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자료 / 시인 함민복 시 감상

① 여름의 가르침 2

낫 시퍼렇게 갈아
논두렁을 깎는다
풀에 묻힌 콩 대궁 조심하며
독뱀 튀어 오르면 모가지
댕강 날릴 생각도 하다가

땀 훔치며
허리 펴니

풀 향기가 사방을 에워싼다

몸 잘린 풀들이
향기의 비수를 날린다

향기롭다니!

핏속에 잠재된 잔인한 감각의
멱을 일순 따버리는
낫보다 시퍼렇게 날 선 풀 향기

② 긍정적인 밥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③ 시인 고은의 촌평

함민복의 시에도 백무산이 말하는 ‘경계’가 있다. 하지만 함민복의 경계는 실존적이다. 그럼에도 결코 철학에 기울어지지 않는 시의 견고한 힘을 갖추고 있다. 그 힘은 그의 시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되어야 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시작한 「꽃」의 절창에서 그는 그런 경계야말로 세상을 세상 그대로 견디게 한다는 지혜에 도달함으로써 새삼 세상 전체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시인 2」에서 산자락에 터잡은 암자의 종소리, 그 황종조(黃鍾調)의 종소리를 통해서 시 혹은 시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은 놀랍다. 종소리가 종의 겉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종이 그 속으로 울기 때문에 울려퍼진다는 아주 담담한 음조의 진술은 종소리가 아닌 쇳소리를 넘어서 “문득 가슴으로 깨어나／내부로 향하는 소리로 가슴 소리를 내고／그 소리로 다시 가슴을 쳐 울음을 낸다네”에서 “그렇게 종이 울면／큰 산도／따라 울어／큰 산도／종이 되어주어” 마침내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아가는 것이다. 이 시는 많은 시에 대한 경종도 울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쇳소리’나 내는 시, 겉으로 맞서는 시야말로 시가 아니라는 그 경종 말이다.
함민복의 많은 시편들은 시인 자신의 가난과 이웃들의 가난을 어떤 적의도 개입시키지 않고 사실 자체로서 삶의 명분을 이해하는 정서의 객관화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가난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시가 보석일 수 있는 사실은 「선천성 그리움」, 「세월 1」, 「환향」, 「자（子）」, 「가을 하늘」, 「만찬」, 「까치집」, 「득도」, 「몸이 많이 아픈 밤」, 「동운암（東雲庵）2」, 「독은 아름답다」 같은 시들의 비유의 잠언이나 그밖에 말할 수 없는 천부적인 것, 그가 이름 지은 미신（迷信)이 아닌 미신（美信)의 것 때문이다.
이만한 순결성으로 있는 현실에서 있어야 할 현실에의 예감으로 넘치는 아름다움이 바로 함민복의 시혼이 아니겠는가. 다만 시의 종결어미가 자주 불안하구나.

- 출전: 고은, 「시가 많은 시대의 시읽기」, 『창작과비평』 제94호