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도덕과 윤리

윤리에 대하여

윤리학 (ethics)의 어원 : 그리스어 에토스 (ethos)에서 유래. 에토스는 습관, 풍습, 관습의 의미를 갖는 에토스 (?θο?)와 윤리적 성격의 의미인 에토스 (?θο?)의 두 가지 어원이 있다. 시민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했던 그리스인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예절이나 삶의 양식으로서의 노모스(Nomos)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스인들은 윤리적 삶과 이성에 근거한 덕 (실천)이 행복을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말하는 윤리학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행위 해야 하는가”의 가치규범과 관련되지만, 삶에 대한 관조와 판단이라는 이성적 측면도 포함한다. 본 강좌는 윤리학자체나 윤리적 이론이 아니라 그것의 기원을 살펴보면서 정신분석의 윤리와 철학적 윤리의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것이 목적이므로 가장 대표적인 철학적 윤리학의 두 입장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겠다.


1. 목적론적 윤리학 :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을 독립된 분과 학문으로 인식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윤리학의 목표는 인식이 아니라 행위이다. 그러나 올바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 실천적 지혜가 겨냥하는 것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로 완전성과 자족성을 갖춘 상태로 최고의 선을 전제하기에 목적론이라 불린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쾌락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기능과 잠재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이상적 상태로 선의 개념과 연결된다. 목적론적 윤리학은 윤리적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와 그 지향점을 윤리에서 강조한다. 삶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이다. 쾌락주의자는 ‘쾌락’ 혹은 ‘행복’을 말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 (완성)을 최고의 목표 혹은 순수형상으로 설정한다. 행복이란 모든 기능과 잠재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상태를 말하며, 그것은 선으로 완전함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형이상학적 질서(목적론)에 기초하고 있다.
‧ 영혼의 첫째 기능은 영양과 생식 기능, 둘째 기능은 감각과 욕구기능, 셋째 기능은 이성과 사유. 인간의 인간다운 기능은 이성과 사유이다.
‧ 4 원인설 (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 과 가능태 (dynamis)와 현실태 (energeia). 자연은 그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4원인에서 특히 질료와 형상이 중요한데, 질료(hyle)가 잠재적 원리라면, 형상(eidos)은 능동적, 결정적 원리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개념은 그의 목적론 철학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씨앗이 질료라면 나무는 형상이다. 나무가 질료라면 통나무집은 형상이다.
‧ 윤리적 덕과 지성적 덕 : 윤리적 덕을 쌓기 위해서는 중용 (moderation)을 실천해야 한다. 예 :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간으로서 용기란 덕.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적 덕보다 지성적 덕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데 후자가 이성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이다. 윤리적 덕은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


2 의무론적 윤리학 : 칸트의 도덕의지
칸트는 인간이 이성을 통해 도덕법칙을 스스로 제정하고, 부과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입장은 도덕적 의무론의 전형이다. 자연법칙이 자연적 인과성에 따라 결정된다며 도덕법칙은 주체의 자유와 순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의무론은 어떤 행위가 일정한 도덕규칙을 의무로서 준수한다면 그것이 산출하는 결과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옳거나 의무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의무(sollen)란 도덕 법칙에 대한 무한한 존경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서 필연성을 띠며 선의지라 불린다. 선의지는 의무 때문에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하고 선하기에 강제되는 것이다. 또한 선의지는 무조건적, 절대적, 보편적이다. 이러한 선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도덕 법칙이다. 칸트는 이를 무조건적인 명령을 의미하는 정언명법 (categorical imperative)으로 정의한다. 정언명법은 가언명법과 대립되는데 칸트는 이로부터 윤리적 행위에서 순수성과 선의지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한 행위가 옳을 필요충분조건은 그 행위를 하는 행위자가 도덕 법칙을 자율적 선의지에 입각해서 준수하는 경우다.”
칸트는 도덕을 행복과 무관한 것으로 보았으며,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결과가 아니라 행위자의 준칙에서 찾았다. 준칙이란 행위의 주관적 원리지만 도덕 법칙에 따르는 한 그것은 일반적인 규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규칙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 법칙이 정념이나 주체의 이익이 배제된 순수한 형식적 원리에만 충실해야 한다. 칸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보편법칙 : “네 의지의 준칙 (maxim)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 목적자체의 법칙 :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을 항상 목적으로 다루고 결코 수단으로 다루지 말라."
‧ 목적왕국의 법칙 : "너의 준칙을 통하여 너 자신이 항상 보편적 목적의 왕국의 법칙을 세우는 구성원처럼 행위하라.“
칸트의 윤리적 입장은 최상선이 의무지만 그것은 선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부과되는 것이고,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너는 해야 한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의지는 초월적 이념인 자유에 의해 정당성이 보장되는데, 자유는 원인의 절대적 자발성 (eine absolute Spontaneitat)으로 자연의 인과성에서 벗어나 있다.

☞실천이성의 영역들
이론이성(die theore-tische Vernunft)과 실천이성(die praktische Vernunft)의 관계에서 이론이성이 경험적 영역에 속해있고, 경험적인 것에 의존함에 반하여 실천이성은 초경험적인 자유와 이념인 가치의 편에 선다. 칸트는 윤리적 당위성에 의거해 신과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 칸트는 실천이성의 영역이 순수이성의 영역을 포괄한다는 전제하에서 도덕법칙과 전제들을 초월성에 연결시킨다. 완전히 이성적 존재(영혼)가 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 최상선이 의무라면 그것은 가능해야 하므로 영혼의 불멸이 요청되어야 한다. 또한 완전선을 보증하는 최고의 존재자인 신이 존재해야 한다. 착한의지의 소유자는 복을 받아야 되고, 악한의지의 소유자는 고통을 받아야 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완전선의 경지기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한히 예지적인 존재인 신의 실재가 요청된다. 칸트의 도덕법칙은 사드의 주이상스 원칙과 구조적으로 동일한데 둘다 개인적인 쾌락, 이익, 행복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고통을 낳기 때문이다.


3 정신분석의 윤리이론
☞ 프로이트에 따르면 각 개인은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문명과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이에 저항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문명은 언제나 본능을 억제하려고 하며, 이를 위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윤리적 심급인 초자아이다. 사실상 금지를 통해 인간은 동물적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문명은 본질상 억압적이다. 그러나 초자아는 감시와 처벌의 기능 뿐 아니라 이상적 가치의 대변자로서 제시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양면성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효과를 윤리적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욕망에 대해 외재적이면서 억압적 효과를 발휘하는데 프로이트는 초자아를 윤리적 심급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죄책감(방어작욕)이 중요하다.
☞ 라캉은 전통적 윤리학이 목표로 삼는 선이나 행복은 욕망의 길에 방해물이라고 말한다. 전통적인 윤리는 사람들에게 욕망을 잠시 유보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정신분석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욕망을 도덕의 영역에서 제외했다. 라캉은 욕망이 대상에 의존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칸트가 윤리학을 쾌락주의와 단절시킨 것을 강조한다. 라캉이 정신분석의 윤리를 칸트적 정언명법에 연결시키는 것은 둘 다 순수형식에 기초한 절대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칸트가 윤리의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윤리와 정념(Pathos)을 단절시켰을 뿐 아니라 순수형식이 질료 즉 충동의 대상(동기,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윤리는 주체의 진리를 겨냥하는데 그것은 늘 실재를 대상으로 삼는다.
“도덕적 행동은, 사실상, 실재 위에 접목된다. 그것은 새로운 어떤 것을 실재에 도입하고, 그로써 우리의 현존 지점이 적법화되는 하나의 통로를 열어 놓는다.” 세7, 21
여기서 실재는 존재의 문제에 연결되며, 라캉은 이를 프로이트의 다음 경구를 통해 강조한다. Wo es war, soll ich werden. “그것이 있던 곳에 내가 도달해야 한다.” “너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해야 한다.”
주체가 자신의 존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소외의 다음 단계인 분리(separation)을 통해서인데 이것은 결국 존재결여에 대한 능동적인 자리 매김이다. 분리의 대상은 ‘오브제 a' 지마, 그것은 ’물 Ding'의 형상으로 제시된다. 이 둘은 순수 무로 정의되는 다 주체의 존재와 관계있다.


4 윤리적 모델로서의 안티고네
욕망의 윤리를 라캉은 안티고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예시로서 제시한다. 안티고네는 크레온으로 대표되는 선과 공동체 중심의 윤리에 대항하여, 욕망과 보편성의 윤리를 대변하는 인물의 역할을 한다. 크레온이 애국자와 반역자라는 이분법적 윤리에 기초한다면, 안테고네는 선의 원칙을 넘어서는 미의 원칙을 표방하며, 법 자체를 따름으로써 초월성의 영역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나아간다. 안티고네가 크레온에 맞서는 이유는 자신의 정념 때문이 아니라 상징계의 법(신의 법률)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가 범죄자이거나 반역자라는 사실보다는 “그는 그 자신이고(il est ce qu'il est), 장례의식은 무조건 허용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의 행위를 행한다. 이러한 테러리스트적 면모가 안티고네의 미를 보여준다. 반면에 크레온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유기하고, 안티고네를 무덤에 가둠으로써 상징계로부터 이들을 추방하려고 하는 오만함을 보인다.
‧ 크레온 : “불복종보다 더 큰 악은 없다.” “착한 이에게 나쁜 자와 같은 몫이 주어져서는 안되지… 적은 죽어서도 친구가 안 되는 법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여인이 나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 안티고네 : “우리는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나는 부모님의 비참한 아이죠. 나는 지금 저주받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이 머무는 곳으로 가고 있어요.…오빠의 죽음이 나를 살아 있는 죽음으로 끌고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