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낚시꾼을 규정했던 방식을 본=모델로 삼아 소피스트 규정에 나선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일종의 낚시꾼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낚시꾼이라는 ‘사소한 예’에는 주도면밀한 복선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낚시꾼과 소피스트는 ‘같은 종족’에 속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지금 이방인과 테아이테토스는, 결국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사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피스트들을 한 구석(분할 끝에서 드러나게 될 그들의 자리)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모두 사냥꾼들이 아닌가?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이 물음을 시뮬라크르와 연계시켜 다루게 될 것이다.
이하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규정해 나가거니와, 사실상 명확한 선이해(先理解)를 깔고 나간다. 하나의 항(項)이 두 항으로 분류된 후, 플라톤은 소피스트가 왜 (분류된 두 항 중) 한쪽에 속하는가를 논하지 않은 채 둘 중 하나의 항으로 넘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분할법의 허점으로 지적하고 있으나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은 정확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사유가 함축하고 있는 맥락을 정확히 읽고 있는가? 우리는 뒤에서 이 점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한 측면에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규정한다. 신출귀몰(神出鬼沒)해서 갖가지 흔적들을 남기고 다니는 소피스트들이기에 그런 것일까? 플라톤 자신은 분류를 여섯 가지로 정리해 주고 있으나(어떤 사람들은 일곱 가지로 보기도 한다), 간추려 논한다면 네 가지 분류가 제시된다. (세 번째와 네 번째를 두 번째의 부연으로 볼 경우)
플라톤은 낚시꾼을 분류하면서 그려놓았던 도식을 십분 활용한다. 도식의 여기저기에서 분할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소피스트들의 다양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I. 첫 번째 분할
소피스트들을 사냥꾼들과 동일시하는 선이해를 깔고 나간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분할은 낚시꾼 분할의 6번 단계에서 시작해서 나아간다.

▲ 소피스트술은 일종의 기예 → 획득술 → 포획술 → 즉 사냥
▲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을 사냥하기에 걸어 다니는 동물들의 사냥
▲ 소피스트들은 사냥을 위해 산이나 들판으로 가지 않고 폴리스로 간다는 점에서 길들여진 동물들(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사냥.
▲ 소피스트술은 해적질이나 노예사냥처럼 인간을 획득하는 강제적인 사냥이 아니라 법정에서의 연설, 대중 선동, 사교(社交)를 위해 수사(修辭)를 가르침으로써 젊은이들을 사냥하는 기예 → 설득술
▲ ‘개인 사냥술’ → ① 선물을 주어 유혹하는 구애술 ② 보수를 받는 사냥술
▲ 아첨꾼과 지식 사기꾼. (플라톤은 바로 이 사기꾼들이 소피스트들이라고 말함)

첫 번째 분할에 따르면, 소피스트들이란 거짓 지식을 팔아서 축재하는 자들, 돈 많은 젊은이들에게 아레테(빼어남/덕)를 가르쳐준다고 꼬드겨 돈을 뜯어내는 자들이다. 플라톤의 이 첫 번째 규정은 ‘쪽집게 과외’를 통해 입시생들의 부모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강남 대치동의 과외 선생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또는 미래를 알려준다는 사술(邪術)을 통해 치부하는 점쟁이들, 대중의 영혼을 선동하는 강연을 하면서 막대한 강연비를 챙기는 지식 딴따라들, 선정적인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글쟁이들, … 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소피스트들의 축재(蓄財)는 소피스트들마다 다 달랐겠지만 그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고 한다.

Ⅱ. 두 번째 분할
소피스트들은 한 가지 기예가 아니라 여러 가지 기예에 관련되는 사람들 즉 “변화무쌍한” 사람들이기에 여러 가지 규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플라톤은 두 번째 규정으로 나아간다. 플라톤은 이미 그려놓은 분할의 도식을 계속 활용하면서 논의한다. 소피스트들은 도식의 어느 한 갈래에 얌전히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를 마음껏 돌아다닌다. 마치 스나크처럼. 배제적 선언(選言)(exclusive disjunction)의 연속으로 된 수목평(樹木型) 사고는 플라톤의 소피스트 사냥에서는 무너진다. 소피스트들은 리좀처럼 움직인다. 사냥으로서 파악되었던 소피스트술은 이제 교환술로 건너가 다시 분할된다.

0. 소피스트술이 일단 획득술에 속함을 논했거니와, 획득술에는 사냥술과 교환술이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돈을 주고 지식을 파는 존재들이기에, 소피스트술은 교환술에 속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교환술에서 분할이 시작된다.

1. 교환술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과 매매하는 것이 있다. 소피스트들은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존재이므로, 소피스트술은 매매술에 속한다.

2. 매매술에는 자신이 만든 상품을 직접 파는 직매술과 일반 상품들을 파는 판매술이 있다. 소피스트들의 매매술은 후자에 속한다.

3. 판매술에는 폴리스 내부에서 성립하는 국내 판매와 폴리스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국외 판매 즉 무역술이 있다. 소피스트술은 무역술에 포함된다.

4. 무역술에는 신체에 유용한 것들의 무역술과 영혼에 유용한 것들의 무역술이 있다. 소피스트들은 물질적 존재들의 판매자들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의 판매자들이므로, 소피스트술은 영혼 관련의 상품들을 판매하는 기예이다.(『고르기아스』 517D 참조)

5. 영혼 관련 상품들의 무역술에는 전시술(展示術)/공연술(公演術)과 지식 판매술이 있다. 소피스트술은 “굳이 말한다면”(소피스트들의 지식은 진짜 지식이 아니므로) 지식 판매술에 속한다.

6. 지식 판매술에는 빼어남=덕=아레테를 파는 기예와 다른 기예들을 파는 기예가 있다. 소피스트들은 아레테를 가르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므로, 소피스트술은 아레테를 파는 기예이다.

이로써 소피스트들에 대한 두 번째 규정이 나왔다. 여기에서 소피스트들의 판매 종목이 영혼 관련 상품이라는 것, 특히 아레테라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 규정의 요점이 사냥꾼들로서의 소피스트들이 부잣집 자식들을 찾아다니며 축재하는 부도덕한 ‘지식인들’이라는 점에 있다면, 두 번째 분류의 요점은 장사꾼들로서의 소피스트들이 판매하는 품목은 다름 아닌 아레테라는 점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규정은 매우 짧으며, 사실상 두 번째 규정의 부연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각각 소피스트술은 아레테를 사서 팔거나(세 번째 규정), 아니면 직접 제작해 파는 것(네 번째 규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서 차이는 두 번째 규정이 소피스트들을 무역상들로 규정하고 있다면, 세 번째 규정은 소매상으로, 네 번째 규정은 직매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의 핵심에는 중요하지 않는 대목이지만, 네 번째 규정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줄곧 견지(堅持)되어 왔던 전제, 즉 소피스트술은 획득술이라는 전제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규정에서 사냥꾼이라는 전제가 무너졌다면, 이제 위로 올라가 획득술이라는 전제도 무너지게 된다. 소피스트의 신출귀몰함은 플라톤의 논리 전개 자체에서 증명되고 있는 듯하다.
기예의 큰 분류에서 소피스트술은 제작술이 아니라 획득술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소피스트술이 제작술로 분할될 수도 있음이 시사되고 있다.(물론 이 경우에도 최종 목적은 판매에 있지만) 플라톤은 소피스트술을 분할의 어느 한 가지에만 고정시키지 않고, 각 가지에 배당했을 때마다 의미가 새롭게 규정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