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 상상력, 정념의 배제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 (1596～1650)

데카르트는 합리주의 정신 하에 감각과 상상력을 배제하고, 정념을 통제하려 한다. 그에게 감각은 “오류의 근원”이며, 상상력은 판단을 그르치는 그릇된 습관으로 여겨진다. 정념의 경우에는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올바른 목적에 사용하도록 통제할 수가 있다고 믿었다.

데카르트가 감각을 “오류의 근원”으로 보는 근거는 우리의 일상적 시각적 체험에 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둥글게 보이던 종탑이 가까이 보니 4각으로 보이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오류논증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종탑을 둥글게 지각하는 것도 우리의 감각이지만, 그 종탑이 실은 4각이라는 사실도 결국 감각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그는 밀랍을 예로 들어 감각의 한계를 지적한다. 밀랍은 이리저리 만질 때마다 형태가 달라지고, 오래 지나면 향도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 촉감도 달라진다. 이렇게 감각의 자료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우리는 이를 변함 없이 밀랍으로 인식한다. 시각도, 후각도, 촉각도 우리를 기만하나, 이성은 거기에 속지 않고 그게 밀랍이라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성과 상상력을 대립시킨다. 철학에서 상상력은 의식의 스크린 위에 표상을 떠올리는 능력으로 규정된다.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상상력은 사물들 사이에 불가능한 결합을 만들어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존재하는 양 오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나친 정념 역시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적 행위자가 되는 것을 그르칠 수 있다. 때문에 이 역시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렇게 이성에 감각, 상상력, 정념을 이성에 적대적으로 대립시키고, 이것들의 미혹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힘을 ‘이성’에서 기대한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하나의 철학적 기획으로 바라볼 때, 여기서 우리는 역으로 17세기만 해도 평균적인 서구인들은 훨씬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여전히 정념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고전주의 예술의 합리성과 명확성
고전주의 예술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철학을 그대로 예술에 옮겨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고전주의 예술은 감각적이지 않은 이성적인 예술이다. 그 안의 모든 사물은 명석판명함의 인식 이상에 따라, 그 자체로 뚜렷하며 다른 사물과 명확하게 구별된다. 이성은 ‘빛’으로 표상되기에 화면 전체는 그림자 속에 묻히는 부분 없이 밝게 채색되어, 추측이나 다의성이 개입할 여지를 없앤다.

* 고전주의 회화

<마라의 죽음>, 다비드	<샘>, 앵그르

◆ 고전주의 회화: 촉지적, 시각적
고전주의 회화는 그런 의미에서 ‘촉지적/시각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고전주의 회화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을 모델로 한 것으로, 마치 조각작품을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한 촉지성을 구현하고 있다.

◆ 바로크 회화: 회화적, 시각적
반면 바로크의 작품은 드로잉보다 색채효과를 더 중요시하며, 드로잉의 선보다는 핀젤의 색면효과에 주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크의 작품은 회화적, 혹은 시각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이지적’ 시각과 ‘감각적’ 시각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다.

* 바로크 회화

루벤스, <레우키포스 딸들의 납치>

◆ 형과 색의 대결
17세기에 벌어진 푸생과 루벤스파의 대결은 바로 회화를 지배하는 감각을 둘러싼 논쟁으로 볼 수 있다. 푸생을 추종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르네상스의 대가들 중에 라파엘을 전범으로 삼았고, 루벤스를 추종하는 바로크 취향의 비평가들은 르네상스의 색채주의자 티치아노를 전범으로 삼았다. 이 논쟁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 아카데미 내에서 “회화에서는 형과 색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절충적 해결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