iphigeneia in Aulis(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Iphigeneia in Taurois(타우리스의 이피게네이아), Helene(헬레네), Phoinissai(페니키아의 여인들), Orestes(오레스테스), Bakchai(박코스 여신도들), Kyklops(퀴클롭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사실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제외하고 비극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당대 저서는 거의 없다 하겠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도 비극의 전성기 다음 세대 사람이다. (플라톤 역시 언급을 하긴 하나 산발적이고 비판적인 언명이라 본격적인 연구를 하기에 적합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