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미래
서울의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불확실하여서 말하기 어려운 주제이나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미래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서울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할 때 결코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고자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앞으로의 서울의 변화에 대해서 가져야 할 태도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현재까지 우리는 미래를 얘기할 때 떠오르는 생각에는 유토피아와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3가지의 중요한 담론이 있다.
첫째, ‘어떠한 사회를 꿈꾸는가’와 같은 사회에 대한 판단
둘째, ‘어떠한 사회가 전제되었을 때 그 속에서 어떠한 삶을 원하는가?
셋째,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 어떠한 전제를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미래에 대한 전망들을 보면 대체로 그것은 수정주의나 개량주의로써 본격적으로 바꾸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불편하거나 원하지 않은 부분들을 서서히 개량해 나가는 개념이 있고, 또 하나는 근본적인 것을 바꾸는 다시 말하면 혁명적인 생각들이 있다.

‘현재가 곧 미래이다’
미래는 항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으로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것을 역동적으로 앞당기기 위해서는 태도가 분명해야 하는데 수정주의든가 혁명적이든가가 될 수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둘 다 부정하며 현재가 곧 미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의 개념에 관한 한 늘 <현재>만 있으며 현재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숨겨져 있다.

반복과 차이―나의 태도
반복과 차이는 본인이 건축을 하는 태도이다. 반복 속에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직선상의 삶을 사는데 항상 현재 속에 있으며, 그 현재 속에는 늘 과거가 녹아 있고 미래가 앞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도시와 사람들의 삶을 보는데 사람들은 미래라고 하면서 은근히 많은 것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이 도시가 가진 현재적인 가치 중의 하나, 즉 미래라는 것은 사람들이 도시 속에서 일상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일상성의 감옥
일상성은 반복되고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떠날 수 없는 감옥 같은 것이다. 일상성이 승리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은 천만 팩토리얼(factorial)의 공간이다. 그것은 천문학적 숫자의 공간의 중첩을 얘기하며 그것이야말로 도시가 가지는 매력이자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시는 엄청난 구성인자들의 복합체이므로 우리는 도시의 그 많은 사람들의 개개의 행위를 다 읽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도시가 어떻게 변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서울은 알 수 없는 곳이다.

도시―익명성의 공간
도시의 매력 중의 하나는 익명성인데 서울을 장소로 보는가, 경관으로 보는가, 사람을 주체로 보는가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지는데 우리는 서울을 손아귀에 쥔 것 같은 환상의 충족감에 산다. 과거 서울은 사람들에게 서울에만 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으로 충만한 도시였다.

서울시민은 현재 수많은 지방민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등지로 올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은 어딘가에 정착해서 사는 것보다 늘 유랑하고 해체하며 사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명절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가는데 그것을 생각해 보면 ‘장소’라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데 그들은 늘 마음 속의 고향을 생각하며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지 못하며 늘 여기저기를 이동을 하면서 살아간다.

가족 이기주의―공동성의 해체
따라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공동체의 가치는 가족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은 때로는 가족 이기주의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 사회가 탈산업화되어 간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공동성을 해체하는 하나의 징조이다. 다시 얘기하자면 서울은 공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면서 점차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인 서비스업 위주로 하면서 네트워크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 포디스트 사회: 생산 과정을 면밀히 관찰해 노동자를 요소요소에 배치해서 생산의 과정이 체인과 같이 맞물려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로서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사회
- 포스트-포디스트 사회: 생산 방식에서 다품종 소량 생산을 취함

포스트 포디스트 사회
단국대 조영래 교수는 한국 사회를 포스트 포디스트사회로 규정하고 그 대표적인 예로 <남대문>이나 <밀리오레>를 들고 있다.

‘왜 사는가’를 묻지 않는 사회 시스템
이에 대한 질문이 사회는 어떠한 시스템에 근거해서 작동하는데 그것이 어떠한 삶의 질을 가져올지는 상상하지도 못한 채 그냥 시스템만 가동시키는, 즉 계속 건설하고 시스템을 작동시켰지만 왜 사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질문을 던져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공간에 대해서 얘기할 때 조직과 효율에 대해서만 얘기해 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시 문제를 얘기할 때 모든 복합적인 요소들은 생략한 채 오직 교통 문제만 있는 것처럼 오도해 왔다.

주거 환경의 획일화
세상은 다원적으로 변하나 주거 환경은 점점 획일화된다. 우리나라 주거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아파트 정책>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200만호 주택을 건설할 때 서민을 위한 아파트 정책이 아닌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 정책을 폈으며, 결국 서민을 위한 주택 건설은 실현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개성 없는 아파트
이런 문제점의 가장 큰 이유는 정경(政經) 유착이라고 할 수 있다. 정경 유착으로 전국 대부분의 아파트는 대기업에 의해 지어지고 있으며, 개인의 개성은 깡그리 무시된 채 사람들을 자신들의 상품화된 이미지 속에서 살도록 한다.

모델하우스의 기능
모델하우스는 일종의 사람들을 환상 속에 길들이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도시를 건설할 때 땅을 나눠가진 대기업들이 부족한 자금으로 아파트를 짓기 위해 조감도나 모델하우스와 같은 것을 먼저 만들어 사람들과 계약한 후 그 돈으로 아파트를 짓는다. 즉 서민들의 돈으로 도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모더니즘의 시작
본인이 보는 한국의 모더니즘의 시작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서울을 지배하기 시작한 때”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이 사는 도시에서 자기들이 사는 삶의 모순을 스스로 체득하고 표현을 시작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토지의 사유와 건축의 공공성
법과 제도는 있으나 장소 만들기와 계획은 부재하고 그 후속적인 보살핌도 부족하여 도시라는 것은 전반적으로 엉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 도시의 흔적을 다시 한번 반성하고 어떻게 탈식민지 시대로 도래할 것인가 하는 큰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좋은 건축, 좋은 도시 만들기
결국 좋은 건축 좋은 도시 만들기는 오직 “성찰적인 시민”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과거 르 꼬르뷔제가 구상한 “빛나는 도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도시에 시간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은 데 있다. 도시는 늘 변화하고 있다.

소결론
도시에는 <보살핌>과 <이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이타적인 생각만 한다면 탈산업사회, 천민자본주의, 정치권의 정경 유착이 남긴 공공성 상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서울의 미래는 사람들이 서울에 살기로 결정을 해서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로 숲을 만들 결심을 하는가 안 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어느 누구도 만들어주지 않는다.

◆ 다음 강의
제15강 도시의 잠과 건축의 꿈―서울의 미래를 찾아(2)

정기용 / 건축가, 기용건축 소장

-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 이란의 경우
- 서울의 경우
- 과거 장소성의 의미 철거
- 도시 파괴=역사 파괴: 종로 가회동 한옥촌의 경우
- 비인간적 행위의 일상화
- 불량 주거 재개발
- 서울 광화문 거리의 경우
- 서울의 미래, 무엇이 중요한가: “어떻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곳을 비워내는 것인가”
- 용산 미군기지와 국립중앙박물관 건립 논란
- 대중의 모뉴멘트(Monument, 기념물) 필요
- ‘삶의 질’ 건축 중요
- 전통 건축이 아니라 <고전>이다
- 보살핌의 마음
- 세종로의 인은 누구인가
- 통일 대비하는 서울의 미래 설계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