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아프로디테(베누스, 비너스)

이야기의 첫 순서를 고대 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로 정한 것은 그녀가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에 친숙한 우리에겐 ‘비너스 여신’으로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흔히 라틴어 ‘베누스’로도 많이 쓰고 있다.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미술작품은 실로 무지기수이며 대단한 걸작들이 그녀의 주제를 통해 나오기도 했다. 루브르미술관이 자랑하는 <밀로의 비너스>(도1)도 그 중 하나이다. 아프로디테 여신은 우리가 손쉽게 고대 신화를 접하면서도 역대의 명작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기에 좋은 테마이다.
사랑의 여신, 미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의 이야기는 서양 미술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주제이다.

1.1. 아프로디테 탄생 설
그녀의 탄생에 관해서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Hesiodos) 설이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그녀가 제우스와 바다의 요정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한 반면, 헤시오도스는 하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딸이라고 하였다.

… 이렇게 우라노스의 남근은 낫에 잘려 바다에 던져졌고, 서구 신화에서 사상초유의 부친거세 사건이 발생했다. 푸른 바다에 떠다니는 하얀 물거품은 그때 흘러나온 우라노스의 정액이고, 아프로디테는 그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거품을 ‘아프로스(aphros)’라 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프로디테는 바로 ‘거품에서 태어난 신’이란 뜻이다. 한편, 그때 흘린 피는 대지에 스며들어 님프(요정)를 낳았다고 한다.

… 키프로스 섬은 훗날 ‘아프로디테 섬’으로 불리게 된다. 보티첼리의 <베누스 탄생>(도2)은 이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 『변신Metamorphoses』의 작가로 유명한 로마시대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 B.C. 43~17년경)는 제피로스가 아내를 ‘꽃의 여신’ 플로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보티첼리는 이 장면을 <베누스 탄생>보다 앞서 그린 <봄>(도3)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1.2. <베누스 탄생>을 그리게 된 배경과 참고 물
… 그는 폴리치아노(Agnolo Ambrogini, il Poliziano, 1454~1494)의 서정시집 『마상시합(馬上試合)Giostra』 을 읽고 ‘바다에서 나오는 한 여신’을 묘사한 시구(詩句)를 그려달라고 부탁한 것인데, 이 시는 피살당한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가 마상시합에서 우승했을 때 축시로 지어진 것이다.

… 이에 아프로디테를 누드로 처음 표현해서 명성을 높였던 두 명의 예술가가 있었는데, 화가로서는 방금 말한 이오니아의 아펠레스였고, 조각가로는 아테네의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기원전 390년경)였다.

… 따라서 <베누스 탄생>은 시모네타를 위해 주문됐거나 그녀 자신이 주문한 것이며, 폴리치아노가 작품 구상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해졌다. 미모의 그녀는 한 피렌체 상인(商人)의 배우자였는데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1.3. 베누스의 신성화와 알레고리
“로렌초, 그대는 베누스를 즉, ‘휴마니타스(Humanitas, 人性)’를 응시해야만 했었네. 왜냐하면 ‘휴마니타스’는 하늘에서 최상의 은혜를 입고 태어난 요정으로서,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지. 그녀의 영혼은 ‘사랑’이고 그녀의 정신은 ‘자비’이네. 그녀의 두 눈은 ‘존엄’과 ‘고결’이며 두 손은 ‘자유’와 ‘장려(壯麗)’, 두 발은 ‘친절’과 ‘겸양’이지. 이로서 그 전체는 ‘절제’와 ‘정직’, ‘매력’과 ‘광휘’가 아닌가.”(서한문)
 
… <베누스 탄생>에서 진주의 백색과 금의 광채가 주는 독특한 감동을 화폐가치로 환산시켜 볼 때, 거기엔 미학적 가치, 마술적 가치, 경제적 가치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 이 그림은 이 그림을 소유했던 메디치가의 부와 미덕을 칭송하기도 한다.

1.4. 아프로디테는 자매였다.
… 플라톤의 『심포지엄』에서도 이들 자매를 빗대어 고상한 사랑과 저속한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언니로서 어머니가 없는 우라노스에서 태어났고, 동생인 아프로디테 판데모스는 제우스와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 도상해석학자 파노프스키는 <성스러운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의 배경에 묘사된 토끼들을 다산의 상징으로 설명했고, 빈트(Edgar Wind, 1900~1971)는 우물에 묘사된 채찍 맞는 남자와 고삐 풀린 말을 이교도들이 (첫날 밤) 치르는 사랑의 한 통과의례라고 한다.

… 이 그림의 실제 인물은 로라(Laura Bagarotto)라는 신부로 전해진다. 미리 말해 이 그림엔 ‘신부혼례의 덕담’이 담겨있는데, 이것은 1514년 그녀가 베네치아 법조계 고위직에 있던 니콜로(Niccolò Aureli)와의 결혼을 기념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이 결혼하기 5년 전에 가엾게도 사형선고를 받은 파도바 지방의 한 법관이었다.

1.5. 로마의 특별한 베누스
… 베누스 숭배는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와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일족인 율리아 가문의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

… 이로써 로마에서는 행운의 베누스, 승리의 베누스, 번식의 베누스들이 여기저기 세워졌다. 백조가 이끄는 마차의 베누스, 돌고래나 트리톤에 이끌려 옥좌에 오르는 베누스, 미의 승리로 획득한 금 사과를 들고 당당하게 나신을 자랑하는 베누스는 모두 ‘베누스 숭배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조각된 <아프로디테, 일명 ‘아를르의 베누스’>(도10)도 한 예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신고전주의 조각가 카노바(Canova)도 나폴레옹의 여동생에게 사과를 들려주어 <승리의 베누스, 폴린느 보나파르트>(도11)로 묘사했다.

1.6. 아프로디테의 ‘아네모네 축제’
… 마침 아도니스가 혼자 사냥을 떠나자 아레스는 사나운 멧돼지로 변신해 그의 가슴을 받아 죽인다. 말년의 루벤스는 20대 초반의 꽃다운 아내 헬레나 푸르망을 모델로 이 이야기를 그려냈는데, <베누스와 아도니스>(도13)가 그것이다.

… 아프로디테는 애틋한 아도니스를 기리기 위한 제전을 베풀었는데 이것이 아네모네 축제이다. 사람들은 이때 꽃을 빨리 피우기 위해 따듯하게 데운 맥주를 뿌린다고도 한다.

1.7. 메소포타미아에 뿌리를 둔 베누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비너스’는 사실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에서 비롯되었다가 서양의 고대신화로 전해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처음에 이난나(Inanna. 수메르인), 이슈타르(Ishtar. 아카드인), 아스타르트(Astarte. 서 셈족), 하토르(Hathor. 고대 이집트인), 아프로디테(고대 그리스인), 베누스(로마인), 그리고 지금 영어의 비너스로 불리게 된다.

… 이난나 여신의 용모는 젊고 아름답지만 성격은 매우 충동적이었다.

… 이슈타르는 또한 육체적 사랑을 즐기기에 매춘의 수호 여신이자 술집의 후원자였다. 우루크는 이슈타르를 숭배했던 중심지로서 매음녀들이 많은 도시였다. 이슈타르 신전들은 매춘의 장소였으며, 실제로 바빌론의 여인들은 일생에 최소 한 번은 신전에 들어가 여신을 위한 매춘 봉사를 해야만 했다.

… 아스타르트는 성서에서 히브리어 식으로 아스다롯이라 한다. 본래는 아스도렛이 그녀의 이름이고 아스다롯은 그 복수형(이교도 여신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됨)을 나타내는 말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간혹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 사랑과 전쟁, 풍요의 여신으로서 특히 지중해의 주요 항구였던 시돈에서 크게 숭배되었다.

… 사랑과 전쟁이라는 이중성을 지닌 아스타르트 여신도 이슈타르처럼 저녁별과 새벽별로 상징하게 되었다. 저녁별은 성적 욕망을, 새벽별은 전쟁을 의미하는 별이었다. 그래서 여신은 밤에는 저녁별이 되어 술과 사랑을, 낮에는 새벽별이 되어 피와 전쟁을 즐겼다.

… 지혜의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도 한때 이 여신을 섬겼다.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상왕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