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 사진과 영화의 등장: 시각에서 촉각으로
복제기술은 아득한 옛날에도 존재했지만, 1900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수준에 도달, 이제는 예술을 베끼는 수준을 넘어 거꾸로 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단계에 도달했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과 영화 매체의 영향으로 현대인의 지각이 시각적인 것에서 촉각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보았다. 몽타주의 ‘쇼크’효과, 카메라 앵글의 이동은 그림을 보는 체험을 마치 건물을 지각하는 것과 같은 촉각적 지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예술 수용은 관찰자가 작품 속에 침잠하는 ‘관조’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나, 단절된 화면의 빠른 연속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즉 영화예술은 우리에게 충격효과를 준다.

가령 길거리의 전광판, 화려한 간판과 아우성치는 광고들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몸에 와 닿는다. 시각에서 촉각으로. 매체는 이렇게 우리의 지각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다. 벤야민은 이를 건축물의 수용과 비교한다. 건물의 구조는 ‘관조’를 통해 의식의 스크린에 영사되지 않고, 사용을 통해 ‘익숙함’이라는 형태로 우리 몸에 기입된다. 이렇게 현대는 지각에 새로운 과제를 부과하고, 이 과제는 오직 “촉각적 수용의 주도 하에 익숙함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벤야민은 이 때문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현대의 지각 단련을 위한 훈련'이라 말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 아도르노의 매체론
벤야민이 대중문화를 진보적이라고 칭송한 반면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비판하였다.
벤야민은 복제 매체가 인간의 감각을 발달시킬 것으로 보았으나, 아도르노는 복제 매체를 통한 음악의 감상은 인간의 청각을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외려 퇴화시킬 뿐이라고 본다. 실황으로 듣는 음악은 ‘기대', 그리고 그것의 충족과 좌절로 이어지는 긴장의 연속인 데 반해, 늘 같은 연주가 반복되는 LP판의 감상은 진정한 듣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귄터 안더스의 매체론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표명된 벤야민의 매체론은 TV와 라디오의 등장과 함께 귄터 안더스에 의해 급진화한다. 귄터 안더스 역시 매체가 인간의 감각에 열어주는 미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내린다. 그가 보기에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것은 진짜로 보는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떠나는 여행은 결코 여행이 아니다. 텔레비전은 허구이면서 동시에 사실인, 즉 존재하면서 실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 매체를 통한 지각은 외려 실제의 감각을 퇴화시켜, 시청자로 하여금 텔레비전이 입에 넣어주는 이미지만 오물오물 씹어먹는 정신적 구강기의 수준으로 퇴화시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