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연암의 도, 사이, 친구 그리고 창발성

◆ 열하일기의 가이드 맵

▲열하일기의 전체 일정

→1780년 여름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 압록강을 건널 수 없어 의주에서 열흘을 보내는 등 한양에서 압록강까지 한 달간 소요됨.
→건륭제의 7순 행사일인 8월 13일 이전까지 북경에 도착해야 하기에 정사 박명원은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기로 결심함, 구룡정 나루에서 일행은 배를 타고 연암은 배 위에서 통군정 아래 나루를 떠나는 모습 묘사하며 열하일기를 시작함. <도강록>
→압록강을 건너 구련성에서 첫날밤을 보내는데 민가가 없어 노숙을 한다. 압록강에서 중국의 국경선인 책문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완충지대이기 때문.
→단동에서 강을 건너 책문을 거쳐 봉황산을 지나 심양에 도착. <성경잡지>
→심양에서 북진, 의무려산 사이의 요동벌판을 지나감.
→요동벌을 지나 만리장성의 중심이 되는 산해관에 도착함.<관내정사>
→드디어 북경(연경)에 도착하였으나 황제가 만리장성 외곽인 피서산장 즉 열하에 머물고 있어 황제의 총애어린 호출로 고북구 장성을 지나 무박나흘로 강행군을 펼침. <야출고북구기, 일야구도하기: 이는 제22권 산장잡기에 들어있음.>
→북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간의 기록, 열하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열하로 떠날 때의 애처러운 이별의 심사를 그림 <막북행정록>
→열하에서 다시 북경으로 돌아오는 6일간을 기록함. <환연도중록>

▲사신단의 구성
정사, 부사, 서장관, 통역, 의원, 비장, 마두, 구종배 등 약 250명

▲열하일기의 구성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여행의 경로를 기록한 부분<제1권에서 제7권>과 보고 들은 것을 한 가지씩 자세하기 기록한 부분<제8권에서 제26권>으로 나눌 수 있다.

제1권 도강록
6월 24일에서 7월9일까지. 압록강을 지나 요양에 이르는 15일간의 기록. <관제묘기>가 실려 있다.

제2권 성경잡지
7월10일에서 14일까지. 십리하로부터 소흑산에 이르는 5일 동안의 기록. <속재필담><상루필담>이 여기 실려 있다.

제3권 일신수필
7월15일에서 23일까지. 신광녕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9일간의 기록. <장대기>가 실려있다.

제4권 관내정사
7월24일에서 8월4일까지. 산해관에서 연경에 이르는 11일 동안의 기록. <호질>이 여기에 들어있다.

제5권 막북행정록
8월5일에서 9일까지 연경에서 열하로 가는 5일간의 기록. 무박나흘의 대장정이 펼쳐진다.

제6권 태학유관록
8월9일에서 14일까지 6일 동안의 기록. 열하의 태학에서 왕민호, 윤가전, 추사시 등 한족 선비들과 나눈 필담.

제7권 환연도중록
8월15일에서 20일까지 열하에서 다시 연경으로 돌아오는 6일동안의 기록.

제8권 경개록
열하의 태학에서 만난 선비들의 리스트다.

제9권 심세편
조선 선비들의 폐단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글. 주자학, 중화주의에 대한 연암의 관점이 담겨 있다.

제10권 망양록
열하에서 왕민호, 윤가전과 함께 음률에 대해 주고받은 기록이다.

제11권 혹정필담
혹정은 왕민호를 말한다. 왕민호와 그 주변의 인물들과 펼친 종횡무진 필담이다.

제12권 찰십륜포
찰십은 티베트 말로 대승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 그곳에서 판첸라마를 접견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13권 반선시말
반선은 판첸라마를 뜻한다. 티베트 불고의 역사와 원리에 대해 논한 장이다.

제14권 황교문답
티베트 불교에 대해 열하의 선비들과 주고받은 취재록이다.

제15권 피서록
열하의 피서산장에 있을 때 보고들은 바를 적은 글.

제16권 양매시화
양매서가에서 중국 선비들과 주고받은 시화에 관한 기록.

제17권 동란섭필
동란재에 머무를 때의 수필.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간 잡록이다.

제18권 옥갑야화
옥갑에서 비장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역관들에 관한 숨겨진 비화들이 주 내용인데, <허생전>이 그 가운데 끼어 있다.

제19권 행재잡록
청 황제의 행재소에서 보고들은 기록.

제20권 금료소초
중국에서 채집한 의학적 노하우를 모아 놓은 글. 동의보감에 관한 언급도 보인다.

제21권 환희기
열하의 장터에서 본 요술에 관한 기록이다. 스무 가지쯤 되는 기막힌 묘술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제22권 산장잡기
열하 산장에서 쓴 글로, <야출고북구기><일야구도하기><상기>등 쟁쟁한 명문들이 여기 들어 있다.

제23권 구외이문
고북구 밖에서 보고들은 기이한 이야기들을 적은 것이다.

제24권 황도기략
북경 황성의 요소요소를 세밀하게 기록한 글이다. <황금대기>가 여기 실려 있다.

제25권 알성퇴술
황도기략의 후속편. 역시 북경의 이모저모가 담겨 있다.

제26권 양엽기
황도기략의 부록쯤 되는 편. 홍인사로부터 이마두총에 이르기까지 20여개의 명소를 정리해 놓았다.

◆ 연암, 강을 건너기까지

▲ 보석 하나

余謂洪君命福曰/君知道乎/洪控曰/惡是何言也/余曰/道不難知/惟在彼岸/洪曰/所謂誕先登岸耶/余曰/非此之謂也/此江乃彼我交界處也/非岸則水/凡天下民彛物則/如水之際岸/道不他求/卽在其際/

여위홍군명복왈/군지도호/홍공왈/오시하언야/여왈/도불난지/유재피안/홍왈/소위탄성등안야/여왈/비차지위야/차강내피아교계처야/비안즉수/범천하민이물즉여수지제안/도불타구/즉재기제/

내가 홍군명복(수역: 수석 통역관)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대는 도를 아는가?/ 홍군명복이 공손히 말하기를/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말하기를/ 도는 알기 어렵지 않다/ 오직 저 언덕에 있는 것이네/ 먼저 저 언덕에 오른다는 뜻을 의미합니까?(서경)/ 아니야 그게 아니야/ 이 강은 곧 저것과 나 사이의 경계에 있는 것이야/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천하의 사람의 도리와 사물의 법칙은 물의 가인 언덕과 같다/ 도는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곧 저 사이에 있다/

▲ 첫 번째 보석의 배경

구룡정 나루에 이르러 일행이 배에 타자 사공이 삿대를 젓기 시작한다. 배가 빠른 물살을 타고 둥실 뜨자 강변에선 일제히 기생의 배따라기 소리가 터져 나온다. 배는 노련한 사공의 솜씨로 살처럼 내달린다. 연암의 눈에는 절벽 위 통군정의 기둥과 난간이 빙빙 도는 것처럼 보이고, 모래밭에 서서 전송하는 사람들이 금세 팥알같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이렇게 연암은 통군정 아래 나루를 떠나는 모습을 묘사하며 <열하일기>의 첫페이지를 쓰고 있다.
-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중에서-

한양에서 출발하여 한달을 소요하여 압록강 구룡정 나루에 당도한 연암일행은 드디어 도강을 위해 배에 오르는데 연암은 서서히 멀어지는 조선의 뭍을 보며 배위에서 위의 대화를 시도한다.

▲ 『열하일기』 등장인물의 캐리커쳐 Ⅰ

→장복과 창대, 그리고 말

연암의 수행인들, 장복은 하인이고, 창대는 마두다. 술은 입에 못대고, 일자무식인 데다 고지식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환상의 커플, 중화주의가 뼛속까지 침투하여 중국은 ‘되놈의 나라’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종종 어이없는 해프닝을 저질러 연암을 질리게 한다. 갑작스럽게 열하행이 결정되면서 장복이만 북경에 남게 되자,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연암이 그걸 빌미로 이별론을 한바탕 늘어놓는다. 창대는 가는 도중 부상에, 몸살에 거의 죽을 고생을 한다. 덕분에 연암이 창대를 돌보는 처지가 된다.
이 고지식 커플에 비하면 말이 훨씬 지혜롭다. 이름은 없지만, 여행 내내 연암과 한몸이 되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호곡장론><일야구도하기>등 연암의 불후의 명작들은 모두 이 말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래선지 연암의 말 사랑도 지극하다. 종마법에 대한 지식도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고, 말고기 먹은 하인을 혼찌검을 내기도 한다.

→정사 박명원.

사행단의 총지휘자, 연암의 삼종형이다. 연암 같은 무직자가 연행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이 형님의 빽 덕분이다. 근엄하면서도 결단력이 있다. 일정이 빡빡하자 폭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들을 재촉해 임무를 완수한다. 열하에선 판첸라마 덕분에 몇 번이나 곤경에 처한다. 연암에 대해서는 자상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 열하여행 이전의 연암의 생애.

연암은 1737년(영조13) 서울에서 부친 박사유의 2남 2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인 반남 박씨 가는 영조 당시 노론측의 일원으로 명문거족이었다. 연암은 평생 벼슬하지 않고 조용히 산 부친보다 영조 즉위 후 고위직 벼슬을 역임한 조부 박필균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다. 열여섯에 전주 이씨인 부인과 결혼하는데 장인 이보천과 그 아우인 처숙 이양천은 연암의 학문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이보천은 <맹자>를 가르쳐 유학자의 기본 교양을 익히게 하고, 이양천은 사마천의 글을 통해 문장 짓는 법을 가르쳤다. 또한 손아래 처남 이재성은 평생의 지기이자 글벗이 되었다. 결혼을 해서 아내뿐 아니라 훌륭한 스승들과 친구들을 얻었으니 연암은 장가 하나는 잘 든 셈이다.
20세를 전후해 연암은 절친한 친구들과 절간을 찾아다니며 과거시험 준비에 전념한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며칠씩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하게 되는데 이는 비정하고 혼탁한 정치 현실과 양반사회의 타락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면서 자신의 장래 거취 문제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기 때문인 듯 하다. 자신이 과거시험을 통해 진입하려고 하는 세계가 너무 부정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33세 되던 1770년 연암은 생원, 진사를 뽑는 시험인 감시에서 1등으로 뽑힌다. 방이 붙던 날 저녁 영조는 침전으로 연암을 불렀고, 도승지로 하여금 연암의 답안지를 읽게 하고는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어가며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 해 본 시험인 문과를 포기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영조 말년의 혼탁한 정국이 그런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각 정치세력들은 명문가 출신인데다 왕의 총애까지 받고 있는 연암을 어떻게 해서라도 과거에 합격시켜 자신들의 당파로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이를 눈치챈 연암은 번번히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시험장에 나갔을 때는 답안지를 제출하지도 않고 퇴장하기도 했다. 한번은 답안지에 소나무과 괴석을 그리고 나와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연암은 철저히 과거와는 결별하고 말았다.
이후 연암은 서울 전의감동의 한 셋집에 혼자 살면서 많은 인사들과 사귐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심화해나갔다. 특히 당시 중국을 다녀온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등 실학자들과 교제하며 조선의 낙후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청나라의 발전상을 연구하면서 중국 여행의 꿈을 키워갔다.
1778년 연암은 돌연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황해도 금천의 연암동에 은둔한다. 자신의 호로도 사용하게 되는 이 연암동으로 간 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정조 즉위 이후 사도세자 처벌에 찬성하고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했던 인물들이 대거 숙청되었고, 정조의 즉위에 공이 큰 홍국영 일파에 대해 비판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므로 위기를 감지한 친구들(백동수, 유언호등)이 그를 피신시킨 것이다. 연암동은 송도(개성)에서 삼십 리쯤 떨어진 외진 골짜기였다. 동구 좌측의 절벽에 제비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이를 제비바위라는 뜻의 연암으로 불렀다. 여기서 그는 송도를 오가며 청년 문사들을 지도하는 한편 사색하고 집필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은둔은 오래가지 않았다. 1780년 홍국영이 실각하자 연암은 다시 서울로 돌아론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행운이 연암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촌 형이자 영조의 사위인 박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한 특별사행의 정사로 임명된 것이다. 연암은 박명원의 권유에 따라 정사의 개인 수행원인 자제군관 자격으로 숙원이던 중국 여행을 하기로 한다. 당시에는 사신이 아들이나 동생을 개인 수행원 삼아 중국으로 데려가 견문을 익히게 했는데, 이들을 편의상 군인 신분의 수행원으로 분류하여 자제군관이라 불렀다.

▶ 인물소개.

●홍대용［洪大容 1731~1783］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1731~1783). 자는 덕보(德保). 호는 담헌(湛軒)·홍지(洪之).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천문과 율력에 뛰어나 혼천의를 만들고 지구의 자전설을 제창하였다. 저서에 《담헌집》, 《주해수용(籌解需用)》 따위가 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조선 후기의 학자(1741~1793).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아정(雅亭)·청장관(靑莊館). 박학다식하였으며 개성이 뚜렷한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서출(庶出)이라 크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청나라에 건너가 학문을 닦고 돌아와 북학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박제가·이서구·유득공과 함께 사가(四家)라 이른다. 저서에 《청장관전서》가 있다.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조선 후기의 실학자(1750~1805). 자는 차수(次修)·재선(在先)·수기(修其). 호는 위항도인(葦杭道人)·초정(楚亭)·정유(貞). 시문 사대가(詩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박지원에게 배웠으며, 이덕무·유득공 등과 함께 북학파를 이루었다. 시·그림·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저서에 《북학의》, 《정유고략(貞稿略)》 따위가 있다.

▶ 도반(道伴)

불교에서 도반이라는 의미는 도를 함께 수행할 반려자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같이 도를 정진할 친구라는 뜻도 가능하다. 즉 서로 불도를 가지고 정진하는 스님들이 바로 도반이 되는 것이다. 중국적인 말 보다는 불교적인 용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음.

◆ 사이에서 사유하기

▲연암의 코드, 사이 際.

“도는 다른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곧 저 사이에 있다.”

연암은 도를 사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즉불리(不卽不離) 즉 완전히 하나가 된 것도 아니고 또 완전히 분리된 것도 아닌 상태를 의미하는데 연암은 여러 곳에서 이 사이존재를 언급한다.

“밤길에 비단옷을 입고 가는 것과 장님이 비단옷을 입고 낮에 가는 것”
“이는 살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옷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오른쪽에는 검정 나막신을 왼쪽에는 하얀 나막신을 신고 간다면...”
“말똥구리의 말똥과 여룡의 여의주를 비교한다면...”

→사이의 사유를 절충주의로 오해하지 말라.

연암이 말한 사이의 사유는 자칫 절충주의나 상대주의로 오해받기 쉽다. 즉 말똥에게는 말똥이 좋은 것이고 여룡에게는 여의주가 소중한 것이기에 이 둘은 각각 상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연암의 사이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상대주의적으로 사이의 사유를 오해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절충적 사유는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기에 사유의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상대주의, 사이의 사유에 관한 오해와 이해.

사이의 사유는 절대적 척도를 받아들이지 않기에 이는 상대주의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 물론 상대주의는 절대적 척도를 긍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주의는 차이 역시 긍정하지 않기에 사이의 사유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에서 말하는 상대에 대한 인정이란 차이의 긍정에서 오는 인정이 아니라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식의 무기력한 차이의 인정 즉 차이를 참아내는 것에 불과하고 이는 결국 회의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한다는 대한 기독교 총연맹의 현수막이 우리에게 주는 회의감이란 마치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이의 사유란 차이를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가 보존된 상태에서 나와 접속하여 새로운 무언가가 발생했을 때 이를 긍정하며 이 발생을 위해 관계된 모든 항을 긍정할 수 있는 그런 사유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창발성이라고 한다. 창발성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도를 의미한다. 그 발생한 새로운 도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관계의 산물이며 관계된 항 모두의 것이 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의 분업은 관계의 산물인 도를 관계의 주체들에게 주지 않고 빼앗아 창발한 도로부터 관계 맺은 모든 주체들을 소외시킨다. 사회의 시스템이 이러하니 창발성으로서의 친구는 현대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 창발성으로서의 도는 차이를 긍정하나 상대주의로서의 긍정은 결국 회의주로 빠져 아무리 관대해도 차이를 참는 수밖에 없다. 절대주의는 차이를 억압하고 상대주의를 차이를 참아내고 사이의 사유는 차이를 긍정하기에 이때 차이는 친구로 내게 다가온다. 따라서 이 사이의 사유는 친구에 살고 친구에 죽는 연암의 행적과 일관성을 갖는다. 즉 친구란 사이의 사유를 하기 위한 필수항인 동시에 사이의 사유를 한 결과이다.

▶ 창발성(Emergence)

창발성이란 하위수준(구성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수준(전체구조)에서는 자발적으로 출현하는 현상으로서 하위수준의 구성요소들로 인한 상위수준에서의 파급효과를 설명하는데 사용되는 자연과학 이론이다.

▶ 북벌론

인조의 뒤를 이어 효종이 즉위하자, 북벌론이 제기되었다. 북벌론이란 청나라를 쳐 명나라의 원수와 조선이 당한 치욕을 갚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군제를 개혁하고, 조총부대도 만들었다. 1654년 청나라가 조선에 도움을 청해왔다. 당시 청나라의 흑룡강 주변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와 청나라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는 데다, 조총 부대를 시험해 보자는 뜻에서 청나라로 군대를 보냈다. 이를 1차 나선정벌이라고 한다.
1658년 조선은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2차 나선정벌에 나섰다. 조선의 군사들은 러시아인들의 배를 불태우고, 흑룡강 근처의 러시아인들을 모두 무찔렀다. 이로 인해 조선은 자신감을 가졌고, 틈만 보이면 당장 청나라를 치겠다는 의지가 넘쳤다. 그러나 청나라를 나날이 발전했다. 그러나 북벌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군사를 키우는 것보다는 가난한 백성들과 궁핍한 나라 재정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벌론은 효종의 뒤를 이른 현종 대 이르러서야 흐지부지 되었다. 그 뒤 조선은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 데 총력을 다했고, 나라가 안정되자, 당파 싸움이 다시 치열해졌다.

▶ 소중화 사상

소중화 사상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서 나타난 사상이다. 조선시대는 임진왜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임진왜란 자체가 워낙 큰 규모로 장기간 이어진 전쟁이기 때문에 그 전후 시대를 확연히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 전기에 대명 외교는 사대외교이긴 했지만, 쉽게 생각하는 굴욕적인 외교는 아니었다. 사대외교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전통적인 외교방식이었다. 사대외교는 쉽게, 중국 왕조는 명분을 얻고, 주변 국가는 실리를 챙기는 형태의 외교방식이다. 조선은 명에 사대를 하면서 시작된 국가였다. 명분을 얻기 위한 외교적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일방적인 엎드리기식 외교가 아닌 상국이라는 명분을 줘서 체면을 세워주는 대신 필요한 실리를 챙기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외교방법이었다. 사대외교를 마치 준식민지와 같은 외교방식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러한 사대외교는 조선 전기에 큰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왜란 이후 수 십년의 격변기를 겪은 조선 후기에도 사대외교 자체는 큰 변함이 없었다. 다만 명-청 교체기를 걸치며 다분히 실리주의적이던 태도에서 명분론적 태도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조선은 건국의 명분을 얻기 위해서 고려의 많은 것을 부정해야만 했다. 특히 사상을 장악했던 불교를 부정하고 억눌러야 했다. 때문에 나온 것이 억불숭유 정책이었고, 그 영향으로 조선 전기 후반 이후에는 유학자들에 의한 명분을 중시하는 사조가 널리 퍼졌으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쨌든 당시 퍼지기 시작한 그러한 사조는 필요 이상으로 중국 왕조, 특히 이른바 정통황조라고 불리는 한족 왕조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명분론적인 태도가 대중 외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중화사상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타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