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혁명과 알뛰세르의 자기비판: ‘이론적 실천’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

- 「철학과 과학자들의 자생적 철학」(1967~1974),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1970),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1968), 「레닌과 철학 강의」(1972), 「자기비판의 제요소」(1974)

- 초기 저작들을 이론주의적 오류라 평가하면서 인식론적 단절에 대한 해석을 자기비판함. 과학사는 인식론적 단절의 역사이지만 철학은 인식론적 단절로 특징지을 수 있는 역사를 갖지 않는다. 철학에서는 새로운 형태를 획득한 낡은 이념들, 때로는 정말로 새로운 내용까지도 획득한 낡은 이념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철학에서는 혁명만이 아니라 반혁명도 가능하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

▲ 이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대중운동 속으로의 수입론에 대한 알뛰세르의 입장변화를 낳는다. 초기에는 카우츠키에 영향받은 레닌의 테제를 환영하면서 부르주아 과학과 프롤레타리아트 과학의 구분을 거부했으나 후기에는 맑스가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활동가들과 대중에 의해 교육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환자에 의해 교육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론과 과학이 혁명적 성격을 지니려면 대중운동에 의해 교육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3. 1980년대 ~ 1990년대 : 우발성의 유물론

▲ 후기 알뛰세르의 계기들
위기를 혁명의 긍정적 요소로 전유하기.

- 마키아벨리의 고독

“그 조건이 전적으로 부재한 상황에서 새롭게 사고하기”. 이것이 마키아벨리적 계기이다. 알뛰세르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뒤집는다. 모든 조건 혹은 가능한 모든 조건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새로운 사고. 모든 조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혁명을 하겠다고 시늉하는 것, 특정 상황에서 수용될 수 없는 혁명적 진실만을 말하는 도발. 그것은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이론적 정의definition이다. 따라서 역사적 단절을 꾀하는 고독은 “창조적인 시기상조”가 된다. 이 ‘여우’의 형상을 통해 이전의 알뛰세르의 이론적 작업은 완전히 역전된다. 이론은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열과 역설, 공백과 위기의 지점을 드러낸다.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혁명적 실천을 전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어떠한 조건의 공백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첫째, 철학은 실재적인 것을 사고한다는 전통적 견해를 파기하는 것. 이것은 관념론을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유물론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조건의 공백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은 몸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 우발성의 유물론(Aleatory Materialism)

- 마키아벨리와 우발성의 유물론: 철학적 사고의 역사에서 두 가지 거대한 전통이 충돌한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적대적 전통은 관념론과 유물론이 아니다. “우발성의 유물론”과 그 외의 전통들이다. 권력에 대한 관념론적 정당화와 해후의 유물론은 서구사상의 역사 속에서 충돌해왔다. 에피쿠로스 이래로 이단과 투쟁을 육성해온 오래된 전통(우발성의 유물론)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마키아벨리부터이다. 이 때부터 철학과 과학, 인문학에서 이데올로기적 충돌이 개시되었다.

- 알뛰세르의 반변증법, 반인간주의, 반역사주의: 이론적 실천을 조직하는 유물론 철학은 반변증법적, 반인간주의적, 반역사주의적 견해를 지지한다. 변증법은 관념론의 한 형상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의 위장일 뿐이고, 인간주의는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적들과 싸우기 위해 우발성의 유물론은 역사를 사실성(史實性, historicity)으로 드러내며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로 재정식화한다.

- 우발성의 유물론에서 “모든 결정은 현존하는 경향적 상수의 우연적 변수로서 나타난다”(우연적 변수 - 역사적 행위, 경향적 상수 - 코뮤니즘의 존재론적 내용). 철학과 정치의 우위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서 틈새와 주변에서의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대중운동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이행의 단선적 개념으로부터 해방시켜 보자. 존재의 우위, 실천으로 현존하는 코뮤니즘의 우위에 기초하도록 하자.

▲ 정치와 주사위 던지기, 그리고 코뮤니즘

- 포이에르바하는 모든 새로운 철학은 새로운 단어를 통해 자신을 표명한다고 썼다. 그에게 이것이 “인간” 개념이었다면 알뛰세르에게 새로운 단어란 운(alea)이다. 존재의 형상으로서 보편적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적인 것을 창조해내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적 가치가 드러난다. 주사위 던지기에서 결정보다는 던지는 것이 먼저이다. 던지는 것이 존재를 결정한다. 예정성, 규정성, 최종성 없는 던지기. 여기서 던지는 것은 운이다.

- 후기 알뛰세르의 사고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 정치적인 것을 기초로 한다. 탈근대사회에서 ISA들은 하나의 이데올로기 사회를 구축한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비었으며, 의미 없고 완전히 무이다. 즉,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전체주의는 깨지기 쉽다. 이 사회의 존재론적 특성은 우연적인 것이다. 그 한계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저항과 힘의 존재가 발달한다. 저항과 코뮤니즘의 모색 또한 이데올로기의 기초 위에서만 전개되고 이 지점에서 그것의 존재가 확인된다.

▲ 후기 알뛰세르와 ‘우발성의 유물론’의 성과와 한계

크게 보아 후기 알뛰세르는 구조주의에서 자율주의로 기울어지는, 아니 구조주의 속에서 자율주의를 열어주는 태도를 보여준다. 생산관계에서 생산력에 문호를 개방한다.

- 원자(맑스), 역능(스피노자), 비르투스(마키아벨리)를 스쳐지나간다. 알뛰세르는 이것들을 승인하지만 오직 맑스에게서는 원자보다 그것의 편위가, 스피노자에게서는 역능보다 제3종의 인식(이데올로기)이, 마키아벨리에게서는 비르투스보다 운이 더 중심적인 관심사가 된다. 즉 초기 알뛰세의 강한 회피와는 다르지만 이 시점에서도 존재론은 약하게 회피된다.

- 편위, 불안정성, 마주침, 우발성은 존재론의 부재 혹은 회피로 인해 형태론으로 치우친다. 역사를 발생으로 설명하지만 그 발생의 힘에 대한 규명이 없음으로써 역사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유발한다. 이론주의는 후기 맑스주의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자율성과 능동성이 자리 잡을 이론적 공간이 여전히 좁다. 실제로 우발성은 관조적으로 혹은 이론주의적으로 파악된 자율성, 능동성이다. 이것은 혁명적 실천, 구성적 실천, 능동적 탈주를 적극적으로 이론화하지 못한다.

- 존재론의 회피는 ‘마주침의 응고 이후에 오는 구조의 우위’라는 생각을 용인한다. 물론 그는 필연성과 법칙성의 잠정성, 그것들의 우발성에의 의존을 강조함으로써 그 구조의 우위를 유연화하지만 구조의 우위의 해체를 우발성의 결과로 돌림으로써 실천적으로는 구조의 우위를 보존하게 된다. 이 구조의 우위 속에서 삶 속에 우발적인 활력들의 능동성, 구성의 노력이 경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