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포 (Defoe, Daniel / 1660~1731)

영국의 저널리스트·소설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네덜란드계 국왕에 대한 국민의 편견을 공격한 풍자시 《순수한 영국인》(1701), 비국교도(非國敎徒)이면서도 마치 국교도 쪽에 서 있는 것같이 주장한 팜플렛 《비국교도 대책 첩경》(1702) 등의 시사적인 문제를 저작으로 내놓았으나, 후자 때문에 필화를 당하여 감금되었다. 60세 가까이 되어서 영문학 사상 그의 이름을 영원히 남긴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1719)는 그의 처녀작이라고 해도 좋다. 난파되어 혼자 무인도로 표류한 사나이가, 그곳에서 착실하게 생활을 해 나가는 모습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인데, 모든 것을 실제로 보고 온 듯이 치밀하게 그려서 박진감이 있다. 이 밖에도 《해적 싱글턴 》(1720), 《몰 플랜더스》(1722), 《로크사나》(1724) 등 많은 작품이 있다. 디포의 소설은 이른바 ‘악당 소설’이 많고, 그 사실적 수법 때문에 영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간주된다.

    ● 텍스트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영국의 작가 디포의 장편소설(1719). 원제는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이다. 작가가 60세 가까운 나이에 처음 쓴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 주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요크 태생인 크루소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험 항해에 나선다. 바다에서 난파, 홀로 무인도에 표착하여 창의와 연구, 그리고 근면과 노력으로 착실한 무인도 생활을 설계해 나간다. 우선 배에서 식량·의류·무기, 그리고 개·고양이를 운반하여 오두막집을 짓고 불을 지피며 염소를 길러 고기와 양젖을 얻고 곡식을 재배하는 한편 배를 만들어 탈출을 꾀한다. 또 무인도에 상륙한 식인종의 포로 프라이데이를 구출하여 충실한 하인으로 삼고, 마지막에는 무인도에 기착한 영국의 반란선을 진압하여 선장을 구출, 2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허식 없이 사실적으로 쓴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의 선원 알렉산더 셀커크(A.Selkirk)의 무인도 표류기를 소재로 삼았다고 하나, 오히려 그 내용은 디포 자신의 상상을 구사한 우화소설이다.

□ 강좌 메모

    ▶ 로빈슨 크루소는 어떻게 자연의 위기에서 벗어났나

• 신앙심 / 도구 개발 / 현실 수용 / 절대 고독에서 새로운 삶의 개척 / 사냥과 경작
• 농사짓는 방법(=테크놀러지)을 몰랐는데 로빈슨 크루소는 어떻게 그 방법을 터득했나?
• <모든 것은 이성으로써 처리하면 가능했다.>
  →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이성의 위대성을 보여준 대목으로 볼 수 있다.
•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28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이성 또는 합리적 판단의 원칙을 자연에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구인의 전형적 자연관이다.

   cf.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민음사 1995)

프랑스판 '로빈슨 크루소'. 무인도에서의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생활을 흥미롭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디포의 작품을 뛰어넘는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방드르디』(=프라이데이) 내용 발췌

방드르디는 새로운 생활을 긴 낮잠을 즐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는 바닷가의 종려나무 두 그루 사이에 칡으로 엮은 그물 침대를 만들어 그 속에서 온종일 빈둥대곤 했다. 그가 어찌나 움직이지 않던지 새들이 근처에 있는 나무에 내려와 앉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취시통을 사용해서 새들을 잡았고, 저녁에 로빈슨과 함께 잡은 사냥감을 구워 먹었다. 분명히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방식이었다.

로빈슨도 나름대로 완전히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의 머리는 매우 짧았고, 풍성한 수염을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제 그는 폭발로 이미 손상된 수염을 깎아 버렸고,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둔 머리는 온통 황금빛 도는 고수머리가 되었다. 그는 훨씬 젊어 보였고 방그르디와는 형제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총독의 머리 모양을 갖추지 않았고, 장군의 면모도 사라졌다.

그의 몸 역시 많이 변했다. 그는 언제나 햇살을 두려워했다. 어쩌다 햇볕에 나설 때에는 머리에서 발 끝까지 옷으로 가리고 모자를 썼으며 염소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양산을 사용했다. 그래서 그는 털이 뽑힌 암탉처럼 하얗고 연한 피부를 지녔다. 방드르디가 자꾸 권하자 로빈슨은 벌거벗은 몸을 햇볕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웅크렸고 보기 흉한 모습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피부는 단단해졌고 구릿빛으로 변했으며, 툭 튀어나온 가슴과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방드르디와 함께 온갖 놀이를 했다. 모래밭에서 달리기 시합을 했고, 수영과 높이뛰기 그리고 나무서서 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바위에 기대어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조금씩 버팀대에서 몸을 떼고 방드르디의 박수 갈채 속에 어설프지만 가기 시작했다.

   ● 미셸 투르니에의 저술 의도

"내가 볼 때 1719년에 나온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먼저 그 소설에는 로빈슨이 섬에 표류하여 처음 만난 방드르디(=프라이데이)가 있으나마나 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단지 빈 그릇일 뿐이었지요. 진리는 오로지 로빈슨의 입에서만 나옵니다. 그가 백인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소설을 읽고 다시 쓰고자 한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방드르디가 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보자는 데에 있었지요. 그래서 소설의 제목을 『로빈슨 크루소』라 하지 않고 『방드르디』라 했던 것입니다.

디포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과거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섬에 혼자 던져진 로빈슨은 오직 당장 구할 수 있는 것들만을 가지고 과거의 영국을 재현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난파한 배의 유류품을 주워 모아 섬 안에 작은 영국 식민지를 또 하나 만들어놓지요. 그러니까 로빈슨은 과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고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로빈슨의 의도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쑥 나타난 방드르디가 로빈슨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리는 소설을 말이지요. 백지처럼 되어버린 그 곳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그 속에서 방드르디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여 로빈슨으로 하여금 과거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도록 도와주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 어느 인터뷰에서

   ▶ 동양과 서양의 자연관

• 동양: 무위자연(無爲自然), 스스로 그러한 상태
• 서양: 자연 상태를 지배하는 것은 야만이다. (Th.홉즈의 '사회계약론')
• 동서양의 자연관에 대한 질문들: 자연은 인간 사고에 의해 종속되어야 하는가, 인간이 자연에 순응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간을 문명을 포기해야 하는가, 자연 정복적 삶은 무엇이고 자연 순응의 삶은 무엇인가…….

   ● 전체 강의 맺는 말

"한민족이 세계사에 공헌한 적 있는가? 어쩌면 철저히 빚만 지고 살지 않았나? 세계사에 진 빚을 이제는 갚아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