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허생전과 황금대기

◆ 「허생전」과 황금대기

▲ 보석 다섯, 「허생전」
許生居墨積洞/直抵南山下/井上有古杏樹/柴扉向樹而開/草屋數間不蔽風雨/然許生好讀書/妻爲人縫刺以糊口/一日妻甚饑泣曰/子平生不赴擧讀書何爲/許生笑曰/吾讀書未熟/妻曰不有工乎/生曰工未素學柰何/妻曰不有商乎/生曰商無本錢奈何/其妻且罵曰/晝夜讀書只學奈何/不工不商何不盜賊/許生掩卷起曰/惜乎吾讀書本期十年今七年矣/出門而去/

허생거묵적동/직저남산하/정상유고행수/시비향수이개/초옥수간불폐풍우/연허생호독서/처위인봉자이호구/일일처심기읍왈/자평생불부거독서하위/허생소왈/오독서미숙/처왈불유공호/생왈공미소학내하/처왈불유상호/생왈상무본전내하/기처에차매왈/주야독서지학내하/불공불상하불도적/허생엄권기왈/석호오독서본기십년금칠년의/출문이거/

허생은 묵적동에 거했다/ 남산 바로 밑에 이르면/ 우물위에 오래된 살구가 있었다/ 나무를 향한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초가집이 비, 바람을 가리지 못했다/ 허생은 독서를 좋아했다/ 그 아내가 남의 바느질을 하여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고파 울며 말하기를/ 당신은 평생 과거에 나가지 않으면서 독서는 왜 하나요?/ 허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 독서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소/ 그 처가 말하길 공쟁이도 있잖아요?/ 허생이 말하길 공쟁이 일은 본디 배운 바가 없는데 어찌 하겠소?/ 장사치도 있잖아요?/ 장사는 본전이 없는데 어찌 하겠소?/ 그 처가 화를 내며 꾸짖어 말하길/ 밤낮 독서를 하면서 단지 배운게 ‘어찌 하겠소?’ 이것 뿐이요!/ 공쟁이도 않되고 장사도 않된다면 어찌 도적질이라도 하는게 어떻소?/ 허생이 책을 덮고 일어나/ 안타깝구나 내 독서가 본디 십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년이거늘/ 문을 열고 나간다/

▲ 보석 여섯, 황금대기
昔有三盜/共發一塚/相謂曰/今日憊矣/得金多沽酒食來/一人欣然而去/沿道自賀曰天假之便也/與其三分寧專之/其食而還/二盜突起格殺之/先飽酒食將兩分之/旣而俱死塚旁/嗟乎是金也必將宛轉于道左而必將有人拾而得之也/其拾而得之者/亦必將謝于天/而殊不識是金者乃塚中之發而毒之餘/而由前由後又未知毒殺幾千百人/然而天下之人無有不愛金者何也/易曰二人同心其利斷金/此必盜賊之繇也/何以知其然也/斷者分也/所分者金則其同心之利可知矣/不言義而曰利則其不義之財可知矣/此非盜賊而何/我願天下之人有之不必喜無之不必悲/無故而忽然至前驚若雷霆嚴若鬼神行愚草蛇未有不髮疎而立者也/

석유삼도/공발일총/상위왈/금일비의/득금다합고주식래/일인흔연이거/연도자하왈천가지편야/여기삼분녕전지/짐기식이환/이도돌기격살지/선포주식장양분지/기이구사총방/차호시금야필장완전우도좌이필장유인습이득지야/기습이득지자/역필장묵사우천/이수불식시금자내총중지발이짐독지여/이유전유후우미지독살기천백인/연이천하지인무유불애금자하야/역왈이인동심기리단금/차필도적지요야/하이지기연야/단자분야/소분자금즉기동심지리가지의/불언의이왈리즉기불의지재가지의/차비도적이하/아원천하지인유지불필희무지불필비/무고이홀연지전경약뇌정엄약귀신행우초사미유불발소이각립자야/

옛날에 세 명의 도적이 있었다/ 이들은 힘을 합쳐 무덤을 파헤쳤다/ 오늘은 정말 고달프구나/ 오늘 금을 얻었으니 술과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한 사람이 기뻐하며 나갔다/ 그자가 길 위에서 하늘이 주신 기회라면 자축을 하였다/ 셋이 나누느니 오히려 혼자 독차지 하는게 좋겠구나/ 음식에 짐독을 풀어 돌아왔다/ 그러나 나머지 두 도적이 갑자기 때려죽였다/ 먼저 주식을 먹고 양분하려했는데/ 먹은 후에 무덤 옆에서 두 도적이 다 죽었다/ 참으로 애석하구나 이 금이라는 것은 반드시 길옆에서 돌다가 누군가에게 습득되는데/ 습득한 자는/ 또한 반드시 하늘에 감사할 것이나/ 이것은 다만 금이라는 것이 무덤 사이에서 나온 것이면서 짐독의 유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한 앞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독살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천하의 사람 중에는 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왜일까?/ 주역에 이르기를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이로움은 금을 나눈다/ 이것이야 말로 도적에 말미암음 것이다/ 단이라는 것은 나눈다는 것이다/ 그 나눈다는 것이 금인 즉 마음을 합친다는 것이 이로움에 있다는 것을 가히 알 수 있다/ 의로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이로움에 대해서 말한 즉 그 불의한 재산인 것을 가히 알 수 있다/ 이것이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원하건데 천하의 사람들이 금이 있다고 기뻐할 것도 없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눈앞에 황금이 이르면 놀라기를 천둥을 맞은 것처럼 하고 귀신을 만난 것처럼 하고 풀숲의 뱀을 만난 것처럼 해서 머리털이 빠짝 서서 뒷걸음질을 치지 않을 수 없다/

◆ 황금이 위험한 이유

▲ 무덤에서 나온 황금

근대이전의 생활은 자연과의 호흡이 중요하기에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며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황금이라는 것이 매우 위험한 물건으로 취급된 이유는 황금이라는 매체의 속성이 다양한 가치들을 잠식시켜 자신의 유일한 가치로 모든 기타의 것들을 재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신숭배란 황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황금에 대한 집착은 오직 결과로써 주어질 뿐 원인으로 작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물신숭배란 하나의 가치가 다양하던 가치들의 관계들을 굴복시켜 무덤으로 보내고 그 무덤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유일한 가치로 모든 사물들과 관계 맺도록 강요하는 관계의 형식을 의미하며 바로 이점이 황금의 가장 위험한 속성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치만큼의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황금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으로써의 가치 관계를 하나로 단일화 시켜버린다. 따라서 사람들이 황금을 손에 넣은 순간 그들은 오직 유일한 한가지의 세계와 소통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병적으로 그 세계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 「허생전」의 배경

연경(북경)의 옥갑(玉匣 조선사신단의 숙소)에서 연암은 비장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중에 누군가 조선 최고의 갑부 변승업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연암은 이야기의 주체로써 윤영이라는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는 허생전 이야기를 꺼낸다 <열하일기 제18권 옥갑야화에 수록>. 변승업은 바로 허생전의 변부자의 손자라고 한다. 따라서 허생전이란 보통의 소설처럼 작가로써의 누군가가 있고 그 작가가 플롯을 짜는 식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열하일기의 기록 중의 하나로 구술문화 시대의 속성을 보여준다.

▲ 「허생전」의 등장인물 스케치 Ⅰ

→ 허생의 처

바느질품을 팔아 허생을 먹여 살리는 억척어멈. 굶주리다 못해 허생을 몰아 부친다. 사,농,공,상 등의 신분 계층이 분명한 사회에서 글만 읽지 말고 공장이, 장사치 등이라도 해야지 글만 읽으면 어떻게 먹고 사냐며 허생을 몰아붙이다 급기야 도둑질이라도 하라며 극언을 하는 비범한 인물. 조선시대 여성의 삶은 유학의 고정된 이미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적이고 순종하며 억눌린 채 기죽어 살아가진 않았다고 한다.

→ 변부자.

다짜고짜 자신을 찾아와 만금을 빌려달라고 하는 허생에게 선뜻 거금을 내놓는 범상치 않은 부자. 비렁뱅이 같은 허생에게 거금을 내주었다는 사실에 흥분한 ‘하수’들에게 인상적인 말을 한다.
“그는 물질을 기다리기 전에 벌써 스스로 만족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질 않는다면 모르려니와 기왕 만 금을 빌려 줄 바에야 성명을 물어서 무엇하겠느냐”
불신에 기초하기에 엄밀한 계약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근대의 인간관계와 다른 직관을 통해 중간매개를 단번에 주파하는 ‘신체적 감응’에 뛰어난 인물. 그러나 자신의 여러 실험에 한계를 느끼고 돌아온 허생에게 “자네, 얼굴빛이 조금도 전보다 낫지 않으니 만 냥을 잃어버린 모양이지.”라는 실언을 하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난다.

→ 괴도사 윤영.

에필로그인 <후지>에 등장하는 인물. 과거에 환멸을 느끼고 방황하고 있던 20살의 연암이 봉원사에서 글을 읽다가 신선술을 익히고 있는 그를 만난다. 말이 많아 며칠 밤을 걸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허생이야기는 그가 들려준 여러 가지 레파토리 중에 하나였던 것. 18년쯤 지나 다시 윤영을 만났는데, 나이가 80이 넘었음에도 걸음이 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윤영이 아니라고 잡아뗀다. 잠행자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이름과 얼굴을 감춘 것이다. 그 뒤 연암은 또 다른 곳에서 그에 대한 풍문을 듣는다. 아흔 살이 넘었는데도 힘으로 범을 제압하고 이야기에 능한 노인이 있다는. 연암을 그가 윤영이리라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