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허생전」 바로보기

◆ 허생, 뜻을 펼치고 접고

▲ 「허생전」의 등장인물 스케치Ⅱ.

→ 괴도사 윤영

에필로그인 <후지>에 등장하는 인물. 과거에 환멸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던 20살의 연암이 봉원사에서 글을 읽다가 신선술을 익히고 있는 그를 만난다. 말이 많아 며칠 밤을 걸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허생이야기는 그가 들려준 여러 가지 레퍼토리 중에 하나였던 것. 18년쯤 지나 다시 윤 영을 만났는데, 나이가 80이 넘었음에도 걸음이 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윤 영이 아니라고 잡아뗀다. 잠행자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이름과 얼굴을 감춘 것이다. 그 뒤 연암은 또 다른 곳에서 그에 대한 풍문을 듣는다. 아흔 살이 넘었는데도 힘으로 범을 제압하고 이야기에 능한 노인이 있다는. 연암을 그가 윤 영이리라 짐작한다.

→ 허생의 처, 변 부자, 윤영, 이들의 공통점

이들은 처지는 전혀 다르지만,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통’한다. 지식이라든가 돈, 권력 따위가 포획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에서. ‘허 생 이야기’가 수많은 변곡선을 지닌 매끄러운 공간이 될 수 있는 건 이들 빛나는 조연들 덕분이다. 허 생도 그렇지만, 이들 역시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변 부자의 내공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거니와, 다른 두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윤 영이 연암에게 던진 마지막 맨트는 허 생이 아니라 그의 아내에 대한 것이다. “허 생의 아내 말씀이요, 참 가엾더군요. 그는 마침내 다시 주릴거요.” 억척어멈과 신선술에 빠진 기인이 이렇게 친밀하게 교신할 수 있다니, 참 놀라운 일 아닌가.

▲ 허생, 그 눈부신 카리스마

거금을 거머쥔 허 생은 과실과 말총을 독점해 대박을 터트린 후 빈 섬을 수소문하고 변산의 도적떼들을 그들의 ‘양민적 욕망’으로 설득하여 무릎을 꿇게 한다. 도적 이천 명을 데리고 일년 동안 먹을 식량을 장만하여 빈 섬으로 들어간다. 함께 농사를 짓는 한편, 일본의 속주인 장기도와 무역을 해 은 백만 냥을 거두었다. 그러나 허 생의 질주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땅이 작고 덕이 엷으니 이곳을 떠나련다.”
돈 50만 냥을 바닷속에 던지고 글을 아는 자 모두를 배에 태우고 나온다. 빚을 갚기 위해 변 부자를 만난다. “자네, 얼굴빛이 조금도 전보다 낫지 않으니 만 냥을 잃어버린 모양이지.”라는 변 부자의 실언에 돈 10만 냥을 주며 허 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재물로써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그대들이나 할 일이지. 만 냥이 아무리 중한들 어찌 도를 살찌게 한단 말이야.” “내가 한때의 주림을 참지 못해서 글읽기를 끝내지 못했으니, 그대의 만 냥을 부끄러워할 뿐이로세.”

▲ 연암의 경제관

옛날에 도적 세 명이 함께 남의 무덤 하나를 파서 금을 도적질하고는 저희들끼리 이르기를, “오늘은 피곤한데다 돈도 많이 벌었으니 술 한 잔 해야지 되지 않을까.” 하메, 그 중 한 명이 선뜻 일어나 술을 사러 가면서 마음 속으로 축하하기를, “하늘이 시키는 좋은 기회로구나. 금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는 내가 독차지하는 것이 좋겠지.” 하고는, 술에 독약을 타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자 남아 있던 도적 둘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를 때려 죽이고는 먼저 주식을 배불리 먹고, 금을 반분하려고 했더니 얼마 못되어 둘이 함께 무덤 곁에서 죽고 말았다.

아아 슬프도다. 이 금은 반드시 길 옆에서 굴러 다니다가 또 다시금 딴 사람이 주워 얻게 되었을 것이요. 이렇게 주워 얻은 자는 가만히 하늘에 감사를 드리면서도 이 금이 무덤 속에서 파내어졌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또 앞사람 뒷사람을 거쳐 몇 천 몇 백 명을 독살했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음은 무슨 까닭일까. <역경>에 이르기를,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이로움은 금이라고 끊는다.”

고 하였으니, 이 말은 바로 이런 도적질에서 연유한 말이리라. 어째서 그럴 줄을 알겠느냐, ‘끊는다’는 말은 ‘가른다’는 말이다. 가른다는 것이 금일진대 합심함의 이익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리를 말하지 않고 이익이라고 했은즉, 불의의 재물인 것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도적질일 아니고 무엇이랴. 원하건대 천하의 인사들이 돈이 있다 하여 꼭 기뻐할 것도 아니요, 없다고 하여 슬퍼할 것도 아니다.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앞에 닥칠 때는 천둥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여 풀섶에서 뱀을 만난 듯이 머리끝이 오싹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허생의 이용후생(利用厚生), 그 진실은?

▲ 허생은 무엇을 실험했나?

허 생은 독점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이것을 근대적 경제의 시발점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긴 맞는 말이다. 근대적 경제는 모두 독점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만약 허 생이 하려던 것이 이러하다면 그가 말한 도가 의심스러워진다. 왜 허 생은 독과점을 하였는가?

허 생이 실험하고자 한 것은 당시의 조선 경제가 어떠한 상태인지를 파악하고자 함에 있다. 그런데 실험 결과 허 생의 독점은 조선 경제의 빈약성이 드러냈고 그는 이러한 독점이야 말로 훗날 나라를 망칠 지름길임을 간파하게 된다. 따라서 조선 경제의 낙후성과 편협성이 드러난 마당에 돈을 분산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이 독점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한다고 한다.

▲ 다시 허생 이야기로.

실언을 한 변부자가 그 이튿날 허생의 집을 수소문하여, 자신의 은을 다 가지고 가서 그에게 바친다. 허생은 말한다. ‘내 일찍이 부하려 했다면 백만냥을 버리고 십만을 취하겠는가. 이제부터 그대를 믿어 밥을 먹겠으니 그대가 자주 와서 나를 돌봐주게 그려.’ 결국 허생의 눈부신 카리스마는 돈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을 지녔으면서도 돈의 소유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무심한데 있었던 것이다. 변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온나라 경제를 주름잡은 것도 원천은 바로 그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허생은 이제 논변으로 천하의 형세를 읽어낸다. 앉아서 유목하기. 변부자는 허생에게 어둠에 잠겨 있지 말고 밝은 세상으로 나갈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허생은 거절한다. 당대 정계는 인재를 알아볼 만한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여기부터 슬그머니 텍스트의 지평은 북벌론으로 옮겨간다.
허생은 변씨의 중계로 북벌론의 대표주자인 이완대장을 만난다. 나라를 위한 방도를 구하는 이완에게 허생은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첫 번째 물음.
“와룡선생과 같은 이를 천거할 테니 임금께 여쭈어서 그의 초려를 삼고하게 할 수 있겠느냐.” 고개를 흔드는 이완.
두 번째 물음.
“조선으로 흘러온 명나라의 후예들이 모두 고독한 홀아비로 고생하고 있다는데, 조정에 말씀드려 종실의 딸들을 시집보낼 수 있겠느냐.”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 물음.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간첩을 쓰지 않고서는 이룩하지 못하는 법이니, 국내의 자제를 가려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지식층은 빈공과에 응시하고, 세민들은 멀리 강남에 스며들어 그들의 모든 허실을 엿보며, 그들의 호걸을 결집한 다음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을 수 있겠느냐.’ 이완은 실로 곤혹스럽다. “요즘 사대부들은 모두들 삼가 예법을 지키는 판이어서 누가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겠습니까.” 상황 끝.
사실 이 문답은 주고받은 것이라기보다 이완이 허생의 페이스에 놀아난 일방적 게임이었다. 연암이 제시한 북별의 방도는 집권층으로선 한 가지도 시도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허생은 북벌론의 대의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서도 북별론의 기저를 와해시켜버렸다. 내부 깊은 곳을 잠식함으로써 몸통을 형해화시키는 전략. 이 교묘한 전략은 지배담론의 허위를 폭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떠받들고 있는 무의식의 배치를 변환하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이완에게 있어 이것은 미궁이다. 아무리 나아가도 원위치로 돌아와버리는 미로들로 가득찬 미궁, 하긴 우리 또한 처지는 비슷하다. 풍문들이 엇갈리고, 수많은 변곡선이 이어지는 ‘허생 이야기’ 앞에서 우리 역시 길을 잃고 헤맨다.
허생은 그 미로에 갇혀 안절부절 못하는 이완을 칼로 찌르려 한다. 도주하는 이완. 다음날 허생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