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이영준-발터 벤야민 : 카카오톡 시대의 예술작품1

발터 벤야민: 카카오톡 시대의 예술작품―기계비평가의 관점으로 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오류 혹은 우리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

이 영 준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주된 뼈대: 복제가능성―정신분산―정치화
줄거리
㉠ 사진과 영화의 발명으로 예술작품이 ‘기술적(mechanically)'으로 복제됨.
㉡ 하나의 진품에 대한 여러 장의 똑같은 이미지들이 돌아다니자 예술작품에 들어 있던 아우라가 파괴됨. (아우라란 사물과 사람이 교감하는 현상)
㉢ 아우라가 걷히자 신비감도 사라지고 종교에 종속돼 있던 예술의 숭배가치(Kultwert)가 전시가치(Ausstellungswert)로 바뀜.
(이때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즘이 등장, 예술을 혁명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생김. 이때 문제는 어떤 내용을 묘사할 것이냐가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는 매체의 기능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치할 것인가 하는 것. 즉 오늘날의 미디어 스터디의 기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복제이미지는 대중을 전문가로 만들음(?). 전시가치란 작품을 숭배하는 태도가 아니라 솔직하게 반응을 나타내는 태도이므로 대중은 시험관의 태도를 가지게 됨 (다만, ‘정신이 산만한 시험관‘이라고 살짝 유보조건을 붙임.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이 있나? 시험관이란 고도의 지적 능력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입시면접에서 채점 하는 교수가 카톡을 하고 있다면? 혹은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 하는데 심판이 카톡을 하고 있다면?)
㉤ 대중이 가지는 혁명적 가능성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냄.
“대중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일체의 전통적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하고 다시 태어나는 모태(matrix)이다.”
영화에서 그 가능성을 본 이유는 부르주아가 추구하는 가치인 침잠(Versenkung) vs. 사회적 행동의 한 양태로서의 정신분산(오락, Ablenkung)의 대비 때문. “영화관에서 관중의 비판적 태도는 감상적 태도와 일치한다.”
㉥ 파시즘은 정치를 심미화하려 하는데 (나치의 뉘언베어크 집회가 대표적인 사례), 전쟁은 산업적 기술의 생산력을 파괴적이고 왜곡되게 사용한 사례. 공산주의는 예술의 정치화를 통해 이에 맞선다. (하트필드의 몽타주가 좋은 사례) 영화와 사진이라는 매체가 대중들을 위해 혁명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 한국에서 아우라 개념의 오해
아우라를 오로지 감성의 측면에서만 이해하려 함.
아우라는 미적 가상의 개념과 연관. 그런데 이런 개념은 새로운 지각의 시대에 역사의 지평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미란 껍질도 아니고 껍질에 쌓인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미란 껍질 속의 대상이다” 여기서 껍질이 아우라.
아우라는 사물(혹은 예술작품)과 인간 사이의 인터페이스의 한 양상. 복제기술 (혹은 재현기술)의 발달이 그런 인터페이스의 양상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시키는가가 벤야민의 관심. (박해천, <인터페이스 연대기>)
벤야민 자신의 아우라 개념의 애매함: 아우라가 원래 있다가 복제기술 때문에 파괴된 것인가, 아니면 그림들이 대량 복제되니까 아우라라는 것이 눈에 띄게 된 것인가?
“사실 중세의 마돈나 그림이 생산될 당시만 해도 그것은 아직까지 진품이 아니었다. 그것이 발명된 그 이후의 세기들, 특히 아마도 19세기에 그렇게 진품이 되었다.”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기술복제시대에 예술작품에서 손상을 입는 것은 그것의 아우라이다”(벤야민)라는 말에 대하여, “사실 아우라는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현상이자 미학적 지각의 함수였다 [....] 정작 아우라는 사진술의 도움으로 구성된 속성인데 말이다.” (나탈리 에니크,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노트“, p.99, 인문예술잡지 F)
“영화에서 관객은 즐거움과 비판적 태도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숨어 있는 전제들
○ 전통적 내러티브의 한계: 유기적인 기승전결을 통해 세상을 조화롭게 묘사하는 특성. 순차적인 시간배치를 통해 이 세상이 점진적으로 개선되며 전개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20세기 들어 과학기술의 발전과 도시가 가져다 주는 충격으로 말미암아 그런 내러티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됐다) 세상의 속도가 변하고 다층적이 됨에 따라 먼저와 나중을 순차적으로 놓는 역사 시간의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됐다.
벤야민의 중요성은 이런 시대적 지각변동의 한 가운데 있는 사진의 중요성을 포착한 것. (오늘날 한국에서 사진이 중요하면서도 주변화되어 있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통적 역사시간의 개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역사철학 테제>와 함께 읽어야 한다. “역사가 우리 앞에 쓰레기만 쌓아놓는 것이라면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what appeared as the fated progression of historical time could be shown to be the phantasmagoric appearance of eternal repetition, mythic time, under conditions of capitalism. (Benjamin, Arcades Project)

벤야민의 독특한 시간관(즉 역사관)은 변증법적 이미지란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다.
“It’s not that what is past casts its light on what is present, or what is present its light on the past; rather, image is that wherein what has been comes together in a flash with the now to form a constellation. In other words, image is dialectics at a standstill. For while the relation of the present to the past is a purely temporal, continuous one, the relation of what-has-been to the now is dialectical: is not progression but image, suddenly emergent. – Only dialectical images are genuine images (that is, not archaic); and the place where one encounters them is language.” (Benjamin “Awakening” Arcades Project, p.462) (변증법적 이미지란 시간에 관한 개념임을 알 수 있음. 변증법은 시간적 전개인 반면 이미지는 무시간적이라는 점에서 변증법적 이미지란 말은 대단히 모순적)
☆ 벤야민의 사상은 왜 난해할까? 혹은 아도르노가 글을 난해하게 쓴 이유: 쉽게 써서 쉽게 이해되는 글은 사회에 떠도는 기존의 내러티브에 쉽게 흡수돼 버리기 때문. 예술의 임무는 사회에 흡수되지 않는 어떤 블랙홀 같은 지점을 유지하는 것. (따라서 그는 예술의 전위성 혹은 수수께끼 성격(Ratselcharakter)만이 예술의 본질이라고 했다) 사회에 흡수된다는 것은 지배이데올로기에 흡수된다는 뜻.

● 벤야민이 사진에 매료됐던 이유: 전통적 내러티브를 벗어난 표상이기 때문. 그는 사진의 파편적 성격에 주목했다.

○ 벤야민의 교훈 1: 현대적인 매체는 모두 전통적인 시간관을 부정하는 새로운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다: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플레이어,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이런 매체기계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사진에 대해 사고해야 한다.)
매체로서의 사진에 대한 고민은 사진의 사회적 존재론에 대한 고민이어야 한다. 즉 사진이라는 기계적 이미지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가치를 획득하며, 이 가치는 어떻게 유지되거나 폐기되는지 따져야 한다. 이 가치는 다분히 기호학적 가치를 말 한다. 즉 이미지에 원래부터 내재한 어떤 가치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생산되고 유통되면서 부여되는 가치를 말 한다.
○ 벤야민의 교훈 2: 첨단 테크놀로지가 있다고 해서 사회가 발전하지는 않는다. 나치와 이명박 정권은 그런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그렇다면 벤야민 스스로에게 되묻는 말: 영화와 사진이라는 매체기술이 대중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 줄 수 있는가? 혁명적 각성은 (아니면 그냥 각성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와 지향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 아닌가?

벤야민의 정신분산을 다르게 해석하면? “The "I think, " which since Kant was supposed to accompany all of one's representations, presumably only accompanied one's readings. It became obsolete as soon as body and soul advanced to become objects of scientific experiments. The unity of apperception disintegrated into a large number of subroutines, which, as such, physiologists could localize in different centers of the brain and engineers could reconstruct in multiple machines.“ (Kittler, Gramophone, Film, Typewriter, p.188)

● 벤야민의 오류들
ⓐ 사진 자체는 복제기술이 아니며 인쇄가 복제기술이라는 점에 대해 깊이 다루지 않음. 사진은 원론적으로는 복제기술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인쇄가 복제기술.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가 생겨나는 과정은 한 장의 원판으로부터 수 많은 복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적 조건 (고속 인쇄기, 빨리 마르는 잉크), 사회경제적 요건 (바이마르 시대의 대중문화의 팽창과 문화산업의 자본주의화), 심리적 요구 (이미지를 더 쉽게 보고 싶어하는 욕구) 등과 얽혀야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 광학장치로서의 사진과 복제기술로서의 사진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음. 즉 ‘광학적 무의식’과 대량복제의 관계에 대해서 다루지 않음. (이 둘을 결합해서 해석한 이론은 아직까지 없었다. 예를 들어 카메라로 요세미티를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사진가인 안셀 애담스의 사진이 미국에서 달력과 실내장식용 포스터에 가장 가장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 대중들에게 매체기술을 준다고 해서 각성될까? (오늘날 매체기술은 오히려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데 앞장 서고 있지 않은가?) 사진이나 영화 자체는 절대로 대중을 각성으로 이끌지 않는다. 벤야민은 비판적 대중, 대중의 전문성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 벤야민이 남겨 놓은 문제들
㉮ 벤야민이 말한 테제들이 오늘날 들어맞지 않을 때 그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사진은 혁명적인 예술이 아니다 (예술이 혁명적이라는 말은 혁명을 묘사하고 프로파간다 노릇을 하여 수단으로서 혁명에 복무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이 혁명이 일어나는 자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예술 속에서 이 세계가 홀라당 새롭게 태어나고 해석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예술은 고통스럽다. 오늘날 사진은 고통스러운 예술인가? 예를 들어 사진을 볼 때 뒤샹의 작품을 보너가 피에르 불레즈의 음악을 들을 때와 같은 고통이 오는가?)
㉯ 읽기(literacy)의 문제: 단순히 고정돼 있는 개인 대 텍스트의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읽는 역사적, 물질적 조건이 변한다면? 1930년대에 사진을 읽을 것을 요구한 것은 새로운 요구 (오늘날 더 읽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소리? 속도? 진동?)

부록

●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반영하지도 않는다. 인간에게는 그런 수단은 필요 없다. 사진이 의미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에 또 한 겹을 덧대어 현실파악을 다층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사진의 역할이다. 사진은 현실에 대한, 현실과 다른 추가물이지 현실의 반영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벤야민이 ‘광학적 무의식(optical unconscious)라는 말로 나타낸 사진 특유의 지각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진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사진적인 현실이다. 사진은 광학적 특성과 파편성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현실감을 구성한다. 그것은 현실을 쪼개 내서 또 다른 재료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한 장의 사진이 현실을 잘 드러내주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질문은, 그 사진이 어떤 현실을 구성하고 있고 어떤 시지각을 동원하고 있는가이다. 더 나아가, 그런 시지각은 어떤 역사적 조건을 필요로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 벤야민이 대중문화의 혁명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대중은 혁명적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대중이 혁명적일 때만 본 것이다. 대중은 우매하기도 하다. <대중문화>라고 발음할 때 대중이란 말에 묻어 있는 우매함의 냄새만 맡아봐도 그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중은 혁명적인가?’라는 질문은 ‘대중은 우매한가?’라는 질문 만큼이나 우매한 것이다. 질문은 ‘대중은 어떤 조건에서 혁명적이 되는가?’, 나아가 ‘대중은 어떤 때에 스스로 에너지를 창출하여 역사적 진보의 흐름을 이루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즉 ‘대중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규정지을 것이 아니라 대중이 가지는 역동성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말의 전제는 대중은 기본적으로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기 때문에 역동적인 것이 아니라 대단히 우매한 대중이 대단히 진보적으로 바뀌는 속도와 양상이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즉 대중은 바보에서 현자로 스스로를 전환할 수 있는 만큼만 역동적이다. 군중심리에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대중을 역동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벤야민이 대중에게 가졌던 기대는 그런 역동성이다. 그것은 대중 자체에 내재한 속성이 아니라, 대중이란 '유체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즉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대중은 자신의 등에 쌓인 짐을 흔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어떤 것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서 벤야민의 변증법이 어떤 것인가가 매우 중요해진다: “분명 문화사는 인류의 등에 쌓이는 보화의 무게를 증가시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화사는 인류에게 그 보화를 뒤흔들어 그것을 수중에 넣을 수 있도록 할 힘을 부여해 주지는 않는다.” (”수집가이자 역사가로서의 에두아르트 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